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가습기살균제 등장은 가습기 시장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온 가족의 건강을 앞세운 광고는 사람들의 소비심리를 자극했고 판매된 가습기살균제 수만 해도 연간 60만개에 이른다. 가습기가 있는 집이라면 가족의 건강을 지켜준다는데 가습기살균제를 굳이 마다할 필요나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소비자의 신뢰를 차곡차곡 쌓아가던 가습기살균제 실체는 17년이 흐른 2011년이 돼서야 세상에 드러났다. 신선한 공기로 가족의 건강을 지켜준다던 가습기살균제는 살인마가 돼 등에 칼을 꽂았다.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사람들 가운데 건강이 악화되거나 심지어는 목숨을 잃는 일까지 벌어졌다. 있어서는 안 될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시작이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책임자는 분명했다. 소비자의 안전을 위한 사전 위해성 검증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만들어 판매한 기업, 안전 기준을 명확히 하지 않은 정부에게 있었다. 그러나 책임자 누구 하나 피해 수습에 제대로 나서지 않았다. 독박을 쓸까 꽁무니 빼기 급급했다.

그렇게 흘러간 시간도 어느덧 10년.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우리 사회에서 기억되고 잊히길 반복하며 희미해져가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시간은 쳇바퀴 돌아가듯 가습기살균제 공포가 시작된 그때에 머물러 있다. 본보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되돌아보고 현시점에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피해자 구제 등을 점검해보고자 [가습기살균제와 보낸 통한의 10년]을 기획했다.

유공(현 SK케미칼)이 만들어 판매한 가습기살균제 광고 ⓒ뉴시스
유공(현 SK케미칼)이 만들어 판매한 가습기살균제 광고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건조한 실내 공기에 촉촉한 수분을 공급해 주는 가습기는 어느 집에서나, 특히 아이를 기르는 가정에서는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가전제품이다. 배출된 습기는 코를 통해 폐까지 전달되다 보니 가습기에 사용되는 물의 위생은 늘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1994년 어느 날 TV와 신문광고에는 가습기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혹 할만한 광고가 흘러나왔다. 

‘가습기메이트 덕분에 우린 건강하게 살아요’

내 아기를 위하여!

깨끗한 가습기, 신선한 공기

가습기메이트가 우리가족 건강을 지켜줍니다

물속의 세균이나 미생물을 박멸해 준다는 가습기살균제가 시장에 등장했다. 가습기를 사용하면서도 늘 위생이 걱정이었던 사람들에게 가습기살균제의 등장은 희소식이었다.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 최초로 판매된 제품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고, 유명 기업의 자신 있는 광고는 제품에 대한 신뢰를 높였다. 

가습기살균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다른 기업들에서도 앞다퉈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해 판매했다. 가습기를 사용하는 집이라면 가습기살균제 하나쯤은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는 게 당연해졌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가습기살균제이건만, 이는 곧 배신이 돼 돌아왔다. 

2011년 2~4월 모 대학병원에 폐 질환을 앓는 임산부들이 연달아 입원했다. 이들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환자들의 건강은 점점 급격히 악화됐고, 누군가는 끝내 목숨까지 잃었다.

하지만 아무도 원인을 알지 못했다. 전염병도 아니었고, 일반적인 폐 질환도 아니었다.

결국 정부가 나서 조사에 나섰다. 그리고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 그들 사이에서는 단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됐다.  

‘가습기살균제’

가습기살균의  맑고 투명한 가면 뒤에는 검은 민낯이 숨겨져 있었다. 건강을 생각해 사용했던 가습기살균제가 오히려 가족의 목숨을 빼앗아간 살인마였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하지만 희대의 살인마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습기살균제는 여전히 피해자들의 삶에 검은 마수를 뻗치고 있다. 

ⓒ뉴시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뉴시스

가습기살균제, 악연의 시작

가습기살균제는 1994년 당시 유공(현 SK케미칼)이 처음 선보였다. 국내 최초, 세계 최초였다. 

당시 SK케미칼은 18억원을 투자해 물에 넣기만 하면 각종 세균을 완전 살균해주는 가습기살균제를 개발했다고 알렸고, 위생과 건강을 앞세운 대대적인 홍보로 이목을 끌었다.

SK케미칼에 이어 옥시레킷벤키저, 애경산업,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유명 기업까지 너도나도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에 뛰어들었다. 이에 따라 시중에 판매되는 가습기살균제 종류가 다양해졌고 사용자도 늘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 판매가 중단된 2011년 이전까지 가습기살균제 판매수량은 연간 60만개에 이른다. 그리고 이러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사람의 수는 894만~1087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2009년 국내를 강타한 신종플루로 인해 살균과 위생에 대한 관심이 늘고, 2010~2011년 사이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 날씨는 가습기살균제 판매량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실제 한국방송통신대 환경보건학과 박동욱 교수가 환경부 및 복지부 등 관련 부처가 시행한 가습기살균제 1·2차 피해 조사·판정에서 1·2등급을 인정받은 피해자 221명을 분석한 결과 피해자의 59%는 2010~2011년 사이에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세균박멸로 나와 내 가족의 건강을 지켜줄 줄 알았던 가습기살균제는 2011년 2월, 서서히 어두운 그림자를 몰고 오고 있었다.

2011년 2~4월 사이 서울아산병원에는 출산이 얼마 남지 않은 20·30대 임산부 7명이 급성호흡부전과 더불어 중증 폐렴 증상을 보여 입원했다. 그중 6명은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을 정도로 증상이 심각해졌고, 1명은 목숨까지 잃었다.

의료진은 원인을 찾지 못했다. 감염질환에 걸렸을 경우 보편적으로 보이는 발열, 백혈구 증가 등 양상이 뚜렷하지 않았고 관련 약물을 투여해도 반응은 미약했다. 또 환자들 간에 거주지역이나 병원체 등 공통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병원은 2011년 4월 25일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에 원인미상 폐 질환이 발생했다고 알렸다.

신고를 접수한 질본은 다음날부터 역학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31일 충격적인 중간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질본은 역학조사 결과와 일부 제품에 대한 세포독성 시험 결과를 근거로 원인을 알 수 없는 일련의 폐 손상 환자 발생의 원인으로 가습기살균제를 지목했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 질환은 처음에는 감기 증상을 보이다 이후 폐렴으로 나타난다. 더 악화되면 간질성 폐렴으로 진행되기도 하고 심각할 경우 폐조직이 굳어 심각한 호흡장애를 야기하는 폐섬유화까지 진행된다. 폐섬유화가 진행되면 폐가 수축과 팽창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기가 혈관까지 전달되지 않아 결국 숨 쉬지 못하고 사망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인체에 유해한 가습기살균제가 버젓이 판매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안전성 확인 시스템의 부재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1998년부터 안전입증의 책임을 제품개발자에게 요구하는 ‘살생제품안전관리지침’을 뒀다. 또 바이오사이드 성분을 소비자 제품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안전성 승인을 받도록 정했다.

2006년부터는 유럽화학물질안전청(ECHA)를 세워 화학물질 등록·평가 제도(REACH)라는 법률을 만들어 EU 28개국에 유통되는 화학물질 전부를 관리하고 있다. REACH는 등록 및 평가를 엄격히 해 유해한 화학물질 사용 자체와 사용량을 줄이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안전관리 기준에 따라 제품이 제조·유통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5년에 화학물질의 정보 등록, 제품 내 사용 허가·제한·금지 물질 지정 등을 규정한 이른바 ‘화평법’ 제정 등을 통해 화학물질로부터의 국민의 안전을 관리하고 있으나, 당시에는 책임제도가 없는 것은 물론 안전 확인 기준도 없었다. 때문에 가습기살균제는 흡입독성실험도 거치지 않은 채 공산품으로만 신고돼 판매됐다. 

가습기살균제 전체 판매량 998만개 가운데 545만개로 시장 점유율이 54%에 달했던 옥시레킷벤키저의 경우 본사가 있는 영국에 바이오사이드 안전 확인 제조사 책임제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성 확인 실험을 진행하지 않은 채 세상 밖에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옥시레킷벤키저는 “가습기살균제 제품은 레킷벤키저 그룹이 옥시를 인수한 2001년 3월 이전에 출시됐다”며 “레킷벤키저 그룹은 당시 한국 회사였던 옥시가 한국의 법규를 준수하고 있음을 확인했고 이에 흡입독성실험의 대상이 아니었던 본 제품에 대해 특이사항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제대로 된 안전성 확인을 거치지 않고 판매된 가습기살균제는 문제가 확인된 후 제품 수거도 빠르게 이뤄지지 않았다. 질본은 중간조사 결과 발표에서 가습기살균제 위험성을 지적하면서도,  가습기살균제 사용 자제 및 제조업체 출시 자제 권고 수준으로 조치를 내렸다.

이후 동물흡입실험을 추가적으로 진행해 그해 11월 11일 역학조사 결과 등과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에야 옥시레킷벤키저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에서 판매되는 6가지 제품에서 위해성이 확인됐다며 이들에 대해 제품 수거 명령 및 판매 중단을 결정했다. 위해성 입증이 미흡해 강제수거명령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제품들도 각 기업에 의해 자진 회수됐다.

그렇게 가습기살균제는 시중에서 자취를 감췄다.

지난 2019년 8월 27일 열린 가습기살균제 청문회 ⓒ뉴시스
지난 2019년 8월 27일 열린 가습기살균제 청문회 ⓒ뉴시스

피해자는 기댈 곳이 없다

가습기살균제는 사라졌지만 떠나고 남은 자리의 흔적은 컸다.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누군가는 거친 숨소리와 기침에 시달리게 됐고, 또 다른 누군가는 평생 제힘으로는 숨조차 쉬기 어려울 정도로 폐가 망가졌다. 악화되는 병세를 이기지 못한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다.  

가습기살균제는 단순히 개인이 겪은 사고가 아닌 기업이 제품과 이를 사용하는 소비자에 대한 안전 의무를 다하지 않아 발생한 사회적 참사였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경제적, 신체적, 정신적 책임은 고스란히 피해자들이 짊어져야만 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건 2011년이지만 정부 차원의 피해자 조사는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결의안이 통과된 2013년 무렵에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복지부와 환경부 등은 2013년 7월~2014년 4월 1차, 2014년 7월 ~2015년 4월 2차 피해 조사·판정을 실시했다. 그리고 2015년 2월~2015년 12월까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을 통한 3차 조사를 끝으로 피해 조사·판정을 마감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비난 여론이 잇따랐고, 결국 2016년 4월 말부터 무기한 4차 조사를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본격적인 피해 조사가 시작될 무렵 국회에서는 피해자 구제를 위한 움직임을 보였다.

2013년 4월 피해자 지원 대책을 정부에 요청하는 취지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구제를 위한 결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의 압박에 이듬해 8월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고 ‘가습기살균제에 사용된 화학물질로 인한 폐 질환의 인정 및 지원 등에 관한 고시’를 근거로 공식적인 피해자 지원을 시작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거의 확실(1단계) △가능성 높음(2단계) △가능성 낮음(3단계) △가능성 거의 없음(4단계) 등 총 4단계로 분류돼 왔다. 대표적인 피해인정 질환은 폐 질환, 천식, 태아피해 정도였다.

초기에는 가습기살균제에 따른 폐 손상의 인과관계가 비교적 높다고 판단된 1·2단계에 대해서만 구제급여를 지원해왔다. 상대적으로 인과관계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된 3·4단계 피해자는 배제한 것이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피해 정도에 따라 등급을 매겨 차별한다는 데 화가 난 피해자들은 인과관계 정도에 상관없이 모든 피해자에 대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며 구제 확대를 요구했다.

이러한 여론을 수용해 2017년 8월부터 시행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에서는 3·4단계 피해자도 구제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다만 1·2단계 피해자와는 ‘피해자 지위’를 달리했다.

환경부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특별법을 근거로 ‘특별구제계정위원회’(이하 구제계정위)를 구성했고 이를 통해  3·4단계 피해자에게도 구제급여를 지원하는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 미인정자 구제급여 지급계획’을 의결했다.

즉, 1·2단계 피해자가 피해구제위원회를 통해 구제급여를 수혜하는 것과 달리 3·4단계 피해자는 구제계정위의 판정을 거쳐 ‘특별구제계정 급여’를 지원받는 것이다. 3·4단계 피해자는 특별법상 피해자로 인정할 수는 없지만 상당한 개연성이 인정되거나, 인도적으로 구제급여 지급이 필요하다는 구제계정위의 판단에 근거해 구제급여를 지급한다는 취지였다.

‘피해자는 아니지만 구제급여는 지급한다’는 모호한 접근으로 피해자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일각에서는 현실을 고려한 단계적인 접근이라고 보기도 했다. 때문에 이렇게라도 피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피해자가 확대됐다면 불행 중 다행이었겠지만 피해자 지원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고 평가된다.

2017년 5월 환경독성보건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공개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의 특성과 피해 규모’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 노출자 가운데 제품 사용 후 건강이상을 경험하고 병원치료를 받은 피해자는 50여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출범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도 2019년 10월 15일부터 12월 30일까지 전문 조사원의 가구 방문 대인 면접 방식을 기반으로 전국 5000가구, 만19~69세 1만5472명을 상대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내에서 가습기살균제 사용 이후 질병 등 건강 피해를 경험한 사람이 67만명에 이른다는 조사결과를 지난해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공시한 2021년 2월 5일 기준 통계자료에 따르면 총 피해신청자는 7239명이며, 사망자는 1627명이다. 이들 가운데 4114명만이 피해자로 인정됐다.

즉, 스스로 피해사실을 인지하고 신청해야만 정부의 피해 조사·판정 대상에 포함될 수 있고, 현재는 판정신청자 중에서도 절반 정도만이 피해자로 인정된 상황인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의 눈물 ⓒ뉴시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의 눈물 ⓒ뉴시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판정신청자 10명중 1명도 피해자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1만1518명(중복판정 포함)을 가운데 8.2%인 949명만 피해를 인정했고 91.8%는 불인정됐다. 질병에 따른 인정률은 △폐 질환 5770명 중 489명(8.5%) △천식 5692명 중 432명(7.6%) △태아피해 56명 중 28명(50%)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많은 질병이 인정질환으로 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피해자들이 호소하는 질환들이 많고 그나마 인정질환들도 실제 질환별 인정기준이 매우 엄격해 위에서 밝힌 대로 질환별 인정률은 10명에 1명도 안 되는 상황이다”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로 인정받더라도 배·보상을 받기까지 길도 험난하다.

가습기살균제기업책임배보상추진회 등에 따르면 임직원 일부가 유죄를 선고받은 옥시레킷벤키저·롯데마트·홈플러스는 1·2단계 피해자 피해자들에 한해서만 배상 절차를 밟았다. 또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에서 정한 기업기금을 내놓은 것 외에는 천식 등 다른 질환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사실상 아무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 차원의 보상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기업기금으로 지원하는 구제계정인정자를 포함하더라도 피해신청자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43%만이 인정됐다. 57%는 불인정되거나 판정되지 않았다. 피해지원금도 절반도 안 되는 37%만이 지급됐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여론을 반영해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시행령 개정이 이뤄져 지난해 9월부터 시행됐다.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 범위 확대, 피해 인과관계의 추정 요건 완화, 인정결정과 구제급여 지급결정 절차 통합에 따른 신속한 구제급여 지급, 장해급여 신설 등이다.

주요 개정내용으로는 폐 질환, 천식, 태아피해 등 정도였던 피해인정 범위에 제한을 두지 않아 폭넓은 구제가 가능하도록 했다. 또 피해자 지원체계 개편으로 1·2단계 피해자와 3·4단계 피해자를 통합함으로써 특별구제계정을 받던 2207명은 모두 구제급여 수급 대상으로 분류되게 됐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반발에 부딪혀 재입법예고 과정까지 거치며 이뤄진 개정임에도 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엔 너무나 멀다는 비판은 여전하다. 주무부처인 환경부가 책임의 주체로서 가습기살균제 문제해결에 직접 나서라는 게 당초 특별법 개정의 큰 의미였으나 세부 내용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게 특조위의 지적이다.

특조위는 “환경부가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한 책임의 주체로서 직접 나서서 조속히 해결하라는 취지이지만 여전히 최소한의 지원만 할 뿐 나머지는 개인과 기업이 해결하라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며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입법예고 당시부터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된 사항에 대해 보완책이 없기 때문에 제대로 된 피해구제가 가능할지 우려된다. 2017년 상당한 개연성으로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도록 규정한 특별법의 내용을 시행령에서 상당한 인과관계로 변질·축소하는 전철을 되풀이할까 봐 우려된다. 환경부는 책임을 엄중하게 통감하는 한편 시행령의 재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가습기메이트 광고 ⓒ뉴시스
가습기메이트 광고 ⓒ뉴시스

가습기살균제는 나와 사랑하는 내 가족의 건강을 위한 선택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큰 기업들에서 만든 제품들이었기에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믿었던 도끼는 발등을 거세게 내리쳤고,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평생 호흡기에 의지해 살아야 하는 가족을 지켜봐야만 하는, 병상에 누워있는 가족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먼저 떠나간 가족을 그리워해야 하는 심정은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아내는 고통보다도 컸다. 

그럼에도 피해자들이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을 빼앗은 가해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진심 어린 사과와 책임, 피해보상 이뿐이었다.

그러나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한 지 어언 10년. 마치 피해자들이 까맣게 타는 속과 함께 재가 돼 무너져 내리길 기다리듯 어느 하나 제대로 이뤄진 게 없다.

그렇기에 피해자들은 질기고 긴 가습기살균제와의 악연에서 벗어나기 위한 피 토하는 절규를 오늘도 멈출 수가 없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