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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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수술실 CCTV 설치법 처리가 또다시 불발됐다. 환자계와 의료계의 이견이 큰 만큼 정치권에서도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어 앞으로도 난항이 예상된다.

수술실 CCTV 설치법은 수술 중 발생하는 의료사고나 무자격자의 대리수술 등 논란이 반복되며 주목받았다. 대리수술, 의료진 과실, 환자 안전 등을 고려해 수술실 내 CCTV 설치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커졌다. 

이는 정치권까지 확대됐고, CCTV를 활용한 수술실 환자 안전과 인권 보호, 무자격자 대리수술 근절방안 등의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 이른바 수술실 CCTV 설치법이 발의됐다. 하지만 19대, 20대 국회에서는 상정조차 되지 않거나, 상정은 됐으나 제대로 된 심의 한번 거치지 못하고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다행히도 21대 국회는 수술실 CCTV 설치법 논의에 보다 적극적이었다.

여야는 지난해 11월 이와 관련해 4차례의 심사를 진행했다. 당시 환자의 동의가 있으면 수술실 촬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 의료사고 소송 중 법원이나 수사기관 요구가 있을 경우 영상 열람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지난 23일 여야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열었다. 이날 처리될 법안 가운데는 수술실 CCTV 설치법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날 CCTV 설치 위치와 의무화에 대한 여야의 이견이 계속되며 결국 불발로 끝이 났다.

당초 여당은 6월 임시국회 내에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쟁점이 큰 사안이니 만큼 좀 더 시간을 두고 논의해야 한다는 야당의 반대에 부딪혔다.

여당에서는 수술실 내부 설치 및 의무화를 피력하고 있지만 야당에서는 입구 부근 설치와 자율화에 무게를 두고 있어 이견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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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수술실 CCTV 설치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의료사고 피해자 고 권대희씨 유가족 이나금 의료정의실천연대 대표를 만나 대화 중인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 ⓒ공동취재사진/뉴시스

환자계-의료계 계속되는 ‘입장 차’

수술실 내 CCTV 설치법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환자계와 의료계는 더욱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의료계는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가 각종 의료사고 문제 해결의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의료진을 상시 감시 상태에 둠으로써 집중력 저해를 야기하고 의료인의 과도한 긴장을 유발해 의료행위의 질적 저하를 불러오는 역설적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며 “긴급상황에서 대처 미흡 및 최선의 진료를 방해해 최적의 수술환경 조성이 불가능해질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또 “우리나라의 의료사고 발생률은 세계적으로 낮은 상황인데,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건 의료진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고 수술실을 잠재적 범죄 장소로 취급하는 것”이라며 “이는 환자 인권침해는 물론이고 의료진의 인권침해와도 연결된다. 결과적으로는 의료인과 환자 간 신뢰관계 구축을 저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의사의 환자 비밀 유지 의무와 환자가 개인 의료 정보의 비밀을 보장받을 권리를 정면으로 침해하는 것”이라며 “CCTV 여상에 접근할 수 있는 경로가 많은 점을 검토했을 때 의료기관에서 주의를 기울인다 할지라도 영상 정보 유출 가능성에 따라 환자의 비밀 또한 보장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의협은 “다수의 부작용과 현안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 입법 추진을 강행하면 의사와 환자 간 분쟁뿐만 아니라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환자계는 수술실에서 환자의 안전과 인권을 제대로 담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술실 CCTV 설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이하 환자단체)는 “여당의 ‘즉시처리론’과 야당의 ‘신중처리론’이 또다시 맞서 결국 다음 임시국회 심사로 넘어갔다”며 “지난 6년간 수술실 CCTV 설치법 입법화 활동을 했던 단체로서는 실망스럽고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환자단체는 “촬영할 때 반드시 환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영상은 조정·중재·수사·재판 등 법률을 근거로 한 특별한 목적으로만 활용 가능하다”며 “위반 시 중안 형사처벌을 받도록 하는 3단계 보호장치가 보함 돼 있고 이미 전국 수술실 중 14%는 내부에 CCTV가 설치돼 운영 중이므로 영상 유출·해킹 우려는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술실 CCTV 설치법의 핵심은 무자격자 대리수술·유령수술·성범죄 등 비윤리적 범죄·의료사고 은폐”라며 “더 이상 시간 끌기는 안 된다. 수술실 내부에 CCTV를 설치하고 환자의 동의를 요건으로 하는 촬영 대원칙은 양보할 수 없다. 이 원칙의 수용을 전제로 예상되는 전제로 수술실 내 CCTV 설치 및 촬영으로 예상되는 의료인과 환자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수술실 CCTV 설치와 관련해 국민 다수가 찬성 의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달 31일부터 이번 달 13일까지 국민생각함에서 ‘수술실 CCTV 설치’에 대한 국민의견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1만3959명 중 97.9%인 1만3667명이 ‘수술실 내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는 데 찬성했다.

이번 달 24일 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기관에서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6명을 대상으로 같은 내용 조사를 실시한 결과에서도 찬성한다는 의견이 82%로 확인됐다.

재논의가 예고된 다음 법안소위에서 수술실 CCTV 설치법 처리가 매듭지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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