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구룡마을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든 빈민촌이지만 1990년대를 전후로 급격히 규모가 커지면서 마을 내부에도 다양한 공동체 시설들이 들어섰다. 일부는 화재로 소실됐고 또는 지자체의 불법시설물 행정대집행으로 사라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마을 곳곳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종교시설은 마을 내 대표적인 공동체 시설이었다. 이중 대다수는 교회였는데 마을 내부에 웅진교회, 소망교회, 승진교회 등이 있고 지난 2014년 화재로 전소된 임마누엘순복음교회가 있었다. 이밖에도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몇 개의 기도원이 눈에 띄었고 구룡산에서 내려와 마을 입구 방향으로 걸어가면 서낭기가 걸려 있는 점집도 볼 수 있었다. 

어려운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아온 곳이다 보니, 종교시설은 마을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주민들은 일요일이면 삼삼오오 교회당에 모여 예배를 드렸고 독지가들이 보내온 물품들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고 입을 모았다. 또 몇몇 교회에서는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화재로 갈 곳을 잃은 주민들을 거두기도 했다.  

수천명의 인구가 밀집했던 곳인 만큼 다양한 상점들도 들어서기 시작했다. 먼저 간단한 식재료와 생활필수품을 파는 작은 가게들이 생겨났고, 구룡산과 대모산을 오르는 등산로 초입에는 식당들도 자리를 잡았다. 이와 함께 연탄집, 미장원, 주점, 꽃집, 철물점 등 다양한 상업 시설들이 들어섰다. 

무허가 판자촌인 구룡마을 내부에서 장사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상당수의 상인들이 사업자 등록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구룡마을 주민들의 거주가 정식으로 인정되고 전입신고를 받기 시작한 것이 2011년이니, 그 전까지는 마을에서 생업으로 장사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구룡마을에서 ‘서울식품’을 운영하는 상인은 30여년 전 마을에 들어오면서 가게의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맞춤 양복점을 운영해왔지만 기성복의 등장으로 매출이 급격히 줄어 가세가 기울었다고 설명했다. 젊어서부터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았던 그는 다른 직장을 구하기 어려웠고, 어떻게라도 살아가기 위해 식료품 가게 운영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인근 고속버스터비널에서 운영 중이던 대형마트를 찾아가 주류 등을 사온 후, 웃돈을 얹어 마을에서 팔았다고 전했다. 시중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수밖에 없었지만 주민들은 이웃을 돕는다는 마음으로 물건을 사갔다. 하지만 이는 세법을 위반하는 행위였고 결국 탈세 현행범으로 입건 돼 벌금을 치르기도 했다. 

가난한 처지라도 법을 어기고 싶지 않았던 그는 사업자등록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지만, 당시 세무서 직원은 괄시와 모욕으로 일관했다. 그는 “나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싶었고 법을 어기고자 했던 게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세금을 내겠다”고 호소했지만 무시당하기 일쑤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당시 노점상인들도 사업자등록이 가능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그는, 전입신고는 안 돼 있지만 사는 곳이 있고 건축물에서 가게를 운영 중인데 왜 차별하냐 따졌고 어렵사리 사업자등록을 받아내 수 있었다. 이후에는 강남구청이 마을의 전입신고를 받아주기 시작하면서 다른 상인들도 잇따라 사업자등록을 신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재는 구룡마을의 개발계획안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를 통과하고 많은 이주 대상자들이 임대주택으로 떠나면서 사실상 대다수의 시설들이 운영 동력을 잃은 상태다. 이밖에도 지난 2015년에는 마을 내 시설들에 대한 대대적인 철거가 이뤄지기도 했다. 당시 강남구청은 주민자치회관이 원래 신고용도인 농산물 직거래 점포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철거에 나섰고 이와 함께 무허가음식점, 천막, 정자 등의 부대시설들을 걷어냈다. 

마을에서 수십년간 무료급식소를 운영해왔던 임마누엘순복음 교회는 2014년 화재 이후 문을 닫게 됐다. 이 교회는 불이난 후에도 급식소 내 일부를 예배당으로 사용해왔지만 구청은 불법 무허가 시설이라며 자진 철거를 통보했고 2015년 1월 12일 강제철거를 단행했다. 본래의 자리에 남아있던 종교시설들은 철거를 당하진 않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외부로 떠나면서 자연스레 신도들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몇몇 교회들은 아직도 운영 중이지만 대부분 일요일에만 문을 여는 곳이 많다고 했다. 교회 근처에서 만난 한 주민은 “웅진교회라는 곳이 구룡마을에서는 역사도 제일 깊고 교회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었는데 지금은 몇 명 안 모인다. 다른 교회들도 식구들 몇 사람만 모여 운영하는 것 같기는 하다”라고 말해다. 

실제 마을의 입구라고 할 수 있는 구룡마을 상황실을 지나면 낡고 녹슨 십자가 철탑이 가장 먼저 눈에 띤다. 판자집들이 겹겹이 자리한 마을 초입에 우뚝 솟은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지만 기도원의 흔적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듯했다. 또 마을 깊은 곳에 위치한 한 교회에는 한쪽 벽에 우편물이 가득했지만, 문을 두드리고 인사를 건네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밖에 주점이라 불렸던 곳은 사실상 운영을 하지 않았고 미장원도 문을 열지 않는 듯했다. 현재 상점이라고 할 만한 곳은 마을 2지구와 4지구에 한 곳 씩 위치한 작은 가게들과 과거 자치회관이 있던 자리 근처의 채소가게, 그리고 가끔 눈에 띄는 노점상들 정도가 전부인 것으로 보였다. 

한 주민은 “주점이라고 하나 있는데 지금은 장사는 안 하고 등산로 쪽에는 식당들이 좀 있는 것 같다. 옷가게들은 노점이니까 마을 사람들은 아니다”라며 “미장원은 지금도 운영을 하기는 한다. 가게가 비좁고 코로나 때문에 위험할 수 있으니 손님을 잘 받지는 않고 어쩌다가 한 두명씩 부탁이 오면 깎아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서울식품 주인은 “SH(서울주택도시공사)에서는 남아 있는 세대가 600세대 정도 될 거 같다고 얘기 하는데 돌아다니면서 세어 보면 실제로는 300~400세대 정도 남아 있는 것 같다. 우선 이주를 장려하면서 절반 이상의 주민들이 빠져나간 것”이라며 “우리 하루 매출이 지금 5만원도 안 된다. 20% 떼기를 한다고 하면 얼마 남겠나. 전기세도 안 나온다. 우리도 정당하게 사업자등록을 내고 생업으로 장사하는 사람인데 정부가 상가 세입자 대책도 마련해준다면 얼마나 고마울까 싶다”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