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해고승무원] ‘사법농단’이 앗아간 노동자의 삶
‘선로 위의 꽃’으로 불리며 높은 경쟁률 뚫고 선발
비정규직 채용 후 정규직 전환 약속 어긴 철도공사
한국 사회의 비정규직·여성 노동자 차별 담은 사례
투쟁 기사에 외모품평 댓글, 여성노동자 차별 가중
12년 투쟁기간 동안 또다시 비정규직 전전하기도

지난 2018년 7월 21일 철도 노사가 KTX 해고 승무원 복직에 합의한 뒤 서울 용산구 서울역에서 해고 승무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시스
지난 2018년 7월 21일 철도 노사가 KTX 해고 승무원 복직에 합의한 뒤 서울 용산구 서울역에서 해고 승무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여성노동자 투쟁의 역사는 비정규직 투쟁과 궤를 같이 한다.

12년의 투쟁 끝에 승리해 복직한 KTX 해고승무원들의 투쟁 역시 비정규직 계약으로 인해 시작됐다.

지난 2004년, KTX 개통을 앞두고 채용된 KTX 승무원들은 ‘선로 위의 스튜어디스’라고 불리며 13대 1이 넘는 경쟁률을 통해 선발됐을 만큼 많은 주목을 받았다. KTX 승무원은 처음부터 여성을 대상으로만 채용공고가 났다. 대부분은 스튜어디스를 준비하던 이들이었다. KTX 해고승무원으로 투쟁 끝에 복직한 전국철도노동조합 김승하 대외협력국장은 당시 여성을 대상으로 채용이 이뤄지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는 보통 ‘승무원’, ‘스튜어디스’라고 하면 여성이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죠. 물론 항공사 스튜어드가 있긴 하지만 소수이기도 하고. KTX 승무원을 여성만 모집한다고 했을 때 아무도 의문을 갖지 않았어요.”

외모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승무원의 특성상 지금은 문제가 될 수 있는 복장 규정에 대해서도 큰 문제의식이 없었고, 스스로도 ‘선로 위의 꽃’으로 여겨지는데 큰 거부감이 없었다고도 했다.

“승무원 하려면 외모도 봐야 하고, 머리 스타일이나 립스틱 색깔도 정해져 있고, 구두 굽은 몇 센티미터고, 귀걸이는 딱 붙는 걸 해야 하고, 이런 게 다 성차별이거든요. 그때는 그걸 너무나 당연하게 인식했기 때문에 차별이나 억압이라고 생각을 못 했어요. 나중에 교육을 받으면서 ‘아, 이게 잘못된 거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죠. 비상상황이 생기면 비상사다리 설치하고 승객 구조해야하는데 딱 달라붙는 스커트, 스타킹, 굽 있는 구두를 신고 구조를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장식품밖에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다른 직군에 있는 여성들보다 저희 KTX 승무원들이 성인지 감수성에 둔감한 것 같아요. 워낙 ‘꽃’으로 인식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

KTX해고승무원 문제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와 철도노조 코레일관광개발지부 서울·용산·익산·부산지부, KTX열차승무지부가 지난 2018년 4월 5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에서 KTX 안전을 위한 승무원 직접고용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KTX해고승무원 문제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와 철도노조 코레일관광개발지부 서울·용산·익산·부산지부, KTX열차승무지부가 지난 2018년 4월 5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에서 KTX 안전을 위한 승무원 직접고용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예견된 KTX 승무원들의 투쟁

KTX 승무원들의 투쟁은 최초 채용 단계에서부터 이미 예견된 수순이었다. 승무원들은 철도청이 아닌 홍익회(열차 내 가판사업, 역사 내 매점 등을 운영한 철도청 퇴직자들로 구성된 법인)를 통해 채용됐다. 홍익회는 승무원들을 정규직이 아닌 1년 계약직으로 채용했다. 당시 철도공사로 전환을 앞둔 철도청이 공무원 TO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홍익회를 통해 단기 계약직으로 우선 채용한 뒤 철도공사로 전환되면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는 것이었다.

KTX 해고승무원으로 투쟁 끝에 복직한 전국철도노동조합 김승하 대외협력국장은 당시 철도공사 직원이 된다고 생각하고 지원을 했다고 한다.

“KTX 승무원을 모집한다고 해서 당연히 철도공사 직원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면접 볼 때도 철도공사 직원들이 있었고, 합격 후 철도공사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았고, 철도공사 직원들이 교육을 진행했어요.”

“저희가 채용될 당시에는 철도청 시절이었어요. 2004년이 KTX 개통이었는데, 2005년에 철도청이 철도공사로 전환됐어요. 그래서 당시에 ‘철도청에서 일을 시작하면 공무원이 돼야 하는데, 철도공사 전환을 앞둔 상황이라 공무원 TO가 없다. 내년에 공사로 전환이 되면 정규직으로 채용될 거고, 지금은 임시방편으로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거다’라는 설명을 들었어요. 저희도 'KTX 1년만 운행하고 말 것도 아닌데, 당연히 내년에 정규직으로 채용되겠지‘라고 생각했죠.”

당시 철도청은 1년 후 승무원들에게 정규직 전환을 약속하고 항공사 스튜어디스 수준으로 대우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철도공사는 KTX 승무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고 한국철도유통의 정규직으로 채용해 파견되는 형태로 고용했다.

이에 KTX 승무원들은 정규직 채용을 요구하며 투쟁에 돌입하게 된다.

KTX 승무원들은 2005년 후반기부터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뱃지, 어깨띠를 착용하고 승객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며 투쟁을 시작한다. 2006년 2월 25일부터는 사복을 입고 승무업무를 하는 ‘사복 투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달 28일 노사 협상에서 정규직 전환이 무산되면서 그해 3월 1일부터 한국철도공사 총파업에 맞춰 파업에 돌입한다.

철도공사 총파업은 경찰의 강경진압, 철도공사의 대규모 직위해제 조치로 인해 4일만에 끝나게 된다. 그러나 KTX 승무원들은 자체적으로 투표를 실시해 조합원 83%의 찬성으로 파업을 지속한다.

철도공사는 승무원들에게 2006년 5월 31일까지 업무에 복귀할 것을 최종 통보했다. 그러나 승무원 일부만이 철도공사의 자회사인 KTX 관광레저에 정규직으로 채용돼 복귀했을 뿐 상당수의 승무원들은 복귀를 거부했다. 이들은 자동으로 계약이 해지돼 해고상태가 됐다.

KTX 해고 승무원을 비롯한 종교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2017년 9월 21일  KTX 해고승무원 복직을 촉구하며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서울역을 향해 오체투지 행진을 하고 있다. ⓒ뉴시스
KTX 해고 승무원을 비롯한 종교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2017년 9월 21일 KTX 해고승무원 복직을 촉구하며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서울역을 향해 오체투지 행진을 하고 있다. ⓒ뉴시스

안 해본 투쟁이 없다

이후 해고된 승무원들은 12년간 삭발, 단식, 고공농성, 오체투지, 심지어 쇠사슬로 몸을 묶는 등 ‘안 해본 투쟁이 없다’고 할 정도로 많은 투쟁방법을 동원해 싸웠다.

“2006년 5월에는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실, 당시 서울시장선거 후보 사무실을 점거하기도 했고, 그해 9월에는 당시 KTX 열차승무지부 민세원 지부장이 삭발을 하고 단식농성에 들어갔어요. 2007년 7월에는 서울역에서 다시 단식농성을 했어요. 다음해 8월에는 해고승무원 3명이 서울역에서 고공농성을 하기도 했고, 그해 9월 추석연휴에는 해고승무원 20명 정도가 서울역사 내에서 쇠사슬로 몸을 묶고 연좌 침묵시위를 했어요. 안 해본 투쟁이 없어서 ‘어떻게 하면 효과적일까’ 고민을 많이 했죠.”

해고승무원들은 ‘외모가 출중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편견에 시달리거나, 부당한 비난을 마주하기도 했다.

“KTX 개통 당시 승무원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다 보니까 투쟁할 때도 굉장히 언론에 많이 소개된 편에 속해요. 젊은 20대 여성이고, 또 나름 외모가 된다고 하는 애들을 뽑아놨고, 다들 키도 크고. 그런 애들이 우르르 몰려있는 게 굉장히 생소한 그림이잖아요. 그런 상황 자체가 워낙 시선을 끄는 그런 환경이기 때문에 투쟁할 때 언론에 굉장히 많이 소개된 편에 속해요.

그런데 20대 아가씨들이 모여있는 노조다 보니 다른 단위에서 연대하는 것을 사람들이 음흉하게 보기도 했어요. 연대하는 단위 조합원들이 ‘너희 그 여자애들 보러 가는 거냐’라는 비꼬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해서 오해받기 싫어서 연대하지 못한 분들도 있었고요.

해고승무원 투쟁 보도에서도 저희 사진이 실리면 ‘어느 항공사 승무원보다 못생겼다’는 등 외모를 품평하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어요.”

KTX 해고승무원의 투쟁은 비정규직과 여성노동자 차별의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끌어올렸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여성만 KTX 승무원으로 분리 채용해 비정규직으로 위탁고용한 것은 성차별’이라며 철도공사에 개선을 권고하기도 했다.

KTX 해고승무원과 철도노조가 지난 2015년 9월 18일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KTX승무원 파기환송 2차 심리, 공정한 판결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시스
KTX 해고승무원과 철도노조가 지난 2015년 9월 18일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KTX승무원 파기환송 2차 심리, 공정한 판결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시스

4번의 재판으로 좌절된 투쟁

해고승무원들은 2008년 11월에 철도공사를 상대로 해고 처분은 부당하다며 소송과 함께 ‘근로자지위 보전 및 임금지급 가처분’ 신청을 냈다.

2008년 12월 서울중앙지법은 KTX 해고승무원들을 고용한 철도유통은 철도공사가 지분을 100% 보유한 자회사라며 “철도공사는 승무원들로부터 근로를 제공받고 임금수준을 포함한 제반 근로조건을 정했다고 봐야 한다”면서 “KTX 승무원들과 철도공사 사이에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됐다고 본다”며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해고승무원들의 근로자지위를 인정하고 본안(무단해고 소송)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매월 임금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그리고 2010년 9월 서울중앙지법은 해고승무원들이 철도공사(코레일) 직원에 해당하고, 해고승무원들에게 미지급한 임금 30개월분과 복직할 때까지의 임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철도공사는 항소했으나 이듬해 8월 서울고법은 철도공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해고승무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뒤집히게 된다. 대법원은 2015년 2월 “코레일과 승무원 사이에 직접 근로관계가 성립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 “근로자 파견계약 관계에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이후 해고승무원들은 1심 승소 후 코레일에서 지급받은 4년치 임금에 이자까지 더해 반환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반환금은 1인당 1억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해고승무원 가운데 한 명은 “아이에게 빚만 남겨 미안하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울고법은 2015년 11월 대법의 파기환송 이후 이뤄진 파기환송심에서 “해고승무원들이 코레일과 종속적인 관계로 코레일이 임금을 지급하는 주체이자 근로 제공의 상대방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해 코레일의 손을 들어줬다.

KTX 해고 승무원들이 지난 2018년 5월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김환수 대법원장 비서실장과 면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KTX 해고 승무원들이 지난 2018년 5월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김환수 대법원장 비서실장과 면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사법농단 의혹에 되살아난 희망 

파기환송심 이후 진전이 없던 이들의 투쟁은 2017년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이 제기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부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정부와 국가적·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에 대한 의견을 교류하고, 청와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양승태 사법부는 KTX 해고승무원 재판 등 주요 재판을 청와대의 의견에 따라 판결하고 상고법원 도입을 받아내려고 했다.

2018년 5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 청와대와 물밑에서 교감하며 KTX 해고승무원 사건, 철도노조 파업 사건 등 판결을 청와대의 의견에 따라 판결했다.

이 같은 사법농단 의혹은 10년 넘게 투쟁을 이어오던 해고승무원에 대한 여론을 환기하며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사법농단 의혹이 처음 제기되던) 당시 촛불 국면이었고,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될 것 같은 분위기였어요. 그래서 투쟁 강도를 높이자는 의견을 모아 서울역에 농성천막을 설치했어요. 농성천막을 치고 이틀인가 사흘 뒤에 KTX 해고승무원 재판거래 기사가 나왔어요. 그렇게 해고승무원의 투쟁이 많은 관심을 받게 되고 철도공사랑 면담이 이뤄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2018년 7월 철도노조와 한국철도공사는 해고승무원 180여명의 복직에 합의했다. 그해 11월 28명이 1차 복직을 했고, 이듬해 7월 60명이 2차로 복직을 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50명이 3차로 복직을 하면서 해고승무원들의 투쟁은 승리로 끝나게 됐다.

전국철도노조 김승하 대외협력국장이 지난 5월 20일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전국철도노조 김승하 대외협력국장이 지난 5월 20일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노동투쟁,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

하지만 180명이 모두 복직한 것은 아니었다. 투쟁기간 동안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시작한 이들도 있었고, 복직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이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180명이 복직 대상이긴 했는데, 다 복직한 건 아니에요. 투쟁기간이 10년이 넘어가다보니 다른 직장에서 훌륭하게 자리 잡은 경우도 있었고, 창업을 한 사람도 있고, 결혼이나 이민 등으로 복직할 수 없는 사람도 있었어요.”

복직을 한 이들 가운데는 투쟁기간 동안에도 여전히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오거나 프리랜서, 전업주부로 살았던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프리랜서 서비스 강사로 일하는 친구들이 가장 많았던 거 같아요. 마트 캐셔나 가정주부로 살던 친구들도 있고요.”

김승하 국장은 12년간의 투쟁 끝에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해고승무원들의 단합이 굉장히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해고승무원들은 굉장히 수평적인 구조로 의사를 결정했어요. 조를 편성해서 탑 다운(top-down)방식으로 간부들이 조장들에게 의견을 전달하면 각 조에서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아서 바텀 업(bottom-up) 방식으로 의견을 취합해요. 그렇게 모든 구성원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기적으로 잘 움직인 거죠.”

그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곱지 않은 시선을 받던 때 여성으로서 장기간 투쟁에 나설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06년 3월 1일 처음 투쟁을 시작하고 3·8 여성의날이 됐을 때 기륭전자가 투쟁 100일을 맞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 때는 ‘이걸 어떻게 100일을 할 수 있지’ 했어요. 그런데 막상 복직하기까지 12년이 걸렸잖아요.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사회구조에서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고, 막상 ‘내 일’로 닥치면 다 하게 되더라고요.”

김승하 국장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차별은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KTX 승무원들의 경우 불특정 다수의 승객을 상대하고 또 사고의 가능성이 있어서 위험에 노출돼 있는데, 위험을 외주화하는 거잖아요. 그러면서 회사는 ‘언제든지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어’라고 압박하면서 고분고분 말 잘 듣는 노동자로 만드는 거예요. 순응하게 만드는 거죠.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차별은 일맥상통해요. 여성노동자 비율이 높은 비정규직 구조에서는 성별, 비정규직의 차별이 가중되는 거죠.”

오랜 투쟁 끝에 복직하며 승리를 쟁취한 KTX 해고승무원들은 한국 사회의 비정규직 차별 문제, 여성노동자 차별 문제를 모두 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들의 투쟁을 발판삼아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노동자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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