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동운동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전태일 열사’는 부당한 노동현실 가운데서 노동자가 존중받는 세상이 도래하길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습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육신을 화염 속에 내던지는 희생도 서슴지 않았죠.

그의 숭고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 열악한 노동현실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안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저임금과 장시간 중노동에 시달리며,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받지 못한 채 일하다 목숨을 잃곤 합니다.

점점 희미해져가는 노동존중사회에 대한 희망에 숨을 불어 넣어 줄 새로운 노동정책이 필요한 때, <투데이신문>은 ‘우리가 바라는 근로기준법’을 기획했습니다.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한 시민들께서 ‘내가 바라는 근로기준법’ 게시판에 손수 남긴 의견들을 토대로 실제 노동현장 최전선에 있는 노동자들이 원하고 바라는 노동정책을 고찰해보고자 합니다.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한 시민들이 ‘내가 바라는 근로기준법’ 게시판에 남긴 글 ⓒ전태일기념관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한 시민들이 ‘내가 바라는 근로기준법’ 게시판에 남긴 글 ⓒ전태일기념관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어떻게 쉴 틈 없이 일만 할 수 있나요”

아무리 체력 좋은 슈퍼맨일지라도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만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겁니다.

때가 되면 끼니도 챙겨야 하고, 연속적인 업무로 쌓인 피로를 조금이나마 덜어내기 위해 숨 돌릴 틈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근로자의 휴게시간을 법으로도 보장하고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제54조에 따르면 회사 구성원에게 4시간마다 30분 이상의 휴게시간을 근로시간 도중에 부여해야 한다. 8시간인 경우에는 1시간 이상입니다. 그리고 이 시간은 회사의 지휘나 감독을 받지 않고 근로자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데요, 대분의 기업에서는 ‘점심시간’이라는 이름으로 휴게시간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휴게시간은 근로시간에 미포함입니다. 즉, 점심을 먹거나 쉬는 동안에는 급여가 책정되지 않는다는 의미죠. 때문에 사실 일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휴게시간에 일을 하는 근로자들은 많습니다.

알바몬이 지난해 7월 공개한 아르바이트 근로자 191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휴게시간 현황’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7.5%만이 ‘근무 중 온전하게 쉴 수 있는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온전히 쉴 수 없다’ 31.8%, ‘휴식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26.6%에 달했습니다. 10명 중 6명은 휴게시간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업종에 따라서는, 온전하게 쉴 수 있는 휴게시간이 주어지는 직종은 사무직(53.8%)과 생산/제조(51.4%), 주방/조리(50.0%)가 가장 많았습니다. 반대로 휴게시간이 없다는 직종은 매장관리/판매(34.1%)와 편의점/PC방(33.3%) 등 서비스업이 가장 많았습니다.

미용서비스업에 종사하는 A(25)씨는 “시간 단위로 손님이 몰아칠 때는 휴식은커녕 밥도 제대로 먹을 시간이 없다. 밤늦게 퇴근해 한번에 몰아서 먹다 보니 소화가 안되기는 부지기수”라며 “화장실 갈 시간도 부족해 평소 좋아하는 커피도 끊었다. 특히나 월경 때 그렇게 곤혹스러울 수 없다. 난처한 상황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휴게시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직종 중 하나는 바로 택배업입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택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산업안전보건감독과 업무여건 실태조사를 발표했습니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택배기사의 점심 식사 등 하루 휴게시간은 30분 미만이라는 응답자가 88.8%로 대부분이었다.

업무 중 점심 식사 횟수는 ‘주 1일 이하’가 41.2%로 가장 많았고, 2∼3일(28.1%)이 뒤를 이었습니다. 또 점심 식사 장소는 업무용 차량이 39.5%로 가장 많았고 편의점 23.3%, 식당 11.9%, 서브 터미널 9.8% 순으로 조사됐습니다.

숨 돌릴 시간은커녕 밥 한끼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고 죽어라 일만 하는 셈입니다.

이러한 문제가 부각되자 쿠팡에서는 지난해부터 ‘배송 앱 셧다운’이라는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1시간 동안 배송 앱에서 ‘배송 완료’ 버튼을 누르는 기능을 중지함으로써 휴게시간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입니다.

그러나 배송 앱 셧다운 제도가 현장에서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사실 의문입니다. 휴게시간을 감안해 할당되는 배송 물량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휴게시간에 쉬면 퇴근 시간 이후에까지 일을 해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죠.

실제 지난 3월 서울 송파구의 한 고시원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쿠팡 택배 노동자와 관련해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사망한 택배노동자는 근무시간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물량을 처리하도록 쿠팡에 강요당했다”며 “1시간인 무급 휴게시간마저 제대로 못 쉬고 일을 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휴게시간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것은 근로기준법 제110조 제1호에 근거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위법사항입니다.

때문에 만일 휴게시간 중 노동이 이뤄진다면 이에 대한 대가가 임금으로써 반드시 보상돼야겠지요. 

일례로 지난 3월, 법원은 서울 모 아파트 전직 경비원들이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휴게시간 근무에 따른 미지급 임금을 돌려달라는 취지로 제기한 소송 2심에서 경비원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경비원들은 휴게시간을 포함해 사실상 24시간 경비실에서 무전을 통해 수시로 지시를 받으며 택배 보관, 재활용품 분리수거, 주차 관리 등 일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재판부는 휴게시간의 총량만 존재했을 뿐 단체협약·근로계약서 등 어디에도 명시된 바가 없었다며, 휴게시간은 실질적인 휴식과 자유로운 시간 이용이 보장되지 않았고 피고의 지휘·감독을 받았기 때문에 근로시간으로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휴게시간은 사업주의 ‘배려’가 아닌 근로자의 ‘권리’입니다. 근로자가 피로 회복을 통해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시간이라는 의미에서 기업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시간입니다.

근로자들의 휴게시간을 ‘일하지 않고 노는 시간’이 아닌 ‘더 나은 업무를 위한 투자’라는 마인드가 사업주들에게 싹트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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