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보고서 ‘귀책=본인’ 표기...노동계 “책임회피 행태”
서부발전 “사고자 특수고용자 아닌 임시 운송사업자”

부두에서 넘어진 2t 스크루 모습ⓒ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부두에서 넘어진 2t 스크루 모습ⓒ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한국서부발전에서 운영하는 태안화력발전소 발생한 인명사고를 둘러싸고 책임 공방이 예상된다. 노동계에서는 사망자가 하청업체와 계약한 특수고용노동자에게 일어난 ‘위험의 위주화가 부른 참극’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발전소 측은 하청업체와 임시로 계약을 맺은 개인 사업자라며 ‘노동자’로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더욱이 발전소 측이 내부 보고서에 사고 귀책 사유를 ‘본인’이라고 표기해 ‘책임 회피’ 논란까지 일고 있다.

11일 한국서부발전과 경찰 등에 따르면 전날 오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제1부두에서 화물운송 작업을 하던 A씨(65)가 석탄 하역기계에 딸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태안화력발전소는 지난 2018년 12월 10일 비정규직 노동자인 김용균씨가 컨베이어 벨트를 점검하다가 숨진 곳이다.

현재 충남경찰청 광역수사대 보건환경안전사고 수사팀이 태안경찰서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아 사고 과정에서 안전 수칙 등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살펴보고 있다. 사고 현장의 관리·감독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도 확인하고 있다.

한국서부발전 관계자는 “현장에 신호수 및 감독관을 배치하고 화물 용적량도 기준에 맞게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발전소 측은 명확한 사고 경위와 이에 대한 책임 여부는 경찰 등의 조사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번 인명사고에 대해 노동계와 정치권, 시민단체 등에서는 지난해 ‘위험의 외주화’ 논쟁을 촉발시켰던 김용균씨 사고와 다름없는 구조적 문제로 인한 인재라고 보고 책임규명과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은 이날 성명을 내고 “둥근 원형을 이중으로 적재해 고정 작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굴러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며 “무겁고 둥근 설비를 적재하기 위해서는 튼튼하게 고정되기 전까지 화물을 크레인으로 잡아줬어야 함에도 이런 조치는 없었다”고 밝혔다.

김용균재단도 성명에서 “컨베이어벨트로 몸을 집어넣어야 했던 작업구조가 김용균을 죽인 것처럼 어떤 안전장비 없이 스크루를 혼자 결박해야 하는 작업구조가 또 한명의 노동자를 죽였다”며 “서부발전은 김용균 노동자 죽음 이후 제시한 개선책과 약속을 당장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이런 가운데 발전소 측은 사고 책임이 사망자 A씨에게 있다는 보고서 작성 사실이 알려지면서 책임 회피 논란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이날 ‘오마이뉴스’가 입수해 보도한 태안화력 연료설비부가 작성한 ‘안전사고 즉보’의 ‘귀책: 본인’이라고 작성돼 있었다. 이에 서부발전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내부 보고서 초안 작성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식으로 보고 절차가 이뤄지진 않았다”고 해명했다.

정의당 조혜민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행태에 한탄스럽다”면서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제대로 파악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종 책임자인 사업주에게 솜방망이 처벌만 주어지는 ‘제도적 무책임’을 끝내야 하며, 노동자들이 일하다 죽는 것은 기업의 살인 행위라고 선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노동계는 이번 사고를 특수고용직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로 보고 있다.

A씨는 서부발전 하청업체인 신흥기공과 계약을 맺고 스크루 장비(배에 실려있는 석탄을 옮기는 기계) 운송 작업을 했다. 노동계에서는 스크루 장비 반출과 정비는 태안화력발전소 업무로 원청이 책임에서 벗어날 수없다고 지적했다.

운동본부는 “사망한 노동자는 스크루 기계를 정비하는 태안화력 하청업체와 일일 고용 계약을 맺은 특수고용노동자”라며 “태안화력발전소는 이것을 외주업체에 맡겼고, 외주업체는 또다시 노동자 개인과 위탁계약을 체결해 이 기계를 옮겼다”고 설명했다. 이어 “위험한 업무를 홀로 하게 만드는 기형적인 고용 형태가 문제의 원인이며 경찰과 고용노동부가 이 죽음의 구조적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운수노조 소속 화물연대 또한 성명서를 통해 “사망 화물노동자는 태안화력의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고 운송을 하던 노동자”라며 “태안화력에서 지시한 업무를 태안 화력의 발전소 안에서 하다가 일어난 사고의 책임은 당연히 원청인 태안화력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올해 7월부터 특수고용노동자인 화물노동자도 산재보험이 적용되고 있지만 산재보험 적용대상이 수출입컨테이너, 시멘트, 철강 등 일부 품목에만 적용되고 있으며 이 마저도 화주와 운송사의 적용제외 신청 강요와 꼼수가 난무하고 있는 현실”이라며 “화물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하기 위해서는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고 안전한 환경을 법·제도적으로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발전소 측은 사고자를 사고자가 특수고용직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사측은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서부발전 관계자는 “사고자는 부품 반출정비를 위해 협력업체인 신흥기공에서 일일 임차한 개인 운송사업자”라며 “전속 계약을 맺거나 정기적으로 작업을 하지 않아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의한 특수 형태근로종사자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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