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세권’ ‘OO까지 10분’ 등 명확한 법적 기준 없어
모호한 기준에 소비자들 혼란…소송전 발생하기도
광고 전단 아닌 소비자의 적극적인 정보 확인 필요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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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한영선 기자】 #‘원종동 사거리의 새로운 서울 특권! 여의도 8분, 서울역 14분, 원종 역세권에 GTX-B까지 새로운 서울이 OO 아파트에서 시작됩니다’

최근 분양을 앞둔 부천 원종동의 한 아파트의 모델하우스 옥외광고의 문구다. 해당 광고를 언뜻 보면, 내가 입주할 아파트가 원종동 ‘역세권에 위치하고, 서울 내 진입이 ‘8~14분’ 정도 걸릴 것이라고 추측하게 된다. 

본지가 확인해본 결과 ‘원종역’ 공사가 진행 중인 ‘원종사거리’에서 해당 아파트는 약 598m에 떨어진 곳으로 도보로 약 8분거리에 위치한다. 그리고 원종역의 노선도를 보면 GTX-B가 들어설 부천종합운동장역까지 한 정거장(약 3분)으로 추정된다. 

즉, 해당 문구에서 언급하는 ‘여의도 8분과 서울역 14분’은 ‘원종역’ 기준이 아닌 GTX-B의 부천종합운동장역-여의도(8분) 부천종합운동장역-서울역(14분)을 뜻한다. 각각 11분이 생략된 것이다.  만약 원종역이 들어서게 되면 여의도까지 8분이 아닌 19분, 서울역까지 14분이 아닌 25분이 된다.  

GTX-B 노선은 올해 안에 기획재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재정사업 또는 민자사업으로 추진 여부가 결정될 예정으로 내년 4월에 기본계획이 고시된다고 알려져있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GTX-B 노선은 2022년 착공을 거쳐 오는 2027년 개통될 예정이다.

사실상 앞으로 개통될 교통수단을 기준으로 홍보에 나선 셈이다. 더욱이 정부 계획에 기반했다지만 해당 아파트 위치 기준을 무시한 이동 시간도 소비자에게 혼란을 줄 소지가 있다. 

해당 아파트 건설사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원종역이 개통 됐을때 기준이라 예비 입주자들이 봤을 때 충분히 헷갈릴 수 있는 표현이다”라며 문제점을 시인했다. 

이 같은 ‘OO까지 XX분 거리’, ‘도보 10분 거리 역세권’ 등은 부동산 분양 광고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문구다. 동시에 허위·과장 광고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현재 허위·과장된 아파트 분양광고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표시광고법’의 규정에 따라 제재를 받는다. 주택의 소재지에 대해 기준지점이나 교통수단을 명시하지 않고 실제보다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는 것으로 오인시킬 우려가 있는 경우 부당한 표시·광고에 해당된다.

또 위 사례와 같이 사업계획만 확정된 전철에 대해 이용가능시기, 완공예정시기 등의 단서를 명시하지 않은 채 약도에 기재하거나 ‘OO역까지 XX분’ 등 교통여건이 유리한 것으로 오인시킬 우려가 있는 표현도 제재 대상이 된다.

최근 ‘양주 옥정 2차 대방 노블랜드 프레스티지’의 경우 분양광고에 ‘7호선 연장 역세권(계획)을 누리는’, ‘강남권까지 약 40분대’ 등의 표현을 사용해 논란이 된 바 있다. 결국 공식 홈페이지에 ‘본 사이트상의 개발계획, 교통계획과 외관 이미지는 소비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관계기관의 계획변경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등의 문구가 추가된 상태다.

아파트를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 경쟁이 심화되면서 분양 광고에서 이 같은 과장되거나 사실과 다른 표현을 사용하는 사례가 지속되고 있다. 이에 부동산 시장의 부당 표시 광고 등에 제재 또한 강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모호한 표현으로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가는 경우도 적지않다.

‘OO까지 10분 거리’ 판단 기준은? 

특히 ‘역세권’ 또는 ‘OO까지 XX분’ 같은 표현의 경우 이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예비 입주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은 물론 허위광고 여부를 따질 때 주요 분쟁 요인이 되기도 한다.
   
거리의 경우 ‘OO역까지 10km’와 같은 경우 명확하고 표준화된 거리 기준이 있기 때문에 과장이나 허위여부를 판가름하기 어렵지 않다. 학교나 신설되는 지하철 역 등 주변 사업계획 또한 사실여부 확인이 가능하다.

실제로 생기지도 않은 교통인프라를 광고했다가 소송전에서 패소한 사례는 쉽게 접할 수 있다. 앞서 현대산업개발에서 시공한 파주 자유로 아이파크는 2004년 9월에 완공됐다. 분양당시 아파트 단지 맞은편 경의선 ‘신운정역’이 신설된다고 홍보했다. 신설될 계획조차 없는데, 확정된 것처럼 표시 광고한 것이다. 이에 여러 입주민들이 소송을 제기했고, 서울고등법원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결 했지만 대법원에서 손해배상하라고 최종 확정판결됐다.

도보 이동 시간 등에 대한 과장광고 기준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소비자오인성은 첫 번째, 보통의 주의력을 가진 일반 소비자가 두 번째, 해당 표시광고를 받아들이는 세 번째, 전체적-궁극적 인상을 기준으로 객관적으로 판단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결국 명확한 기준이나 표준 대신 일반 상식적 수준에서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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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 없는 ‘역세권’...분쟁 사각지대

특히 ‘역세권’은 광고시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지적이 반복돼왔던 가장 대표적인 표현이다. 최근 공인중개사법 개정 등으로 부동산 매물의 정확한 위치 정보를 표기토록하고 실제와 다를 경우 처벌하는 등 관련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역세권’이라는 아파트 분양광고 뿐 아니라 관련 언론 보도 표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문제는 역세권의 기준이 여전히 모호하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지하철역과 해당 건물의 거리가 어느정도 되야 한다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 

국토부에서 지난 2010년 발표한 ‘역세권의 개발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2조 1호’에 따르면 역세권이란 철도 건설법, 철도산업발전 기본법 및 도시철도법에 따라 건설, 운영되는 철도역과 그 주변지역을 뜻한다고 명시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역에서 300m를 역세권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건설사서 홍보를 위해 말하는 것이다”라며 “국토부에서 말하는 역세권이란 특별시장·광역시장 또는 도지사가 역세권개발사업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역세권개발구역(이하 ‘개발구역’이라 한다)을 지정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국토부에서 말하는 역세권이란 단순히 역에서 가깝고 멀고가 아니라, 역세권 개발사업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해당 구역을 통칭해서 역세권 개발구역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거리를 기준으로 ‘역세권’을 정의할 수 없다. 그렇다고 국토부 기준을 부동산 광고에 적용하기도 모호하긴 마찬가지다. 

다만 서울시에서 장기전세주택 정비계획을 발표하며 역세권에 대한 기준이 언급은 된 적 있다. 지난 2010년 11월 5일 발표된 ‘서울특별시 행정2부사장 방침 제 362호’의 ‘역세권 장기전세주택 건립관련 정비계획 수립 및 운영 기준’ 에 따르면 ‘역세권’이란 보행접근이 가능하고 대중교통이용이 편리한 지하철, 국철 및 경전철 등의 모든 개통된 역(사용승인시점에 개통 예정인 역을 포함한다)의 중심(각각 승강장 전체의 중심점 한곳)으로부터 반경 500m이내의 일단의 지역을 원칙으로 한다. 

이러한 이동시간에 대한 공정위 기준처럼 일반 상식적 수준의 사람들 인식에 따라 허위·과장 여부를 따지고 있다.

건설업계의 경우도 명확한 기준이 없는 만큼 ‘통념상 기준’에 기대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정확한 몇 분거리다 몇키로다 이런 기준이 명문화된 것은 없고 통념상, 역세권 아파트다 하는건 도보로 이용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표현”이라며 “간혹 입주한 단지 입주민들이 가치 상승 요인을 고려해 역세권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민간 건설사와 국토부 관계자 및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들과 통화해본 결과 명확한 기준 보단 상식적 수준에 의거해 표현 및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모호한 기준, 소비자·시장 혼선 여전

문제는 이와 같은 모호한 기준 때문에 소비자들로서는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위 사례에서 언급된 원종동의 한 아파트 광고의 경우도 역까지 거리가 500m를 넘어서는 만큼 역세권이라는 표현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허위·과장 광고 여부를 가리기는 쉽지 않다. 이에 일부는 이 같은 모호한 기준에 소송전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건설사 등 사업자가 법의 사각지대를 교묘하게 피하는 사례로 악용될 여지는 여전하다. 이에 일각에서는 ‘역세권’ 등 표현에 대한 당국의 명확한 기준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심교언 교수는 “일반적으로 역세권은 100m-300m-500m로 나뉘는게 보통이며, 500m를 역세권(도보6~7분)이라고 하며, 100m정도 됐을때 초역세권으로 부른다”며 “정책적으로 역세권의 범위를 정하기도 애매한게, 500m라고 지정하고 난 뒤, 501m를 불법으로 보고 잡아가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직선거리(m)로 명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더불어 심 교수는 “지하철 역 개통의 경우 정부 정책이 계속 바뀌는 경향이 있어 실시간으로 옥외광고에 옮기기에는 무리가 있는 경우가 있다”며 “평생 열심히 돈을 마련해 수억원을 들여 주택을 매매할때는 광고 전단만 덜컥 믿지 말고 소비자들도 좀 더 적극적으로 알아보면 좋을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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