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동운동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전태일 열사’는 부당한 노동현실 가운데서 노동자가 존중받는 세상이 도래하길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습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육신을 화염 속에 내던지는 희생도 서슴지 않았죠.

그의 숭고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 열악한 노동현실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안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저임금과 장시간 중노동에 시달리며,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받지 못한 채 일하다 목숨을 잃곤 합니다.

점점 희미해져가는 노동존중사회에 대한 희망에 숨을 불어 넣어 줄 새로운 노동정책이 필요한 때, <투데이신문>은 ‘우리가 바라는 근로기준법’을 기획했습니다.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한 시민들께서 ‘내가 바라는 근로기준법’ 게시판에 손수 남긴 의견들을 토대로 실제 노동현장 최전선에 있는 노동자들이 원하고 바라는 노동정책을 고찰해보고자 합니다.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한 시민들이 ‘내가 바라는 근로기준법’ 게시판에 남긴 글 ⓒ전태일기념관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한 시민들이 ‘내가 바라는 근로기준법’ 게시판에 남긴 글 ⓒ전태일기념관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소개팅? 그 사람 직업은 뭔데”

나이를 한살한살 먹을수록 만남을 주선하다 보면 상대방의 직업을 묻는 경우를 자주 경험하곤 합니다. 이는 곧 선호 혹은 비선호 직업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2014년 결혼정보업체 ‘가연’이 공개한 미혼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혼상대 조건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건으로 △성격 403명 △가치관 217명 △경제력/직업 134명 △가정환경 70명 △외모 62명 △건강 56명 △나이 30명 △기타 7명 △학벌 4명으로 꼽았습니다.

직업이 배우자 선택에 있어 주요 조건 중 하나임을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모 선개팅(선과 소개팅의 합성어) 앱에서는 직업에 따른 회원등급표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높은 SS등급부터 가장 낮은 C등급까지 총 8단계로 구분했는데요, 가장 낮은 등급에 중소기업과 소방공무원, 순경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를 본 한 누리꾼은 ‘이렇게 사람 급을 나눠야만 할까. 이제 20살인데 세상이 너무 무섭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어린 시절부터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가르치지만, 막상 성인이 마주한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2016년 취업포털 사람인이 성인남녀 2236명을 대상으로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결과 응답자의 52.1%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또 58.2%는 다른 사람을 직업만으로 판단한 경험이 있다고 했습니다.

직업의 귀천을 나누는 기준으로는 △사회적 인식이 35.7%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소득수준 26.1% △업무 환경 11.9% △직업 안정성 7.2% △전문직 등 진입장벽 6.4% △비전·성장 가능성 6.1% △스트레스 수준 3% △사회적 기여 2.1% 등 순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은, 비선호 대상으로 분류되는 직업군은 소위 블루칼라(Blue-collar)로 불리는 생산업, 건설업, 환경업, 운동업 등 육체노동을 하는 현장직이 대표적입니다.

2019년 5월 한국갤럽이 전국 만 13세 이상 남녀 1700명을 대상으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직업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공무원 25% △교사 12% △의사 8% △자영업·회사원 4% △연예인·변호사·검사 3% △대학교수·사업가·기업인 2%로 조사됐습니다. 현장직으로 분류할만한 직업군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특정 직업을 어떻게 인식하고 평가하느냐에 따라 그 일을 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최근 서울 동작구의 한 어학원에서는 한 직원이 음식배달을 온 배달원에게  계산 문제로 갈등을 빚자 ‘공부를 못하니까 할 줄 아는 게 배달일 밖에 없다’, ‘공부를 잘했으면 배달일을 했겠느냐’ 등 막말을 쏟아내 비난을 받은 바 있습니다. 육체노동인 배달업은 물론이고 그 일을 하는 노동자 또한 하찮게 여기며 저지른 만행이겠지요.

점점 현장직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되고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하대 받는 일이 여전하다 보니 관련 업계의 젊은 노동자의 비중은 낮은 실정입니다.

건설현장 소방설비 3년 차 노동자 A(25)씨는 “근무지에서 가장 어린 것은 물론 함께 근무하시는 분들 대부분이 20살 이상 많은 삼촌, 부모님 뻘”이라며 “20·30대 찾기는 쉽지 않다. 함께 일하는 분들도 ‘젊은 나이에 힘든 일 하지 말고, 더 좋은 일 알아보면 어떻겠느냐’고 하실 때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유튜브 채널  ‘20대 버스기사 이야기’와 ‘청년 배관공들 이야기’ 콘텐츠 일부 캡처 ⓒ투데이신문
유튜브 채널 ‘20대 버스기사 이야기’와 ‘청년 배관공들 이야기’ 콘텐츠 일부 캡처 ⓒ투데이신문

최근에는 현장직에 있는 청년 노동자들이 SNS나 유튜브 등을 통해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소개해 사회 전반에 깔린 ‘직업의 귀천’에 대한 편견을 깨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유튜브 ‘청년 배관공들 이야기’는 채널명 그대로 청년 배관공들이 자신들이 근무하면서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영상으로 담아 소개하는 채널입니다.

“아직 많이 배워야 하고 부족하겠지만 열심히 해보려 합니다. 잘 모르시는 분들은 ‘막노동’, ‘힘든 직업’, ‘더러운 직업’, ‘위험한 직업’, ‘3D직종’ 안 좋은 이미지를 갖고 말하지만 직이지만 다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각자 자부심도 가지고 있습니다. 젊은 청년들의 이야기를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청년 배관공들 이야기

유튜브 ‘20대 버스기사 이야기’는 현직에 있는 20대 버스기사의 세상 사는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사무직보다는 현장직에 대한 인식 자체가 아직까지 좋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기술직이나 육체노동자에 대한 차별 멸시가 좀 남아있습니다. 27살이지만 버스기사 하는 게 전혀 창피하지 않습니다. 믿고 버스를 이용해 주시는 분들을 목적지까지 모시는 등 사소한 일상에서 책임감과 보람을 느낍니다.” - 20대 버스기사 이야기 운영자 ‘2버이’씨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 천한 직업은 없다. 다만 천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 있을 뿐이다.’

사회에서 차별받는, 저평가 되는 직업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편견입니다. 이를 근절하는 것 또한 우리의 역할이자 책임이라는 것을 마음속 깊이 새겨 잊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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