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 밤이 깊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또 다른 아침 해가 나를 반겼다. 오늘은 또 어디서 밥을 먹어야 할까. 눈을 뜬 나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나에겐 ‘코로나 음성 판정 확인서’가 꽤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에겐 마치 어마어마한 훈장같이 느껴지는 코로나 음성 판정 확인증이다. 그 훈장을 손에 쥐지 않으면 밥을 또 굶을 수도 있다는 공포가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는 조심스레 주머니 속 보물지도를 펼쳤다. 용산역 10시 30분, 3번 출구 근처. 용산역에서 이뤄지는 무료급식은 한 종교단체에서 진행된다. 종교단체는 코로나 음성 판정 확인증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웠던 터라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용산역으로 향했다. 오늘은 기필코 한 끼를 얻어먹겠다는 일념을 품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나는 지하철 좌석 가장자리에 앉았다. 늘 그렇듯 고개를 숙인 채 바닥만 바라봤다. 나의 자존감은 떨어트린 고개처럼 바닥을 향한다. 출근 시간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과 은은히 퍼지는 사람들의 향수 사이에 눈치 없이 내뿜는 땀내. 그런 내 모습이 마치 불청객 같았다. 누군가 지하철에 탑승하라고 청하지 않았는데도 꾸역꾸역 자리를 차지하는 불청객 말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용산역은 내가 있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나는 이를 위안 삼아 조금만 버티자고 머릿속에 되뇌고 또 되뇄다. 배고픔 앞에 이깟 수치심이 무슨 대수겠는가.  나는 그렇게 서서히 이 생활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나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적응해 나가려고 안간힘 썼다는 표현이 더욱 어울렸다. 

나는 어제와 같이 지하철에서 흘러나오는 무미건조한 안내방송을 들으며 하차했다. 그러곤 맥 없이 시계를 바라봤다. 시계는 10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에겐 아직 20분의 여유가 있다. ‘3번 출구 근처...’ 나는 혼잣말로 무료급식이 이뤄지는 곳을 재차 확인하며 3번 출구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다.

용산역의 대합실은 서울역 대합실과는 다소 다른 분위기다. 정신없이 오고 가는 사람들 속에 이질적인 사람들이 꽤 눈에 띄었다. 서울역의 경우 서울역 주변, 즉 대합실 밖에 노숙인들이 존재했다면, 용산역은 대합실 안에 다양한 노숙인들이 존재했다. 그들을 보며 나는 나와 비슷하게 무료급식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나는 다소 이질적인 그들과 같이 대합실 의자에 걸터앉아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러자 서울역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오고 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행위가 생각보다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음에도 나는 그저 그렇게 사람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당장 내가 할 일이 없었을뿐더러 또 다리가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에겐 그렇게 시간을 죽이는 방법 외엔 뾰족한 수가 없었다.

나는 풀린 눈으로 10시 30분만을 기다렸다. 머지않아 시간은 10시 30분을 가리켰고 나는 3번 출구를 바라봤다. 이상하다. 아무도 없다. 분명 지도엔 10시 30분 3번 출구 근처라 쓰여있다. 지하철역도 다시 확인했다. 용산역. 휘갈기듯 쓰인 글씨는 명명백백하게 용산역이라 쓰여있었다. 시간이 1분, 2분 속절없이 흐르기 시작하자 나의 풀린 눈은 동그랗게 변했다. 어제의 불안감과 초조함이 또다시 나를 휘감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나에게 미소를 지어준 사람

나는 얼이 빠진 것 마냥 대합실 이리저리 헤집고 다녔다. 분명 30분에 온다고 했는데 시계는 야속하게도 45분을 가리킨다. 약속 시각과 달리 15분이나 지났다.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은 초조함이다. 이대로 아침을 놓치면 다음 무료급식까지 꼼짝없이 굶어야 한다. 아직 20대 후반인 나에게 배고픔은 견디기 힘들었다. 어떻게 해서든 그 종교단체를 찾아야 했다. 나는 그렇게 눈에 쌍심지를 켠 채 방황했다.

‘드르륵…. 드르륵….’ 저 멀리서 수레 소리가 들린다. 내 주위에 있던 노숙자들이 그 소리를 향해 하나둘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눈을 뒀다. 프레이포유 이서광 목사가 검은 봉지가 가득한 수레를 끌고 대합실 이곳저곳을 다니고 있었다. 무료급식이다. 분명 무료급식을 나눠주는 것이다. 나는 종교를 믿지 않지만, 그 순간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속으로 외치며 그곳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다.

나는 조심스레 “혹시 저도 음식을 받을 수 있을까요? 배가 너무 고파서요”라며 에게 여쭤보았다.  이목사는 “물론입니다. 하나 챙겨가세요. 넉넉히 챙겨왔습니다”라며 웃으며 답했다. 나는 그렇게 음식이 담긴 검은 봉지를 받아들었다. 행복했다. 뭐가 들어있는지는 몰라도 검은 봉지는 묵직했다. 딱딱한 감촉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분명 물도 들어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문득 그들이 늦은 이유가 궁금했다. 분명 노숙인 지도엔 30분이라 적혀있었으니 말이다. 만약 무료 급식을 나눠주는 시간이 변동된 것이라면 이 지도를 수정해야 했다. 쭈뼛쭈뼛 이목사에게 다가갔다. 나는 염치 불고하고 “저기 선생님, 원래는 30분에 오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좀 늦은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라며 물었다.

이목사는 소탈하게 웃으며 답했다. “예, 저희가 원래는 30분에 도착해서 나눠줍니다만, 오늘은 김밥을 싸시는 아주머니께서 바쁜 바람에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노신사의 사과에 화들짝 놀란 나는 손사래를 치며 죄송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밥을 무료로 얻어먹는 것도 부족해 오히려 사과를 받다니. 나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정말 감사히 잘 먹겠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나에게 미소를 지어준 사람이다. 나는 무료급식보다 훨씬 더 큰 감동을 선물 받았다.

고작 하루 굶는 것도 힘든 나다. 나는 누가 뺏어갈세라 허겁지겁 봉지를 뜯어보기 시작했다. 보리건빵, 초코파이, 커피믹스 하나, 김밥 한 줄, 우동 국물, 물 500mL, 물티슈 등이 검은 봉지 안에 가득 담겨있었다. 나는 봉지 속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용산역에서 마음 졸이며 기다린 보람이 있는 구성이다. 나는 이 음식들을 어떻게 나눠 먹을지 고민했다. 배가 고프다 해서 아무렇게나 막 집어 먹었다간 저녁을 거를 수도 있었기에 신중해야 했다. 심사숙고 끝에 김밥 한 줄과 물 한 병을 손에 쥐어 들었다.

나는 양손에 음식을 든 채로 대합실 이곳저곳을 훑기 시작했다. 대합실 안에서 이 음식들을 먹기엔 다소 눈치가 보였다. 수많은 사람이 오고감과 동시에 의자 한편에서 마스크를 벗고 음식을 먹고 있는 나의 모습이 타인의 눈에 썩 아름답진 않을 듯했다. 나는 그렇게 대합실 밖으로 향했다. 용산역 3번 출구에서 노숙인들이 거주하는 텐트촌으로 향하는 곳에는 커다란 주차장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주차장 구석은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을뿐더러 그늘져있어 내가 식사를 해결하기에 최적의 공간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깊고 어두운 곳을 향해 걸었다.

주차장 한 쪽에 자리를 잡자마자 나는 김밥을 꽁꽁 감싸고 있는 은박 포장지를 벗기기 시작했다. 은박 포장지가 벗겨지자 두툼한 김밥 한 줄이 나를 맞이했다. 기본에 충실한 김밥 한 줄은 순식간에 나의 손에서 사라졌다. 이윽고 나는 나눠준 물을 그 자리에서 들이켰다. 김밥 한 줄과 물 500mL를 다 먹고, 마시자 포만감이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입을 닦고 다 마신 페트병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 거리를 거닐다 정수기가 보이면 물병으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나는 용산역을 떠나기 전, 소중한 음식을 나눠준 백발의 이목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나는 다시 용산역 대합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용산역에서 벌어진 작은 소동, “여기서 왜 음식을 나눠주십니까?“

내가 잠시 밖에 나가있는 사이, 용산역에는 뭔가 자그마한 문제가 생긴 모양새다. 눈치 없이 감사 인사를 드릴 분위기가 아니었다. “아니, 여기서 음식을 왜 나눠주십니까.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역무원이 이목사를 향해 짜증 섞인 어투로 따져든다. 이목사는 멋쩍게 웃으며 “아이고, 죄송합니다. 얼른 나가겠습니다“며 연신 고개를 숙여댔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미소를 지어보여준 이목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나는 그저 이목사가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바라만 봤다. 아마 코로나19로 인해 역무원이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다. 역무원에겐 이를 단속하는 것이 본인의 업무이니까. 역무원은 업무에 최선을 다한 것 뿐이다. 그러나 나는 그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며 왠지 모를 슬픔이 들었다. 역무원의 입장도, 이목사의 입장도 모두 이해가 가는터라 누구를 원망 할 수 없었다. 그저 이 상황이 슬플 뿐이었다.

수레를 끌며 자리를 옮기는 이목사 뒤로 불평섞인 한 마디가 흘러나온다. “아이참, 왜 여기서 음식을 나눠주고 난리야. 쯧.“ 나의 귀에는 분명 이 소리가 들렸으나 이목사는 애써 못들은 척 하는 듯 했다. 나는 이목사가 걱정됐다. 지긋한 나이에 쓴소리를 들어가며 고개를 숙인다는 것이 여간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목사를 뒤따랐다. 그러곤 괜찮으시냐고 조심스래 여쭤 물었다. 이목사는 다소 얼어붙은 표정으로 “익숙한 일입니다. 어쩔 수 없죠, 저희가 나가는 수 밖에“라고 말했다. 이어 이목사는 '아직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데...'말끝을 흐렸다. 이목사와 나는 애꿎은 수레를 바라만 봤다.

나는 이목사에게 자그마한 도움이 되고 싶었다. 방법을 생각하던 중 한가지 묘책이 떠올랐다. 아직 받지 못하신 분들을 밖으로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난 뒤 줄을 세워 한명씩 나눠주는게 어떻느냐 조심스래 여쭤봤다. 대합실 안이 아니니 문제될 것이 없어 보였다. 이목사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저희가 무엇이라고 그들을 줄 세우나요. 직접 나눠줄 뿐입니다. 우리에겐 그들을 줄세울 권리가 없습니다.“ 나의 머리는 묵직한 무엇인가에 강하게 한 방 얻어맞은 듯 멍했다. 이목사의 말이 백번 옳다. 내가 무엇이라고 노숙자를 이리저리 부르며 줄을 세울 수 있는가. 나는 아무말도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간의 정적이 흘렀을까. 이목사가 수레에 담긴 검은 봉지를 한가득 가슴 속에 안기 시작한다. 나는 당황했다. 왜소한 이목사가 자그마한 가슴팍에 가득 음식을 담아대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이유인즉슨 이렇다. 수레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역무원에게 들릴 수도 있으니 자신이 직접 들고 나눠주겠다는 것이다. 그러곤 이목사가 한 가지 부탁을 해왔다. “제가 안에서 음식을 나눠주는 동안 수레를 지켜주실 수 있으신가요?” 나는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목사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합실 안으로 향했다. 나는 그런 이목사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나는 수레를 제 몸 인 양 열심히 지키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밥값이다. 나는 자신만의 방식대로 밥값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노파가 나에게 말을 건네온다. “이거 지금 나눠주는거유?” 노파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마음 같아선 한 개, 아니 두 개라도 더 챙겨드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자신의 물건이 아니기에 함부로 나눠줄 수 없었다. 나는 대합실 안을 바라봤다. 아쉽게도, 노신사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나눠주시는 분이 아직 대합실 안에 계셔서요.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어요?”라고 대답했다. 노파는 “별수 없지 뭐” 외마디와 함께 나의 옆에 가만히 섰다.

나는 기다리는 동안 노파의 말동무라도 되어드리자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노파는 살갑게 말을 건네는 내가 손자 같았나 보다. 이따금 그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나열해 보인다. “저기 앞에 종이접기하는 노숙인 보이지? 저 사람은 말이야….“, “저 끝에 저기 걸어오는 쟤는 이 급식을 2번 넘게 받아가! 썩을“, “여기 용산역 아래쪽에 텐트촌이 있어. 거기는 정부 지원금이 나온다네?” 이러쿵저러쿵. 나와 노파는 쿵짝이 꽤 잘 맞았다. 이야기 내내 웃음꽃이 떠나질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꽤 흘렀을까. 노파와 나의 모습을 본 이목사가 저 멀리서 헐레벌떡 달려왔고, 우리는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