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이 지난 23일 경기도 파주 헤이리 갈대광장 잇탈리 스튜디오에서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뉴시스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이 지난 23일 경기도 파주 헤이리 갈대광장 잇탈리 스튜디오에서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최근 대선출마를 선언한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이 페미니즘을 반대한다고 밝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추 전 장관은 지난 26일 유튜브 채널 시사타파TV의 특별편성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던 도중 이같이 밝혔습니다.

이날 방송 말미에 진행자인 방송인 노정렬씨는 추 전 장관에게 “정상적인 여성주의와 남녀평등 시대를 어떻게 가꿔갈 것인가”라고 질문했습니다.

추 전 장관은 “제가 판사가 됐을 때는 여자 판사가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숫자가 적었다”면서 “‘내가 여자라고 꾀를 부리거나 핑계를 대면 여자 판사에 대한 평가가 내려갈 것 같다. 엄청 잘해야겠다’라고 생각해 누구보다 전문성을 기르고 싶고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여성이라고 꽃처럼 대접받기를 원한다면 항상 여자는 장식일 수밖에 없다”라며 “여성 스스로 개척해야 여성도 남자와 똑같다는 인식이 생길 것이다. 남성들이 ‘여성을 차별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깨닫게 되면 기회가 똑같아 질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저는 기회의 공정을 원한 것이지 특혜를 달라고 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정치를 개척해왔다”라면서 “그래서 저는 페미라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여성이 여성 권리를 보호하겠다’가 아니라, ‘남성이 불편하니까’ 차별을 없애도록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래서 페미(페미니즘)가 굳이 필요 없는 세상이 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추 전 장관의 ‘페미니즘 반대’에 정치권에서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청년정의당 강민진 대표는 지난 28일 자신의 SNS를 통해 “본인이 선 자리를 되돌아보길 바란다”며 추 전 장관의 발언을 비판했습니다.

강 대표는 “추 전 장관이 서 있는 자리는 ‘여성은 정치를 하면 안 된다’, ‘판사를 하면 안 된다’는 차별과 편견에 맞선 수많은 여성들의 도전 끝에 만들어진 자리”라며 “저는 제가 서 있는 자리가 앞선 여성들의 수많은 문제제기, 싸움, 투쟁 끝에 만들어진 자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시대에 요구되는 성평등의 가치를 실현해야 할 책임이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정치인으로서 제게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페미니즘은 여성을 꽃처럼 대접하라는 사상이 아니라, 여성을 사람으로 대접하라는 사상”이라며 “기회 공정을 위한 적극적 조치와 구조적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이지 특혜를 달라는 목소리가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강 대표는 “추 전 장관의 발언은 페미니즘에 대한 지독한 곡해”라며 “일각의 표를 쉽게 얻고자 한 의도일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강 대표는 TERF(트랜스젠더 배제적 래디컬 페미니스트) 등이 페미니즘을 내세워 차별과 폭력을 행하는 데 대해 “일각에서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을 달고 행해지는 차별과 폭력을 거부하고 해소할 책임, 페미니즘을 향한 부당한 공격과 낙인에 맞설 책임, 여러 갈등 속에서도 성평등이라는 가치는 우리사회의 나아갈 길임을 증명하고 시민들의 신뢰를 만들어나갈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면서 “때문에 저는 ‘페미에 반대한다’는 갈라치기 식의 책임감 없는 행태는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정치인들도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추 전 장관을 질타했습니다.

이어 그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20대 여성의 단 22.6%만이 ‘여성을 위한 정책을 시행했다’고 응답한 결과를 제시하며 “문 정부의 장관이자 여당의 대선 후보라면 이런 수치가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평가해야 한다. 민주당 정부는 남성 청년들로부터도 심판받았지만, 여성 청년들을 대변하고 여성의 입장에서 와 닿는 정책을 실시하는 데에도 실패했다”면서 “이러한 국정 운영 실패와 정책 실패를 직시해야 할 책임이 있는 인사가, 단순히 ‘페미에 반대한다’는 포퓰리즘 발언을 내뱉는 것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강 대표는 “추 전 장관의 ‘페미 반대’ 발언이 표를 얼마나 끌어 모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추 전 장관의 무책임을 똑똑히 기억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점도 함께 실감하시길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 역시 SNS를 통해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가 아니다”라며 “대한민국 모든 여성의 삶이 곧 페미니즘이고, 모든 성차별에 반대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라고 추 전 장관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해득실에 따라 젠더 갈등에 휩쓸릴 것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 또 성소수자들과 굳게 연대해 모든 차별에 단호히 반대하고 성평등 사회를 앞당기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역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추 전 장관의 발언은 페미니즘을 ‘특혜를 주장하는 것’으로 이해할 여지가 있습니다. 심 의원의 말처럼 페미니즘은 차별에 반대하는 것이지 여성에게 특혜를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페미니즘을 왜곡하며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은 반페미니즘을 외치는 당원들의 표를 모으겠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옵니다.

한편 이 같은 비판이 제기되자 추 전 장관도 자신의 SNS를 통해 해명에 나섰습니다.

추 전 장관은 “제 말의 맥락도 무시한 채 저를 반페미니스트로 몰아가려는 의도는 무엇인가”라며 “저는 단 한번도 여성 우월주의를 페미니즘으로 이해한 바 없습니다. 제가 '여성이 꽃 대접 받는 걸 페미니즘'이라고 한 것이 아니라, '여성은 특혜가 아니라 차별없이 공정한 기회를 주장'하는 것임을 설명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이어 “제가 문제 삼은 것은 남성 배제적 ‘페미의 극단화’를 경계하는 것“이라며 ”독선적이고 혐오적으로 오해받는 ‘페미현상’에 저는 반대한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일각의 우려스러운 ‘배타적 페미현상’은 함께 연대해 성평등을 실현할 사람들조차도 적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페미니즘은 누군가의 독점물이 아니어야 한다. 독점화되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여성들 안에서도 페미니즘을 두고 세대와 교육의 차이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이 존재한다”고 부연했습니다.

추 전 장관은 “페미니즘은 출발부터 기본적으로 ‘포용적’인 가치와 태도를 지니고 있다. 그 어떤 존재도 배타적 상대로 삼아 적대화하지 않는다”면서 “문제를 삼는 것은 성차별적, 성분열적 가치와 태도, 관습과 제도다. 이를 허물기 위한 노력은 여성만의 임무가 아니라 모두의 책임이다. 그것이 인권과 생명을 존중하는 페미니즘의 기본가치”라고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를 설명했습니다.

추 전 장관의 해명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변명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페미니즘에 반대한다’고 분명히 말했던 그가 비난을 받자 “극단적 페미니즘에 반대한다는 것”이라고 선을 긋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배타적 페미니즘을 반대한다는 의미로 ‘페미니즘에 반대한다’고 발언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추 전 장관이 페미니즘을 ‘남성 배제적’이라고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는 민주당 내에 팽배한 반페미니즘 정서에 편승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추 전 장관의 이 같은 주장은 ‘진보=종북’과 유사한 프레이밍입니다. 보수 일각에서 종북세력을 진보진영의 대표적인 목소리로 이해하고 진보진영에 대해 ‘종북세력’이라고 매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죠.

그가 자신의 해명대로 페미니즘의 기본 가치를 ‘인권과 생명을 존중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일각의 주장을 들며 ‘페미니즘에 반대한다’고 할 것이 아니라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가치를 우선적으로 강조했어야 합니다.

추 전 장관은 당내 반페미니즘 정서에 편승하려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발언에 대해 명확히 사과하고 여성과 다양한 소수자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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