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비혼 관련 문화 컨텐츠 급 부상 중
기업들을 주축으로 비혼 복지·서비스 증가

결혼이 ‘필수불가결’처럼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다. 소위 말해 혼기가 꽉 찼는데도 결혼하지 않으면 무슨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취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결혼을 하지 않는 게 낯설지 않다. 상대방과 맞추어 살아가는 삶보다는 온전히 자신의 삶을 홀로 책임지며 살겠다는 데 청년들의 공감이 커지며 자연스럽게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됐다. 결혼을 못 하는 게 아닌 하지 않는 ’비혼’은 청년들 사이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본보는 청년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비혼 문화를 짚어보는 <비혼합니다>를 기획했다.

<사진출처 = KBS2 ‘그놈이 그놈이다’ 홈페이지>

【투데이신문 채희경 인턴기자】 최근 방영 중인 KBS 2TV 드라마 ‘그놈이 그놈이다’의 주인공 서현주(황정음 분)는 비혼주의자로, 결혼하지 않고 홀로 인생을 즐기는 지금 이 시대의 비혼 청년들의 모습을 대변한다.

웹툰 업계 최고의 기획 팀장인 커리어우먼 서현주는 자신의 약혼식날 “결혼을 생각할 수록 하지 말아야 할 이유만 떠오르고 해야할 이유는 못찾겠다”며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비혼을 선언했다.

서현주는 가족들과 지인들 앞에서 “난 결혼이랑 맞지 않는 것 같다. 남편 말고 나 자신을 내조하려고 한다”며 “평생 내가 하고 싶은 일이랑 동고동락하면서 살아볼 생각이니 다들 축의금 많이 줘라”라고 밝히며 약혼식 대신 비혼식을 가졌다. 

이는 결코 드라마 속에서만 일어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비혼 청년들이 ‘결혼식‘ 대신 ‘비혼식’을 진행하기도 하고, 일부 기업에서는 비혼 직원을 위한 복지 혜택을 지원해주는 등 결혼에 대한 청년들의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관련 산업이나 복지 등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비혼 산업 성장의 강자 일본

비혼 문화와 관련한 산업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국가는 일본이다. 일본에서는 여성들의 경제 참여 증가와 혼인 인구 감소에 따라 비혼자와 관련된 문화와 서비스가 사회 곳곳에 빠르게 도입됐다.

일본 총무성의 국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0년도 기준 50세까지 결혼을 한번도 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인 ‘생애미혼율’이 여성 10명 중 1명(10.6%), 남성 5명 중 1명(20.1%)인 반면 2015년도에는 여성 7명 중 1명(14.1%), 남성 4명 중 1명(23.4%)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현상은 결혼 및 출산의 경제적 부담에서 벗어나 삶의 자유를 추구하고자 하는 청년들의 가치관이 반영돼 있다. 경제적인 의지 혹은 희생 없이 서로에게 구속되지 않으며 비혼 라이프를 추구하는 일본 청년들의 모습은 한국과 크게 닮아있다.

일본의 사회학자인 우에노 지즈코와 미나시타 기류는 책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에서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한정된 자원을 두고 다투는 경쟁이 심화되면서 성별을 막론하고 제 앞가림하기도 힘들어져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다. 부양하거나 돌볼 가족이 없는 것이 유리하다”며 “결혼을 하고 안 하고는 전적으로 개인이 선택할 문제이며, 비혼은 결혼과 마찬가지로 삶의 방식 가운데 하나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사회에 급격하게 비혼 문화가 확산되던 2010년 무렵에는 결혼을 포기한 사토리 세대(달관세대)부터 이후 ‘초식남’, ‘건어물녀’ 같이 결혼 및 연애에 관심이 없는 청년들을 지칭하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결혼에 대한 일본 청년들의 가치관 변화는 비혼 관련 산업이 크게 성장하는데 기여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일본은 솔로웨딩 촬영 외에도 다양한 1인 소비 서비스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2018년 ‘1인 고기집’을 콘셉트로 도쿄에서 처음 문을 연 ‘야키니쿠 라이크’는 5년 안에 300개 점포 오픈을 목표로 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 1인 손님을 위한 캠핑장이나 프로가 사용하는 레코딩 기계가 있는 룸, 럭셔리 룸 등 다양한 테마를 갖춘 1인 노래방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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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흐름에 발맞춘 비혼식‧싱글웨딩

최근 몇 년새 비혼 청년들이 증가하고 있는 한국에서도 웨딩 업계에도 비혼자들을 위한 다양한 상품이 등장하는 등 관련 산업의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다.

결혼식과 마찬가지로 지인들을 초대해 축하를 받는 비혼식을 진행하기도 하고, 전문 스튜디오 등에서 웨딩드레스만 대여해 홀로 사진을 남기는 싱글 웨딩 촬영을 하기도 한다.

거창하게 업체를 통하지 않고 회비를 내고 전통의상 한복을 입고 공동 비혼식을 열어주는 소모임도 존재한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 비해 비혼 청년들이 늘어남에 따라 싱글웨딩에 대한 관심과 문의가 크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웨딩 사진 전문 업체인 공드리 스튜디오의 이진희 대표는 “예전에는 여성들이 결혼을 인생의 목표로 여겼던 인식이 있었다면 지금은 당장의 결혼 생각보다는 현재 자신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싱글웨딩 사진으로 남기고자 하는 분들이 많다”며 “문의하는 분들은 주로 30대 중·후반으로, 과거에 비해 연령대가 증가했지만 결혼에 대해 다급하게 생각하지 않는 인식의 변화가 일어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싱글웨딩에 대한 문의가 거의 전무했던 것을 비교해보면 이런 관심이 하나의 트렌드로 장착한 것 같다”고 부연했다.

사내 복지 정책의 일환으로 비혼을 결심한 임직원들의 ‘비혼식’을 열어주는 회사도 있다.

영국 코스메틱 브랜드 러쉬(LUSH)코리아는 지난 2017년 6월부터 연 1회 비혼 선언의 날을 지정해 접수 기간 중 근속연수가 만 5년으로, 비혼을 선언한 직원에게 결혼을 하는 직원과 동일하게 축하금 50만원과 10일의 유급휴가를 제공한다.

조용한 방식의 비혼식을 원하는 임직원인 경우 액자에 의미있는 사진을 넣어 비혼 선언문과 함께 전달하기도 하고, 여러 직원들의 축하를 받고 싶은 경우에는 파티를 열어 함께 축하를 해준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임직원들과 함께하는 비혼식을 마련하지 못했지만 해당 직원의 의사를 반영해 별도의 선물을 마련해 개별 전달했다고 한다.

비혼식에 참여한 직원들은 개인적인 선택을 존중한다는 부분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러쉬코리아 관계자는 “구성원의 삶의 방식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게 러쉬코리아의 기업문화”라며 “결혼과 기혼자에게 집중된 복지혜택에 해당되지 않는 직원들에게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사내에서 의견을 모아 ‘비혼자 복지혜택’을 시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통상적인 복지가 아니라 직원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모두에게 동일한 직접적인 혜택을 주기 위해 마련한 제도라는 점에서 직원들의 반응이 좋은 편이다”고 말했다.

러쉬코리아를 시작으로 기존 기혼자 중심의 복지 정책을 수정해 비혼인 직원들도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기업들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신한은행은 미혼 직원들을 대상으로 기혼 직원의 결혼기념일 축하금과 동일한 금액의 ‘욜로(YOLO) 지원금’을 지원하고, 우리은행과 KB국민은행 등은 미혼 직원 부모를 위한 종합건강검진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비혼 청년을 위한 복지 정책과 서비스가 확대돼 결혼하지 않은 이들의 삶을 또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존중받고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고 포용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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