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 A 중사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이 조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6일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 A 중사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이 조문을 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상사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한 공군 중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한 이후 군 내 성폭력 사건이 잇따라 폭로되고 있습니다.

지난달 22일, 공군 제20전투비행단에서 여군 A 중사가 상급자 남군 장모 중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A 중사는 지난 3월 장 중사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해 이를 상관에게 알리고 청원휴가와 부대 전출을 요청했습니다. 공군 군사경찰은 신고 후 이틀 만에 피해자에 대한 조사를 했고, 신고 14일 후 가해자 장 중사를 조사했습니다. 이후 4월 7일 군사경찰은 장 중사를 강제추행 혐의로 군검찰에 송치했습니다.

A 중사는 4월 19일부터 30일까지 서산시 성폭력상담소에서 상담을 받고 정신과 진료를 받았습니다. 서산시 성폭력상담소는 4월 30일 ‘자살 징후가 없고 상태가 호전돼 상담 종결이 가능하다’고 판단해 A 중사와의 대면상담을 종료했습니다.

A 중사는 청원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뒤 다른 부대로 전출됐으며, 5월 21일 군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었으나 국선변호사와 통화해 군검찰 조사 일정을 6월 4일로 연기했습니다.

그리고 A 중사는 5월 22일 오전 8시경 야간 근무를 마치고 관사로 돌아온 남편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A 중사의 유족은 부대에서 성추행 사실을 인지하고도 즉각적인 조사에 나서지 않았고, 조직적으로 A 중사와 남편을 회유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밖에도 공군에서 여군을 상대로 불법촬영을 저지른 남군 간부가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공군 제19전투비행단에서는 지난 5월 초 제19전투비행단에서 여군을 상대로 불법촬영을 한 남군 하사가 현행범으로 적발됐습니다. 군사경찰은 가해자의 USB와 휴대전화를 포렌식해 불법촬영물을 확인했습니다.

군인권센터는 “다수의 제보자에 따르면 가해자는 여군 숙소에 무단 침입해 피해자들의 속옷을 불법촬영했고, 심지어 신체를 불법촬영한 경우도 있다”며 “가해자의 범죄사실이 알려지면서 두려움에 떠는 여군들이 많은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소속부대는 가해자의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전출시킬 부대도 마땅치 않다는 이유로 피·가해자 분리도 하지 않고 있다가 사건 식별로부터 1개월이 다 돼서야 가해자를 피해자와 마주치지 않을 곳으로 보직을 이동시켰다고 한다”면서 “피해자가 다수이고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며, 피해가 어느 정도로 확산될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군사경찰이 이 사건 가해자를 동일 부대에서 계속 근무하도록 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습니다. 군인권센터는 가해자가 군사경찰이기 때문이라며 “전형적인 제 식구 감싸기”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이 사건과 관련해 수사를 담당한 군사경찰이 피해자를 성희롱했다는 주장도 폭로됐습니다.

군인권센터는 지난 8일 제보자들을 인용해 제19전투비행단 수사계장이 불법촬영 사건 피해자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들에게 “가해자가 널 많이 좋아했다더라”, “많이 좋아해서 그랬나보지”, “호의였겠지”라는 말을 하고, 심지어 “그런 놈이랑 놀지 말고 차라리 나랑 놀지 그랬냐. 얼굴은 내가 더 괜찮지 않냐”라고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수사계장이 조사 과정에서 가해자를 지칭하며 “걔도 불쌍한 애다”, “가해자도 인권이 있다”면서 가해자를 옹호했고, 피해자들이 추가 피해 사실을 밝히자 “(가해자를) 죽이려고 그러는구나”라며 협박하며 피해자를 회유하기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군인권센터는 “제보자들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한 목소리로 공군의 수사를 더 이상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고 한다. 기본적인 성인지감수성조차 없고 사건의 심각성도 느끼지 못하는 수사관들을 믿고 진술하기 어렵다는 것”이라며 “제19전투비행단 군사경찰대 수사 관계자들을 수사 업무에서 즉시 배제하고, 신속한 수사를 통해 책임 여부를 가려 엄벌함과 동시에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밖에도 군대 내 성폭력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육군에서는 지난 2013년 남군 상관에게 성폭력을 당한 뒤 세상을 떠난 여군이 있었습니다. 해군에서는 2017년 남군 장교에게 성폭력을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군이 있었고, 2018년에는 남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이 있었습니다.

군은 이 같은 성폭력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성폭력 근절대책을 발표하지만 여전히 군대 내 성폭력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군에서 성폭력 사건이 반복되는 이유는 내부 구성원 모두가 가해자를 옹호하기 때문입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앞서 언급된 제19전투비행단 불법촬영 사건 가해자는 지난 2020년에도 유사한 범행으로 적발된 바 있지만, 당시 군사경찰은 피해자의 주의 조치 요구에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채 넘어갔습니다.

당시 가해자에 대해 엄정하게 조치했더라면 이번 사건은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가해자를 옹호하고 사건을 덮기에만 급급한 군의 문화가 성범죄를 키운 것입니다.

군의 이 같은 대응은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를 신고할 수 없도록 합니다. 지난 2019년 국방부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응답자 가운데 자신의 피해사실을 보고 또는 신고한 비율은 32.7%에 불과했습니다. 보고 또는 신고하지 않은 응답자 44%는 신고하지 않은 이유를 ‘(신고해도)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것 같아서’라고 답했습니다.

군은 권력형 성폭력 처벌 강화와 피해자 보호 등을 위해 ‘성폭력 예방활동 지침’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해자를 옹호하고 조직의 안위만을 생각해 문제를 덮어버리는 분위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지침은 아무런 효과를 거둘 수 없는 빈껍데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지난 6일 문재인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식에서 A 중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안타깝고 억울한 죽음을 낳은 병영문화의 폐습에 대해 국민들께 매우 송구하다”면서 “군 장병의 인권뿐 아니라 사기와 국가 안보를 위해서도 반드시 바로잡겠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습니다.

이보다 앞서 지난 3일에는 “이 문제를 단순히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에서만 보지 말고, 최고 상급자까지 보고와 조치과정을 포함한 지휘라인 문제도 살펴보고 엄중히 처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군 조직문화를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군 중심의 질서가 굳건한 군에서는 성폭력 사건이 발생해도 미온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조직문화에서는 아무리 대책을 내놓는다 해도 한계에 부딪힐 것입니다.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질타를 받고 있는 군이 시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가해자 엄벌 등 철저한 조사와 더불어 환골탈태의 각오로 조직의 체질을 개선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군이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거듭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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