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동운동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전태일 열사’는 부당한 노동현실 가운데서 노동자가 존중받는 세상이 도래하길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습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육신을 화염 속에 내던지는 희생도 서슴지 않았죠.

그의 숭고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 열악한 노동현실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안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저임금과 장시간 중노동에 시달리며,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받지 못한 채 일하다 목숨을 잃곤 합니다.

점점 희미해져가는 노동존중사회에 대한 희망에 숨을 불어 넣어 줄 새로운 노동정책이 필요한 때, <투데이신문>은 ‘우리가 바라는 근로기준법’을 기획했습니다.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한 시민들께서 ‘내가 바라는 근로기준법’ 게시판에 손수 남긴 의견들을 토대로 실제 노동현장 최전선에 있는 노동자들이 원하고 바라는 노동정책을 고찰해보고자 합니다.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한 시민들이 ‘내가 바라는 근로기준법’ 게시판에 남긴 글 ⓒ전태일기념관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아프니까 청춘이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과거 베스트셀러로 인기몰이를 했던 책 제목이기도 한 이 문장을 모르는 2030 세대는 아마 없을 것 같은데요. 불안한 미래와 외로운 청춘을 보내는 이 시대 청년들을 위로하는 말로 한때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청년들은 ‘우리가 왜 아파야 하나’, ‘아프면 환자지 청춘이냐’며 청춘은 어떤 종류의 아픔이라도 아픈 게 당연하다는 이른바 ‘청춘론’을 매우 강하게 부정합니다.

이러한 청춘론은 아마 ‘젊음’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하지만 젊다는 이유로 청년들에게 아픔과 희생을 강요하기에는 그들이 처한 지금의 현실은 매우 열악합니다.

통계청이 공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15세~29세 청년고용동향은 10년 동안 대체로 40%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지난해 기준 청년층의 고용과 관련된 지표는 전년 대비 모두 감소했으며, 실업에 관한 지표는 모두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청년층 고용률은 42.2%로 전년 대비 1.3%p 감소했습니다. 취업자 수는 376만3000명으로 18만3000명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반면 청년 실업률은 9.0%로 전년 대비 0.1%p 증가했습니다. 취업자 가운데 추가 취업을 원하거나 불완전한 고용 상태에 있는 사람까지 실업자로 간주해 산출한 청년확장실업률은 2.2%p 상승해 25.1%를 기록했습니다. 청년층 ‘쉬었음’ 인구는 8만8000명 증가한 44만8000명, 청년층 비경활인구는 4만9000명 증가한 477만8000명입니다.

가뜩이나 어렵다고 평가되던 청년고용은 지난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확산의 영향으로 찬바람이 쌩쌩 불었습니다. 제조업, 도소매업 등 청년고용비중이 높은 분야에서도 마저도 취업자 둔화, 기업의 신규채용 위축, 고용부진 심화 등 영향으로 취업자 감소폭이 커졌다고 합니다.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올해 채용시장을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더욱 나빠질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지난해 12월 잡코리아가 인사담당자 45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채용시장 예상 설문조사 결과 ‘2021년 채용시장은 2020년보다 개선될 것으로 예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비슷할 것’이라 답한 응답자가 40.4%로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더 나빠질 것’이라는 응답자는 39.7%로 비슷한 양상입니다.

반면 좋아질 것으로 예상하는 응답자는 19.9%로 절반 수준에 그쳤습니다.

채용시장 동향을 부정적으로 내다본 응답자들은 그 이유(복수선택)로 ‘코로나19 종식의 어려움’ 76.6%, ‘경기회복의 어려움’ 62.8% 선택했습니다. 이 밖에도 ‘기업 경영여건이 좋지 않아서’ 46.3%, ‘인공지능 시스템의 도입에 따른 업무량 감소’ 22.9%, ‘사업축소 및 인력 감축 계획’ 19.7% 등의 답변도 뒤를 이었습니다.

2003년 모 청춘시트콤의 등장인물이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인한 청년실업을 걱정하던 게 벌써 14년 전인데 청년들의 사정은 여전히 달라진 게 없습니다. 좋아지기는커녕 경기의 어려움에 예상치 못한 코로나19라는 변수까지 겹쳐 오히려 악화된 셈이지요.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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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청년들의 어려움도 끝이 없습니다. 저임금, 장시간노동, 비정규직 등 노동 사각지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청년노동자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입니다.

통계청이 공개한 2019년 청년층의 첫 일자리에서 월평균 임금수준은 △50만원 미만 5.1% △50~100만원 12.5% △100~150만원 27.7% △150~200만원 34.1% △200~300만원 18.1% △300만원 이상 2.4%입니다.

2019년 최저월급이 대략 174만원입니다. 하지만 적게는 45.3%, 많게는 79.4%의 청년이 최저월급에 못 미치는 금액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노동시간 등을 고려하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의 생존권 및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최소한으로 필요한 임금 기준도 충족하기 어려운 노동환경에 처해있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 있어 보입니다.

고용불안도 몇 년 새 크게 증가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통계로 보는 사회보장 2019’에 따르면 15~29세 청년 임금근로자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2013년 34.03% △2014년 34.74% △2015년 35.10% △2016년 35.22% △2017년 35.70% △2018년 34.64% △2019년 40.36%로 매년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입니다.

청년들은 적은 임금과 고용불안으로 인해 먹고사는 문제뿐만 아니라 일하다 목숨을 잃는 건 아닌지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놓였습니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공받아 공개한 산업재해 사고 관련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9년 6월까지 18~24세 청년층의 산재 사망사고는 72건입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스크린도어 정비업체 노동자 故 김군, 태안화력발전소 故 김용균씨, 건설노동자 故 김태규씨도 산재 사망사고 피해자입니다. 이들 모두 개개인의 잘못이 아닌 사업장의 안전망 미흡이 원인이었습니다.

청년유니온 김영민 사무처장과 청년전태일 김종민 대표는 올해 역시 코로나19의 여파로 청년 고용시장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김 사무처장은 코로나19 상황과 직결돼 발생하는 청년노동자를 위한 정책의 문제를 보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코로나19 지역확산 등 주기적으로 상황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올해도 상황이 역시 좋지 않을 거라고 예상된다. 그동안 누적된 실업청년까지 고려한다면 우려되는 지점이 많다. 이번 정부 들어서 노동 개선에 대한 고민이나 생각이 깊은 것 같지만 여전히 아쉬운 지점이 있다. 가령 정규직·비정규직 고용 논란이나 청년내일채움공제에서 드러난 부적절한 의혹, 실업급여 사각지대 개선 등이 요구된다. 특히나 실업급여는 코로나19를 고려해 반드시 확대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아울러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적용 대상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이 배제된 부분에 대한 별도의 조치, 청년들이 일터에서 많이 겪는 직장인 괴롭힘과 관련한 규정의 강제성이 미비한 것 등이 보완되길 기대해 본다.” 

김 대표는 불가피하게 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청년들이 최소한의 삶이라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실업급여와 같은 사회임금이 과감하게 확대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코로나19 여파로 올해까지는 청년 고용시장이 안 좋을 것으로 예상하며, 청년들의 일자리에 대한 대책과 지원이 필요하다. 우선은 사회 전반적으로 좋은 일자리가 많아져야 한다. 정부의 청년고용 정책 방향은 현재 공적 물량을 쏟는 것이다. 정책 방향은 동의하지만 과감해야 한다. 고용이 안정될 때까지 공적 일자리를 대규모로 늘리고 더불어 최소한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실업급여 등 사회임금이 보장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기 어려운 구조다. 누구나 일을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불가피한 상황으로 일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을 때 최소한 자기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임금 지원이 필요하다. 더불어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최저임금보다는 고용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나아가서는 실제 노동자의 임금이 되는 최저임금의 과감한 인상이 요구된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 경험이 없고 부족한 때, 부지런히 노력해서 경험과 능력을 쌓으라는 의미인데요. 하지만 70% 이상이 대학에 입학하고 취업을 위한 교내 동아리, 대외활동, 인턴십 등 누구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스펙을 쌓고 성장을 이룬 후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요즘 청년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 2~4년. 미래를 위해 지난 10여년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청년들이 안전한 일터에서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보장받는 ‘노동자다움’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고민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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