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청각장애인 고용·양성 기업 플립(FLIP)
장애인 산업 현장 대부분 이·공계열에 몰려있어
꽃과 관련된 수어 없어 단어 조합해 만들기도
청각장애인 플라워샵 어디서든 만나보길 바라

플립(FLIP) 박경돈 대표와 고운지 플로리스트 팀장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다미 기자】 구독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기업 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그중 꽃 정기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벤처기업 플립(FLIP)이 눈에 띈다. 이곳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청각장애 플로리스트 세 명과 함께 꽃다발을 만들어 배송한다는 점이다. 청각장애인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폭이 좁은 가운데 플립은 청각장애인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화훼산업을 선택했다. 청각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시야가 1.5배 넓고, 시각 정보 습득이 빠르기 때문에 플로리스트의 자질이 뛰어나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섞여 꽃으로 소통하는 플립의 목표는 화훼산업 1위가 아닌 함께 일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투데이신문>은 플립의 박경돈 대표, 고운지 플로리스트 팀장과 청각장애 플로리스트 백지혜씨를 만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경돈 대표 ⓒ투데이신문

이명 경험한 뒤 청각장애에 관심 가져

예비 사회적 기업 플립(FLIP)은 Flower(꽃)와 Leaf(잎)의 합성어로 청각장애 플로리스트가 “꽃잎으로 전하는 이야기”로 작은 변화를 만들어 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변화를 이끌기 위해 정기구독자 300명당 1명의 청각장애 플로리스트를 직접 고용하고 있다.

플립의 박경돈 대표는 장교로 근무할 당시 이명 치료를 받은 경험 때문에 청각장애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때부터 청각장애에 대해 찾아보고, 정부에서 지원하는 직업교육을 조사하며 직업 현장의 문제점을 발견했다. 장애인 직업이 이·공계에 몰려있어 여성 청각장애인의 직업교육 수료 비율은 20% 내외에 불과하고, 수료하더라도 취업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현실임을 알게 됐다.

박 대표는 “산업 현장에 가면 대부분 이·공계열 쪽에 직업군이 몰려있다. 이런 곳은 여자 화장실조차 없고 고용주는 (여성 고용) 의지가 약하다. 이 상황에서 여성 청각장애인의 고용의지가 낮다고 하는 건 사회적 폭력이라고 생각한다”며 “플로리스트는 직업 만족도가 높고, 청각장애인이 업무를 진행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해 고용하게 됐다”고 청각장애인 고용 이유를 밝혔다.

플립은 플로리스트 교육 진행 후 올해 청각장애인 3명과 근로계약을 체결했고, 교육 사각지대의 세계 아동을 도와주는 세계교육문화원과 협약을 맺어 청각장애인 플로리스트 추가 교육을 오는 10월에 진행할 예정이다.

ⓒ투데이신문
고운지 플로리스트 팀장 ⓒ투데이신문

“청각장애 플로리스트 색감 보는 능력 탁월”

플로리스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능력은 색감을 보는 능력이다. 꽃의 색 조화와 배치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청각장애인 플로리스트와 일반인 플로리스트의 플라워 작품은 차이가 없다. 오히려 청각장애 플로리스트의 색감 활용 능력과 배치 선택이 뛰어나다. 청력이 약하거나 안 들려 시각적으로 예민하기 때문이다. 고운지 플로리스트 교육팀장은 “플로리스트로서 감각이 청각장애인에게 뚜렷하게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고 팀장은 한 수업당 최대 6명의 청각장애인과 플라워 교육을 진행한다. 수업을 진행할 땐 수어 통역사나 속기사를 고용하거나 간단한 수어 같은 경우 직접 구사해 의사소통한다.

그는 “꽃에 관한 수어가 없다. 예를 들어, 플로랄폼(물을 흡수해 꽃에 물을 주고 고정하는 도구) 단어에 대한 수어가 없어 ‘물’과 ‘흡수’ 수어를 합쳐 단어를 만든 적이 있다. 수어를 만드는 과정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교육 진행 당시의 에피소드를 회상했다.

지난 3월부터 플립의 직원이 된 플로리스트 백지혜 씨는 “편견 때문에 청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직업의 선택폭이 좁아 직업 경험을 쌓고 진로를 결정하기 어려웠다”면서 “플립에서 플로리스트로 일할 수 있어 만족스럽고 직원들은 절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보지 않고 그대로 봐줬다. 부족한 점이나 필요한 지식을 가르쳐줘 많이 배울 수 있었다”며 직업에 대한 만족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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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일하는 문화 선도하는 기업이 될 것”

백씨는 언제, 어디서든 청각장애인이 운영하는 플라워카페나 플라워샵들을 쉽게 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는 더불어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청각장애인에게 “꿈을 이루기 위해 배우는 과정 중 장애에 대한 편견 때문에 힘들겠지만 있는 자리에서 버티고 노력하다 보면 청각장애인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며 “직업 선택 폭이 넓어지고, 지금보다 좋아질 수 있다. 앞으로는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 현장에서 비장애인들과 일하는 것이 더 편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응원했다.

사회적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는 연민이라는 편견 안에서 구매되는 경향이 있다. 플립은 그런 시선에서 벗어나 좋은 상품과 서비스로 고객에게 만족을 주는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또한, 화훼산업 1위 대신 플립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은 장애뿐만 아니라 성별, 인종, 학력과 관계없이 함께 일을 잘하는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런칭한 플립을 시작으로 다양한 직업 모델을 개발해 업종을 넓혀갈 계획이다.

박 대표는 “같이 일하는 문화를 선도하는 기업이 되고 싶다. 현재 플로리스트 직업 모델 하나를 개발했지만, 앞으로는 청각장애인 바리스타, 네일 아티스트 등 다양한 직업을 개발하고 싶다”며 “청각장애인이 실무만 하는 것이 아닌 관리자로서 자질이 있다는 점도 보여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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