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서양 의학과 개신교는 우리나라에 함께 들어왔다. 19세기 유럽과 미국에서 펼쳤던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 개신교 선교 전략은 근대 의학과 교육 등 사회 복지사업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었다. 

천주교가 전파되는 과정에서 많은 순교자가 발생했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이로 인해서 19세기 이후 개신교의 전도는 천주교의 희생을 바탕으로 비교적 쉽게 이루어졌다고 평가받는다. 

아프리카의 성자(聖者:부처나 보살)로 잘 알려진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965)도 의사이자 선교사, 그리고 교회음악가였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된다.

우리나라에 19세기 서구 근대 의술을 펼친 대표적인 의사로 알려진 사람은 알렌(Horace Newton Allen, 1858-1932)이다. 알렌은 1881년 웨슬리언 대학 신학과, 1883년 마이애미 의과대학 졸업한 의사이자 선교사, 그리고 외교관이었다. 

알렌은 동아시아에서 선교활동을 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1884년 서울의 미국 공사관 의사로 우리나라에 왔다. 이후 갑신정변(甲申政變:개화당이 조선의 완전 자주독립과 자주 근대화를 추구하며 일으킨 정변) 때 부상한 민영익(閔泳翊:개항기-대한제국기 문신·개화사상가)을 치료한 인연으로, 1885년 왕립병원인 광혜원(廣惠院: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병원)이 설립되자 그 곳에서 의사로 활동했다. 

그리고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압해 체결한 조약)이 체결된 후 미국으로 돌아가서 의사로서 여생을 보냈다. 알렌의 사례에서도 개신교와 서양 근대 의술이 보급됐다. 

우연의 일치인지 현대 한국의 개신교와 의사 업계는 비슷한 점이 많다. 

첫째,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해방 이후 미군과 소련군에 의해 남북한이 분할 신탁통치를 받으면서, 북한 지역은 소련군의 신탁통치를 받았다. 분단 전 개신교 교세가 가장 강력했던 지역은 평안도 지역이었다. 

소련군의 신탁통치와 김일성 정권의 수립 등 개신교에 부정적인 사회주의 체제가 이어져서 개신교 세력은 탄압을 받았다. 개신교 세력은 많은 것을 포기하고 월남(越南: 삼팔선 또는 휴전선 이남으로 넘어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분노는 한반도 이남에서 서북청년단이 만들어지고, 4.3사건에서 양민을 학살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의사 업계 역시 한국전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의 소개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유엔 연합군 참전국 가운데 중립국임을 표방한 북유럽 국가들은 병원 건립, 이동외과부대(MASH: 육군이동외과병원 부대)운용, 병원선 지원 등의 형태로 참전했다. 

또한, 휴전 이후인 1955년 미국은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한국 의료의 부흥을 위해 미국 정부가 미네소타 대학에 자금을 지원하고, 대학은 그 돈으로 서울의대의 젊은 교수들과 수련의들을 초청해 장단기 연수를 시키는 프로그램인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의 수혜를 받은 의사와 의대생 중 상당수가 귀국하지 않고 미국에 눌러 앉아서 미국 측의 비난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결국, 한국전쟁 전후 국제적 지원 덕분에 현재의 의료계가 있을 수 있었다는 의미다.

둘째, 개신교와 서양 의학 모두 전문가 자격 취득 과정이 복잡하고, 자격과 관련된 논란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개신교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석사 이상의 학위를 취득해야한다. 또한, 학위 취득 이후에도 전도사 생활, 자격 시험 등을 거쳐야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가 다시 크게 번진 계기가 된 지난 8월 15일 수구 단체의 집회를 주도한 인물로 지목되는 전광훈 목사는 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에 의해 이단 심사를 받고 있다. 그의 신학교 졸업에 대해 끊임없이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가 일부 개신교 교단에서 단기 속성으로 목사를 양성하는 과정을 개설한 적이 있고, 이 과정을 밟고 목사가 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의사의 자격 역시 한때 문제가 된 적이 있다. 

해방 직후 우리나라에는 정규 교육과정이 없었던 한의사를 제외하고도 6년제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 4년제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의사, 의사 조수로 일하면서 어깨너머로 의학을 배운 뒤 국가시험에 합격한 의사, 간단한 자격시험을 거쳐 특정 농촌 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영업할 수 있었던 한지의사(限地醫師:일정한 지역 안에서만 개업하도록 허가한 의사), 만주나 중국에서 자격증을 딴 의사 등 다양한 의사들이 존재했다. 특히, 혼란한 상황에서 면허증을 위조한 가짜 의사도 많았다. 

이에 국가는 의사 자격 기준을 단일화하고, 의학 교육과정을 통일하며, 의과대학 신설을 통제하고, 무면허 가짜 의사들을 강력히 처벌했다. 현재 의사의 종류에도 6년간 대학에서 공부한 뒤 의사 자격증만 취득한 사람부터 인턴, 레지던트를 거쳐서 전문의가 된 사람, 전문의가 된 이후에서 펠로우십을 거친 사람 등 굉장히 다양하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의사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받는다. 어쨌든 국가공인 자격은 있기 때문이다.

셋째, 주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믿음은 예수의 재림과 재림 이후 믿는 사람은 구원받고, 믿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과 함께 종말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유일신을 믿는 종교이기 때문에 자신의 신앙에 대해 맹목적이고, 다른 종교나 신앙이 없는 사람에 대해 배타적이다. 

아울러 종교가 신앙공동체이자 신 아래 한 가족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에 내부 결속력이 매우 강하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의 커뮤니티에서 도는 가짜뉴스나 편향적 기사를 맹목적으로 믿고 신앙심 아래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경우가 많다.

상당수의 의사 역시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기본적으로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대학 입학 전까지 좋은 성적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특히, 의대의 교육과정에서 배워야 하는 것이 양적으로 매우 많다. 그렇기 때문에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이러한 양상은 계속 이어져서, 상당수의 의대생에게 의사가 된 뒤 의사 커뮤니티에 머물면서 그들끼리의 여론만 접하게 만든다. 1등이라는 자부심, 다른 직군과의 접촉 감소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의사 커뮤니티 내부의 이야기만 맹신하게 만든다.

이러한 공통점은 공교롭게도 코로나 대유행과 맞물렸다. 개신교는 코로나 집단감염의 온상으로 지목됐고, 코로나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의사들은 진료를 거부했고, 의대생은 국가 자격시험을 거부했다. 그리고 여론은 싸늘해졌다. 더 큰 문제는 싸늘해진 여론에 대해 이들 대부분이 귀를 막고 있다는 것이다.

위의 주장에 대해 앞에서 적은 양상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라고 반론할 수 있다. 그런데 여론은 “맞아. 99%도 일부지”라는 비아냥을 보내고 있다. 개신교인들과 의사, 그리고 의대생들이 자신들의 떨어진 신망과 신뢰도를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 스스로 고민하고 실천할 때가 왔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