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12월 22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 성매매업소 화재 발생 현장 ⓒ뉴시스
지난 2018년 12월 22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 성매매업소 화재 발생 현장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2000년대 초 군산에서 발생한 화재참사가 수면 아래 잠자고 있던 우리나라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참혹한 실태를 깨웠다.

참사 희생자들이 인신매매로 감금된 채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던 사실이 드러났고, 성매매 문제의 심각성과 성매매 여성 보호 필요성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같은 해 우리나라에는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를 근절함과 동시에 성매매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성매매특별법’이 2004년 도입됐다.

그로부터 16년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우리 사회 음지에는 성매매가 만연하고 있다. 오히려 인터넷과 스마트폰 앱 등 수단과 방법이 더욱 다양해졌고, 성매매 피해자는 계속해서 발생했다. 

세계 6위의 ‘성매매 공화국’인 한국. 이 부끄러운 오명을 씻기 위해서는 성매매 수요 처벌을 강화하는 한편 성매매 여성은 처벌하지 않는 ‘노르딕(Nordic) 모델’이 국내에서도 실현돼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어느 집창촌 전경 ⓒ뉴시스
어느 집창촌 전경 ⓒ뉴시스

암암리 허용됐던 성매매

성매매 자체는 예나 지금이나 불법이다. 다만 과거 이 불법 행위에 대한 제재와 처벌 정도가 지금과는 매우 달랐다.

우리나라의 성매매 금지에 관한 법의 시초인 ‘윤락행위방지법’은 1961년 제정됐다. 사회 이면에 자리 잡은 윤락행위 방지를 위해 국민의 풍기 정화 및 인권 존중을 기여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이후 정부는 윤락업소가 모여 있던 특정 지역에 대해 단속보다는 선도 위주의 정책을 펼치며 사실상 성매매를 허용했고, 미군 기지촌 주변의 유흥업소에게는 면세 혜택을 주며 이 법의 취지를 무력화했다.

이후 윤락행위에 대한 처벌이 미미하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1996년 1월 성 구매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윤락행위방지법개정안’이 도입됐다.

이에 따라 성매매 당사자에 대한 법정형에 벌금이나 구류, 과료에 징역형(1년 이하)이 추가됐으며, 업주에 대한 처벌도 징역 3년 이하에서 5년 이하로 상향됐다.

그러나 이 역시 단속에 적발될지라도 대다수 벌금형 등의 가벼운 처벌에 그쳐, 처벌 강화를 통한 성매매 방지 효과는 미비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그리고 2000년대 접어들며 성매매 관련법 판도가 바뀌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2000년 9월 군산시 대명동 소위 ‘쉬파리 골목’이라 불리는 곳에서 영업 중이던 한 유흥업소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20대 성매매 여성 5명이 숨지고 1명이 구출됐다. 10대 시절 가출한 이들은 포주에게 붙들려 인신매매돼 감금 상태로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화재 당시에도 성매매 여성의 탈출을 막기 위해 창문에 쇠창살을 달아 놓고, 출입구를 두꺼운 철제문으로 잠가 이들이 탈출하지 못하고 질식해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불과 2년 후 쉬파리 골목에서 멀지 않은 개복동 소재 유흥주점에서도 화재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성매매 여성 14명과 업주 1명이 사망했다. 이들 또한 인신매매돼 성매매를 강요당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두 업소 모두 인근에 파출소가 있었다. 그러나 뇌물을 받고 영업을 눈감아준 것으로 드러나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두 사건은 우리 사회 성매매 여성들의 참혹한 실태와 유명무실한 윤락행위방지법의 민낯을 낱낱이 보여줬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처벌 강화’ 성매매특별법 도입

두 사건 이후 성매매 여성을 보호하자는 목소리가 커졌고,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도입됐다.

성매매특별법은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포함한다.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은 성매매 알선 행위 및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를 뿌리 뽑고, 성매매 피해자 인권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성매매 방지와 성매매 피해자 및 성을 파는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한 보호, 피해회복·자립·자활 지원을 목적으로 한다.

성매매 처벌과 관련된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의 대표 조항을 살펴보면 제2조에서는 타락한 여성을 의미하는 윤락녀라는 용어를 없애는 대신 성매매 피해자라는 개념을 정의했다. 그리고 제6조에서 성매매 피해자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정했다.

제19조에서는 △성매매알선 등 행위 △성을 파는 사람을 모집하는 행위 △성을 파는 행위를 직업으로 소개·알선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영업으로 성매매 알선 등 행위 △성을 파는 행위를 할 사람을 모집하고 그 대가를 지급받는 경우 △성을 파는 행위를 하도록 직업을 소개·알선하고 그 대가를 지급받은 경우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제21조 1항에서는 성매매를 한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 혹은 300만원 이하의 벌금·구류 또는 과료(科料)에 처하도록 정했다.

성매매특별법 도입으로 구매자에 대한 처벌 강화와 성매매를 강요당한 여성들이 국가로부터 보호와 지원을 받게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성매매 인식에 관한 남녀 응답 비율 <사진 출처 = 여성가족부 ‘2016 성매매 실태조사’ ><br>
성매매 인식에 관한 남녀 응답 비율 <사진 출처 = 여성가족부 ‘2016 성매매 실태조사’ >

‘수요’ 먼저 차단해야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전 세계 가운데 성매매 시장 규모가 6번째로 크다.

미국 암시장 전문 조사기관 '하보스코프닷컴'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성매매 시장 규모는 2015년 기준 120억달러(한화 약 13조 5500억원)로 중국, 스페인, 일본, 독일, 미국 등에 이어 세계 6위다.

앞선 국가들의 인구 규모를 감안하면, 한국의 성매매 시장 규모는 상당히 큰 것으로 해석된다.

국내 조사 결과에서도 한국의 성 구매자 수가 상당함을 추정할 수 있다.

경찰청이 공개한 성매매사범 단속 현황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8년까지 검거인원은 적게는 1만6149명, 많게는 7만1953명으로 집계됐다.

여성가족부가 공개한 ‘2016 성매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성 응답자 1050명 가운데 50.7%가 성 구매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 25.7%는 최근 1년간 성 구매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성 구매자들은 성매매가 처벌 대상임을 인지하고도 이 같은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분석된다.

동 조사결과에서 ‘성매매처벌법 인지여부’에 대해 남성 응답자는 86.7%가 인지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은 성매매 방지를 위해서는 수요 차단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법무법인 ‘한림’ 형장우 변호사는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발간한 ‘2018년 하반기 여성과 인권’을 통해 성매매 수요가 시장을 형성하고, 확대하는 주요 원인이라며 성매매 근절을 위해서는 성 구매자의 수요를 억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형 변호사는 “우리 사회는 잘못된 접대문화 등으로 인해 성매매에 대한 관대한 인식이 넓게 퍼져있고, 오래된 성매매 집결지를 중심으로 한 성매매와 더불어 겸업형 성매매, 신·변종 성매매, 인터넷·스마트폰을 통한 성매매 등 다양한 유형의 성매매 시장이 활발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러한 상황에서 성매매에 대한 지속적인 수요를 억제하지 않으면 성인과 더불어 청소년이나 저개발국 여성까지 성매매 시장에 유입될 가능성이 있고, 규모도 확대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2017년 10월 24일 열린 성매매 특별법 폐지 및 비범죄화 공약이행을 촉구 기자회견 ⓒ뉴시스
2017년 10월 24일 열린 성매매 특별법 폐지 및 비범죄화 공약이행을 촉구 기자회견 ⓒ뉴시스

‘노르딕 모델’ 전면화

성매매 근절을 위해서는 수요 억제뿐만 아니라 성매매 여성을 불처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는 현행법상 성매매 피해자에 대해서는 처벌을 금지하고 있지만, 앞서 언급된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제21조 1항을 근거로 ‘자발적’ 성매매 여성에 대해서는 처벌을 하고 있다.

자발적 성매매 여성 처벌에 대한 논쟁은 성매매특별법 제정 이후 꾸준히 이어져 왔다.

국가가 개입해 성매매를 형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성차별적 사고에 기인하며 남녀평등사상에 기초한 헌법 정신에도 일치하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건전한 성 풍속 확립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여성계에서는 성매매 여성에 대한 처벌 폐지에 동의하면서도, 성매매를 자기결정권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여성이 사회·경제적으로 지위가 낮은 상황에서 돈을 벌기 위해 불가피하게 성을 파는 ‘생계형’ 사례가 많기 때문에 순수한 자기결정권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16년 헌법재판소는 이미 자발적 성매매도 범죄로 봐야 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제21조 1항에 대해 헌재는 재판관 6(합헌):2(일부 위헌):1(단순 위헌) 의견으로 합헌을 결정했다.

헌재는 “성 관련 문제는 법으로 통제할 사항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지만 성을 사고파는 행위까지 용인하긴 어렵다”며 “개인의 성행위는 사생활 영역에 속하더라도 그것이 외부에 표출돼 사회의 건전한 성풍속을 위협할 때는 마땅히 법률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성 판매 행위를 비범죄화해 성 판매자를 처벌하지 않으면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한 성매매 공급이 더 커질 수 있고, 성 판매 여성의 탈(脫)성매매를 어렵게 할 수 있다”며 “성매매 여성에 대한 문제는 비범죄화가 아닌, 성 판매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사회 구조와 의식을 변화시키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영업이 중단된 어느 집창촌 전경 ⓒ뉴시스
영업이 중단된 어느 집창촌 전경 ⓒ뉴시스

성매매 근절을 위한 대안으로 노르딕 모델이 가장 주목받고 있다.

노르딕 모델은 성매매 수요에 대한 처벌과 피해 여성에 대한 보호를 법제화한 것으로, 성 구매자와 포주만 처벌 대상에 포함된다. 성매매를 줄이고 성 평등을 증진시키기 위한 이 법은 스웨덴을 중심으로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캐나다, 프랑스, 아일랜드, 이스라엘, 북아일랜드 등에서 채택해오고 있으며 한국 여성운동계가 오랜 시간 지지해온 모델이기도 하다.

2010년 스웨덴 정부가 발간한 ‘성적 서비스 구매 금지에 대한 평가 1999∼2008’에 따르면 노르딕 모델 도입 전 성 구매 경험 응답 비율이 13.6%였던 반면 도입 이후에는 8%로 감소했다. 성 판매자도 최대 75% 이상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는 “2020년 현재도 성매매는 한국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거대한 구조에서 여성 개인의 자발과 선택을 말하는 것은 국가와 우리 사회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정의롭지 못한 행태”라고 비판했다.

이어 “성매매가 단순히 성풍속에 관한 죄라면, 국가가 개인의 성생활에 개입할 권리가 있는지 물어야 한다”며 “성매매가 문제인 것은 성매매로 인해 여성의 성이 거래 대상이 되고, 가난한 여성들, 어리고 취약한 여성들을 돈 주고 구매할 수 있다는 인식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연대는 “성매매는 성적 착취이며 성별화된 폭력이다. 성매매가 여성폭력, 여성인권의 문제라면 더는 피해자를 처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피해자를 처벌하며 폭력이 종식되길 바랄 순 없다”며 “대명동 화재참사 20면, 성매매특별법 제정 16년이 지난 현재, 지금이라도 성매매 수요인 알선과 구매 강력 처벌과 성매매 여성 불처벌로 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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