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이윤의 극대화라는 자본주의의 논리에서 사람은 비용으로 여겨집니다. 사용자의 손쉬운 책임회피를 위해 노동자의 고용불안을 만들고,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노동자를 ‘착즙’합니다. 심각하게 부족한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심화되고, 승리에 대한 보상을 독식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착취논리를 내재화하며 워라밸이 불가능한 사회, 차별이 당연한 사회에서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위험한 일자리를 양산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위험한 일터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인권은 이 세상에서 지향되어야 할 여러 좋은 가치들 중에서 가장 기초적인 가치입니다. 하지만 인권의 갈 길은 여전히 까마득합니다. 승리와 패배를 엎치락뒤치락하며 살아 남아야하는 무한 경쟁사회에서 모든 존재가 그 자체로서 존중되기는 어렵습니다. 이는 어느 누구의 인권도 온전히 보장될 수 없게 하는 근거가 될 뿐 아니라 결국 어느 누구도 행복할 수 없게 만듭니다. 인권은 제로섬게임이 아닙니다. 자본 중심의 논리는 모든 존재의 행복한 삶을 중심으로 하는 방향으로 재편돼야 합니다. 인권의 파이를 키워야 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평등과 박애의 가치로 나아가지 못하고 자유시장질서에서 ‘자유’가 가장 많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상상력을 잃은 우리 사회는 고립을 가속화하며 각자의 호화로운 성을 쌓기에 급급합니다. 부자 인간과 가난한 인간의 연결고리를 끊고,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인간과의 연결고리를 끊으며, 인간과 자연의 연결고리는 물론 결국은 인류의 미래라는 연결고리마저도 끊어내고 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착취와 차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개개인의 삶의 작동 방식에 구체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신자유주의 통치성은 마치 자유의지를 가진 합리적인 인간이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일궈나가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도록 만듭니다. 승자독식의 경쟁사회가 익숙한 사회에서 우리는 각자의 삶을 다르게 일궈나갈 상상력의 빈곤을 경험하며, 어느 누구도 행복할 수 없는 고립되고 파괴적인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적인 주체가 되도록 만드는 현실에서 형평성 이야기가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시험을 통해 줄세우기를 하는 방식을 만능으로 여기며, 동등한 기회를 보장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좋은 일자리가 적으니 많은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입사를 위한 시험공부에 매달립니다. 이로 인한 개별적인 차원의 손실이나 사회적인 손실은 큽니다. 무제한적인 이윤추구의 자유가 중요한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인 ‘승자독식 사회’는 많은 사람들을 생존게임을 하도록 만듭니다. 또한 승자가 패자를 차별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도록 만들뿐 아니라 심지어 차별하는 것이 형평성에 부합한다고 여기게 합니다. 누구에게나 시험에 응시할 기회가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열심히 한 결과”로 착각하기 쉽지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은 한날한시에 시험을 치더라도 경제력, 부모님, 부모님 중에서도 아버지의 경제력이 가장 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에 하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과정이 평등하지도, 결과가 평등하지도 않습니다. 기회의 평등이 곧 형평성을 의미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결과의 평등을 고민하려 하면 ‘공산주의’냐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 조금 바로 잡으려고 하는 적극적 조치인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이 필요합니다.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란,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일정 비율의 자리가 돌아가야 한다고 정해두는 것을 말합니다. 똑같은 날 똑같은 시험을 친다는 것 하나만으로는 결과적 평등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금씩 바로잡으려 하는 것에 대해서 '역차별이다'라고 이야기를 하게 되는 모습들을 보입니다. 그러나 차별을 줄이기 위한 조치는 차별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는 평등한 사회가 될 때까지의 일시적인 방법이며 조치입니다. 적극적 조치가 마음에 들지 않고 ‘역차별’이라고 느껴지는 사람들은 적극적 조치의 시행을 반대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지 않은 사회를 만드는데 힘을 모아 한시적으로 시행될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지 않은 사회를 하루라도 더 앞당길 수 있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실천을 하면 좋겠습니다. (실상은 공무원 시험이나 공기업에서 시행하고 있는 ‘한 쪽 성이 전체의 70-75%를 차지 할 수 없다’는 규정은 여성들이 아니라 오히려 남성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반면 사기업에서는 이런 규정이 아직 시행되고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계속 생존게임만 지속해서는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행복한 사회를 결코 맞이할 수 없습니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직업에 ‘귀천’이 없이 노동에 따른 마땅한 처우를 보장받는 사회를 만들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기회의 평등뿐만 아니라 기회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과 조건에서도 평등하고 결과적인 평등까지도 보장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는 사회입니다. 그리고 박애정신(또는 연대의 정신)으로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의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할 수 없는 사회가 된 오늘날 이 사회가 얼마나 처참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해 왔지만 코로나가 우리 눈앞에 들이밀 듯이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팬데믹 시대에 우리는 누군가가 안전하지 못할 때 우리 모두의 안전이 보장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만이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방법임을 깨닫게 되는 요즘, 여전히 ‘가진 자’들의 ‘자유’만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짚어보며 어느 한 가지만 보장되거나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보장돼야 할 인권(자유, 평등, 박애)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 보았습니다.

●김지학 소장은?
-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운영위원
- 대한성학회 이사
-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사외이사
- 서울예술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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