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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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최근 기업, 공공기관, 심지어는 연예인·방송인까지 손가락 모양을 이유로 ‘메갈’이라는 낙인이 찍혀 공격을 받고 있는 가운데 비정부기구(NGO)인 어린이 지원단체에까지 페미니즘을 이유로 백래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한 남초사이트(남성 이용자가 많은 사이트)에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하 초록우산)이 페미니즘 교육을 후원한다’면서 후원을 끊겠다는 압박이 이어졌습니다. 지난 2018년 페미니즘 도서를 다룬 책모임 ‘페미-수다’ 모임이 초록우산이 운영하는 어린이도서관에서 열린 점, 같은 해 한 여성단체의 행사 현수막에 초록우산이 주관단체로 이름을 올린 것 등을 문제 삼았습니다.

이는 후원금에 의존해 운영되는 비정부기구의 성격을 이용해 공격한 것입니다. 초록우산은 후원을 중단하겠다는 목소리가 나오자 해명에 나섰습니다.

초록우산은 지난 21일 홈페이지를 통해 “어린이도서관 건은 공공도서관으로서 독서동아리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책모임을 위한 장소제공으로 참여한 바, 해당 모임과는 관계없음을 안내 드린다”고 밝혔습니다.

행사의 주관단체로 이름을 올린 것에 대해서는 “해당 행사는 2018년 10월 20일 진행된 ‘2018 대한민국 시민 in 학생축제’로, 교육부 주최, 초록우산, 한국교육개발원, 충청남도교육청, 세종특별자치시교육청 주관으로 진행됐다”면서 “행사에서 운영된 전체 부스 중 초록우산은 놀이 및 권리체험, 정책 부스를 담당해 운영했으며, 게시글 사진 속 부스는 초록우산과 무관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초록우산의 모든 사업은 UN아동권리협약을 기준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정치·종교·인종·성별에 따른 편향성을 가지지 않고 아동의 건강한 성장을 돕기 위해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초록우산의 이 같은 해명은 또 다른 비판을 받았습니다. 초록우산이 홈페이지에 해명하기 전인 지난 20일, 최초로 초록우산을 비난한 글이 게시된 남초사이트에 먼저 해명글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또 “성별에 따른 편향성을 가지지 않았다”는 해명과는 달리 “해당 모임·부스와는 전혀 관계없다”고 선을 긋는 태도를 보인 점에 대해서도 비판이 이어집니다. 초록우산이 정말 편향성을 가지지 않았다면 해당 단체와 관계가 없다고 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준에 맞춰 공정하게 부스운영 참가 단체를 선정했다고 밝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페미니즘과 거리를 두며 자신들의 공정함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백래시에 굴복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백래시는 페미니즘이 주요 사회의제로 부상하면서 빈번하게, 그리고 강력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최근 기업 홍보물의 ‘손가락 모양’으로 시작된 ‘메갈’이라는 공격은 기업, 공공기관 등 사회 전반으로 번졌습니다. 심지어는 누구나 일상에서 사용하는 손모양을 가지고 여성 연예인에 대해 “의도적인 손 모양이다”, “메갈이다”라고 공격하며 ‘반(反)페미니즘 선언’을 압박하는 모양새입니다.

이는 ‘반페미니즘‘이 ’이대남(20대 남성)’의 주된 의견이라고 확대해석을 하면서 이에 집중하려는 정치권의 움직임에서도 나타납니다.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은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혐오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아주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 차별이고 혐오인지 모르는 사회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해요. 사실 여성혐오에 등치되는 남성혐오는 존재하지 않아요. ‘남성은 잠재적 성범죄자다’, ‘남성이 두렵다’는 고정관념이나 감정의 영역까지는 가능할 수 있지만, 그걸 이유로 남성이 차별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잖아요. 고정관념과 편견에 기반한 차별과 억압, 폭력까지 다 포함된 것을 혐오라고 하는데, 남성에 대해서는 아무리 남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남성 차별과 억압의 영역으로 넘어가지는 않아요. 혐오와 차별이 뭔지 모르기 때문에 엉뚱하게 손가락 모양을 문제 삼는 현상이 생긴다고 봐요.”

김 소장은 또 자신이 받고 있는 차별의 원인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는 것도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다른 영역의 문제를 젠더이슈로 가져와 논쟁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축은 내가 받고 있는 차별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이에요. 남성도 차별을 경험하는데, 그게 성별 때문이 아니라 학력, 학벌, 경제력, 고용형태 등을 이유로 발생하는 거죠. 자본이 노동자를 쉽게 착취하는 구조 안에서 차별을 당하는 거죠. 남성이 착취를 당하는 게 아니라 노동자가 착취를 당하는 거예요. 노동문제로 풀어야 할 현상을 성별의 문제로 가져오는 거죠.”

김 소장은 초록우산의 해명도 혐오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해 생긴 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남초사이트에서 ‘페미니즘은 남혐’이라고 주장하니까 ‘우리는 여험도 남혐도 상관없는 단체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데, 남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정확히 알았다면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었겠죠. 혐오가 뭔지 모르고, 여험과 남혐이 동등한 혐오라고 생각하는 게 드러난 거예요.”

그러면서 그는 언론과 정치권이 이 같은 주장을 받아 이들을 정치세력화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남초사이트에서 이 같은 주장이 제기되는 등 백래시가 강하게 발생하는 현상을 두고 20대 남성이 페미니즘에 반대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고도 말했습니다.

“실제로 20대 남성 40~50%가 남성이 더 차별받는다고 생각한다고 해도, 나머지 50~60%는 그렇지 않아요. ‘이대남’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서 20대 남성이 다 페미니즘에 반대한다고 여기는 건 문제가 있어요. 물론 일자리 문제나 산업재해 등 20대 남성의 분노에는 정당한 지점이 있어요. 그러나 그것이 노동문제고 정치문제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는 관점을 길러주지 않은 것이 더 큰 문제예요. 정치권이 진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여성, 이주민 등 비난할 수 있는 존재를 설정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이 문제지, 20대 남성 전반의 문제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즘에 대해 강도 높은 백래시가 발생하는 것은 페미니즘 운동이 이뤄지는 모든 사회에서 겪어 온 현상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당연히 겪어야 할 수순’이라고 여기기에는 우리 사회가 겪어야 할 피해가 큰 것 같습니다. 백래시를 이겨내기 위해 언론과 정치권, 사회 전반에서 혐오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차별이 이뤄지는 구조를 파악할 수 있도록 논의와 교육이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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