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와 인터뷰를 진행 중인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 ⓒ투데이신문
본보와 인터뷰를 진행 중인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2011년 8월 31일, 이유를 알 수 없는 폐 질환 환자 발생의 원인이 가습기살균제였음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내 가족의 건강을 위해 사용했던 가습기 살균제가 사랑하는 배우자와 자식을 병들게 하고, 목숨까지 빼앗아 갔다. 이 세상 무엇보다 쓰라리고 아픈 상처였고,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피해자들의 바람은 크지 않았다. 이 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이 있는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 기업의 진심 어린 사과와 책임, 피해보상이었다. 가습기살균제로 그들이 잃은 것들은 가히 비교할 수조차 없지만 이만이라도 이뤄진다면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울분을 꾸역꾸역 눌러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외면당하길 어느덧 10년이다.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규제를 위한 지원을 하겠다고 법으로 약속했다. 책임자 처벌을 위한 검찰 수사도 여러 차례 이뤄졌고, 진상규명과 더 많은 피해자 발굴 및 대책 마련을 위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도 꾸려졌다.

그러나 수백만명에 달하는 가습기살균제 사용자 가운데 피해자로 인정된 사람은 단 4000여명뿐이다. 게다가 가습기살균제를 처음 세상밖에 내놓은 SK케미칼(현 SK케미칼·SK디스커버리) 등 일부 가해 기업들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기대 속에 출발한 사참위는 만족스러운 성과를 낳지 못했고, 피해자들로부터 두 차례 고발당하는 등 진통 속에 2년의 첫 공식 활동을 종료하게 됐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사회적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하 사참법) 연장으로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더 주어졌지만, 진상규명 업무가 배제되면서 다시 한번 고배의 쓴맛을 봐야 했다.

사참위를 이끌었던 최예용(56) 부위원장은 사참법 개정 이후 책임을 통감하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본지는 사참위를 떠난 그를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으로서 다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손을 다시 잡았다. 그는 반쪽짜리 사참법 개정, SK케미칼·애경산업 무죄 등 연달아 위기를 맞은 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과 극복을 위한 앞으로의 행보에 깊은 고민에 빠져있는 듯했다.

'SK케미칼, 애경산업, 이마트 임직원들 1심 무죄 선고 관련 피해자 기자회견. 맨뒤 최예용 소장 ⓒ뉴시스
'SK케미칼, 애경산업, 이마트 임직원들 1심 무죄 선고 관련 피해자 기자회견. 맨뒤 최예용 소장 ⓒ뉴시스

무죄는 생각지도 못했다

지난 1월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유영근)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SK케미칼 홍지호 전 대표와 애경산업 안용찬 전 대표, 홍모 전 이마트 상품본부장 등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최 소장은 지난 1월 12일에 있었던 SK케미칼·애경산업의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 1심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된데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황당했다. 검찰의 구형량인 금고 5년도 높은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구형량을 넘어설 순 없으니 그만큼은 선고돼야만 했고, 만일 구형량대로 선고될지라도 재판이 끝난 후 법원 앞에서 ‘솜방망이 처벌이다’라고 기자회견이 필요하다는 분위기였다. 한편으론 선고 형량은 구형량보다 줄어드는 게 일반적이다 보니 ‘금고 2~3년에 집행유예가 나오면 어쩌나. 큰일인데’라는 우려도 있었다. 그런데 판결문을 읽어나가는 걸 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전부 무죄라고 하니 할 말을 잃었다. 피해자분들은 더 했을 거다. ‘내 몸이 증거다. 내가 그걸 쓰고 이렇게 됐다는데. 너희들도 써봐라’라는 즉자적인 분노가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같은 혐의로 유죄가 선고된 옥시·롯데마트·홈플러스와 달리 SK케미칼·애경산업이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었던 것은 가습기살균제의 성분 차이였다. 옥시·롯데마트·홈플러스 상품에는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이 사용됐지만 SK케미칼·애경산업 상품에는 클로로메틸아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소티아졸리논(MIT)이 사용됐다. 재판부는 CMIT·MIT와 폐 질환 악화의 인과관계를 설명할 증거가 없다고 봤다.

“PHMG·PGH는 CMIT·MIT보다 훨씬 독성이 강하다. 이는 국제 학술논문에도 비교돼 나와있다. PHMG·PGH의 독성 크기가 2500인 반면 CMIT·MIT는 9.42다. 250배 정도 차이 나는 셈이다. 게다가 독성을 확인하는 동물실험이나 방법론에 차이도 있었다. CMIT·MIT 물에 잘 녹는 성질이 있어 검출이 어렵다. 또 2011년 PHMG·PGH는 동물실험에서 폐 질환과의 인과관계가 확실히 입증됐지만 CMIT·MIT는 확인이 안 되다가 계속되는 실험을 통해 명확하진 않지만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형사적 재판을 물을만큼, 범죄자라고 할 만큼 명확한 인과관계가 성립하고 입증됐느냐를 따진다면 그렇지 않다는 게 이번 재판부의 판단이다.”

최 소장은 재판부의 결과도 결과이지만, 피고 측이 증거와 증언을 반박해가는 동안 이에 적극적으로 맞서지 않은 검찰 측의 태도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재판 인력, 노하우 등 모든 면에서 완패한 재판이었다는 게 그의 평가다.

“피고 측의 주장이 거의 100% 받아들여진 결과다. 형사사건은 검찰의 수사와 기소가 바탕이 되기 때문에 검찰이 재판을 끌고 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도 검찰이 완패한 것은 재판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검찰 측 재판 증인으로 참석했던 전문가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피고 측 변호인은 전문가의 주장을 하나하나 부인해갔다. 예를 들어 ‘특정 연구보고서만으로 인과관계가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모든 연구는 제한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럼 피고 측 변호인은 알았다고 넘어가는 거다. 이런 상황을 검사는 두고만 봐선 안됐다. 만일 검사가 ‘예전에는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았지만 최근 연구 결과를 통해 개선사항이 확인됐고 이는 인과관계 성립에 한발 더 접근했다고 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질문했다면 이 역시 ‘그렇다’는 대답이 나올 수 있었다. 질문에 따라 재판부의 입장에서 증거와 증언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피고인 측이 그런 식으로 증거와 증언을 하나씩 부인하는 동안 검찰은 그렇게 묻지 않았다. 소극적이었다. 재판이 길어지면서 인사이동으로 초창기 수사를 맡았던 검사들이 재판에서 빠지고, 공판검사 한두명만 남아서 가선을 끌고 온 상황이었다. 피고 측은 대형 로펌 변호사 수십명이 사건에 매달렸다. 인력, 노하우 모두에서 완패했다.”

지난 1월 19일 열린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회사들에 대한 무죄 판결 선고와 관련 전문가 기자회견. 가장 왼쪽 최예용 소장
지난 1월 19일 열린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회사들에 대한 무죄 판결 선고와 관련 전문가 기자회견. 가장 왼쪽 최예용 소장

피해자에 집중하라

그는 앞으로 있을 2심에서는 1심과는 분명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우선 판결의 척도를 동물실험에서 임상적 사례로 바꿔야 한다고 분석했다. 동물실험 결과가 아닌 CMIT·MIT를 사용하고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의 사례를 중점적으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실험 결과와 독성의 정도에 초점을 뒀던 1심은 동물실험의 한계를 확인한 결과였다. 동물실험은 어디까지나 보조수단이기 때문에 임상적 사례는 뒷전에 놓고 동물실험만 가지고 얘기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CMIT·MIT 제품을 사용해 피해를 보고 사망한 임상적 사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되레 ‘CMIT·MIT 성분이 들어간 제품만 사용한 것이 의심스럽다’며 이 사건의 근본을 흔들었다. 과학적 논쟁이 있는 환경보건사건에서 제조·판매 기업이 가장 흔히 쓰는 방법이 재판부가 사건 자체를 의심하게 하는 것이라더라. 예를 들어 흡연은 폐암 발병 가능성을 높인다는 건 의학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그런데 만일 담배회사를 상대로 폐암환자가 소송을 건다면 이길 수 있을까. 절대 이길 수 없다. 담배회사가 ‘담배가 폐암의 기저임은 확인됐지만 우리가 만든 담배만 피워서 걸렸다는 증거가 있나’, ‘세상에는 담배 말고도 폐암을 유발하는 환경적 요인이 굉장히 많다’고 주장하면 과학적 불가지론에 빠지게 된다. 담배가 폐암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증거를 대라고 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불가능이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이번 재판부가 이러한 함정에 빠졌다고 생각한다. 과학적 불가지론에 빠져서는 안 된다. CMIT·MIT가 어떤 특성에 노출되면 폐 질환의 기저가 될 수 있다는 20~30가지의 논문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판단해야 한다. 2심은 임상적 사례를 중심으로 놓고 보되, 과학적 불가지론에 빠져서는 안 된다.”

재판부 뿐만 아니라 1심 재판에서는 다소 소극적이었던 검찰의 태도도 적극적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 검찰과 사참위, 시민사회 등이 힘을 합쳐 2심의 승기를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2심 재판부의 선의에 기대해서는 안 된다. ‘2심 재판부가 좋은 사람이어서, 똑똑해서 우리의 생각을 잘 알아듣고 판단해 주겠지’라는 생각은 안 된다. 분명한 인과관계를 요구하는 현재 재판부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어필하고 새로운 증거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애초에 이 사건 수사를 맡았던 중견검사가 흐름을 쥐고 가야 한다. 더불어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 사참위, 시민사회단체 등이 드림팀을 구성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검찰에서도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과 함께 협의체를 만들겠다더라. 이 사건의 본질과 기업의 책임을 형사적으로 묻는 중요한 기로에서 누구의 잘못인지 제대로 겨뤄보자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형사사건이 잘 마무리돼야 피해자 배·보상과 관련한 민사사건도 잘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9일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사참위법) 개정 관련 입장발표 중인 최예용 소장(당시 사참위 부위원장) ⓒㅠ시스
지난해 12월 9일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사참위법) 개정 관련 입장발표 중인 최예용 소장(당시 사참위 부위원장) ⓒ뉴시스

사참위, 2년의 우여곡절을 보내며 

정부는 세월호 참사와 더불어 가습기살균제와 같은 유해 화학 물질이 20여년에 걸쳐 제조·판매되는 과정에서 기업과 정부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조사하고 피해 규모, 피해자를 제대로 구제하지 못한 제도와 관행을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사참위를 구성했고 2018년 12월 11일부터 2년 간 공식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한 사참위에게 주어진 역할은 참사 원인 규명,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제조·유통 관련 기업 조사,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한 정부 대응 적정성 조사,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 규모 및 피해자에 대한 조사 등 4가지였다. 하지만 수사권 없이 조사권만 가지고 진실을 밝혀내는 데는 분명 한계가 존재했다.

피해자 규모 조사 등에서 일부 성과가 있긴 했지만 2년 간 믿고 기다려온 피해자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결과물이었다. 결국 야심차게 출범했던 사참위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비판과 함께 지난해 말 2년의 첫 공식 활동에 마침표를 찍었다. 종료를 앞두고 사회적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하 사참법)이 연장됨에 따라 구사일생으로 활동기간이 1년 반 연장됐으나, 가습기살균제와 관련한 진상규명 업무는 종결하고 피해자 구제 및 제도 개선 업무만 이뤄지게 됐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얽힌 또 다른 문제 ‘사참위’. 사참위 부위원장으로서 2년을 보내고 물러난 최 소장은 출범 당시 목표했던 바를 이루지 못해 굉장한 아쉬움이 있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2018년 12월 사참위가 공식 출범했을 때 활동 기간 내 일궈내겠다고 약속했던 진상규명과 피해대책, 재발방지라는 목표를 다 수행하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 사안에 따라 평가한다면 진상규명은 절반 정도, 피해대책은 피해구제법 개정이 있었으니 절반보다 조금 더, 재발방지는 애초 방향과 구체적인 목표 설정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가조차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다. 피해신청자 7000여명 중 4000여명만 피해자로 인정됐다. 돈으로 논의한다는 게 한계가 있긴 하지만 기업의 배·보상을 받은 사례는 1000명이 채 안 된다. 제조·판매 기업 진심 어린 사과와 책임 등을 종합했을 때 피해자 입장에서는 절반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 일 수도 있다. 사참위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인 제3자에 의해 내려져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진상규명은 언론에서, 피해대책은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피해 당사자들이, 재발방지는 국민들이 하는 것이 의미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2년을 헛되게만 보낸 것만은 아니다. 공개 청문회가 열렸고, 그 과정에서 내부고발과 증언이 나오며 진상규명에 힘을 실었다. 이 밖에도 일부 가해자들의 사과, 군대 내 가습기살균제 피해 공론화 등 다양한 성과가 있었다.

“굳이 성과를 따져본다면 2018년 12월 사참위가 출범할 무렵 검찰의 2차 수사가 있었다. 얼마 전 1심에서 무죄가 나온 아쉬운 상황이긴 하다. 하지만 2016년 1차 조사 당시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SK케미칼과 애경산업 등을 수사하게 된 것은 사참위 존재 자체가 미친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의미 있던 결과는 2019년 8월 이틀에 걸쳐 진행된 청문회가 아닐까 싶다. 공개 청문회로 진행돼 생방송됐고,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이 공모해 책임회피하려 했다는 내부고발과 증언이 나왔다. 또 옆구리 찔러 절 받은 꼴이지만 대표들의 사과도 있었다. 이 밖에도 청문회 전후 군대에서의 가습기살균제 노출과 피해에 대해 크게 불거진 것도 나름의 성과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

일부 성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과제였던 진상규명과 피해자 구제에 있어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했던 사참위는 ‘부진했다’는 평가를 받아야만 했다. 최 소장은 이런 평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참위 내부에서도 한계에 대한 고충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런 얘기가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참위는 특별법을 근거로 국가의 예산을 쓰는 정부기관의 형태를 띠지만 행정을 집행하진 않는다.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왜 발생했고, 누구의 잘못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조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목표 설정 자체가 추상적이었다. 진상규명이 목표라는데 무슨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것인가. ‘이런 문제가 있고, 이를 어떻게 조사해서 어느 정도까지 해결 하겠다’라는 세부적인 목표 설정 없이 전진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에 대해 평가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존재했다.”

사참위 활동은 2020년 12월을 끝으로 공식 활동이 종료될 예정이었으나 세월호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시민사회의 끈질긴 요구로 지난해 사참법이 개정되면서 활동기간이 2022년 6월까지 연장됐다.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더 주어진 셈이다. 다만 가습기살균제 참사 원인 규명은 종결하고, 피해자 구제 및 제도개선에 초점을 맞추는 조건이었다. 최 소장은 이 같은 결과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11월, 12월 무렵 이런저런 소문이 들렸다.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을 연장한다는 얘기가 있었고 그렇게 되면 가습기살균제도 당연히 같이 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사참위설립 때도 두 사건을 사회적 참사로 규정하고 함께 갔기 때문에 구분하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피해자들의 심경이 매우 복잡했을 것 같다. 현재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단일하지 않다. 만족하진 못해도 사참위는 있어야 한다는 그룹도 있지만 일부는 사참위가 필요 없다고 강경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에게는 사참위 연장보다는 피해자 인정과, 제조·판매 기업으로부터의 배·보상이 1차적 관심사였다. 근데 이 부분을 사참위가 크게 개선해 주지 못했다 보니 기대는 사라지고 실망은 크게 자리 잡았기 때문에 연장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있던 거 같다.”

본보와 인터뷰를 진행 중인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 ⓒ투데이신문
본보와 인터뷰를 진행 중인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 ⓒ투데이신문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라

비록 진상규명 업무는 배제됐지만 사참위는 피해자 구제와 재발방지를 위한 여정을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최 소장은 지난 2년간 활동을 되돌아보며 추가 활동기간에는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두루뭉술한 목표가 아닌 피해대책이면 피해대책, 재발방지면 재발방지 등 각 분야에 맞는 목표설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선 피해대책은 7000여명의 피해신청자의 80~90% 이상이 피해자로 인정될 수 있게 하겠다는 등의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물론 피해신청자 모두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사람들이지만 어떤 일이든 100%는 없는 거니까 구체적인 최대치를 설정해야 한다. 피해인정자의 기업 배·보상 방식도 마찬가지다. 제조·판매 기업과 합의하거나 피해구제법을 재개정해 강제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겠다. 지난 1심 무죄 판결로 합의가 어려워진 게 사실이지만 포기해선 안 된다. 피해구제법 개정도 국회 분위기상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이 밖에도 캠페인 등을 통한 새로운 피해자 발굴과 사참위 활동이 끝난 후에도 피해자를 도울 수 있는 재단 및 가습기살균제 참사 기록관 설립 등도 하나의 방법이다.”

“재발방지는 국민의 60~70%가 가습기살균제와 같은 사회적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국민들이 마트에서 호흡기에 영향을 미치는 스프레이 등을 구매할 때 독성테스트를 거쳐 안전한 제품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시판되는 제품이 많기 때문에 1차로 가습기 살균제로 문제가 됐던 제조·판매 기업의 제품을 조사하고 이후 그 밖에 제품들에 대해 순차적으로 조치하는 것이다. 또 의심스러운 제품이 확인됐을 때 신고하면 조치해주는 독성센터 등의 이중삼중 안전장치까지 두면 국민들도 재발방지 부분에 많은 개선이 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더불어 최 소장은 비록 공식적인 업무에서는 배제된 진상규명도 주어진 조건 안에서 이행 가능한 부분을 적극적으로 찾아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국회까지 힘을 보태준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충분히 진상규명이 가능하다고 그는 보고 있다.

“진상규명 업무에 제약이 생겼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내부에 진상규명 소위원회가 남아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법령을 적극적으로 해석해보길 바란다. 진상규명 업무를 하라고 안 한 것이지, 하지 말라고 한 게 아니다. 개정된 법령 하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론을 찾아 진상규명에 가까운 업무를 다루는 방법이 있을 것 같다. 또 국회는 사참위 못지않은 역할이 가능하다. 여야 의원 각각 한 사람만 가습기살균제 문제에 관심 갖고 힘써준다면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을 것 같다.”

최 소장은 이제 사참위에서 물러나 시민단체로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과 피해자 구제, 재발방지를 위한 싸움을 이어간다. 그는 사참위 부위원장이라는 자리로부터 나온 여러 제약에서 벗어나 이제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와 소통하며 문제의 전체를 바라보고자 한다.

“조사관도 많고 법에서 보장하고, 직책도 높았기 때문에 권한과 물적 조건은 사참위가 좋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와 소통하면서 이 문제 전체를 해결하는 것은 단순히 높은 권한과 직책이 있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오히려 그런 조건이 제약을 만들었다. 때문에 사참위에서는 하지 못했지만 시민사회 차원에서는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사회적 관심, 언론의 관심을 끌어내는 것이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는 8월 31일이면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세상에 알려진지 딱 10년이다. 그 시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고통은 10년 전이나 그대로다. 아니, 어쩌면 더 커졌을지 모른다. 한때는 어떤 해결책이라도 있으리라 일말의 희망이 있었지만, 이제는 실망과 분노가 기대를 집어삼킨 지 오래다.

하지만 소중한 내 가족의 몸과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은커녕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조차 않은 가해자가 남아있기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오늘도 이 싸움을 멈출 수 없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맞이한 지금, 정부·국회·언론·시민사회의 꾸준한 관심과 협력은 전화위복의 기회가 돼줄 것이다. 

*본 인터뷰는 독립된 공간에서 정부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방역수칙을 철저하게 준수한 가운데 진행됐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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