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임승수 작가
와인의 독보적인 향, 모차르트 천재성 연상케 해
‘마시는 향수’ 와인, 혀가 아닌 코로 맛을 느껴야
애정하는 대상의 매력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집필

“책을 읽는다는 건 과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다”(데카르트)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육체와도 같다”(키케로)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안중근)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신용호)

책을 통해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은 수많은 위인들의 명언을 통해 알 수 있다. 우리는 단돈 만원으로도 인생을 바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2019년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 성인 1년 독서량은 6권 정도밖에 안 된다. 두 달에 겨우 1권 읽고 있는 셈이다.

누군가는 책을 펼치기도 전에 독서라는 행위는 고루하고 따분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책 내용이 궁금하다면 몇 백 장의 책을 읽는 수고스러움 대신 요약된 내용만 찾아서 보고, 듣고 읽으면 되는 세상이다. 남이 정리해 둔 몇 줄의 서평과 몇 개의 영상이면 마치 책 한 권을 다 읽은 듯한 기분까지 든다. 이렇듯 읽는 행위가 생략된 독서, 저자와의 대화를 막아버리는 독서만을 이어간다면 책이 주는 즐거움을 영영 모르게 될지도 모른다.

한쪽에서는 독서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고, 독서의 중요성을 모른다고 걱정들 하지만 전자책의 인기가 올라가는 걸 보면 이 시대에 애독가들은 다른 형태, 진화한 독서를 즐기고 있음에 분명하다.

좋은 책을 읽다보면 밑줄을 수도 없이 긋고, 멋진 글귀가 있는 페이지 모퉁이는 살짝 접어두기도 한다. 책을 덮은 후에는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우리는 이러한 좋은 책을 만나기 위해서 신간 기사를 찾아보기도 하고,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저자와의 인터뷰를 찾아보며 책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투데이신문>이 새롭게 선보이는 [Today_Pub](투데이펍) 연재는 대중(Public)을 위한, 출판(Publish)된 책에 대한, 펍(Pub)처럼 편안하고 친근한 콘셉트로 책과 사람을 잇는 콘텐츠다. 책을 만든 저자, 편집자, 기획자 등과의 대화부터 책 한 권이 나오고 읽히기까지의 과정과 남긴 것들에 대한 기록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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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저자 임승수 작가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진선우 기자】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으로 집에서 편하게 마시는 ‘홈술’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와인’의 입지가 두드러졌다. 2000년대 중반 정점을 찍었던 와인 시장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영향으로 다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또한 와인은 일부 계층만이 향유한다는 오래된 이미지를 탈피하고 누구나 어디서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술이라는 인식이 새롭게 생기면서 비주류였던 아시아 와인 시장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이러한 와인열풍과 함께 최근 주목받는 인물이 있다. 바로 임승수 작가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등 다수의 책을 집필한 바 있는 그는 와인을 쉽게 즐기는 방법을 소개하는 책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을 출간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투데이신문은 지난 2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와인주막차차에서 임 작가와 만났다. 책 표지가 프린팅된 하얀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 그는 “와인을 좋아하게 된 순간은 일종의 돌발 사고”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이 책을 접한 독자들 역시 “어느 순간 슬기로운 방구석 와인 생활을 즐겼으면 좋겠다”며 와인과의 특별한 연애를 주선하고 나섰다. 와인에 몹시 진심인 임 작가. 그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와인의 매력에 흠뻑 빠지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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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투데이신문

와린이들의 슬기로운 와인 생활을 위해

Q. 기존의 와인과 관련된 책은 무수히 많지만, 사실 교과서적인 부분으로 가득한 것이 사실이다. 본인의 책이 기존의 와인도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은 ‘와인 초보자’를 위한 맞춤형 도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연히 마트에서 무심코 와인 한 병을 샀다가 그 매력에 훅 빠져들었는데 사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알려주는 사람도 적고 따로 배운 적도 없기에 시행착오가 정말 많았습니다. 나중에 와인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접했지만 정작 와인 초보자로서 어떻게 싸게 사고, 마셔야 하는지 등의 필요한 정보들을 설명해주는 책들은 없더라고요. 그래서 족집게 과외처럼 실용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책이 있다면 ‘맨땅에 헤딩’하지 않고도 쉽게 와인에 익숙해지리라 여겼습니다. 대부분의 와인 도서들은 정보를 나열하는 형태라 유용할 순 있지만 가독성이 떨어져 읽는 맛이 없다는 점이 아쉬운 것 같습니다. 하나의 정보를 전달하더라도 제가 겪었던 웃픈 이야기들을 토대로 책을 쓰면 전달력도 좋고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부드럽게 느낀다는 생각 때문에 이 책을 쓰게 됐습니다.

Q. 책을 통해 본 임 작가는 그저 와인이 좋아 책을 쓴 ‘와인성덕’이란 느낌이 든다. 좋아하는 분야를 주제로 책을 써서 다른 책을 집필할 때와 달리 더 즐겁게 작업에 임했을텐데 어떤 감정이었는지.

저는 와인이란 대상과 뜨겁게 연애를 시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마셨던 와인 사진을 전부 촬영해 보관하고 있습니다. 책을 쓰며 사진 한장한장을 보는데 그 당시 경험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연애 과정을 복기하면서 연애 기록을 남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와인 사진을 보면 마치 노스텔지어처럼 연애대상에 대한 좋은 감정과 아련한 기억들이 떠오르는데 그 당시의 감흥을 되새기며 글을 쓰다 보니 너무 즐거웠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과거의 사회·과학 책을 썼던 때보다 더 많이 웃으면서 글을 썼던 것 같아요.

Q. 표지 디자인으로 클로드 모네의 그림을 이용했는데 특별한 의도가 담긴 것인지.

전혀 없습니다.(웃음) 본래 책이란 것이 출판사에 글을 납품하는 것인데 전문성 있는 표지를 담당하는 디자이너 분이 전권을 갖고 만들어주셨어요. 저는 표지그림이 클로드 모네의 작품인지 몰랐어요.(웃음) 아내가 미술을 좋아하다 보니 클로드 모네 그림인지 알아봤는데 그림이 옆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신기하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궁금해서 출판사에 물어보니까 이것은 디자이너의 영역이라고 하더라고요.

Q. 책 제목도 매우 감각적이고 트렌디하게 느껴졌다. 책 제목에 얽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사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세상을 바꾼 예술작품들’ 등 직접 만든 책 제목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기존의 제목보다 출판사에서 만들어준 제목이 더 좋았습니다. 출판사에서 내민 제목이 바로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인데 이 제목을 보니 기존의 제목이 초라해지더라고요. 처음에 제가 생각했던 제목이 너무 별로여서 지금은 생각도 안납니다.(웃음) 출판사에서 너무 제목을 잘 지어주셔서 어떠한 이견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와인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내용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 모습과 저의 진심이 제목에 잘 담겨서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Q. 책에서 마르크스 <자본론>에 버금가는 충격을 준 것이 ‘와인’이라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자세히 얘기해준다면.

제가 사실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해 연구원으로서 직장생활을 했는데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고 천지가 개벽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빈부격차의 부조리를 숫자로 딱 증명해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빨간약을 받아먹고 캡슐에서 세상으로 나오는 장면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마르크스 자본론이 제 뇌에 지진을 일으켰다면, 와인은 제 혓바닥에 진도 9.0의 지진을 일으킨 것 같습니다. 저도 나름 맛있는 것을 좋아해 맛집 찾아다니는 것을 즐겼지만, 술에 대해선 맛있다고 느껴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도 주변에서 와인에 빠지면 패가망신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저러지?’란 호기심에 마트에서 와인을 사서 먹어봤는데, 그때 엄청난 컬쳐쇼크를 받아 지금의 제가 와인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임승수 작가가 와인 스월링을 보여주며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임승수 작가가 와인 스월링을 보여주며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와인의 매력속으로

Q. 와인의 고장인 서양과 달리 사실 한국에서는 와인은 그렇게 인기 있는 술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들어 와인의 인기가 부쩍 높아졌다. 그 요인으로 무엇을 꼽을 수 있을지.

뉴스를 보니 지난해와 올해 어마어마하게 와인 매출이 높아졌다고 해요. 코로나19란 예기치 못한 상황이 와인의 대중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죠. 아무래도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사람들이 집에서 술을 즐기는 분위기가 많이 형성됐다고 봅니다. 소주나 맥주 같이 평범하고 재미없는 술보단 아무래도 분위기 있는 술이란 이미지가 강한 와인에 호기심이 작용한 것 같아요. 코로나19 영향을 제외한다면, 인기 요인으로 맛을 꼽고 싶습니다. ‘와쌉(WASSAP)’이란 네이버 와인카페에 새로 가입한 분들이 쓴 글을 보면 소주나 맥주는 맛있단 느낌보다는 알콜 보충용으로 취하기 위해 마신다는 인식이 강한데, 그에 반해 와인은 맛있는 음식으로 받아들이는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맛있는 술에 대한 감동, 그 점이 또 다른 요인이라고 여겨집니다.

Q. 소주는 서민과 가까운 술이고 와인은 부르주아들이 즐기는 술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와인하면 전문적인 소믈리에를 비롯해 근사한 레스토랑, 고급진 음식 등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사실 많이 부담스럽긴 합니다. 근데 언제부턴가 그런 분위기가 변했더라고요. 2~3년 전부터 마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주종이 와인으로 바뀌었고, 심지어 지금은 편의점에서도 와인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와인을 부르주아들이 즐기는 술이라고 하면 “도대체 언제적 사람이냐”는 이야기를 듣더라고요.(웃음) 편의점에서 파는 와인이라 간혹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직접 보니까 ’몬테스 알파‘도 있고 굉장히 퀄리티 좋은 술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Q. 소주 한잔이 익숙한 분들에게 와인의 가치나 매력을 소개한다면.

와인의 가치와 매력은 음식의 맛을 3배로 맛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와인에 관심을 갖고 드시려는 분들의 특징은 좋은 와인을 사서 술을 주연, 안주를 조연으로 해서 마신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뒤집어서 접근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집에서 주로 와인을 아내와 함께 마십니다. 예전에는 아내가 와인 없이 고기를 잘 먹었습니다. 하지만 와인과 고기를 같이 먹게 된 이후로, 요즘엔 고기를 먹게 되면 와인 없이는 못 먹겠다고 말합니다. 와인 없이 먹었던 고기 맛과 와인을 곁들여 먹은 고기 맛은 굉장히 차이가 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와인의 매력은 음식의 맛에 시너지를 불러와 1+1은 2가 아닌 3 이상으로 가도록 만드는 술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즉 음식과의 궁합을 보고 와인에 접근했으면 좋겠습니다.

Q. 와인과 음식의 궁합은 생소하면서도 흥미롭다. 

저는 와인과 음식의 궁합을 즐기게 되면서 화이트 와인을 마시는 비중이 정말 많아졌습니다. 화이트 와인이 레드와인보다 음식과의 친화력이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맛이 깔끔합니다. 이탈리아의 피노 그리지오나 독일의 리슬링은 한식과도 너무 잘 어울립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레드와인이 더 많이 팔리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와인 저변이 넓어지고, 평상시 소주와 맥주처럼 더 많이 대중화가 되면 될수록 화이트 와인 판매가 올라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궁합은 알면 알수록 오묘한 부분이 존재합니다. 확실히 이탈리아 음식은 이탈리아 와인과 참 잘 어울립니다. 이탈리아의 끼안띠 와인들은 사실 신맛이 강해서 우리나라 입맛에 맞지는 않지만 피자나 파스타에 같이 먹으면 그렇게 맛있습니다. 또한 달지 않는 화이트 와인은 해산물과 잘 어울리는 편이고 레드와인은 대체로 육류와 잘 맞지만, 음식의 궁합은 사람마다 입맛도 다르고 오묘한 세계라 정확히 도식을 말씀드리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저자 임승수 작가 ⓒ투데이신문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저자 임승수 작가 ⓒ투데이신문

아는만큼 보이는 무궁무진한 와인의 세계

Q. 와인을 신의 물방울이라고 표현하지 않는가. 임 작가는 와인을 어떻게 정의하고 싶은지.

저는 와인을 ‘마시는 향수’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와인을 마실 때 저는 끊임없이 향을 맡습니다. 맛은 대부분 코에서 옵니다. 맛의 복합적인 부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은 혀가 아닌 코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술의 향을 음미하지 않고 입에 털어 넣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점이 참 안타깝게 느껴지더라고요. 와인은 심할 정도로 탐닉하며 향을 맡는 것이 와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Q. 와인 초보자들이 가성비 좋은 와인을 구매하기 위한 대응 매뉴얼이나 참고할 사안이 따로 있는지.

사실 와인 매장에 나와있는 분들은 그 마트의 직원들이 아닙니다. 와인 수입사에 속한 분들이죠. 그러다 보니 본인이 수입한 와인들을 보통 먼저 권하게 됩니다. 결국 회사 입장에서 판매·마진을 따질 수 밖에 없어 소비자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그래서 저같은 경우엔 우선 마트에 가서 “장터 할인가(균일가)로 나온 와인 위주로 보여달라”고 말합니다. 해외에 비해 높게 측정된 와인이 있는데 그런 와인을 피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나서 직원분께 살짝 “어느 수입사에서 나오셨나요?”라는 질문을 드리면 직원들 입장에선 조금 긴장하게 됩니다. 와인을 잘 아는 사람이란 인식을 풍길 수 있어 좀 더 좋은 응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책에도 언급했지만 ‘와인 서쳐’란 유용한 어플이 있습니다. 그 어플에서 와인 라벨이나 사진을 촬영해 올리면 해외에서 어느 정도 가격에 판매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유럽 와인은 우리나라에서나 미국에서나 모두 수입품입니다. 세금이 제외된 가격에 1.5배정도를 곱한 가격을 가장 합리적인 최종가격으로 판단하면 됩니다. 예전에 지인이 저한테 전화를 건 적이 있습니다. 18만원 정도의 호주 와인을 샀는데 적절한 가격으로 샀는지 궁금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와인을 와인서쳐로 검색해보니 해외 평균가가 9만원이고, 세금을 포함해 14만원 정도가 합리적인데 많이 비싸게 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만원이면 2만원 대의 와인을 2병 살 수 있는 금액이거든요. 이런 상황을 보면서 저는 소비자들도 합당한 가격에 와인을 살 수 있도록 점점 현명해져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소주는 정해진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지만, 와인의 경우 가격 폭이 넓어 선택이 어렵다. 왜 이렇게 와인 가격은 천차만별인건지.

좋은 와인들은 확실히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포도밭 자체가 워낙 비쌉니다. 좋은 포도밭은 적절한 경사각, 완벽한 일조량, 비옥한 토양 등 포도가 잘 자랄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을 제공합니다. 좋은 와인의 경우엔 포도나무 역시 가지치기를 세밀하게 해서 나무 하나에 포도가 많이 열리지 않게 만들어 포도 자체의 응집력들이 굉장히 높습니다. 게다가 포도나무를 재배할 때 트렉터를 쓰면 땅에 부담을 준다고 해서 일일이 수작업으로 포도를 수확합니다. 즉 토지비와 인건비, 포도를 수확하는 기술력과 양조 과정에서의 오크통 퀄리티 등 모두가 합쳐져 최고의 와인을 탄생시키게 됩니다. 비싼만큼 와인이 맛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와인은 다른 주종과 달리 희소성이 존재해 가격의 폭이 굉장히 넓습니다. 특히 부르고뉴 와인이 비쌀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와인 등급을 포도밭에 매기기 때문입니다. 즉, 1등급 포도밭이 있으면 그곳에서 만들어진 와인에는 높은 등급이 붙게 됩니다. 그런데 1등급 포도밭은 수가 딱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생산되는 포도량 역시 정해져 있어 좋은 품질의 와인량은 늘어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공급은 한정돼 있으나 수요는 워낙 많아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른다고 보면 됩니다.

Q. 와인이 투자상품이란 인식이 퍼지면서 ‘와인 재테크’와 함께 비즈니스에서 와인을 활용해 좋은 사람을 제대로 사귀는 ‘인(人)테크’가 주목받고 있다.

저는 와인 인테크·재테크와 관련해 가장 극단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작가다 보니 집에서 혼자 책을 써서 사람 만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주로 아내와 와인을 마시는데 굳이 아내한테 잘 보일 필요는 없잖아요.(웃음) 저는 인테크와 전혀 무관하게 와인의 향과 맛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저는 와인을 사면 오래 기다릴 수가 없어서 재태크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좋은 와인을 10년씩 묵히는 분들이 있으신데 참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저는 와인에 대해선 그렇게 인내심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맛있는 와인은 바로 마셔야 한다는 것이 제 철학입니다.

Q. 와인, 소주, 맥주, 위스키 등 각각의 술을 유명인에 비유한다면.

우선 소주하면 소크라테스를 형이라고 부르는 가수 ‘나훈아’씨가 생각납니다. 그리고 맥주하면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호프집에서 친구와 500ml 맥주를 마시면 생각나는 인물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위스키 같은 경우엔 ‘샤갈’이 떠오릅니다. 위스키 향이 굉장히 매혹적이고 저를 휘감는 느낌이 강한데 그런 알콜 기운과 향이 샤갈의 그림을 떠올리게 만들어 그런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와인은 품종이 다양하다 보니 하나로 정의하긴 어렵지만, ‘모차르트’가 떠오릅니다. 와인이 가진 독보적인 향과 맛으로 다른 주종을 압도하는 천재성이 모차르트의 천재적인 이미지와 오버랩 되는 것 같습니다.

Q. 마르크스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마르크스와 함께 와인을 마신다면, 어떤 종류의 와인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지.

마르크스가 독일에서 태어난 인물이니 독일 모젤 지역의 리슬링을 같이 마셔보고 싶습니다. 또 다른 와인을 마신다면, 저와 마르크스가 둘 다 좋아하는 프랑스 생테스태프 지역의 샤토 코스 데스투르넬 와인을 마시고 싶습니다. 대화 주제는 자본론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빈부격차와 착취구조에 대해선 명쾌하게 밝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소위 말하는 사회주의 혁명이 먼저 일어날 곳을 자본주의가 가장 극도로 발달한 곳으로 예측했지만, 사실 자본주의 후발 국가인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났기에 예상과는 다른 이러한 역사적인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임승수 작가 사진제공
임승수 작가가 김포에 위치한 떼루아 와인 아울렛에서 신간 홍보를 진행하고 있다 ⓒ임승수

진심이 닿아 와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해지길

Q. 임 작가의 남다른 홍보전략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 대한 사랑, 그리고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을텐데 발로 뛰며 독자들을 만나는 것이 힘들지 않았는지.

제가 쓴 와인 책은 사실 독자 타깃이 굉장히 명확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와인을 좋아하고 관심있어 하는 분들을 위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포에 있는 와인 아울렛인 ‘떼루아’에 가서 미리 양해를 구하고 홍보를 한 적이 있습니다. 책이 잘 나가야 생계가 유지되는 작가다 보니 진심을 갖고 더 열심히 홍보활동에 매진했습니다.

Q. 책이 발행된 이후에 주변 지인과 독자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기억에 남는 독자 반응이 있었는지.

일단 아내의 반응은 “그동안 네가 까먹은 돈을 조금이라도 벌충하라”였습니다. 또한 독자 리뷰 중에 참 반가웠던 내용은 “이 책을 읽으면 바로 와인매장에 달려가고 싶어진다”와 “책을 어렵지 않게 술술 읽을 수 있었다”란 말이었습니다. 제가 가장 지향했던 방향이었는데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어 저자로서 굉장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Q. 임 작가님의 책 첫 독자이자 아내, 베스트셀러 작가인 이유리 작가는 이 책을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아내의 글은 우아한 스타일이고 제 글은 아재파탈(아재+옴므파탈) 스타일입니다. 사실 아내는 제 글을 보면 ‘구리다’고 합니다. 근데 저는 그것이 제 글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담백하고 블랙코미디스러운 유쾌함이 제 글의 강점인 것 같습니다. 저희는 서로의 글을 읽으면서 항상 피드백을 해줘요. 서로가 생계인이다 보니 아주 가감 없이 비판하는 경우가 많지만, 서로를 격려하는 것도 항상 잊지 않습니다.

Q. 공대 대학원을 마치고 5년 남짓의 연구원 생활을 하다가 작가로 직업을 전향하게 됐는데 직업을 바꾸고 난 후 삶의 변화가 있었는지.

우선 직업을 바꾸고 가장 좋은 점은 ‘내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전에는 사실 전공한 전자공학이 적성에 잘 맞지 않았어요.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일을 내가 주체적으로 하기보단 누군가에게 고용돼 정해진 스케줄에 맞춰 내가 움직여야 하는 것이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직업을 바꾸고 작가로서 내가 나의 스케줄을 관리할 수 있고, 내 삶을 주체적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작가로서 물론 수입이 안정적이진 않지만, 그 전에 비해 저에게 많은 자존감과 만족감을 준 것 같습니다.

Q. 그간 마르크스 자본론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글을 쓰다가 이번에는 와인과 관련한 책을 썼다. 공대 출신이기에 관련 분야 이외에 글을 쓰기가 쉽지 않을텐데 사회·과학, 인문·예술 분야 등 다양한 주제로 책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지.

책을 쓰는 이유는 제가 깨닫고 알게 된 사실을 나만 알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기쁨과 즐거움을 전달하고 싶었고, 이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가장 빨리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이란 것이 유튜브의 영상과 달리 호흡이 굉장히 긴데, 소중한 시간을 투여해 그 내용을 누군가 받아들이고 하나라도 얻어가는 것이 있다면 그만큼 기분 좋은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분야로 책을 쓰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제가 애정하는 대상에 대해 책을 쓰는 것입니다. 결국 제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매력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책을 쓴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Q. 앞으로 임 작가는 독자들에게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나요. 도전해보고 싶은 목표나 또 다른 관심 분야가 있는지 궁금하다.

저는 대중들로부터 ‘글이 쉽고 재밌게 읽히는 작가’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특히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목표는 제가 와인에 대한 책을 쓰긴 했지만, 여전히 사회·과학 작가인 만큼 민주주의를 주제로 책을 써보고 싶습니다. 누구나 자기 마음대로 쓰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해 ‘참다운 민주주의는 무엇인지’, ‘우리는 민주주의를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하는지’ 등에 대한 내용을 대중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책을 써보고 싶습니다. 또한 제가 집에서 매일 피아노를 치는데 기회가 되면 ‘음악 애호가’이자 ‘음악 덕후’로서 와인과 비슷하게 클래식 음악에 대한 책도 써보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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