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동운동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전태일 열사’는 부당한 노동현실 가운데서 노동자가 존중받는 세상이 도래하길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습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육신을 화염 속에 내던지는 희생도 서슴지 않았죠.

그의 숭고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 열악한 노동현실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안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저임금과 장시간 중노동에 시달리며,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받지 못한 채 일하다 목숨을 잃곤 합니다.

점점 희미해져가는 노동존중사회에 대한 희망에 숨을 불어 넣어 줄 새로운 노동정책이 필요한 때, <투데이신문>은 ‘우리가 바라는 근로기준법’을 기획했습니다.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한 시민들께서 ‘내가 바라는 근로기준법’ 게시판에 손수 남긴 의견들을 토대로 실제 노동현장 최전선에 있는 노동자들이 원하고 바라는 노동정책을 고찰해보고자 합니다.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한 시민들이 ‘내가 바라는 근로기준법’ 게시판에 남긴 글 ⓒ전태일기념관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한 시민들이 ‘내가 바라는 근로기준법’ 게시판에 남긴 글 ⓒ전태일기념관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비정규직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우선 공공부문부터 임기 내에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

2017년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첫날 인천공항을 방문해 노동자들과 한 약속입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산하의 공공부문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시작으로, 민간부문에서도 최소한 상시·지속적 업무, 생명·안전 관련 업무에서만큼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이루겠다는 게 문재인 정부의 목표였습니다.

1호 정책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위해 문재인 정부는 임기 초부터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가장 먼저 그해 5월 16일 국가일자리위원회를 설립했습니다. 6월 23일에는 일자리 100일 플랜을, 7월 20일에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습니다.

역대 그 어느 정부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문재인 정부에 노동계가 거는 기대는 컸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4년, 노동계의 기대와 희망은 불만과 분노로 변해버렸습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7년 7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기준 공공부문 1단계 853개 기관에서 정규직 전환이 결정된 노동자는 19만9538명입니다. 이는 그해 목표로 잡았던 20만4935명 대비 97.3%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수치만 놓고 본다면 애초 문재인 정부 계획대로 흘러가는 듯 보입니다. 그럼에도 노동계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자회사 전환 때문입니다.

정규직 전환이 완료된 노동자 가운데 14만1222명(73.3%)은 기관에 직접고용 됐습니다. 다만 4만9709명(25.8%)은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이 이뤄졌습니다.

물론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할 순 없습니다.

자회사는 기존에 시험 등 일정한 절차를 밟고 입사한 노동자들과의 처우조건을 어떻게 달리하느냐를 두고 갈등을 불식시키기 위해 선택된 일종의 ‘우회로’입니다.

전문성을 갖춘 자회사에서 정규직 전환을 통해 고용안정과 처우개선만 이뤄진다면 기존 정규직과 새롭게 정규직이 된 노동자 간 갈등 없이, 비정규직 문제까지 해결하는 일거양득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평가입니다. 

문제는 자회사 전환을 통한 정규직화 이후 노동자들이 파견·용역 시절보다 고용안정 및 처우개선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등이 함께 발간한 <공공기관 자회사의 운영실태 및 개선방향> 논문에 따르면 2017년 이후 설립된 자회사들의 경우 환경미화, 경비, 시설관리 등 단순노무와 비전문 인력을 공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여전히 용역도급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또 일정 부분 고용안정성이 확보되긴 했으나 정권이 교체됐을 때 용역사로 되돌아갈 가능성이나 구조조정 등의 우려로 여전히 불안하다는 평가입니다. 이 밖에도 처우개선 역시 인건비 예산의 제약 등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민간부문의 비정규직들의 처지도 여의치 않습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0년 고용형태공시 현황’에 따르면 300명 이상 기업 노동자의 비정규직 비율은 △2017년 40.3% △2018년 39.8% △2019년 38.5% △2020년 38.4% 매년 소폭 감소하고는 있으나 눈에 띄는 변화는 없습니다.

300명 이상 기업 노동자 500만2000명 가운데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는 91만3000명(18.3%)입니다. 기간제와 무기계약 단시간 등 직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는 각각 92만4000명, 8만6000명입니다.

이들을 모두 합치면 192만3000명(38.4%)으로 10명 중 4명은 비정규직인 셈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는 매우 큰 편입니다. 300명 이상 기업의 정규직의 임금이 100이라고 가정하면, 비정규직은 64.5% 수준에 그쳤습니다. 300인 미만 기업의 비정규직은 이보다 더 낮은 42.7%로 조사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들이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이유는 직접고용에 대한 희망 때문입니다. 정부는 민간기업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장려하지만 항간에는 ‘비정규직은 소모품 인생’이라는 말이 떠돌고 있습니다. 때문에 정규직 전환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그날까지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어야만 합니다.

지난 3월 벼룩시장구인구직이 직장인 327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고용 불안’ 관련 설문조사에서 고용상태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답한 비정규직 응답자는 94%에 달했습니다.

실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해 이후 아시아나KO, 이스타항공, 코레일네트웍스와 LG트윈타워 청소 하청업체 등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노동자 약 1000명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여파로 해고되는 사태가 발생했다고 전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실화를 다룬 영화 <카트>에는 이런 대사가 등장합니다.

“저희가 바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닙니다. 이렇게 외치는 저희를 봐달라는 겁니다. 저희 얘기를 좀 들어달라는 겁니다. 저희가 바라는 건 사람대접받는 거 하나입니다”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이 보장되는 정규직화를 촉구하는 노동계의 투쟁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청와대까지 닿지 않는 탓일까요, 아니면 대통령의 임기가 1년여 밖에 남지 않은 탓일까요. 문재인 정부는 임기 초만큼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약속했던 ‘노동존중사회’ 실현이 그저 희망고문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그 시작점에는 ‘동일노동·동일임금·동일대우’ 노동원칙이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