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억압으로 물든 고용허가제, 제도와 현실 속 간극 존재해
근로계약 바깥의 노동자들은 고용주에 맞서 목소리 내기 어려워
정부, 제도손질에 앞서 변하지 않는 변화에 대해 적극 고민 필요
인권·시민단체, ‘눈 가리고 아웅’식의 이주노동자 정책 경계해야

인천공항 입국심사대 ⓒ뉴시스
인천공항 입국심사대 ⓒ뉴시스

【투데이신문 진선우 기자】 지난해 겨울, 강력한 한파 속 난방 설비가 없는 경기 포천의 비닐하우스 내 조립식패널 숙소에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인 속헹 씨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조사 결과 사인은 ‘간경화’로 드러났고, 담당 전문의는 춥고 열악한 환경에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생긴 합병증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밝혔다.

속헹 씨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이를 둘러싼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거주권이 사회 전반에 큰 화두를 던졌고 이주노동자 정책은 연일 논란의 중심에 섰다.

현행 외국인고용법상 대다수의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를 통해 일자리를 얻게 된다. 지난 2003년 8월에 제정돼 2004년 8월 도입된 고용허가제는 인력난을 겪고 있는 제조업이나 3D업종 부문의 사업체에 해외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시행 중이며, 고용 조건에 국내근로자와 동등한 대우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도입 당시 상당히 많은 기대를 모은 바 있다.

하지만 정부에서 시행 중인 고용허가제는 근본적인 문제를 보이며 제도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내외국인간 차별을 금지하고 국민경제의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한다는 고용허가제 기존의 긍정적 취지와 달리, 인권과 노동권을 침해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현재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변경 제한’과 ‘성실근로자재입국제도’ 등의 조항을 통해 강제노동을 의무화하고 있다. 또한 ‘정주화를 막기 위한 체류 기간 제한’을 비롯해 ‘숙식비 강제 징수 지침‘, ‘외국인력 배정 점수제’ 등은 노동자들의 인권침해에 해당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처럼 제도상의 사각지대와 강제조항은 이주노동자들이 설 자리를 잃게 만들고 있기에 그들의 삶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은 채 고충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주노동자인 아이눌 구다 조두리씨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이주노동자인 아이눌 구다 조두리씨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공정’이란 믿음 앗아가는 이주노동자 정책의 민낯

방글라데시 국적의 아이눌 구다 조두리(36)씨는 지난 2004년 한국에 입국해 서울 구로공단 내의 여러 봉제공장 제단방에서 믹싱, 다림질 등 다양한 일을 했다. 언어도 문화도 달랐기에 한국에서의 첫 시작은 쉽지 않았지만 그는 한국이주노동자복지회를 꾸준히 방문하면서 한국어를 배웠고, 곧 낯선 문화에 조금씩 적응해 나갔다.

하지만 인터뷰를 통해 듣게 된 그의 코리안 라이프는 험난함과 고됨의 연속이었다. 조두리씨는 “열심히 일하면 일할수록 꿈꿨던 ‘코리안 드림’은 점점 희미해졌고 작은 희망조차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입에선 인권, 임금체불, 폭행이란 단어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조두리씨는 그동안 “어느 누구도 나의 얘기를 들어주지 않았다”라며 억울하고 답답했던 그간의 이야기를 조금씩 들려줬다.

한국에서 조두리씨의 첫 직장은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 위치한 H공장이었다. 그는 공장에서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6개월 동안 일했지만 5개월치 월급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임금체불 문제로 인해 조두리씨는 다른 회사로 가고 싶었지만 ‘사업장 이동 제한’ 때문에 갈 수 없었고, 결국 그는 일을 그만두고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한 채 다른 회사로 갔다. 하지만 조두리씨는 두 번째 회사에서도 1년을 일했지만 7~8개월치의 임금을 똑같이 받지 못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유럽국가에 시행되고 있는 노동허가제의 경우엔 외국인 근로자의 자유로운 직장이동을 허용하는 반면, 우리나라의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정해진 기간동안 지정된 사업체에서만 일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제하고 있다. 사업 고용주의 연락에 의해 채용이 결정되며 이주노동자는 선택의 권리가 없어 근로환경이 아무리 열악해도 ‘울며 겨자 먹기’로 일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또한 그는 일을 할 때 기계에 손을 다친 적이 있었는데, 병원에서 응급처치로 꿰매기만 하고 산재보험금은 모두 회사에서 수령했다고 한다. 회사 측에선 회사에서 병원비를 대신 내줬으니 보험금은 당연히 회사가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셈이다.

조두리씨는 열악한 근무조건보다도 마음에 더 큰 상처가 된 것은 ‘비인격적인 대우’였다고 강조했다. “저는 ‘조두리’라는 이름이 있는데 사람들이 저보고 ‘방글라’라고 불렀어요. 손발로 때리고 망치도 던지는 등 폭행이 너무 많아 힘들었다”고 당시의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폭행을 견디다 못한 조두리씨는 고민 끝에 경찰을 부른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들은 일이 바쁘고 폭행 증거가 없다는 이유를 들면서 그냥 아무렇지 않게 다시 돌아갔다고 한다.

수사결과 통지서를 받았지만 피의자는 불기소의견으로 송치됐다 ⓒ투데이신문
수사결과 통지서를 받았지만 피의자는 불기소의견으로 송치됐다 ⓒ투데이신문

외국인 고용허가제에 대해 얼마나 인지하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조두리씨는 “한국어 이해가 어려워서 고용허가제에 대해 정확히 모른다”고 답하며 “고용허가제 없이 일을 할 수 없고 이 제도를 이용하지 않으면 저희는 불법체류자가 되기 때문에 폭행을 당하고 임금을 못 받더라도 반항하지 못하고 그냥 꾹 참을 수 밖에 없다”고 현실을 토로했다.

그의 대답은 단지 한국어가 어려워서 제도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견해에서 벗어나 고용허가제가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절대적인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줬다.

조두리씨는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무시하는 나쁜 제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간 폭행과 임금체불 때문에 회사를 많이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너무 힘들었고 결국 나중에는 어느 공장을 가도 다 비슷해서 바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고 덧붙여 말했다.

특히 그는 “노동부에선 어떤 회사가 좋고 나쁜지 잘 모르며, 문제가 있어도 제대로 대응해주지 않는다”며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지켜줬으면 좋겠고 한국 사람들도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우 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YIN의 비닐하우스 숙소 ⓒ지구인의 정류장
YIN의 비닐하우스 숙소 ⓒ지구인의 정류장

유선 인터뷰에 응한 캄보디아 출신의 인(YIN, 가명)씨는 지난 2019년 4월에 입국해 밀양 소재의 샌드위치 패널 숙소에 머물며 인근 비닐하우스 농장에서 깻잎을 심고 재배·수확하는 일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쉼터인 비닐하우스 숙소는 보안에 취약해 성범죄에 쉽게 노출됐고 수해, 화재, 난방 등 복합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상태였다. 인씨는 전화상에서 어눌한 말투로 거주환경 이외에 다른 근무여건도 좋지 않았다며 담아뒀던 속마음을 이야기했다.

인씨는 사장님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강제파견 근무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하루 노동시간은 8시간으로 정해져 있지만 인씨는 오전7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10시간 이상을 일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휴게시간은 겨우 40분이었고, 수당은 최저임금법 기준이 아닌 수확량에 따라 지급됐다면서 파견노동을 하기 싫다고 말하면 사장님은 “다른 농장에 가지 않으면 돈을 주지 않겠다”며 ‘무노동 무임금’을 주장해 임금을 깎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인씨는 “사장님이 비닐하우스 숙소를 기숙사란 명목으로 월급에서 기숙사비로 매달 15만원을 가져갔다”고 한다. 게다가 “점심식사는 커녕 쌀도 제공받지 못해서 굶고 일한 적도 많았다”고 덧붙여 말했다.

고용허가제 업무편람을 살펴보면, 숙식비는 엄밀히 말하면 근로조건에 해당하나 고용허가제에선 ‘사업주가 원칙적으로 부담해야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기제돼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일을 시키기 위해 해당 국가와 MOU를 맺어 노동자를 데리고 오는 것이므로 노동력의 안정적 재생산을 위한 숙식 제공은 통상 사업주나 정부 차원에서 부담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 공익 변호사의 입장이다.

끝으로 인씨에게 그 당시의 심정에 대해 묻자 인씨는 고민 끝에 사업장을 변경하고 싶었지만 어려움을 느껴 결국 사직의사를 밝히고 퇴사했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인씨는 “깻잎 농장에서 일한다고 하면 흔히 파종, 잡초제거, 농약 살포 등의 농사 작업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그 외의 일을 한 것은 채 10일이 안됐어요. 깻잎 따는 기계와 다를 바가 없었고 다시 캄보디아로 돌아가고 싶었다”고 가슴 아픈 심정을 드러냈다.

고용노동부 & 중소기업중앙회 ⓒ뉴시스
고용노동부 & 중소기업중앙회 ⓒ뉴시스

‘현대판 노예제’ 고용허가제…뒤늦게 개편안 마련하는 정부

앞선 사례에서 봤듯 고용허가제는 인권과 노동권을 침해하는 등 한계점을 드러내 이주 노동자들은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우삼열 아산이주노동자센터 소장은 지난 2017년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의 현실과 그늘’이라는 주제발표문을 통해 현행 고용허가제 하에서 지적되고 있는 대표적인 문제로 사업장 변경 권리를 박탈해 최장 9년 8개월 체류기간 동안 자발적 직장 이동이 불가능 입국 전 근로계약 체결 최저임금이 오른 만큼 기숙사 월세를 올려 사실상 최저임금제 무력화 직장 이동을 하지 못한 이들에게 ‘성실근로자’라는 미명하에 재입국 취업 기회 제공 이주노동자에게 정보 제공을 하지 않기 위해 구직활동 시 알선장 미지급 사업장 변경 기간 3개월 제한으로 미등록자 대량 발생  농축산업 내 산업재해 보험 미적용 사업장 취업으로 인해 이주노동자 피해 속출 출국만기보험제도의 퇴직금 권리 제한 입국 전 인권교육 부재 등을 꼽았다. 

민주노총과 이주노조 등이 지난해 8월 발표한 ‘2020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노동조건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행 고용허가제에서 우선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에 대한 질문에는 총 625명이 응답했으며,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자유롭게 바꾸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는 답변이 314명(51.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어 ‘사업주의 허락이 있어야 재계약이 가능한 것’ 150명(24.0%), ‘임금과 노동조건 등에서 이주노동자를 차별하는 것’ 149명(23.8%) 등이었다.

그간 이주단체와 인권, 노동 단체들은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오랜 기간 동안 지적해왔다. 최근에 사망한 속헹씨 사건이 국민적 분노를 일으키자 정부는 뒤늦게 대책마련에 나섰다.

고용노동부 측은 매번 논란이 되는 고용허가제와 관련해서 곧 대대적인 개편이 있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용노동부 외국인력담당관실 관계자는 “고용허가제를 운영 중인 대만, 싱가포르, 홍콩 역시 우리나라처럼 사업장 변경 제한이 원칙이며, 부당한 처우를 당했을 경우엔 횟수에 제한 없이 사업장 변경을 진행하고 있다”며  “다만 사업주와 노동자 간의 이견이 발생하면 관련 센터에서 사업장 변경 횟수를 차감한 후 순차적으로 변경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사업장에 중대재해가 발생하거나 3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신체, 정신적인 부상이 동반될 경우 사업장 변경을 허용하도록 추진하고, 사업장에서 외국인이 사망하면 고용허가 발급 요건이 불가능하도록 진행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고용허가제 대행업무를 맡은 중소기업중앙회의 관계자는 “최근 고용허가제 조항과 관련해 외국인 근로자의 생산성 개선 부분에 관심이 많아 수습기간 내의 지속적인 교육을 통한 기계 숙련도 증대, 근로자에 대한 동기부여 향상을 위해 준비 중”이라며 “그간 한 사업장에서 변경 없이 4년 10개월을 근무해야 됐지만 앞으로는 동일한 업종이라면 근무처 변경이 가능하도록 개선하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이주노동자 강제노동 고용허가제 헌법소원 제기 공동기자회견 모습 ⓒ이주노동희망센터
이주노동자 강제노동 고용허가제 헌법소원 제기 공동기자회견 모습 ⓒ이주노동희망센터

“정부, 이주노동자 향한 굳건한 차별의 벽 허물어야” 

타국에서 건너온 이주노동자들이 느끼기에 우리 사회의 공정과 정의의 잣대는 누구에게나 평등하지 못하다. 여전히 정부 정책 중 하나인 ‘고용허가제’가 그들에게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도 내국인과 달리 고용주와 이주노동자 간의 보이지 않는 차별 프레임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빠르게 외국인 이주자가 늘면서 다문화 사회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배려는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알고 있는 산업현장의 모습은 상상과 다르다. 이제는 이들 사이에 연결과 단결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의 허오영숙 대표는 “고용허가제는 노동자들의 노동권리보단 정부와 영세사업자 사업주들의 편리함을 위한 제도”라고 질타했다. 허오 대표는 “상대국가와 정부 간 MOU를 맺은 공신력 있는 제도 속에서 개인의 권리가 침해될 수 있는 조항이 들어 있다는 점은 상당히 큰 문제”라며 “고용허가제의 대상이 외국인일지라도 일을 그만 둘 수 있는 자유 자체를 승인받아야 하는 등 직업선택의 자유가 제한되는 위 제도는 헌법상 위배 된다”고 주장했다.

공익인권법재단의 박영아 변호사는 “지금의 제도는 단기순환을 표방하면서도 사실상 단기로 전환시키지 않고 장기체류를 시켜 일상생활에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를 침해하는 요소가 있기에 고용허가제는 모순적이고 불합리한 제도”라며 “제도상의 어두운 그늘과 노동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독소조항 등의 부분에 대해선 인권 측면에서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윤자호 연구원은 “고용허가제의 기본 원칙에는 내적 모순이 존재한다”라며 “노동관계법령에 따르면 내국인노동자와 동등한 대우를 보장해 차별을 금지해야 하지만 ‘사업장 이동 제한’과 ‘취업 기간 제한’ 등의 규제는 이에 위배된다”고 꼬집었다.

윤 연구원은 그 밖의 업종별 특성과 사업주 선호도를 고려한 ‘소수업종 특화국가’ 운영과 관련해서도 “출신 노동자를 특정 직종에 강제로 배치한다는 점에서 인종주의적 고정관념을 심어 줄 수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러면서 “당위적으로 이주노동과 관련된 제도에서 갈등과 시행착오가 없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더라도 좀 더 유예기간을 주거나 실업을 겪을 시 수입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자체와 중앙정부가 협치해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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