결혼·양육 부담 내려놓고 삶의 자유 찾는 2030
경제적 이유로 비혼 선택하는 청년들도 많아

결혼이 ‘필수불가결’처럼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다. 소위 말해 혼기가 꽉 찼는데도 결혼하지 않으면 무슨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취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결혼을 하지 않는 게 낯설지 않다. 상대방과 맞추어 살아가는 삶보다는 온전히 자신의 삶을 홀로 책임지며 살겠다는 데 청년들의 공감이 커지며 자연스럽게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됐다. 결혼을 못 하는 게 아닌 하지 않는 ’비혼’은 청년들 사이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본보는 청년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비혼 문화를 짚어보는 <비혼합니다>를 기획했다.

ⓒ게티이미지뱅크

【투데이신문 채희경 인턴기자】 결혼 여부를 기준으로 한 사람의 삶의 방식은 미혼(未婚) 아니면 기혼(旣婚)으로 구분돼 왔다. 

미혼은 아직 혼인하지 않은 상태라는 의미로, ‘결혼하지 않은 것은 미완성의 상태’라는 전통적인 가치관이 반영돼 있다. 

이처럼 과거에는 결혼을 일종의 ‘완성’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청년들에게 결혼은 더 이상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됐고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지 않는 ‘비혼(非婚)’을 선택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개인적인 가치관에 따른 ‘자발적 비혼’과 처해진 환경 탓에 불가피하게 결혼을 하지 못하는 ‘비자발적 비혼’ 등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우리 사회는 어떠한 이유에서든 점점 확산되고 있는 비혼 문화를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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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자유 찾아 나서는 청년들

과거 결혼은 삶에 있어 필수 요소였다. 가족 중심적인 전통 사회에서는 적정 나이가 되면 짝을 만나 아이를 양육하며 한평생 함께 사는 게 마치 인생의 진리처럼 당연하게 여겨지고 장려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가족 또는 미래에 대한 희생보다는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는 ‘욜로 인생(YOLO, You Only Live Once)’을 추구하는 청년들 점점 늘고 있다. 그러면서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됐다.

통계청이 공개한 ‘2018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에 대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48.1%로 집계됐다. △2010년 64.7% △2012년 62.7% △2014년 56.8% △2016년 51.9%로 꾸준히 감소해 절반 이하로 내려갔다.

또 지난 3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9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혼인 건수는 △2015년 30만2800건 △2016년 28만1600건 △2017년 26만4500건 △2018년 25만7600건 △2019년 23만9200건으로, 1970년 이래 해마다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1인 가구인 회원들이 주로 이용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비혼과 관련한 긍정적인 게시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이 커뮤니티 회원인 한 누리꾼은 일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어 비혼을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 다른 누리꾼은 다른 사람에게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취미 생활에 집중하다 보니 행복감을 크게 느낀다며, 비혼 선택 이후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자신이 선택한 동반자와 평생을 살아야 하는 결혼에 대해 큰 책임감을 느끼며 살기 보다는 개인 삶의 가치와 커리어 역량 향상을 우선하면서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청년들의 욕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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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비혼도 있어

자신만의 가치관에 따라 비혼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비자발적‘ 비혼 청년들도 상당하다.

2017년 총신대학교 아동학과 강유진 교수의 ‘성인남녀의 비혼유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연구에 따르면 비혼 결정 이유를 ‘자발형‘, ‘결혼비용부담형‘, ‘기회상실형‘, ‘불이익부담형‘의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살펴본 결과 ‘기회상실형‘이 가장 많았고, ‘결혼비용부담형‘이 뒤를 뒤를 이었다.

비혼을 자발적인 삶의 방식으로서 스스로 선택한 경우보다는, 결혼 기회가 없거나 결혼을 위한 재정적 준비가 되지 않은 것과 같은 외부적 이유로 이뤄진 경우가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5월 인크루트와 알바콜이 성인 미혼남녀 56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혼가치관‘에 관한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응답자 중 비혼(혼인 계획이 전혀 없다)을 선택한 응답자는 30.3%로, 이들은 비혼 선택의 이유로 ‘결혼비용‘(23.3%)을 가장 많이 꼽았다. 

특히 여성은 ‘임신 및 육아’(20.2%)를 답변한 비율이 높은 반면 남성은 ‘결혼자금’(32.3%)을 1위로 선택해 남녀 응답자의 차이를 드러냈다.

대전세종연구원 류유선 연구위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현재 청년들이 학교를 졸업한 후 이전 세대 보다 경제적 독립과 사회적 독립이 함께 이뤄지기 힘들어 자기 재생산 기반을 마련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비자발적 비혼이 더욱 증가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5일 서울 용산구 드래곤시티에서 열린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인문사회 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br>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5일 서울 용산구 드래곤시티에서 열린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인문사회 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비혼도 가족 형태 중 하나일 뿐

이제는 비혼이 낯선 문화는 아니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는 결혼을 안 한 사람들을 실패자로 보거나, 결혼과 출산을 연결 지으며 비혼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남아있다.

이 같은 문제의 해소 방안으로 비혼과 같은 가족 형태를 아우를 수 있는 차별 없는 가족정책의 변화가 지목되고 있다.

실제 현실을 반영한 가족정책을 도입하기 위한 노력이 사회 곳곳에 나타나고 있지만 눈에 띄는 변화를 일궈내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지난해 2월 보건복지부 산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발표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수정안’은 모든 세대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혼인, 출산 여부와 관계없이 모두 당당할 수 있는 사회’를 목표로 삼고 있다.

이 수정안에는 ‘모든 아동이 차별 없이 보호받는 여건을 확립하고 포용적이며 평등한 가족 문화를 조성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수정안은 ‘삶의 질’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뤄냈다면서도 청년의 가치관 변화를 반영하고 있지 못하는 등의 한계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아쉬운 평가를 받았다.

류유선 연구위원은 “결혼과 출산은 무조건 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선택하는 것”이라며 “현재 가족 정책은 이성애 중심적으로 이뤄져 있으며 가족이 꼭 결혼을 통해 이뤄진다는 기존의 문화적 인식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족은 꼭 결혼만이 아니고 다양한 방식으로 형성될 수 있다. 반드시 결혼과 연관 지어서 생각하는 건 기존의 문화적 규범”이라며 “나와 다른 삶의 방식을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게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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