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아마데우스 공연사진 (살리에리 역 차지연, 모차르트 역 강영석) ⓒPAGE1

“이제부터 우리는 영원한 적(敵)입니다!”

간절히 바랐던 신의 선택이 자신이 아니었음을 확인한 남자. 그는 높은 곳에 있는 신을 향해 날 선 전쟁을 선포한다. 돌아선 뒷모습, 울분에 가득 찬 목소리엔 말로 다 하지 못할 만큼 복잡한 감정이 담겼다. 음악의 신동을 뛰어넘지 못한 범재로 기억된 자. 바로 안토니오 살리에리(1750~1825)다.

연극 ‘아마데우스’가 지난 2020년 11월 17일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개막했다. 오는 1월 17일까지 공연될 예정이었으나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연장 실시로 인해 지난 12월 8일부터 현재까지 공연은 잠정 중단된 상태다.

‘아마데우스’는 말의 눈을 잔인하게 찌른 소년과 정신과 의사 사이에 펼쳐진 심리전을 담은 ‘에쿠우스’와 ‘고곤의 선물’, ‘블랙 코미디’ 등으로 유명한 영국 대표 극작가 피터 셰퍼(Peter Levin Shaffer)의 또 다른 작품이다. 원작 희곡을 바탕으로 만든 연극은 모차르트 독살설에 무게를 두고 제작된 1984년 작 영화 ‘아마데우스’와 유사한 흐름을 갖는다. 2018년 한국 초연 당시 세밀한 감정 묘사와 극적인 스토리, 화려하면서도 독특한 무대 연출, 배우들의 눈부신 열연으로 주목받았다. 그로부터 2년 뒤, 다시 돌아온 ‘아마데우스’는 더욱 섬세해진 모습으로 최고의 무대를 선보이며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극 제목은 ‘아마데우스’지만 작품에서 집중 조명을 받는 이는 놀랍게도 살리에리다. 그는 자신이 모차르트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휩싸인 채 무려 32년간 고통 속에서 살아온 인물로, 작품 속 서술자의 역할을 병행한다. 노인이 된 살리에리의 회상과 함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형식으로 진행된 연극은 155분 동안 빈틈없는 전개를 펼쳤다.

연극 아마데우스 공연사진 (살리에리 역 지현준, 모차르트 역 박은석)  ⓒPAGE1

젊은 시절의 살리에리는 빈 궁정악장 자리에 오를 만큼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지만, 모차르트가 등장한 뒤로 모든 것이 엉켜버린다. 모차르트가 지닌 천재성을 한눈에 알아보고 경이로움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질투를 품으며 스스로 고통받기 시작한다. 그 뒤로 자신이 가진 음악적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나, 끝내 모차르트의 천재적 능력을 뛰어넘지 못하리란 사실을 깨닫는다. 그토록 섬기던 신의 선물이 모차르트를 향했다는 사실은 살리에리에게 커다란 좌절감을 안긴다. 가질 수 없다면 망가트려야만 했다. 결국 그는 신을 향해 영원한 전쟁을 선포하고 돌이킬 수 없는 욕망의 길을 걷는다.

연극 ‘아마데우스’의 배우들은 이토록 복잡한 인물들을 표현하는 데 조금도 거침이 없었다. 각기 다른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를 보는 것 또한 이 작품의 커다란 재미다. 그중에서도 특히 ‘평범한 사람들의 수호자’ 살리에리로 분한 차지연의 열연은 눈부실 만큼 돋보인다. 넘치는 힘과 절도 있는 걸음걸이로 무대 곳곳을 누비던 그는 누가 봐도 완벽한 살리에리였다. 주체못할 감정이 폭발해 분노하고 포효하는 장면에서도 차지연은 기품을 잃지 않으며 탄탄한 중심을 유지했다. 그는 이번에도 역시 자신만의 확실한 캐릭터 ‘차살리’를 새로이 구축해냈다.

또 최근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로 대중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는 박은석의 모차르트도 눈길을 끈다. 극 초반부 살리에리에게 집중되던 조명이 2막에 이르러 모차르트를 향한 순간, 가볍고 철없던 모습의 천재는 사라지고 고독감에 사로잡혀 빠르게 시들어 간 한 유망한 청년의 존재감만이 부각된다. 이렇게 빈틈없는 두 사람이 그린 살리에리와 모차르트가 함께 레퀴엠 악보를 완성해가는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큼 묵직하게 울린다.

▲ 최윤영 평론가·공연 칼럼니스트<br>-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br>-공연을 말하다’ 크리에이터<br>- 클래식, 콘서트 등 문화예술공연 MC<br>- 미디어 트레이닝 및 인터뷰, 커뮤니케이션 전문 강사<br>-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 경인방송 FM 리포터
▲ 최윤영 평론가·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공연을 말하다’ 크리에이터
-클래식, 콘서트 등 문화예술공연 전문 MC
- 미디어 트레이닝 및 인터뷰,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전문 강사
-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 경인방송 FM 리포터

여기에 오케스트라의 생동감 넘치는 연주가 더해지면서 화려한 무대는 더욱 풍성해진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고조되는 감정, 감출 수 없는 욕망이 격해지는 과정은 실제 모차르트의 음악과 편곡이 가미된 연주로 더욱더 명확하게 표현된다. 또, 유명 오페라 곡을 직접 현장에서 생생하게 듣는 감동도 남다르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으나 고통으로 얼룩진 삶에 쫓겨 외로운 삶을 마감해야 했던 모차르트와 가장 성공한 음악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극복하지 못한 열등감 때문에 끝내 자신을 파멸로 이끈 살리에리. 기존 체계와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끊임없이 파격과 변화를 추구했던 천재는 마지막까지 외로이 싸우다 홀로 스러졌다. 어둠 속에서 빛을 그리다 생의 끝자락에 이르러 진심 어린 용서를 구하는 살리에리의 모습은 뭉클한 감상으로 다가온다. 죄책감이란 이름의 십자가를 내려놓게 된 살리에리는 과연 행복했을까. 판단은 관객들의 몫이다.

음악사에 길이 남을 두 음악가의 비극적인 삶과 화려했던 여정을 새로이 조명하며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깊은 감동을 남길 연극 ‘아마데우스’가 하루빨리 다시 날아올라 모두에게 잔잔한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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