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케미칼·애경산업·이마트 등의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 1심 판결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뉴시스
SK케미칼·애경산업·이마트 등의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 1심 판결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이 사건의 공소사실은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이므로 피고인들에게 각 무죄를 선고한다.”

가슴을 졸이며 재판을 지켜보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한문장이었다.

지난 1월 12일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애경산업·이마트 등 전직 임원들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2018년 옥시레킷벤키저·롯데마트·홈플러스·버터플라이이펙트 등 전직 임원들이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를 확정받은만큼 이들 기업의 유죄 판결도 당연한 수순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재판부의 생각은 달랐다. 

이들은 가습기살균제에 사용된 성분의 차이에 따라 180도 다른 운명을 맞았다. 가해자라고 해서 다 같은 가해자가 아니었다.

지난 2017년 9월 21일 열린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열린 가습기메이트 ‘인체무해’ 부당표시광고 조사 중단한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회의록 공개 및 쟁점 설명 기자회견 ⓒ뉴시스
지난 2017년 9월 21일 열린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열린 가습기메이트 ‘인체무해’ 부당표시광고 조사 중단한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회의록 공개 및 쟁점 설명 기자회견 ⓒ뉴시스

유죄와 무죄사이

2011년 8월 31일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는 일련에서 발생한 원인미상 폐 질환의 원인이 가습기살균제로 추정된다는 역학조사 중간결과를 발표한 이후 본격적인 시험에 나섰다.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클로로메틸아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소티아졸리논(MIT) 성분이 들어간 가습기살균제를 대상으로 쥐를 이용한 동물흡입 시험을 실시했다. 4주 동안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시험대상 쥐 절반을 부검해 예비판독한 결과 PHMG·PGH 성분이 들어간 가습기살균제에서 이상 소견이 발견됐다. 하지만 CMIT·MIT는 명확한 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와 질본은 그해 11월 11일 PHMG·PGH 성분을 포함하고 있는 가습기살균제에 대한 강제수거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이듬해 2월 3일에는 동물흡입 실험 결과 PHMG·PGH와 폐 질환 사이의 연관성을 확인했다며 다시금 인과관계를 확실시했다.

이것이 기업들의 엇갈린 운명의 시작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2012년 7월 PHMG·PGH를 사용하고도 인체에 유해한 가습기살균제를 안전하다고 허위로 표시한 옥시레킷벤키저·홈플러스·버터플라이이펙트·아토오가닉 등 4개 기업에 대해 과징금 5200만원을 부과하고 법인·대표이사를 검찰에 고발 조치했다. 다만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사용했다’고 직접적으로 광고하지 않은 롯데마트와 글로엔엠에 대해서는 경고 조치에 그쳤다.

검찰은 2016년 1월이 돼서야 가습기살균제 전담수사팀을 구성해 제조·판매기업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고, 가습기살균제 관련 모든 기업에 대해 수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4월 PHMG·PGH 성분을 사용한 옥시레킷벤키저·롯데마트·홈플러스·버터플라이이펙트 등의 기업 대표와 임직원 등 21명은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됐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한 책임자를 처벌하는 검찰의 첫 기소였다.

신현우 옥시레킷벤키저 전 대표는 2018년 1월 대법원에서 징역 6년을 확정받았다. 다만 같은 혐의로 기소된 존리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는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노병용 전 롯데마트 대표는 금고 3년을, 김원회 전 홈플러스 본부장은 징역 4년을, 버터플라이이펙트 오유진 전 대표는 징역 5년을 확정받았다.

검찰의 첫 기소 당시 CMIT·MIT 제품을 판매한 SK케미칼·애경·이마트 등은 혐의 소명이 충분하지 않아 법의 심판을 피해갔다. CMIT·MIT가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 질환과의 명확한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CMIT·MIT와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됐다. 국회 ‘가습기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구성돼 국정조사가 이뤄졌고, 국회의원들은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

또 2018년 공정위도 뒤늦게 재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토대로 SK케미칼·애경·이마트 등에 시정명령과 더불어 과징금 총 1억3400만원을 부과하고 법인·대표이사 등 14명을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끝내 검찰은 2019년 1월 SK케미칼·애경산업·이마트 등에 대해 재조사를 실시했고 재판이 성립됐다. 

옥시레킷벤키저·롯데마트·홈플러스·버터플라이이펙트 등의 판례를 토대로 이들 역시 유죄가 선고되리라 예상됐다.

하지만 지난달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유영근)는 가습기살균제와 관련한 SK케미칼 홍지호 전 대표와 애경산업 안용찬 전 대표, 홍모 전 이마트 상품본부장 등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CMIT·MIT가 폐 손상을 야기한다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또 다시 CMIT·MIT에 발목을 잡히고야 말았다.

가습기살균제 독성 관련 시험 질병관리본부, 환경산업기술원, 국립환경과학원 자료 재구성 ⓒ투데이신문
가습기살균제 독성 관련 시험 질병관리본부, 환경산업기술원, 국립환경과학원 자료 재구성 ⓒ투데이신문

“명확한 인과관계를 입증하라”

앞서 언급된 것 처럼 연구 등을 통해 PHMG·PGH은 가급살균제로 인판 폐 질환과의 인과관계가 입증된 반면 CMIT·MIT는 명확한 인과관계가 드러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러한 내용을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2011년 질본은 가습기살균제 노출재연시험, 동물기관 내 점적 투여 연구, 동물 흡입독성 시험, 원인미상급성폐손상증후군 역학조사, 가습기살균제 입자발생 시험 등을 수행했다. 폐 질환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밝혀낼 수 있는 시험은 독성시험인데, 시험 결과 CMIT·MIT와 폐 질환 사이의 명확한 인과관계가 드러나지 않았다.

2018년 3월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진행한 CMIT·MIT 반복 흡입노출에 따른 독성학적 영향 평가를 위한 기반 기술 확립과 흡입노출에 따른 독성평가 및 체내 이동 가능성 등 평가를 위해 시행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CMIT·MIT와 폐 질환 사이의 인과관계와 연관 있는 독성시험 부분에서 명확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같은 해 8월 국립환경과학원의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 규명을 위한 독성시험에서도 CMIT·MIT가 폐에 미치는 영향은 미약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SK케미칼 측도 인체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아 인명 피해를 예상하지 못했다고 주장해왔다. 

재판부 역시 이같은 이유로 옥시레킷벤키저·롯데마트·홈플러스·버터플라이이펙트에게 유죄를 선고했던 것과 달리 SK케미칼·애경·이마트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 백서에 따르면 PHMG·PGH는 명백하게 유해하다는 결론이 나왔으나 CMIT·MIT는 폐 질환 같은 결과가 발생한다는 뒷받침하는 근거가 나오지 않았다”며 “성분이 상당히 다른 CMIT·MIT 살균제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할 수 있으며 폐 질환 발생 또는 악화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예상치 못한 재판 결과에 피해자들은 개탄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만들어져서는 안 될 제품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유일하게 생산돼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가 사용해 벌어진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참사”라며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은 처음에 진행된 엉터리 독성조사 결과조차 은폐하려 하는 등 자신들의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해 왔다. 또 참사의 진실을 감추려는 가해 기업들의 시도는 계속됐다. 그러나 사람을 죽이는 제품을 만들어 판 혐의에는 그 어떤 형사 책임도 물을 수 없다는 재판부의 1심 판결로 결국 가해기업들에게 면죄부가 주어졌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들이 어딘가에서 저절로 생산된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목숨을 잃은 것인가”라며 “기체 상태로 흡입하면 안 되는 물질을 가습기살균제로 생산해 팔면서 독성 검증도 하지 않은 가해기업들에 대해 ‘업무상 과실’이라는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사법부의 존재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라고 비판했다.

학계 전문가들은 독성실험, 건강피해 등에 대한 과학적 방법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내린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다양한 연구결과를 종합해 CMIT·MIT와 폐 질환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성의 정도를 따져야 함에도 오로지 자연과학적으로 인과관계를 단정할 수 있는 명백한 증명을 요구한 재판부 판단에는 법리오해가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환경보건학회는 “피해자가 존재함에도 동물실험에서 피해의 근거를 찾고 환경성 질환 노출은 비특이적이며 광범위함에도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특정하고 이것의 CMIT·MIT 노출의존 여부에 집중했다. CMIT·MIT는 종마다 반응이 다를 수 있고, 폐섬유화 이외에 다른 다양한 건강 영향을 다양한 기전으로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학적 방법론은 존중돼야 한다”며 “이번 형사 재판의 판결 대상은 기업의 위법 행위가 아니고 과학과 연구가 갖게 되는 본질적 한계점이며, 우리는 CMIT·MIT를 흡입하게 해도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됐다.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해당 재판의 증인으로 참석했던 안전성평가연구소 이규홍 박사도 “연구책임자의 증언이 발언 취지와 다르게 인용되거나 여러 연구 결과를 선별적으로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어느 하나의 실험결과로 인과성을 얻어온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하나씩 분해해 특정 실험결과 하나로 한정하고 분명한 인과성을 주장할 수 있느냐고 심문하며, 단정적 증언을 못한다고 판단에 배제하는 것은 과학적 사실을 올바르게 이해해 판단한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월 14일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열린 가습기메이트 제조 판매 업체 1심 무죄 판결과 관련, 피해 증언 기자회견 ⓒ뉴시스
지난 1월 14일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열린 가습기메이트 제조 판매 업체 1심 무죄 판결과 관련, 피해 증언 기자회견 ⓒ뉴시스

같은 달 14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유족 등은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CMIT·MIT 및 복합제품 사용에 따른 피해를 증언했다.

가습기살균제 사망 피해자의 남편 김태종씨는 “2007년 10월 이마트에서 구매했던 가습기살균제 PB상품을 사용한 후부터 아내의 폐가 급속도로 손상됐고 지난해 숨을 거둘 때까지 13년간 아내를 비롯해 가족 모두 크나큰 고통에 시달렸음에도 이러한 피해에 대해 가해자가 없다는 사실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두명의 피해자 자녀를 둔 김미향씨는 “2012년 애경의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고 생후 3개월 된 쌍둥이자녀가 기흉과 폐섬유화 등 기저질환을 앓았다”며 “큰 아이는 현재 목에 호스를 뚫고 호흡한다. 자식들 몸이 만신창이가 된 피해자의 심정을 아느냐”고 호소했다.

SK케미칼·애경·이마트의 무죄 판결을 통해 이들의 제품을 사용하고 건강을 잃은 피해자들은 존재 자체가 부정됐다.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이후 발병한 폐 질환으로 병상에 있다가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도, 목에 호스를 뚫고 호흡하는 자식을 바라보며 문드러진 가슴을 부여잡는 엄마도 모두 외면한 판결이었다.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모순만을 남긴 사법부를 향해 피해자들은 외친다.

“아픈 우리 몸이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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