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코로나의 해’ 2020년을 경험한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게 되면서 ‘코로나 블루’를 겪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사람들과의 만남을 지속하며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습니다. 동시에 사회적인 재난이 얼마나 불평등하게 다가오는지를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물리적(사회적) 거리두기’가 매우 강조된 한 해였지만, 애초 삶의 지속을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반면 사회적 거리두기 이전부터 이미 사회적 소외로 인해 거리두기를 당해온 사회적 소수자들이 있다는 것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물리적 거리두기라는 구호가 얼마나 비장애·비성소수자·성인(비청소년)·자본가 중심적인 언어인지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이제는 구분을 통한 배제와 소외가 아니라 다양성이 존중되는, 모두가 포함되는 사회를 위한 평등과 공존의 방향으로 대전환을 이뤄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를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시작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다양성과 평등 그리고 생명과 평화의 세상을 열 수 있는 2021년도가 되면 좋겠습니다.

2021년은 우리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자본 중심의 사고방식,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사고방식을 완전히 뒤집는 한해가 되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코로나를 경험하며 자신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위기를 확인했습니다. 지나친 소비주의와 성장주의를 토대로 한 탐욕이 바탕을 이루는 삶의 형태에 변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획일적인 사회의 기준에 맞추지 못한 자신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생각,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비장애·시스젠더·헤테로·성인·자본가·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도,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합니다. 우리는 주어진 대로 생각하고 살아가게 하며 오직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의 ‘안정’을 우선시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고의 틀을 부수기 위해 자신의 사고방식에 의문을 갖고 자신과 연결된 모든 존재들의 ‘안정’을 위한 고민을 시작해야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화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긍정할 수 있게 되며 다양성이 존중되는 ‘포함(Inclusion)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깊이 들여다보고 ‘내가 언제 행복한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읽어내며 다른 존재들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세상은 인간들의 삶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지구상 존재하는 다양한 비인간존재와 관계를 맺고 기후위기를 고민하며 공존과 지속가능한 세상을 상상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사회 속에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다른 생명들과의 위치와 관계를 볼 수 있는 관점이 생길 때, 다른 존재들과 평등하게 관계 맺으며 평화를 만들며 나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정은 세상에 순응하는 삶보다 치열해 보일 수도 있지만 항상 투쟁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삶 자체를 즐기며, 자신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가고 자신과 삶 그리고 이 세상을 온전히 즐기며 살아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과 사회구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조에 눈을 뜨기 위해서는 “나”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먼저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기회는 가정이나 학교 등 사회 어디에서도 잘 주어지지 않습니다. 성폭력예방교육 등이 의무화 되면서 ‘인권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는 교육들의 양적인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분들이 성(평등)교육, 폭력예방교육, 인권교육을 들을 때 자신의 이야기, 자신을 위한 이야기로 듣는 것이 아니라 방어적으로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이는 이런 교육들이 의무교육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자발성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힘들며, 한국사회가 인권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자신의 인권을 알아갈 수 있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인권과 연결시켜주는 방식이 아니라, ‘인권 침해’를 중심으로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지 말라’는 방식으로만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처벌을 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잔소리처럼 어쩔 수 없이 듣고 있어야 하는 훈계가 아니라 다양성, 인권, 성평등이 자신에게 필요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와 닿을 수 있도록 접근해야 합니다.

현재 의무교육의 형태로 주어지는 교육의 방식이나 내용이 부족한 면이 있다고 해서 그 가치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과 풍성한 삶을 위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성과 포함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곳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온오프라인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많이 찾아야 합니다. 자신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우리 사회의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과 권력의 교차성을 알고, 그런 사회구조 가운데 자신과 다양한 다른 존재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도 분발하겠습니다. 코로나의 해 2020년의 경험과 배움을 토대로 2021년은 함께 다양성과 포함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지학 소장은?
-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운영위원
- 대한성학회 이사
-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사외이사
- 서울예술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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