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문제로 2차 수색 논의 진전 없어
해외 사례 통해 진상규명 가능성 확인

사진제공 =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시민대책위원회
<사진제공 =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시민대책위원회>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철광석 운반선 스텔라데이지호가 지난 2017년 3월 31일 남대서양 해역에서 침몰한 지 1278일이 지났다. 스텔라데이지호의 침몰로 한국인 선원 8명과 필리핀인 선원 14명이 실종됐다.

실종자 가족들은 침몰 당시부터 원인규명과 실종자 수색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예산 등을 이유로 심해수색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결국 2019년 2월 1차 심해수색이 이뤄지게 됐다. 1차 심해수색을 통해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의 위치를 파악하고 VDR(블랙박스) 2개 중 하나를 회수하는 등 일부 성과를 거뒀으나 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실종자로 추정되는 유해는 수습되지 못했다.

회수된 VDR의 데이터 칩 2 개 중 1개는 개봉 당시 이미 손상됐으며, 나머지 1개에서는 7%의 데이터만이 복구됐다. 분석 결과 스텔라데이지호의 운항정보는 확인됐으나 선원들의 최후 음성은 복구되지 않았다.

이에 실종자 가족들은 2차 심해수색을 통해 아직 회수하지 못한 나머지 VDR을 회수해 침몰 원인을 규명하고 유해를 수습해야 한다고 정부에 촉구했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2차 심해수색 예산을 배정하지 않았고, 그렇게 실종자 가족들의 기약 없는 싸움이 어어졌다.

이 같은 실종자 가족들의 호소에 국회가 응답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호·박홍근·서삼석·송갑석·오영환·우원식·이탄희·조오섭·허영·황희 의원과 국민의힘 김기현·김석기·이만희·추경호·한기호 의원, 정의당 강은미 의원,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 등 국회의원 17인은 지난 25일 서울 영등포구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 2층 사파이어 회의장에서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 추진을 위한 국회 공청회’를 공동주최했다.

오 의원은 “1차 수색 때 조금 더 납득할만한 수색결과와 실종자 가족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수습이 이뤄졌더라면 하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며 “2차 심해수색 공청회가 꼭 결실을 맺어 가족들의 마음에 위로가 될 수 있는 결과가 도출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허 의원은 “이번 공청회는 국가의 책임, 국회의원의 책임, 무엇보다 실종자 가족들을 위한 책임 때문에 만들어졌다”면서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을 팽개치고 예산을 핑계로, 다른 이유를 들어서 이런 문제가 외면되지 않도록 끝까지 국가의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태규 의원은 “대한민국이 100억, 200억이 없어서 심해수색을 못할 정도의 국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심해수색 경험과 기술의 활용 부분에서 굉장히 미비하기 때문에 국가 과학기술 측면에서 보더라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우원식·이탄희·강은미·한기호 의원은 영상 인사말을 통해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이 이뤄질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오션인피니티(Ocean Infinity)사의 심해수색 선박 시베드 콘스트럭터(Seabed Constructor)호가 지난 2019년 2월 17일 원격제어 무인잠수정(ROV)을 통해 스텔라데이지호의 VDR(블랙박스)을 회수하고 있다. 사진제공 = 외교부
오션인피니티(Ocean Infinity)사의 심해수색 선박 시베드 콘스트럭터(Seabed Constructor)호가 지난 2019년 2월 17일 원격제어 무인잠수정(ROV)을 통해 스텔라데이지호의 VDR(블랙박스)을 회수하고 있다. <사진제공 = 외교부>

정부, 심해수색 예산 편성해야

공청회에서 발제를 맡은 이들은 모두 2차 심해수색을 통한 원인규명과 유해수습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세계 최고의 심해수색전문 해양연구소인 우즈홀(Woods hole) 연구소가 지난 1997년 영국의 유조선 더비셔호의 침몰원인을 밝혀낸 사례를 보면 우즈홀 연구소를 통해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의 진상을 규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책임연구원 강희진 박사는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이 국제해사기구(IMO)와 우리 정부가 기울이고 있는 선박 안정성 확보 차원에서 동일한 사고의 재발을 막고 선박 안정성을 향상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무리한 선박의 개조, 규정을 무시한 운용에 따른 선박 침몰의 위험 예방을 위해서는 정확한 침몰원인 조사과정을 통해 관련 규정을 제·개정하고 안전장치를 추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전치형 학과장은 심해수색 성공 사례인 영국의 더비셔호를 통해 수색과 조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원인규명을 통해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교훈을 얻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텔라데이지호 침몰과 선원들의 희생에서 한국 정부가 어떤 교훈을 얻고 국제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충분한 검토와 현명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지난 3년간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를 취재해 온 <시사IN> 국제문제편집위원 김영미 PD는 1차 심해수색 당시 촬영 영상을 통해 조타실에 VDR 본체로 추정되는 물체와 각종 장비가 온전히 보관돼 있는 점을 확인하고 조타실 내부수색을 위한 침투용 무인잠수정의 기술적 성과에 대한 해외사례를 취재해 발표했다.

김 PD는 이와 함께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의 과제를 짚어보고 이를 위해 필요한 기술과 장비를 소개했다.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시민대책위(이하 대책위)는 이번 공청회와 관련해 “2차 심해수색을 통해 과학적·기술적으로 침몰원인을 규명하고 유해수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했다”며 “1차 심해수색의 미흡한 점을 보완한 2차 심해수색을 통해 반드시 과학적·기술적 방법으로 침몰원인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책위는 “이번 공청회에서 심해 3500m에서도 비교적 온전하게 있는 조타실 모습을 생생히 봤다. 또 침몰원인을 밝힐 수 있는 열쇠인 하나 남아있는 VDR의 존재도 확인했다”면서 “침몰원인을 밝히고 조타실에 있는 선원들의 유해를 수습할 심해수색 예산을 조속히 편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마셜제도의 공식 보고서에 의하면 조타실에는 침몰 직전 11명의 선원이 모여있었다”며 “만약 스텔라데이지호의 실종자들이 탈출하지 못했다면 이들은 모두 조타실에서 수습될 수 있다”며 2차 심해수색이 이뤄질 수 있도록 빠른 조치를 내려달라고 정부를 향해 촉구했다.

대책위는 “재난에 대응하는 방식에서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침몰원인을 밝히는데 있어 국가의 책임을 회피한다면 더 이상 국민에게 신뢰받을 수 없다”면서 2차 수색을 위한 정부의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책위는 “조선 강국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한국이 스텔라데이지호와 같은 대형 선박의 침몰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국제사회에 보고한다면, 해양안전 분야에서 한국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라는 우즈홀 해양연구소 앤드류 보웬 수석 엔지니어의 말을 인용하며 2차 심해수색을 촉구하기도 했다.

대책위는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의 진실을 찾는 것은 대한민국만의 사건이 아닌, 전 세계 해양사에 남을 사건”이라며 “정부는 국제적인 시각에서 스텔라데이지호를 바라보고 하루빨리 선원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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