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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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시민들의 지지 속에 차별금지법이 국회의 문턱에 한 발 다가섰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22일만에 10만명의 동의를 얻어 소관위에 회부된 것입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청원이 지난 6월 14일 오후 4시 42분 기준 10만명의 동의를 받아 소관위인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습니다.

이 청원은 지난 5월 23일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등록됐습니다. 자신을 동아제약 신입사원 채용의 성차별 면접 피해자라고 밝힌 청원인은 “제가 ‘평범’을 빼앗김으로써 부도덕한 사회의 얼굴에 새빨간 경고장을 붙이는 ‘비범’한 인간이 될 때, ‘평범’을 빼앗김으로써 다른 의미로 ‘비범’한 인간이 된 사람들이 있다”면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져보지 조차 못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회적 약자인 이주민, 성소수자, 비정규직, 장애인, 저학력, 청소년, 여성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청원인은 “저는 인생의 대부분을 기득권으로 살았다. 유복한 한국인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서울과 해외에서 거주했고,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졸업했으며, 이성애자이자 비장애인이자 정규직이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이 모든 권력이 저의 성별을 이유로 힘없이 바스러지는 경험을 했다. 그때 ‘모든 권력은 상대적이기에 나 또한 언제든 배척과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차별금지법 논의가 시작될 때마다 국회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을 되풀이한다”며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 국민인식조사나 그 외 여론조사를 살펴보더라도 차별금지법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매우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국회가 국민의 인식을 따라오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청원인은 “역사와 연구와 현실이 ‘차별과 혐오의 제거’가 국가 발전의 필수 조건임을 보여줌에도 국회는 자신들의 나태함을 사회적 합의라는 핑계로 외면하고 있다”면서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지적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습니다.

청원이 시작된 이후 SNS에서는 청원 참여를 독려하는 게시물이 수없이 올라왔습니다. 시민들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열망을 담아 SNS를 통해 주위에 청원동의 서명을 독려했고, 그 결과 청원 시작 22일 만에 동의 수 10만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10만명의 동의를 얻은 이번 청원은 소관위에 회부된 뒤 청원심사소위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 부의되는 통상 절차와 달리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심가를 받게 됩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지난해 6월 29일 이미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했기 때문입니다.

법사위는 청원이 회부된 날부터 90일 이내에 심사를 마쳐야 하며, 필요한 경우 최대 60일까지 심사 기간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사위에서 차별금지법이 논의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낙태죄 폐지에 따른 여성의 성·재생산권 보장과 임신중단 의료의 안전성·경제성 보장을 촉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이 지난해 11월 3일과 12월 28일 두 차례 10만명의 동의를 얻어 소관위인 보건복지위에 회부됐지만, 현재까지도 위원회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위원회의 심사를 강제하는 규정이 없어 국회가 기한 내에 심사를 마치지 못해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는 법사위가 차별금지법 논의를 빠르게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국민동의청원 10만명을 달성한 지난 14일 “우리의 힘으로 차별금지법을 국회의 토론장에 올려놓는다”면서 “법사위는 장 의원의 대표발의로 회부된 차별금지법안, 인권위가 권고한 평등법 시안과 함께 지금 당장 토론을 시작하라. 차별금지법 제정이 미뤄지는 상황의 가장 큰 책임은 여당이자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있음을 경고한다”고 밝혔습니다.

정의당은 지난 15일 국회 본관에서 ‘차별금지법 10만서명 보고 및 입법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피해당사자가 직접 청원을 제출했고, 차별금지법 입법을 지지하는 동료시민 9만9999명의 메아리가 이어졌다”면서 “단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평범’을 빼앗긴 수많은 시민들이 시민 모두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힘을 모은 결과”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차별금지법은 발의된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회 상임위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고, 그 책임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 있다”면서 “이제 다시 국회의 시간이다. 21대 국회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염원하는 10만의 목소리에 응답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국민의 88.5%가 찬성하는 차별금지법 논의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평등을 향한 국민들의 열망에 더 이상 ‘사회적 합의’를 핑계 삼아 논의조차 시작하지 않는 것은 공당으로서 최소한의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두 거대 정당이 차별금지법 제정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6일, 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요구에 화답이라도 하듯 ‘평등법’을 대표발의 했습니다. 평등법 발의에는 이 의원을 포함해 민주당 의원 24명이 참여했습니다.

이 의원은 “평등의 원칙은 우리 헌법의 기본가치이자 근본규범”이라며 “헌법 규정에 따라 모든 영역에 있어서 어떤 이유로도 정당한 이유 없이 행하는 차별을 금지·예방하고, 실질적 평등을 구현하는 일반법으로서의 평등에 관한 법률안을 제정해 헌법에서 규정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평등권을 우리사회 곳곳에 실질적으로 구현하고, 차별 예방과 그 피해자에 대한 신속하고 실질적인 구제를 도모하고자 한다”고 평등법 제안이유를 밝혔습니다.

이 의원이 발의한 평등법은 “고용, 재화 용역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 공공서비스의 제공 이용 등 모든 영역에 있어서 정당한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병력(病歷),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ㆍ유전정보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學歷), 고용형태, 사회적신분 등 어떤 사유로도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구별·제한·배제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차별로 규정하고, 모든 사람은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또 직접차별 외에 간접차별, 성희롱,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분리·구별·제한·배제나 불리한 대우를 표시하거나 조장하는 광고 행위 역시 차별로 규정했습니다.

다만 ▲특정 직무나 사업 수행의 성질상 불가피한 경우 ▲현존하는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우대하는 경우 ▲다른 법률 규정에 따라 차별로 보지 않는 경우는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정했습니다.

적용 대상은 대한민국 국민과 이주민이며,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모든 영역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도록 했습니다.

아울러 차별 피해자는 인권위 진정을 통해 구제를 받을 수 있으며, 인권위가 소송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차별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는 배상하도록 하고, 악의적(고의성, 지속성, 반복성, 보복성) 차별로 인정될 경우 손해액의 3배 이상 5배 이하의 징벌적 손해배상액을 정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다만 인권위가 제시한 평등법 시안에 포함된 사업주 처벌 조항은 제외됐습니다.

이 의원은 “평등법은 부당한 차별을 금지하고, 적극적이고 실질적으로 평등을 구현하는 두 개의 축이 있다”면서 “법안 제정은 사회 곳곳의 차별과 부당한 차별을 없애고 실질적 평등을 구현할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민주당은 당내 의견을 모아 당론을 결정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공동발의자인 같은 당 권인숙 의원은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식의 기다림은 안 된다. 결단의 시기가 왔다”고 평등법 제정의 필요를 강조했습니다.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장혜영 의원은 이 의원의 평등법 발의에 “오랜 시간 법안 발의를 위해 애쓰신 이 의원과 참여하신 모든 의원께 진심어린 감사와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라며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도부의 차별금지법 제정 당론 결정과 조속한 법사위 소위 논의 시작을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정의당 오현주 대변인은 “실질적인 피해구제수단이 빠진 부분은 아쉽다”면서도 “이 의원을 비롯한 24명의 의원께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이 의원의 평등법 발의를 환영했습니다.

그러면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당론으로 확정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역시 “차별금지법 제정을 앞당기는 큰 걸음이 되기를 기대하며, 발의를 환영한다”며 “민주당은 국회가 차별금지법에 대한 공감대 위에서 연내 법 제정에 이를 수 있도록 적극적 행동에 나서라”고 촉구했습니다.

10만명이 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국회에 전달됐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당론으로 정한 정의당은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제 차별금지법 제정의 공은 국회로 넘어갔습니다. 모든 이들이 차별 없이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차별금지법이 속히 제정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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