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KB 등 탈석탄 선언, 금융사 동참 지지부진
기존 석탄 사업 계획 배제, 시민단체 진정성 지적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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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이세미 기자】 최근 금융권 내 ‘탈석탄’ 바람이 불고 있다. 금융 업계에서는 미국 바이든 당선인이 대선 공약으로 친환경 인프라 투자를 내세웠고, 정부도 그린 뉴딜 정책을 펼치고 있는 만큼 향후에도 더 많은 금융사들이 탈석탄 선언에 동참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금융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금융권의 탈석탄 선언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기존 석탄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은 나오지 않은 상태라 탈석탄 선언 의지를 의심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 환경·시민단체가 쏘아올린 ‘탈석탄’…금융권 움찔

지난 9월 전국탈석탄네트워크 ‘석탄을 넘어서’ 관계자들이 서울 여의도 소재의 한국투자증권 앞에 모여 한국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KB증권, NH투자증권, 키움증권, 미래에셋대우 등 6개 금융기관을 향해 석탄발전 투자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석탄을 넘어서’는 이들 6개 금융사들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책임 투자를 선언 했음에도, 삼척블루파워의 회사채 발행에 주관사로 나선 것을 두고 비판했다. 이를 통해 조달된 자금은 전액 삼척석탄화력 발전 건설에 투자되기 때문이다.

이날 ‘석탄을 넘어서’ 관계자는 “6개 금융사들이 탈석탄 선언뿐만 아니라 석탄 투자 중단과 같은 실질적인 이행조치를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규탄했다.

이어서 지난 10일 ‘석탄을 넘어서’ 및 시민단체 등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투자한 국내 40기의 석탄발전소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으로 최대 3만명이 조기 사망할 수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삼성그룹의 ‘탈석탄’을 압박했다.

그 결과 삼성그룹 계열사들은 이틀 후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 위기의 선제 대응을 위한 탈석탄 정책을 강화하겠다며 손을 들었다.

다만 삼성생명·화재는 지난 2018년 6월 이후 석탄 발전에 대한 신규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으며, 앞으로 석탄 화력 발전소에 대한 직접적 투·융자와 석탄 화력 발전소 건설 목적의 회사채에도 투자를 중단할 것을 선언했다.

특히 삼성화재는 ‘석탄 화력 발전소 건설을 위한 보험을 인수하지 않는다’는 내부 방침을 확정했으며 삼성증권과 삼성자산운용도 석탄 채굴 및 발전 사업에 대한 투자 배제 등을 포함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가이드라인을 수립하고, 12월부터 현업에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ESG경영이란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자로 기업의 친환경 추구와 직원과 고객·주주 등에 얼마나 기여하고 환원하는지 지배구조는 투명한지 등을 비재무적인 항목으로 평가하는 투자 방식이다.

금융 투자업계는 삼성이 ESG를 본격적으로 수용하고 탈석탄을 선언한 만큼 국내 금융사들의 탈석탄 바람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삼성을 비롯 금융권의 탈석탄 선언은, 신규 계약을 안 하겠다는 의미일 뿐, 기존의 석탄발전 건설에 대한 자금집행은 계속 이뤄지고 있다며 탈석탄 선언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9월 전국탈석탄네트워크 석탄을 넘어서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소재의 한국투자증권 본사 앞에서 금융권의 석탄투자를 규탄했다. ⓒ석탄을 넘어서
지난 9월 전국탈석탄네트워크 석탄을 넘어서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소재의 한국투자증권 본사 앞에서 금융권의 석탄투자를 규탄했다. ⓒ석탄을 넘어서

◆ 시대흐름 역행…12년간 석탄 투자에만 60조원 탈탈

환경·시민단체가 이처럼 금융사들을 상대로 ‘탈석탄’ 선언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압박하고 있는 주 요인은 전 세계적으로 환경보호와 기후변화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2030년을 중심으로 석탄발전 퇴출 로드맵을 수립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금융기관의 기후변화 리스크 관리를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 금융사의 투자 방향은 세계적인 흐름과 달리, 최근 12년간 석탄발전 금융제공 규모가 약 60조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도 우리 정부와 금융사는 인도네시아 자와 9·10호기와 베트남 봉양 2호기의 해외 석탄발전 투자를 결정하는가 하면 국내에서는 7기의 신규 석탄발전소를 추가 건설 중이다.

국내 금융기관은 석탄발전소 건설 사업에서 대출 및 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자금조달을 위해 수출신용 또는 일반보험을 지원하거나 지분을 투자 해왔다. 지난 2018년에는 국내외 석탄 투자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석탄금융제공 규모가 급격히 증가하기도 했다. 

ⓒ2020 한국 석탄금융 백서
ⓒ2020 한국 석탄금융 백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조사 결과 석탄발전에 가장 많이 투자한 민간금융은 삼성생명·화재로 각 7조7073억원, 7조4115억원을 투자했다. 이어 △KB금융(6조3521억원) △현대해상(3조7006억원) △농협금융(3조5498억원) 순이며 △한화생·손보(1조8339억원) △교보생명(1조5447억원) △신한금융(1조1807억원)이 뒤를 이었다.

5대 시중은행 중에서는 농협은행이 6769억원으로 가장 많은 금액을 투자했으며 신한은행(3667억원), 국민은행(3333억원)이 뒤를 이었다.

석탄화력 발전 관련 프로젝트나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응답한 3개 증권사 가운데 가장 많은 금액은 투자한 곳은 하이투자증권(8500억원), KB증권(4338억원) 순이었다.

특히 보험업계가 석탄발전에 가장 많은 금액을 제공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생명보험사들은 최근 12년 동안 총 16조3000억원의 자금을 프로젝트에 대출하거나 관련 기업의 회사채 인수에 투입했으며 손해보험사는 삼성을 중심으로 석탄발전 관련 금융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파악됐다.

◆ 푸른하늘 찾는 금융권…구체적 계획부터

그동안 석탄발전에 대규모 투자금액을 쏟아 부었던 금융사들은 최근들어 ESG 경영을 내세우며 환경보호를 위해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사회적 분위기는 물론 금융 제도 등 정책 변화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9월 전국 56개 지자체와 교육청 등이 금고로 지정할 금융기관을 선정하는 심사 기준으로 ‘탈석탄’ 여부를 반영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금융 감독체계에서도 기후변화 리스크를 반영하며 압박을 가하는 상황이다.

또한 국회에서도 해외 석탄발전소 사업 및 금융지원 금지와 관련한 4개 법안이 발의됐으며 금융당국은 녹색금융 추진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탄소 배출 기업에 금융 지원을 계속할 경우 금융기관 건전성이 악화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국내에서는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이 지난 2018년 최초로 석탄투자 중단을 선언했으며 다음해에는 DB손해보험, 교직원공제회, 행정공제회가 올해 9월에는 KB금융그룹이 국내 금융그룹 가운데 최초로 기후금융에 앞장섰다. KB금융그룹은 석탄화력발전 건설 관련 사업에 참여하지 않고 ‘파리기후협약’ 등에 적극 동참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최근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등 삼성그룹 계열사들과 신한생명 등이 탈석탄을 선언했으며 지난 19일엔 농협금융이 대열에 합류했다.

농협금융은 금융지주 최초로 환경부와 업무협약(MOU)를 맺고 탈석탄 등 탄소중립 금융지원에 힘쓴다는 방침이다. 농촌 태양광 사업 대출, 전기·수소차 금융지원 등이 해당하며 친환경 투자에만 6조50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2020 한국 석탄금융 백서
▲ 1) 기 선언 기관은 ○ 표기 2) 설문 미회신, 해당 문항 무응답 등 3)석탄 산업 기업의 회사채 인수나 지분 인수를 통해 석탄 금융이 이뤄져 석탄·열병합 발전소 건설 사업 투자 내역이 없거나 석탄 금융 이력이 전무해 본 문항에 해당되지 않음 ⓒ2020 한국 석탄금융 백서

탈석탄을 선언한 금융기관들은 환경운동연합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향후 국내외 석탄화련발전소 건설을 위한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참여하지 않을 것 △향후 국내외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특수목적회사에서 발행하는 채권을 인수하지 않을 것 △향후 국내외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목적으로 발행되는 다른 어떠한 채권도 인수하지 않을 것 이라는 공통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KB금융, 삼성생명·화재, 농협금융 등 탈석탄 정책을 공식화한 곳을 제외하면 여타 금융사들은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석탄 금융중단 선언을 한 기관은 국내 금융사 전체의 1/5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조사결과 162개 금융기관 중 석탄투자 중단을 선언했거나 선언을 할 계획이 있는 기관은 19개 불과했다.

특히 일각에선 기존 석탄 발전 사업 지원 철회에 대한 계획은 빠진만큼 이번 선언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탈석탄 선언을 공식화한 곳 역시 향후 신규 투자 중단의지만 드러냈을 뿐 현재 진행 중인 사업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이행 계획을 밝히지 않은 점은 한계로 지목된다.

환경운동연합은 지난 12일 삼성 금융사 탈석탄 선언에 대해 논평을 내고 “삼성 금융사는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건설 중인 석탄발전 사업에 대한 기존 투자를 어떻게 중단하고 회수할지 구체적 이행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며, 삼성 금융 계열사들이 삼척 블루파워를 포함한 신규 석탄발전 사업에 대한 구체적 투자 중단 계획을 투명하게 밝힐 것을 요구했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2019년부터 올해 6월까지 석탄금융PF와 회사채 인수 등으로 각각 6314억원, 2715억원을 집행했으며 향후 대규모 집행 잔액이 남아있다. 

삼성 뿐만 아니라 앞서 탈석탄 행보에 동참했던 KB금융, 농협금융 등 여타 금융사 또한 기존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이행 계획이 드러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현재 삼척블루파워는 석탄화력발전소 건설투자비 조달을 위해 10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고 여기에 한국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KB증권, NH투자증권, 키움증권, 미래에셋대우 등이 주관사로 나선 상태다.

이에 환경운동연합은 탈석탄 선언이나 친환경 투자를 약속한 금융사들이 앞뒤가 다른 행보를 펼치지 않도록 ‘탈석탄 이행계획’에 해외 석탄발전 및 석탄 채굴 사업에 대한 투자 중단과 회수 계획도 명확히 담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환경운동연합 이지언 활동가는 “금융사들이 석탄 중단 선언을 하면서 더이상 신규 사업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기존 투자는 당분간 계속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라며 “삼척 블루파워를 포함한 신규 석탄발전 사업에 대해 구체적인 중단 계획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2020 한국석탄 금융백서’를 통해 석탄금융 혹은 탈석탄 금융은 정부의 기후변화 정책과 에너지 정책 등에 크게 좌우되는 만큼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정부의 책임 있는 태도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요 공적 금융기관인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산업은행 및 국민연금 등 상당수가 신규 석탄 중단 또는 철회 계획이 없는 상태다.

특히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과 반대되는 분명하지 않은 태도는 향후 석탄 발전을 지속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인도네시아 9·10호기, 베트남 봉양 2호기 투자를 비롯 국내에서도 신규 석탄발전소 7기 추가 건설이 대표적인 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험 이종오 사무국장은 “금융사들이 기존에 석탄발전에 투자한 투자금을 빠른 시일 내에 철회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해외에 비해 탈석탄 선언을 하는 금융사도 적고, 구체적인 계획 마련도 지체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만 “금융사들이 약속을 한 만큼 책임있는 행동이 뒷받침 될 수 있도록 우리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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