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동운동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전태일 열사’는 부당한 노동현실 가운데서 노동자가 존중받는 세상이 도래하길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습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육신을 화염 속에 내던지는 희생도 서슴지 않았죠.

그의 숭고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 열악한 노동현실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안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저임금과 장시간 중노동에 시달리며,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받지 못한 채 일하다 목숨을 잃곤 합니다.

점점 희미해져가는 노동존중사회에 대한 희망에 숨을 불어 넣어 줄 새로운 노동정책이 필요한 때, <투데이신문>은 ‘우리가 바라는 근로기준법’을 기획했습니다.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한 시민들께서 ‘내가 바라는 근로기준법’ 게시판에 손수 남긴 의견들을 토대로 실제 노동현장 최전선에 있는 노동자들이 원하고 바라는 노동정책을 고찰해보고자 합니다.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한 시민들이 ‘내가 바라는 근로기준법’ 게시판에 남긴 글 ⓒ전태일기념관<br>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한 시민들이 ‘내가 바라는 근로기준법’ 게시판에 남긴 글 ⓒ전태일기념관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퇴근 후에도 울려대는 상사의 연락에 스트레스 받진 않으신가요”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고 SNS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기업에서는 카카오톡 등 SNS를 업무용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사내 메신저와는 달리 언제, 어디서든 쉽게 이용 가능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늦은 밤이나 휴일까지도 업무 지시가 내려지고 있습니다.

지난 2016년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1668명을 대상으로 ‘직장인과 메신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응답자의 81.8%가 업무 시간 이외에 메신저로 업무 연락을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들 중 75.0%는 퇴근 후에 연락을 받았고, 78.4%는 상사로부터의 연락이라고 답했습니다.

지난해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171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보였습니다. 응답자의 59.3%가 퇴근 후 업무 지시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연락의 주체는 임원급과 과장급이 주 5일 기준 3.5회로 가장 많았습니다.

퇴근 후 연락을 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2016년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 등 정부부처와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영계가 함께 기업 500곳·근로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근로관행실태 조사에 나섰습니다. 조사결과 퇴근 후 업무 연락을 하는 이유에 대해 △‘급한 업무’ 42.2% △‘생각났을 때 지시해야 마음이 편해서’ 30.3% △‘외부기관·상사 등의 무리한 자료 요구’ 17.9% △‘직원이 회사에 있다고 생각’ 7.2% 등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굳이 퇴근 후에 연락해야 할 만큼 중요한 업무가 아니지만 편의상, 지시하는 사람이 마음 편하자고 연락하는 경우가 꽤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데요. 솜털처럼 가벼운 연락의 목적에 비해 이로 인해 근로자가 겪는 스트레스는 상당합니다.

위 사람인 설문조사에서 퇴근 후 업무지시에 따른 스트레스 강도는 높은 점수에 따라 △10점 27% △5점 15.8% △8점 13.8% △7점 13.3%로 평균 6.9점으로 집계됐습니다.

“근로자의 삶과 일의 균형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는 때임에도 불구하고 퇴근 이후에도 업무와 관련된 연락을 하는 상사는 꼰대를 넘어선 꼴불견이라고 생각한다. 퇴근 후는 물론 연차에도 회사나 거래처 연락 때문에 노트북을 챙겨야 한다. 그런데 정작 부하직원인 내가 중요한 일처리로 불가피하게 퇴근 후나 연차, 휴가 때 연락을 하면 성질부린다. 업무 시간이 끝난 후에도 일을 시킬 거라면 정당하게 임금을 주고 시키던지, 아니면 근무 중에 시키던지. 집에서 휴대전화에 상사 이름이 뜨면 한숨부터 나온다.” - 기업 인사팀  A 사원

“내 일보다는 상사의 업무 때문에 연락 오는 게 대부분이다.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닌데 연락부터 하고 본다. 본인 역량 부족으로 부하직원들을 퇴근 후까지 고생시키는 것은 자신의 무능력함을 증명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직장생활을 수년간하다 보니 그런 상사는 쭉 그렇더라.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고 그런 상사 밑에서 배우면 나도 그렇게 될까 봐 퇴직이 정답이라는 생각을 끝도 없이 한다.” 기업 회계팀 B 대리

2016년 6월 더불어민주당 신경민 의원은 이러한 여론을 반영해 퇴근 후 문자나 SNS로 업무 지시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이른바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법’을 발의했습니다. 사용자가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는 근로시간 외적으로 근로자에게 문자나 SNS 등으로 업무를 지시함으로써 사생활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포함합니다.

직장인들은 해당 법안에 호의적이었지만, 실무 현장에 정착하기는 어렵다고 내다봤습니다.

2017년 잡코리아가 직장인 717명에게 ‘퇴근 후 카톡 금지법’에 대한 생각을 물었는데요. 응답자의 87.7%는 해당 법안이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다만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법안 제정은 가능하지만 현장 정착은 어렵다’는 답이 66.1%로 가장 많았습니다. ‘법안 제정 및 현장 정착이 모두 가능하다’ 19.4%, '법안 제정 및 현장 정착 모두 어렵다' 14.5%로 뒤를 이었습니다.

선견지명이었을까요. 기대가 컸던 카톡 금지법은 소관위인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 한번 이뤄지지 못한 채 20대 국회 종료와 함께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습니다.

노동부에서도 퇴근 후 SNS를 통한 업무지시 개선을 유도하는 근로감독 여부를 검토 중에 있다고 밝힌 바 있으나 아직까지 이렇다 할 들려오는 소식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 일말의 희망은 남아있습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이 근로기준법 50조(근로시간) 3항에 사용자 지휘·감독 아래 있는 대기시간 범위에 ‘정보통신기기 등을 활용해 특정시간 동안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업무에 관한 지시를 할 경우’를 포함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현행법에서는 사용자 지휘·감독 아래 있는 대기시간을 근로시간으로 보지만, 근로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은 휴게시간으로 간주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되면 SNS나 문자 등으로 업무 지시를 받았을 때 근로시간이냐, 휴게시간이냐 애매해질 수 있습니다.

이를 보완해 퇴근 후 상사가 카톡 등으로 지시를 내리면 근무시간으로 보고 그에 상응하는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골자입니다.

퇴근 후 업무 연락을 완전히 차단하는 법률은 쟁점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해, 이보다 실현 가능성이 높은 대안을 고안해낸 것입니다.

이처럼 법으로 제재하는 방법도 일정 부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업무 시간 외에 연락을 자제하기 위한 당사자 스스로의 노력이 중요합니다.

퇴근은 업무에서의 로그아웃을 뜻합니다. ‘문자 한통이 어때서’, ‘카톡 하나쯤이야’라는 안이한 생각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부담이자 스트레스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업무시간 외 휴대전화 속 부하직원의 이름을 누른 지난날 자신의 못된 손가락을 반성하고,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사내 분위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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