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동출판사 김남기 대표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 아무리 해도 부족
출판, 정제된 정보에 아름다움 입히는 과정
위로 주는 ‘오랜 친구 같은 책’ 만들고 싶어

“책을 읽는다는 건 과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다”(데카르트)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육체와도 같다”(키케로)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안중근)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신용호)

책을 통해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은 수많은 위인들의 명언을 통해 알 수 있다. 우리는 단돈 만원으로도 인생을 바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2019년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 성인 1년 독서량은 6권 정도밖에 안 된다. 두 달에 겨우 1권 읽고 있는 셈이다.

누군가는 책을 펼치기도 전에 독서라는 행위는 고루하고 따분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책 내용이 궁금하다면 몇 백 장의 책을 읽는 수고스러움 대신 요약된 내용만 찾아서 보고, 듣고 읽으면 되는 세상이다. 남이 정리해 둔 몇 줄의 서평과 몇 개의 영상이면 마치 책 한 권을 다 읽은 듯한 기분까지 든다. 이렇듯 읽는 행위가 생략된 독서, 저자와의 대화를 막아버리는 독서만을 이어간다면 책이 주는 즐거움을 영영 모르게 될지도 모른다.

한쪽에서는 독서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고, 독서의 중요성을 모른다고 걱정들 하지만 전자책의 인기가 올라가는 걸 보면 이 시대에 애독가들은 다른 형태, 진화한 독서를 즐기고 있음에 분명하다.

좋은 책을 읽다보면 밑줄을 수도 없이 긋고, 멋진 글귀가 있는 페이지 모퉁이는 살짝 접어두기도 한다. 책을 덮은 후에는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우리는 이러한 좋은 책을 만나기 위해서 신간 기사를 찾아보기도 하고,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저자와의 인터뷰를 찾아보며 책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투데이신문>이 새롭게 선보이는 [Today_Pub](투데이펍) 연재는 대중(Public)을 위한, 출판(Publish)된 책에 대한, 펍(Pub)처럼 편안하고 친근한 콘셉트로 책과 사람을 잇는 콘텐츠다. 책을 만든 저자, 편집자, 기획자 등과의 대화부터 책 한 권이 나오고 읽히기까지의 과정과 남긴 것들에 대한 기록을 시작한다.

소동출판사 김남기 대표 ⓒ투데이신문
소동출판사 김남기 대표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최근 미국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의 존 마크 램지어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 ‘자발적 매춘부’라며 왜곡 논문을 내 국내는 물론 국제 학계에서도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삶을 기록한 <할머니, 우리 할머니>를 출판한 출판사 소동의 김남기 대표는 이에 대해 “해결하지 못한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위안부’ 피해자뿐 아니라 강제징용 등 일제강점기에 발생한 피해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해 이 같은 망언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할머니, 우리 할머니>의 저자 한성원 작가 역시 책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입은 할머니들은 아직까지 제대로 된 사죄를 받지 못했다”며 “일본의 진정한 반성과 사죄를 이끌어내고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을 되찾는 그날까지 우리는 함께 기억해야 한다”고 밝혔다.

본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을 출판한 김 대표를 만나 ‘위안부’ 할머니들의 기록을 출판하게 된 이유와 책을 만드는 과정의 이야기, 책에 담지 못한 이야기 들을 들어봤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인 지난해 8월 14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뒤로 시민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인 지난해 8월 14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뒤로 시민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위안부’ 피해자 기억하기 위해

Q.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 그간 많이 나왔다. 그럼에도 ‘위안부’ 피해자들을 소재로 한 책을 출간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찾아보니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를 다룬 책이 정말 많이 나왔더라. 그런데 사실은 더 많이 나와도 된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사과가 나올 때까지, 그리고 그 후에도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으려면 책이 계속 나와야 한다.

이 책이 기존의 책과 다른 점이라면 작가님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손자라는 느낌으로 책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런 시선이 참 좋았다.

작가님은 “할머니들의 그림을 가능한 한 예쁘게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보통 ‘위안부’ 피해자들을 다룬 그림책을 보면 할머니들을 어두운 모습으로 그린다. 피해자로서의 모습을 강조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도 필요하겠지만, 현재의 할머니들이 피해를 알리기 위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지, 할머니들의 주체적인 삶의 모습을 더 부각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기존의 책과는 다른 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평범한 사람들이 할머니를 기억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할 수 있도록 숙제를 던지고 싶기도 했다. 책에도 나와 있지만, 작가님은 ‘위안부’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고민을 담기도 했다.
(*‘위안부’는 ‘안식과 위안을 주는 여성’이라는 의미로, 일본군이 자신들의 만행을 숨기기 위해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뜻을 담아 만든 용어다. 이를 대체할 적절한 용어가 없어 피해 당사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으나, 작은따옴표를 붙여 일본군이 사용한 단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드러낸다.-기자 주)

Q. 어떤 기대를 갖고 <할머니, 우리 할머니>를 출간하게 됐는지.

할머니들의 이름을 한 분 한 분 기억하자는 뜻이 가장 컸다. 책을 만들면서 고민했던 문제 중 한 가지가 ‘소제목을 할머니들의 이름으로 할 것인가’였다. 그런데 목차에서 할머니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은 할머니들을 드러내 이용하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할머니들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소제목을 할머니들의 활동이나 생애를 표현할 수 있는 제목으로 뽑게 됐다. 또 책에는 이름 없는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있다. 활동을 많이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아직까지 피해사실을 숨기고 드러내지 못하는 분들도 계시다고 한다. 그런 분들까지 기억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Q. 이 책을 출판하게 된 과정은.

작가님은 전쟁, 여성과 관련된 작업을 꾸준히 해온 분이다. KBS에서 전쟁과 여성이라는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데 삽화를 의뢰받아 그리기도 했고, 박물관에서 관련 주제로 전시를 하는데 그림을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고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작업을 이어오면서 언젠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기록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수요집회가 있는 수요일에 맞춰서 네이버 그라폴리오에 작품을 발표해 왔다. 그렇게 작업물을 모아서 책을 낼 계획을 하던 중에, 작가님과 인연이 있는 편집자 분이 소동출판사에 작가를 소개해 책을 낼 수 있었다. 그 편집자가 이 책의 편집을 담당하기도 했다.

계성고등학교 학생들이 지난 2월 25일 서울 성북구 한성대입구역 앞 분수마루에서 ‘전시 일본군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였다’고 왜곡한 미국 하버드대학교 존 마크 램지어 교수를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계성고등학교 학생들이 지난 2월 25일 서울 성북구 한성대입구역 앞 분수마루에서 ‘전시 일본군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였다’고 왜곡한 미국 하버드대학교 존 마크 램지어 교수를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기억하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Q.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기억하면 잊히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연구도 많이 돼 있지만, 피해자 할머니들의 삶을 기록해보자는 의미가 컸다. 개인의 기록이 쌓이면 그것이 굉장히 소중한 역사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개인의 기록을 남겨서 많은 사람들이 알도록 하는 게 의미가 있다.

Q. 책이 발행된 이후 ‘위안부’ 할머님들의 반응은 어땠나.

많은 분들은 이미 돌아가셨거나 연락을 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위안부’ 할머니 가운데 한 분께 할머니의 이야기가 들어가도 괜찮은지 여쭌 적이 있다. 연락을 담당한 분께서 전달하시길 할머니께서 굉장히 좋아하셨다고 한다.

Q. 펀딩에 참여한 후원자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후원자 중에 한 분은 책을 보니까 그림이 너무 따뜻해서 뭉클했고, 작가님이 할머니들을 ‘우리 할머니’로 표현하려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 책이 아니더라도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펀딩이나 기부를 할 수 있었겠지만, 이 책을 발행하는데 참여한 것이 뿌듯하다고 말해줘서 정말 좋았다.

Q. 최근 미국 하버드 대학의 존 마크 램지어 교수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일컬어 ‘자발적 매춘부’라고 주장을 해 국내는 물론 국제학계에서도 비판을 받고 있다. 피해를 왜곡하는 망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도 안 되는 망발이라고 생각한다. ‘위안부’ 피해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일제 전범에 대한 것들 중 제대로 해결된 게 없다. 지금도 가해자들의 목소리가 훨씬 크지 않나. ‘위안부’ 피해자뿐만 아니라 강제징용 등에 있어서도 가해자의 목소리가 더 큰 상황이다. 일제 강점기에 가해자로 있었던 사람들이 지금도 권력을 쥐고 있다. 해결하지 못한 역사가 반복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망언을 하는 학자들은 일본 우익 전범기업에서 연구자금을 받아 이런 억지 주장을 한다는데,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그 뿌리가 훨씬 더 깊게 뻗어있는 것 같다.

‘그녀 길원옥 체’가 사용된 할머니, 우리 할머니 본문 중 일부. ⓒ소동출판사
‘그녀 길원옥 체’가 사용된 <할머니, 우리 할머니> 본문 중 일부. ⓒ소동출판사

‘이름 없는’ 피해자 이야기 담고 싶어

Q. 책의 형식이 그림책이면서 만화책이기도 하다. 이 같은 형태가 된 이유가 있다면.
처음 원고가 들어왔을 때는 대상 독자층을 청소년으로 한정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만화 없이 그림과 활자로 된 원고였다. 그런데 그림이 위주가 되는 책은 분명 서점에서 청소년 도서로 분류될 테고, 그렇다면 그에 맞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작가도 글과 만화 중 어떤 것이 더 좋을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작가가 만화 한두 컷을 그려서 보냈는데, 그걸 보고 만화로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만화로 하게 된 것은 전달력을 높이기 위한 선택이었다.

작가님이 그림을 그리고 원고를 작성하기까지는 약 1년이 걸렸다. 원고를 받은 이후 편집 과정에서 만화 형식으로 결정돼 원고 완성까지 1년 이상이 걸렸다고 봐야 한다. 원고를 넘겨받은 이후 편집부터 출판까지는 10~11개월이 소요됐다. 책 한 권을 내기까지 약 2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Q. 표지 디자인에 담은 의미는 무엇인가.

표지그림 선택에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 그림이 작가가 사고를 이어가는데 있어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해 선택했다. 이 그림은 뉴욕의 전광판에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좋겠다는 작가님의 상상이 가미된 그림이다. 할머니들이 활동이 아닌 편안하게 여행을 가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전광판에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나옴으로써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게 되길 바란 것이다. 디자인적인 입장에서는 할머니들의 시선이 전광판이나 제목을 향하고 있어서 좋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디자이너에게 여쭤봤더니 할머니를 돋보이게 하고 싶어 가급적이면 장식은 다 빼고 심플하게 하려고 했다고 한다. 제목 서체는 고딕을 변형한 ‘세잠체’라는 서체인데, 디자이너는 이 서체에서 나비가 날아가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할머니들이 마음이 갇혀 있지 않고 훨훨 날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서체에 담았다고 했다. 또 그림에서 할머니의 뒷모습을 유광 에폭시 처리해 강조했다. 제목에는 에폭시 처리를 하지 않았는데, 제목 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기억합니다’라는 작은 노란색 글씨에는 에폭시 효과를 넣었다. 글씨를 작게 하는 대신 에폭시 효과를 넣어서 할머니와 통일감을 주려고 했다.

표지 디자인은 아니지만, 본문 서체 가운데 하나로 ‘나비레터’에서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의 손글씨를 조합해 만들어 무료로 배포한 ‘그녀 길원옥 체’가 사용됐다.

Q. 분량이나 형식 등의 제약으로 책에 담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면.

담지 못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앞서 말한 것처럼 책의 마지막 부분에 ‘우리 할머니를 기억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이름 없는 할머니,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2편을 혹시 만들 수 있다면 이름 없는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면 좋겠다. 이제 할머니들 연세가 많으셔서 한 분 두 분 돌아가시고 있는 상황인데, 말하지 못한 분이 계시다는 것은 아직 우리 사회의 따뜻하지 못한 시선, 정부의 부족한 대책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름을 알 수 없는 할머니라든지, 그런 분들이 피해상황을 확실하게 알릴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할머니, 우리 할머니 한성원 작가가 ‘청소년독자교정단’과 만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소동출판사
<할머니, 우리 할머니> 한성원 작가가 ‘청소년독자교정단’과 만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소동출판사

펀딩·청소년독자교정단 등 홍보수단 다양화

Q. 출판 과정에서 북펀딩을 통해 후원을 받기도 했다. 펀딩을 진행하게 된 계기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전에는 저자와의 대화 등의 행사를 통해 홍보를 했는데, 코로나19로 행사를 열 수 없게 되면서 홍보를 하고자 펀딩을 하게 됐다. 북펀딩도 신청한다고 무조건 되는 건 아니고 사회적 의미, 출판사적 의미 등을 고려해 펀딩에 참여할 도서를 선정한다. 그런데 이 책은 메일을 보내자마자 ‘좋은 책을 소개해줘서 고맙다’는 반응이 와서 바로 펀딩을 진행하게 됐다.

Q. 펀딩이 책을 알리는데 많은 도움이 됐는지.

통계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도움이 된 것은 확실하다. 코로나19로 인해 다른 홍보수단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펀딩만 진행한 것은 아니고, 홍보를 위해 의미 있는 행사를 하기도 했다. ‘청소년독자교정단’이 그것이다. 이 책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그래서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를 대상으로 독자교정단을 모집해서 학생들이 교정을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당시 코로나19가 진정세를 보일 때라 다행히 청소년들이 모일 수 있었다. 처음엔 8명 정도를 예상했는데, 청소년 13명, 성인 2명으로 총 15명이 참여해 주셨다. 또 작가를 초대해서 청소년독자교정단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도 함께 마련했다.

Q. 청소년독자교정단에서는 어떤 의견들이 나왔나.

당시 초등학교 5학년 정도 되는 학생이 이해가 안 된다며 어떤 단어의 뜻을 물었다. 어른들은 많이 접하는 단어라 신경 쓰지 못하고 넘어갔는데 그 학생이 이를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더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단어를 교정하기도 했다.

또 책에 ‘우리 할머니들은 멋집니다’라는 글과 함께 그림이 있는데, 처음에는 흔히 생각하는 세련된 커리어우먼 그림이었다. 그런데 참여자 한 분이 ‘멋지다는 것을 꼭 이렇게 표현해야 하느냐’라는 의견을 내셨다. 작가님도 그 부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독자의 의견을 반영해 그림을 수정했다. 독자교정단은 다시 해보고 싶기도 하고, 참여한 청소년들도 참 좋아했던 일이었다.

경기 파주시 소동출판사에 출간된 책들이 꽂혀 있다. ⓒ투데이신문
경기 파주시 소동출판사에 출간된 책들이 꽂혀 있다. ⓒ투데이신문

소통으로 만들어내는 책

Q. 코로나19로 출판업계가 많이 어려워진 것으로 알고 있다. 체감하는 현재 상황은.

코로나19로 더 어려워졌다. 책이 나오면 저자와의 대화 등 행사를 통해 책을 홍보하는데, 행사가 모두 취소됐다. 또 서울국제도서전이나 파주 북소리축제 등 모든 출판 관련 행사가 멈췄다. 도서전이나 축제에서 직접 책을 판매할 수 있다는 점도 있지만, 독자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참 즐겁고 좋았는데 그런 게 다 멈췄다. 또 작가들이 독자를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지 못한 점도 아쉽다. 도서 홍보와 관련해서는 코로나19로 인해 마케터들이 서점 MD를 직접 만날 수가 없게 되고 모든 홍보가 비대면, 서면으로만 진행되다보니 어려움이 있다.

Q. 책을 출판하는데 필요한 인력은. 각 인력의 역할은 무엇인가.

작가가 원고를 주면 편집자가 구성 등에 대한 피드백을 한다. 피드백을 통해 작가가 원고를 재집필하면 편집자가 교정·교열을 본다. 편집자는 방송으로 치면 PD 역할이다. 그리고 디자이너가 있어야 한다. 편집자는 작가와도 소통을 하고 디자이너와도 소통을 한다. 어떤 면에 무엇을 어떻게 배치할지를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소통하면서 정하게 된다.

그렇게 원고가 완성이 되면 책을 실제 펴내기까지는 인쇄소, 제본소, 코팅, 후가공 등 여러 사람들을 거쳐 나오게 된다. 책이 나오면 마케터가 책을 홍보하고 영업을 한다. 큰 서점들은 직접 찾아다니기도 한다. 대외적인 것을 담당하는 마케터가 있고, 사무실에서 온라인으로 홍보하는 인력도 필요하다.

Q. 소동이 주로 관심 갖고 책을 출간하는 분야는 어떻게 되는지.

인류학 또는 미시사(微示史), 생태, 예술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저는 생물학 분야를 공부한 이과 출신인데, 어떻게 하다가 인류학을 조금 공부하게 됐다. 공부를 하다 보니 가장 기본적인 핵심이 ‘사람은 다 다르다. 사람은 다 똑같다’라고 생각했다. 이 말이 짧지만 명쾌하게 다가왔다. 생물학을 공부하면서 생물의 다양성에 대해 가끔 감탄스러울 때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사람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다양성의 가치를 추구하는 인류학에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개인의 삶이 드러날 수 있는데 관심을 가져왔고, 그러다보니 생태, 예술 등 분야에 대해서도 책을 내게 됐다. 예술도 다양성을 추구하고 삶에 위안을 주지 않나. 삼사년 전부터는 예술성이 있는 어린이 그림책을 내고 있다.

소동출판사 김남기 대표 ⓒ투데이신문
소동출판사 김남기 대표 ⓒ투데이신문

시대 변해도 책은 살아남을 것

Q. 출판을 준비 중인 책이 있다면.

70세가 넘어서 그림에 재미를 붙여 책까지 낸 할머니 작가의 두 번째 책(첫 책은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은 <고향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이다. 할머니는 아들 부부와 함께 사시는데, 그림에 한창 재미가 붙었을 때 며느리가 “저 임신한 거 같아요”라고 했다더라. 이미 손녀가 둘 있고, 큰 애는 초등학교 5학년인 상황에서 늦둥이 손주를 임신했다는 말을 듣고 할머니는 좋다는 생각보다 ‘나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고 한다. 이제 막 그림을 그리면서 제2의 인생을 맞이하고 있는데 ‘황혼육아가 웬 말이냐’ 싶었던 거다. 그런데 막상 손주가 태어나니 너무 예뻐서 매일매일 손주 일기를 그림으로 그리셨다고 한다. 얼마 전에 손주가 만 3세가 됐고,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손주가 어린이집에 가기까지 할머니가 그린 그림 공책이 15권이었다. 그 그림과 글을 정리해서 손주 일기책을 올해 낼 예정이다.

또 하나는 성인들이 보는 그림에세이 책이다. 작가는 재개발 예정인 지역에 살면서 식물에 큰 위안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재개발지역의 공동체와 식물들에 대한 시선을 담은 책이 나올 계획이다.

Q.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책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종이책과 전자책을 아울러 말하자면, 책은 사람이 만든다는 게 가장 큰 것 같다. 데이터가 모여서 정보가 되고, 정보가 모여 지식이 되고, 그것이 모여 지혜가 될 수 있다. 스마트폰, 온라인에서 얻는 정보는 무분별한 정보가 많다. 반면 책은 정제된 정보다. 편집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정제되고 다듬어지고, 디자인을 거쳐 아름다움이 입혀진다. 저는 이 과정들을 거쳐 책에 온기가 담긴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시대가 변해도 책은 살아남을 거라고 본다.

종이책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SF영화를 보면 종이책이 골동품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레트로 감성을 가진 사람들만 보는 매체가 될까봐 겁이 나기도 하는데, 사람들이 종이의 물성(物性)이 주는 감각을 오래 찾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제 바람이기도 하다.

또 책의 장점은 소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고가 편집과 디자인을 거쳐 소장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이 되면 구매하지 않나. ‘작은 문화가 세상을 움직인다’와 ‘오랜 친구 같은 책을 만들자’는 게 소동출판사의 모토인데, 항상 책꽂이에 있어서 필요할 때 위안을 얻고 정보를 줄 수 있다면 책 만드는 사람으로서 가장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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