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지난 5일 밤 11시 55분.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작업 중 중상을 입은 노동자 故양모(47)씨가 17일 간 사경을 헤맨 끝에 사망했다. 타이어 성형 작업을 담당하던 고인은 사고 이후 의식을 잃은 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세상을 떠났다. 

22일 노조 등에 따르면 그는 지난달 18일 설비에 협착 된 상태에서 의식을 잃은 채로 발견됐다. 원통의 회전체로 만들어진 이 설비는 사람이나 물체가 접근하면 안전센서가 인지해 자동으로 멈춰야 한다. 하지만 사고 당시 이 안전센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3년 전인 2017년 10월 22일에는 한국타이어 금산공장에서 30대 노동자 최모씨가 설비 끼임 사고로 숨졌다. 이 사고 이후 금산공장의 작업이 전면 중단되고 노동당국의 대대적인 조사가 이뤄졌지만 수년이 지나 유사한 사고가 또 다시 발생한 셈이다.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산업재해 조사표에 따르면 지난 4년간 이곳에서 395명의 노동자가 작업 중 부상을 입었다. 이중 39%에 달하는 154명이 산재피해 사례로 집계됐으며 중대재해로 이어질 수 있는 설비 끼임 사고도 43건이나 됐다.  

한국타이어 공장의 타이어 성형기의 위험성은 이미 2017년 현장 조사 이후부터 제기됐던 문제다. 회사가 의지를 갖고 적극적인 개선에 나섰다면 돌이킬 수 없는 노동자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현장에서는 설비나 센서의 기계적 개선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노동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생산능률에만 초점을 맞추는 업무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오랫동안 이어온 수직적·강압적 조직문화로 인해 작은 부상정도는 쉬쉬하고 넘어가는 문화가 팽배하다는 지적이다. 

노조 관계자는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은 생산 중심의 운영에 있다. 안전과 관련해서는 덜 중요한 것처럼 여기고 노동 강도는 높은데 인력은 부족한 상황이다”라며 “군대식 수직적 조직문화도 문제다. 다쳐도 이를 드러내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노동자들의 개선 요구가 자유롭게 반영될 수 있는 조직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 노동자들은 이처럼 생명을 담보로 위험한 설비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와중에, 한국타이어 오너 일가는 경영권 다툼에 한창인 듯 보여 씁쓸함을 남긴다. 

한국타이어 조양래 회장의 장녀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조희경 이사장은 차남인 조현범 사장에 대한 지분승계의 정당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조 이사장은 조현범 사장에 대한 지분승계가 자발적인 의사결정이었는지 판단이 필요하다며 한정후견 개시 심판 청구를 접수했다. 

장남인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조현식 부회장도 이에 동조한다는 의견을 밝힘에 따라, 경영권 분쟁은 본격적인 형제간 갈등으로 번진 상황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위이기도 한 조현범 사장의 최대주주로서의 적격성 문제는 형제들의 지적과 별개로 이미 논란이 됐던 사안이다.

그는 협력업체 대표로부터 납품거래 유지 등을 대가로 지난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0여년 동안 매월 500만원 씩 총 6억15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1심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지만 이는 사실상 유죄가 인정된 판결이다. 

한국타이어는 작업현장의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선언을 이어왔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언제나 노동자의 죽음이라는 비보였다. 한국타이어 오너 일가가 개인의 재산과 회사 내 경영권 다툼에만 집중할 뿐 안전문제는 등한시 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때문에 최근 산업계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한국타이어를 위한 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법에는 기업에게 자율적으로 안전문제를 맡겨서는 노동자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사회적 확신이 반영됐다. 

기업의 선의를 믿었던 한국 사회는 이제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노동자들의 안전을 확보하려 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라는 극한 처방이 필요했던 것은 기업이 안전 확보라는 최소한의 신뢰를 져버렸기 때문이다. 

한국타이어 역시 이 같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전공장에서는 사흘에 한번 꼴로 노동자들이 부상을 입고 있지만 사장은 횡령을 일삼았고 오너일가는 경영권 분쟁에 여념 없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담긴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 취지는 정확히 한국타이어 오너 일가를 겨냥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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