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 그간 청년 노숙인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을 때, 그들은 거리를 전전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이 ‘배고픔’이라 입을 모아 말했다. 일반적으로 노숙인이 배고픔을 해결하는데 있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료급식’일 것이다. 노숙인에 대한 취재를 진행한 기자 역시 본격적으로 취재를 진행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들이 무료급식을 통해 충분히 배고픔을 해결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특히 노숙인에 대한 복지가 비교적 잘 돼있다는 평가를 받는 서울의 경우 더욱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기자의 생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정작 무료급식이 절실한 젊은 노숙인들의 입장은 달랐다. 분명 식사를 제공해주는 무료급식소가 있지만, 그 위치와 배급 시간 등과 같은 정보들은 다른 노숙인들 사이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휴대폰을 갖고 있지 않은 노숙인의 경우 그 정보를 얻기 더더욱 힘들다. 한마디로 노숙인 무리에 소속돼있지 않으면 무료급식과 관련된 정보를 얻기 힘들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그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30대 초반의 젊은 노숙인에게 무료급식의 장소와 시간대가 빼곡히 쓰여진 지도를 받을 수 있냐고 여쭤봤다. 그에겐 그 무엇보다 소중한 보물지도 였기에 매우 조심스러웠다. 그는 지도를 직접적으로 주는 것은 어렵지만 사진 정도는 찍어가도 괜찮다고 흔쾌히 웃어보였다. 그렇게 꼬깃꼬깃 접혀진 노숙인의 보물지도를 처음으로 접했다.

젊은 노숙인의 호의 덕에 27살 기자의 무료급식 받아보기가 시작됐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 노숙인이 직접 만든 노숙인 밥지도’ 하나만 들고 3일간 직접 무료급식을 받아봤다. 서울 곳곳에 위치한 무료급식이지만 이를 받아먹기란 쉽지 않았다. 무료급식소를 찾기 위한 여정 탓에 온몸은 땀으로 뒤범벅됐고 정작, 굶는 날도 있었다. 특히 젊다는 이유로 감수해야만 했던 사람들의 눈초리는 가슴을 더욱 옥죄여왔다.

지금부터 짧은 3일간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노숙인이 어떻게 무료급식을 받아야 하는지를 직접 소개 해보려 한다.

Day① 아침은 종로 3가, 저녁은 굶었다

꾸깃꾸깃 접힌 에이포 용지 위에는 무료급식을 나눠주는 곳이 요일과 시간대별로 빼곡히 적혀있었다. 빵 11am, 종로3가역 해치 옆 우체국. 오늘 아침을 해결할 곳이다. 월요일 이른 아침 노숙인이 건네준 소중한 밥 지도를 토대로 밥 한 끼를 먹기 위해 부지런히 길을 나섰다.

제때 도착하지 않으면 식사를 해결하지 못할 것 같았다. 11시부터 나눠준다고 적혀있었지만 조금 더 서두르기로 했다. 늘 그렇듯 출근 시간 지하철은 많은 사람으로 북적인다. 열차 가득 정장부대 사이 후줄근한 체육복과 슬리퍼 차림의 사내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면 느껴질수록 모자를 더욱 눌러썼다. 이렇게라도 해야 종로3가역까지 마음 편하게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고개를 숙인 채 종로3가역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오전 10시 무렵, 종로3가역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울렸다. 벌떡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출구로 향했다. 하지만 종로3가역 해치 옆 우체국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는 탓에 인근에서 30분가량 길을 헤맸다. 꽤 오랜 시간 길을 찾던 중 저 멀리 길게 늘어선 줄이 보였다. 직감적으로 저 줄이 무료급식을 위한 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자연스럽게 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40분 경이다.

기다란 줄에 합류하기 전 이곳이 무료급식을 나눠주는 곳이 맞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가 무료급식 나눠주는 곳이 맞나요?” 용기 내 물었다. 웬 청년이 무료급식을 나눠주는 곳이 맞느냐 묻는 질문에 담당 직원은 다소 당황한 기색을 띠며 “예, 맞습니다 “ 짧은 한마디로 응수했다. 머쓱할 틈도 없었다. 무료급식을 나눠준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 자연스럽게 그 길고 긴 줄에 녹아들었다.

이미 공원 안에는 족히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밥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줄은 앞서 도착한 사람들보다 늦게 온 사람들이다. 가만히 정면을 응시한 채 내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던 중 이 줄을 관리하던 한 직원이 대뜸 나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여기 밥 받으러 오신 거 맞죠?” 자기 또래와 같이 보이는 내가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듯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흐르는 땀을 닦으며 짧게 “네“라고 대답했다.

시간이 지나도 줄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나는 뒤에 있던 노숙 선배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줄이 언제쯤 줄어들까요? 기다린 지 족히 1시간은 된 듯한데“ 노숙 선배는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받아야 우리 차례가 온다“고 친절히 설명해줬다. 일찍 온 사람들은 밥과 국, 반찬으로 구성된 도시락을 받는다. 나처럼 제 시간에 맞춰 온 사람들은 빵 5조각과 음료수 1개를 받는다. 누굴 탓할 수 없다.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래도 빵 5조각과 음료수 1개도 나에겐 든든한 아침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노숙 선배가 땀을 뻘뻘 흘리는 내가 딱해보였는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디서 올라왔느냐. 지금 지내는 곳은 어디냐. 무슨 사연으로 이러고 있느냐 등등 노숙 선배와 나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선배의 눈에 내가 썩 맘에 들었나보다. 선배는 노숙을 위한 팁들을 하나하나 알려준다. 교통비를 아끼는 법, 노숙인들의 텃세를 피하는 법, 잠잘 곳을 마련하는 법, 또 다른 무료급식소의 위치 등 그간 쌓아온 노하우들을 아낌없이 나에게 베풀었다.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줄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내 차례가 다가오자 뛸 듯 기뻤다. 밥이든 빵이든 좋으니 얼른 아침을 해결하고 싶었다. 그러나 문득 머릿속에선 ‘어디서 식사를 해결해야하나’ 라는 고민이 들었다. 분명 노숙 선배는 길바닥이라고 아무데서나 앉아 먹었다가는 다른 노숙인들에게 욕을 얻어먹기 좋다고 경고했었다. 이제 어디서 먹어야 할지가 또 다른 문제로 자리 잡았다. 주위를 살펴보니 앞서 받은 이들은 저마다의 먹을 곳을 향해 어디론가 부산스레 움직였다. 아쉽게도 나에겐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드디어 손에 쥔 음식, 나는 차마 먹지 못했다

빵과 음료를 받고 골목으로 사라지려는 내 뒤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노숙 선배다. “아유, 왜 그 짝으로 가! 따라와 이놈아“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노숙 선배가 부리나케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렇게 영문도 모른채 나는 노숙 선배를 뒤따랐다. 왠지 모르게 다른 노숙인들에게 해코지를 당할 수 도 있을 것 같아서다. 노숙 선배는 자기만 아는 아지트를 소개해보였다. 한 종교단체의 꼭대기 층, 발길이 쉽게 닫지 않는 그 계단에서 노숙 선배는 식사를 해결했다.

나는 빵과 음료의 포장을 뜯지 않고 멍하니 노숙 선배가 먹는 것을 바라봤다. 내가 받은 빵과 음료는 줄 저 뒷편에서 그토록 기다리던 누군가의 한 끼 식사일 것이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왜 음식을 먹지 않느냐는 선배의 질문에 나는 그냥 속이 좀 불편해서요 라고 답했다. 그러곤 밥을 받았던 그 곳으로 향했다. 배가 덜 고팠던 것은 아니다. 나도 분명 배가 고팠다. 주체할 수 없이 흐르던 땀 때문일까 자그마한 음료수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발 걸음을 옮겼다. 두 손에 빵과 음료를 꼭 쥔 채로.

“저기 이거 드세요 저는 속이 영 불편하네요“ 나는 그렇게 한 노숙인에게 자신의 무료급식을 나눠줬다. 무료급식을 받기 시작한 첫날, 아직 젊은 나는 버틸 체력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나의 눈에 비친 늙은 노숙인은 그럴 힘 조차 없어 보였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늙은 노숙인은 더위에 지쳐 풀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감사합니다“ 늙은 노숙인은 깊은 감사인사를 표했다. 나는 그렇게 아침 식사를 마쳤다.

모두가 어디론가 바삐 움직일때 나는 한가로웠다. 어느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정처없이 거리를 누볐다. 정한 곳도 없고 그렇다고 머물기 일정한 장소도 없었다. 그냥 두 다리로 걸을 뿐이다. 목적지가 없으니 앞만 보며 걸었다. 어찌보면 오발탄과 매우 닮아있다. 야심차게 총구 밖을 벗어났지만 표적은 정해져 있지 않은 오발탄. 나도 야심차게 사회로 나왔지만 제 몸 한켠 뉘일 곳이 없다. 낯선 도심 속엔 나를 반기는 이도, 반기는 곳도 없었다.

거리를 거닐때면 모두가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럴때면 나는 모자를 더욱 깊게 고쳐썼다. 어느새 모자는 나의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온몸 구석구석을 찌른다. 이따금씩 수근덕 거리는 소리도 귓속을 맴돈다. 꾀죄죄한 옷차림, 가방가득 들어있는 짐, 무성히 자란 수염이 그들과 달라서 일까. 타인의 시선은 어딜가나 나를 괴롭혔다. 숨고싶었다. 무수히 많은 건물들 사이에서 내가 숨을 만한 곳은 없었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게 나오는 카페에서 잠시 쉬고 싶었으나 눈초리가 무서웠다. 사실, 음료를 사 마실 돈도 없었다.

오랜 고민 끝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백화점으로 향했다. 백화점은 따로 음식을 시켜먹지 않아도, 물건을 사지 않아도 눈치 볼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티셔츠 가득 젖은 땀을 식히려는 심산으로 인근 백화점으로 향했다.

땀범벅이 된 옷들과 지쳐버린 나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백화점에 위치한 한 옷가게로 향했다. 땀에 절어버린 윗옷을 잠시나마 벗고싶었다. 그렇기에 시원한 옷가게의 탈의실로 향했다. 순간 점원과 눈이 마주쳤다. 쑥스럽지만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인사를 건냈다. 그러나 점원은 다른 곳을 향해 휙 돌아섰다. 나의 인사를 못본 것일거라 생각했다. 혹은 그 순간 바빴을 수도 있다. 점원이 나에게 인사를 했는지 안했는지는 중요치 않다고 다독였다. 한 가지 맘에 걸렸던 점은 평소의 나였더라면 분명 “어서오세요“라는 말과 함께 반기며 이것 저것 추천해왔을 점원들이다. 지금의 나에겐 그렇지 않았다.

잡생각은 뒤로 한채 웃옷을 벗어 탈의실 의자에 걸터앉았다. 욕먹을 짓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나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땀을 식힐 수 있는 곳에서 쉬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탈의실이 주는 시원한 공기를 5분간 온 몸으로 받아냈다. 그러곤 벗어놓은 옷을 바라봤다. 땀에 절어버린 옷을 보니 더욱 갈증이 났다. 스스로 흘린 땀의 양을 생각하니 괜스래 잘 마시지도 않던 물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니 아침부터 여지껏 물 한모금 마시지 못했다. 다음 목적지가 생겼다. 행선지가 없던 내가 생각해낸 다음으로 갈 곳은 물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그렇게 널어 놓은 옷을 다시 입었다. 끈적끈적 온 몸을 휘감는 젖은 티셔츠와 함께 나는 다시 거리로 나섰다.

따가운 뙤약볕 아래에서 노숙인이 전해준 지도를 다시 펼쳐보였다. 10년간의 노숙생활이 고스란히 담긴 이 지도는 나에겐 없어서는 안 될 보물지도 같은 존재였다. 오늘 저녁은 지도에 적힌대로 서울역에서 해결하려 했으니 서울역 인근에서 마실 물을 찾아다닐 요량이다. 부랴부랴 서울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땀에 쩔은 티셔츠가 뿜어대는 냄새가 코 끝을 찔러댔다. 다른 사람에겐 이 냄새가 안나길 바랬건만 나의 주위에는 아무도 서있지 않았다. 괜스래 그들에게 죄송스러웠다. 그냥 눈을 감고 서울역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잠시후 스피커에서 반가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번 역은 서울역, 지하 서울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4호선, 경의선, 공항철도로 갈아타실 고객과 빠르고 편안한 KTX와 일반열차를 이용하실 고객께서도 이번 역에서 내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지하철 문이 열리고 나는 서울역에 발을 내딛었다. 나는 4호선도, 경의선도, 공항철도도 이용하지 않는다. 당연히 KTX와 일반열차도 이용하지 않는다. 마실 물, 먹을 음식을 위해 서울역에 왔다.

나는 서울역 2층에 위치한 푸드코트로 향했다. 서울역을 자주 오갔던 나는 그곳에 정수기가 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다행히 점심시간이 지난터라 푸드코트도 한산했다. 물만 마셔대는 나에게 눈치를 줄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푸드코트에서 빈속에 물을 부어댔다. 물은 바싹 마른 입안에서 식도를 넘어 위로 향했다. 나는 그 기분을 온 몸으로 느꼈다. 그간 마셔온 물 중 가장 맛있는 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게 갈증이라는 급한불을 끄고 나니 나는 또 다시 생각에 잠겼다. 현재 시각은 14시 10분. 무료급식이 열리는 시간은 5시. 어림잡아 3시간 가량 남았다. 3시간 동안 어디서 시간을 보낼지가 나에겐 큰 과제였다. 또 다시 거리를 거닐자니 자신이 서지 않았다. 어떻게 푼 갈증인데 또 다시 땀을 흘리고 싶지 않았다. 다리도 말썽이다. 가만히 앉아 쉬고싶었다. 그렇다고 푸드코트에 앉아 있기는 무리였다. 푸드코트 구조가 오픈형 주방인 탓에 주방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나를 계속해서 지켜볼 것만 같았다. 나는 다음 거처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결국, 서울역에서 사람들이 두번째로 많이 앉아 있는 곳으로 향했다. 서울역 1층 대합실이 아닌, 1층과 2층 사이 기차를 타기위해 잠시 대기하는 그 곳으로 향했다. 그 곳이라면 나도 기차를 기다리는 척 하며 주변의 시선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편히 쉴 수 있다는 기쁨에 헐레벌떡 그 곳으로 달려갔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