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자살예방백서...’10대 자살률’ 큰 폭 증가
정부의 ’법과 제도’ 개정에도 실효성 미비해
자살 경향자 소통창구 SNS 마저 검열 되는 현실
자살문제, 다각도로 수용 할 수 있는 시선 필요

괴테의 대표작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속 주인공 베르테르는 풍부한 감수성과 자의식을 가진 청년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고통스러워 하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러한 충격적인 결말로 소설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소설 속 주인공에 심취해 베르테르처럼 자살하는 젊은이들까지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선망했던 인물이나 유명인이 자살하면 그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해 자살하는 현상을 ‘베르테르 효과’라고 부른다.

특히 유명인 자살과 관련한 언론 보도의 증가는 자살률을 높인다는 사실이 수많은 연구에서 드러났다. 최근 미국 10대 여성의 자살률 증가 원인으로 트위터,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SNS)가 지목되고 있어 SNS와 자살과의 관계가 더욱 두드러진다.

그러나 우리는 베르테르라는 인물 그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지닌 풍부한 감수성과 자의식은 마치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듯하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 있는 위태로운 모습 또한 여러모로 닮아있다. 고통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홀로 발버둥 치는 청소년들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네 젊은 베르테르들을 죽음까지 내모는 것들은 도대체 무엇일까.

<투데이신문>은 SNS를 통해 청소년 자살의 심각성을 살펴보고 자살생존자를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비현실적인 자살 예방책과 허점투성이인 청소년 자살예방 상담정책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자살예방을 위한 이정표를 총 4회에 걸쳐 보도한다.

ㅜ
서울 마포대교에 붙어 있던 자살예방 문구가 제거되고 추락 방지대가 설치돼있다. 왼쪽 사진은 제거되기 전 자살예방문구의 모습. ⓒ뉴시스

【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 대한민국에 달린 부끄러운 명찰 ‘자살공화국’. 하루 평균 자살 사망자 38명. 사람들은 이를 ‘오명(汚名)’이라 부른다. 단순히 더러워진 이름이나 명예라고 치부하기엔 우리나라는 지난 2003년부터 2018년까지(2017년 제외) 15년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달성했다. 오랫동안 이어진 OECD국가 자살률 1위에 문재인 정부는 개선을 위한 칼을 뽑아들었다.

그 결과, 이번 정부 들어 자살문제에 대한 변화의 움직임이 활발하게 나타났다. 역대 정부 최초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 문화 확산’을 국정과제에 포함했으며, 2018년에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자살예방 국가행동계획’을 수립 및 추진하면서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아울러 2019년 7월 16일부터 시행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 개정안(이하 자살예방법)’에 따라 온라인에 자살유발정보를 퍼트리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해당 법률에 따라 자살유발정보를 유통할 경우 최대 2년 이하 징역형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자살예방법이 온라인 동반자살 모의, 자살 시 필요한 정보 등을 막아 자살률을 떨어트릴 수 있으리란 기대가 존재하지만, 실효성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자살유발정보가 가장 많이 유통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대부분 해외에 본사를 둔 업체이다 보니 문제가 되는 게시글 삭제가 실시간으로 이뤄지기 어려운 등 실질적인 제재가 어려운 탓이다.

자살예방을 위해 자살의 근본적인 원인을 모색해 해결하려는 방식이 아닌, 처벌과 검열에 중점을 둔 방안에 대한 실효성 의문이 존재한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에서 지난해 6월 발표한 ‘2020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자살사망자 수는 2011년 31.7명에서 2018년 26.6명으로 8년간 16.1%의 전반적인 감소추세를 보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긍정적인 수치임은 틀림없으나, 연령대별 자살 현황에서 큰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대한민국은 ‘자살 유발’ 사회인가

2017년 대비 2018년 자살자 수의 경우 유독 10대 청소년에게서 높은 증가율을 보인다. 10대는 2017년 대비 254명에서 300명으로 증가해 22.1%로 높은 상승률을 보여 청소년 자살문제에 적신호가 켜졌다. 반면 20대는 1106명에서 1192명으로 7.2%, 30대는 1812명에서 1998명으로 12.2%, 40대는 2408명에서 2676명으로 13.1%, 50대는 2568명에서 2812명으로 8.2% 상승했다.

2018년 9세∼24세 청소년 사망자는 전년보다 3.8% 늘어난 2017명이다. 2010년 이후 꾸준히 줄다가 다시 증가했다. 청소년 사망자 10명 중 6명(61.9%)은 남자였으며 사망 원인 1위는 고의적 자해(자살)였다. 2위는 운수사고·화재 등(4.6명), 3위는 암(2.9명)이었다.

청소년 사망원인 1위는 2011년부터 8년째 자살이다. 10대 청년들의 경우 정신적 어려움이 가장 큰 자살 동기다. SNS상에서 무분별하게 유통되는 ‘자살유발정보’는 스스로 목숨을 끊게끔 방아쇠를 당긴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 경찰청은 온라인 생명존중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지난해 7월 6일부터 같은달 17일까지 ‘국민 참여 자살유발정보 집중클리닝 활동‘을 진행한 결과 총 3만3486건의 자살유발정보가 신고됐다. 그 중 삭제된 건은 7244건(21.6%)에 불과했다. 신고처 유형별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2만7099건(80.9%)으로 가장 많았다. 기타 사이트 3989건(11.9%), 온라인 공동체(커뮤니티) 1804건(5.4%), 포털 사이트 594건(1.8%)이 뒤를 이었다.

실제 본보가 만난 자살시도자들은 SNS를 통해서 자살과 관련한 정보를 얻었다고 실토했다. 그러나 SNS상 유통되는 자살유발정보 근절은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이다.

닐슨 코리안클릭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국내 소셜 미디어 이용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15.2% 증가한 3550만명으로 집계됐다. SNS 이용자는 빠르게 늘어나는 반면 SNS상 유통되는 자살유발정보에 대한 대책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국내 주요 소셜 미디어 플랫폼별 1인 평균 이용 시간은 트위터가 594분으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 페이스북(567분), 인스타그램(441분) 등의 순이다. 특히 트위터는 2019년 4분기 대비 가장 큰 성장 폭으로 증가한 모습(8.8%)을 보였다.

10대는 페이스북을 가장 많이 사용했으나 전 연령대 중 10대만이 트위터가 상위 3순위 내에 랭크된 특징을 보였다. 취재결과 ‘동반자살‘, ‘자살‘, ‘자해‘ 등 자살유발정보가 트위터에서 가장 활발히 유통됐다. 비단 트위터뿐만 아니라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포털사이트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도 유사한 정보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ㅜ
 지난 12월 4일 중앙심리부검센터 심포지움에서 성균관대 연구팀이 발표한 일부 연구결과 슬라이드 <사진출처=성균관대학교 데이터랩 연구팀>

삶과 죽음 사이 소리없는 아우성

보건복지부와 중앙심리부검센터에서 최근 5년(2015~2019)간 자살사망자 566명의 유족 68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심리 부검 면담 결과에 따르면, 자살자 566명 중 529명(93.5%)은 사망 전 자살에 대해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언어·행동·정서적 경고신호를 주변에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성균관대학교 데이터랩(주영훈 교수, 김동훈 연구원)이 지난해 12월 4일 중앙심리부검센터 심포지움에서 발표한 ‘한국 트위터의 정보 행동 이해, 트위터에서 자살을 표현하는 사용자’와 관련한 내용에 따르면 작년 자살경향성 사용자 182명의 과거 트윗 7만4048개를 수집해 분석한 결과 청소년이 73%, 성인 27%의 비율로 나타났다. 주로 청소년들이 트위터에 자살과 관련된 표현을 게시하는 것이다.

이들의 닉네임은 주로 부정적인 경험과 감정, 우울을 나타내는 키워드로 구성됐다. 청소년 자살 시도자들이 SNS(트위터)상에 자기를 소개하는 글로는 우울감 표출(40.17%)이 가장 많았다. 이들은 본인이 겪는 정신질환(13.54%)도 작성했는데 15종 이상의 정신질환이 언급됐다. 이어 흡연, 음주 등 일탈 행위와 특히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구체적으로 기술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8종 이상의 성(性)향을 언급했다.

트윗 내용으로는 자해(17.9%)와 관련해서가 가장 많았으며 도움 요청(15.28%)이 뒤를 이었다. 그밖에 나이(14.85%), 우울감(14.41%), 성별(12.66%), 정신질환(6.11%), 부정적 경험/감정(5.68%) 등의 내용이 있었다.

성균관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주영준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자살경향성 사용자(자살의 징조를 보이는 사용자)들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구체적으로 기술하는 경향이 있으며 습관성으로 트윗을 작성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고 싶을 때 주로 작성하는 것으로 추측된다”고 설명했다.

자살경향성 사용자들의 감정 공유 행위들마저 자살유발정보라고 판단해 강력한 제재들을 취하고 있어 자살시도 전 언어·행동·정서적 경고신호일 수도 있는 내용을 간과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SNS에서 유통되는 자살유발 정보들이 자살 예방적인 측면으로도 작용할 수 있는 시각도 있다. SNS상 게시되는 자살유발 정보 속에는 아름다운 부분들(댓글을 통한 격려, 응원의 메세지 등)이 존재한다. 그러나 부정적인 효과에 포커스를 맞춰 검열과 삭제, 강력한 법적 처벌로 이어지는 현 상황이 오히려 아이들을 음지로 몰아넣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소아정신과 전문의인 대한소아청소년 정신의학회 재난과 트라우마 김은지 이사는 “청소년 자살 예방을 위해선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교육이 선행돼야 하는 상황이다“라며 “특히 신종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로 자택에 거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이들의 미디어 이용률 역시 급증하는 상황이다. 어른들의 콘크리트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디어 자체를 막아버리기 보다, 그 순기능을 확인하고 국가에서도 앞장서서 이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는 “자살충동 청소년들이 정말 듣고 싶은 말은 ‘얼마나 힘들면 자해를 하겠니’, ‘너도 많이 무서울 텐데’라는 걱정과 배려 섞인 위로다. 청소년들이 겪는 힘든 부분들에 있어 어른들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청소년 자살률을 막기 위해서, 자살유발정보를 막기 위해서 이를 삭제하거나 검열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어른들, 나아가 정부가 이를 앞장서서 교육이 우선시 되는 방안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