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동운동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전태일 열사’는 부당한 노동현실 가운데서 노동자가 존중받는 세상이 도래하길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습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육신을 화염 속에 내던지는 희생도 서슴지 않았죠.

그의 숭고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 열악한 노동현실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안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저임금과 장시간 중노동에 시달리며,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받지 못한 채 일하다 목숨을 잃곤 합니다.

점점 희미해져가는 노동존중사회에 대한 희망에 숨을 불어 넣어 줄 새로운 노동정책이 필요한 때, <투데이신문>은 ‘우리가 바라는 근로기준법’을 기획했습니다.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한 시민들께서 ‘내가 바라는 근로기준법’ 게시판에 손수 남긴 의견들을 토대로 실제 노동현장 최전선에 있는 노동자들이 원하고 바라는 노동정책을 고찰해보고자 합니다.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한 시민들이 ‘내가 바라는 근로기준법’ 게시판에 남긴 글 ⓒ전태일기념관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한 시민들이 ‘내가 바라는 근로기준법’ 게시판에 남긴 글 ⓒ전태일기념관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이번 주는 야근 없이 칼퇴, 당직 없는 주말 가능하신가요”

1953년 우리나라 최초로 제정된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법정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8시간씩 6일, 주 48시간입니다.

그러나 한창 경제성장을 이루던 1960대에는 주 6일 근무도 턱없이 모자라 초과근무가 밥 먹듯 반복됐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노동자의 안전 문제가 불거지자 1989년 법정 노동시간을 44시간으로 단축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2000년 김대중 정부는 노동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한편 기업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취지로 다시 한번 법정 근로시간 단축을 시도했습니다. 이에 따라 법정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으로 줄어들었고,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주 5일제’ 형태의 근무가 시행됐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경영계의 반발이 거셌기 때문이죠.

3년여에 걸친 전쟁 끝에 법정 근로시간 주 40시간을 골자로 한 정부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의 벽을 넘어섰습니다. 다만 반대 여론을 고려해 7년여에 걸쳐 적용 범위를 점차 확대해 나가기로 했고, 서서히 주 5일제가 표준 근무형태로 정착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한국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은 여전했습니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 근로자 1인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024시간입니다. OECD 36개 국가들의 연간 평균 노동 시간인 1746시간보다 278시간 더 많습니다. 하루 8시간 근무를 가정해 일 수를 계산해보면 34.75일, 대략 35일의 초과근무를 하는 셈입니다.

2017년 7월 취업포털 사이트 ‘사람인’이 직장인 1486명을 대상으로 야근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8.9%는 ‘야근한다’고 답했습니다. 일주일 평균 야근 일수는 4일로 확인됐습니다. 주 5일 근무를 가정하면 하루 빼고 모두 야근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동계는 법정 노동시간 단축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자행되는 장시간 노동에 노동자의 안전을 우려하며 반발했습니다.

실제 국민의힘 정동만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과로사’로 분류된 산재 신청 건수는 576건에 달합니다. 이중 205건은 과로사로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뉴시스

알려졌다시피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노동존중사회’를 약속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했습니다. 이에 따라 주 40시간·연장근무 12시간·휴일근무 16시간 총 68시간이 허용됐던 기존과 달리 주 40시간·연장근무 12시간으로 제한됐습니다.

2018년 7월부터 공공기관과 공기업, 300인 이상 민간 사업장을 대상으로 우선 시행하고, 일부 특례업종을 제외한 50~299인 사업장(중소기업), 5~50인 미만 사업장 등도 단계적으로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본격적인 시행에 앞서 정부는 각 사업장에 계도기간을 부여했습니다. 계도기간 동안에는 52시간제 위반 단속 대상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에 노동계는 주 52시간 초과노동이 가능하다며 반발했지만, 정부는 각 사업장의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준비를 이유로 계도기간을 적용했습니다.

올해를 끝으로 계도기간이 종료되는 중소기업들은 주 52시간 근무제를 적용해야만 합니다.

실제 고용노동부가 지난 9월 전문 조사업체에 의뢰해 50~299인 사업장 2만4000곳(응답 기업 60.8%)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1.1%가 현재 주 52시간 근무제를 준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내년부터 도입이 가능하다는 응답자를 포함하면 91.1%로, 대부분의 사업장이 주 52시간 근무제가 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노동계의 우려는 여전합니다. 탄력근무제와 특별연장근로제 등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반대하는 경영계를 위해 정부가 내놓은 보완책 때문입니다. 특히 탄력근무제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내용의 탄력근로제 개편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자 올해 초 정부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를 늘렸고 양대 노총은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이미 지난해 말 특별연장근로인가 사유를 재벌대기업 등 사용자들의 요구에 따라 경영상 사유 등 ‘통상적인 경우’로까지 확대하겠다고 했으니 이미 예견된 일이다. 양대 노총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이는 노동시간 단축 취지를 무력화하고 장시간·임금노동체제를 유지하는 것이라 철회를 요구했으나 정부는 소귀에 경 읽기로 일관했다. 정부는 특별연장근로 확대 시행을 즉시 철회하고 왜곡된 노동시간 정상화와 노동시간 단축 안착을 위한 실질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주 52시간 이상의 특별연장근로가 일상적으로 허용될 경우 노동자의 생명안전을 이유로 연장근로를 주 12시간으로 엄격하게 제한하는 법률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 결국 실노동시간단축 정책은 무력화될 것이다. 위기 시 노동시간을 줄여 고통을 분담하고 고용유지와 일자리나누기를 실천해야 할 시점에 시대착오적 장시간노동을 조장하는 특별연장근로 확대는 필히 철회돼야 한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탄력근무제와 특별연장근로제를 전제로 한 주 52시간 근무제일지라도 미약하게나마 이전보단 근무시간 개선이 이뤄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해서 여전히 문제투성이인 현재에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노동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근무시간 정책 도입을 통해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이 저녁이 있는 삶, 주말이 있는 삶을 살아가길 기대해봅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