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어린나이에 시작된 현수씨의 노숙
노숙인 무리 속하지 못해 무료급식 정보 얻기 어려워
오랜 노숙 생활…무시와 폭행에 시달려 목숨 포기 고려
방황 끝에 노숙인 시설 입소…사회로 나갈 준비 이어가

젊음, 그리고 청춘(靑春). 듣기만 해도 벅차오르는 단어다. 누군가에겐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자 또 누군가에겐 다시금 경험하고 싶은 호기롭던 과거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네 젊음과 청춘은 겉보기와는 사뭇 다르다. 마냥 밝거나 아름답지 않다.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이 무색할 만큼 자라나야 할 새싹은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서서히 메말라가고 있었다. 

우리는 서서히 메말라가는 그들을 H(Homeless)세대라 부르고자 한다. 그들에겐 집(Home)이 없다. 아쉽게도 의지할 곳도, 지원받을 곳도 없다. 결국, 저마다의 사연을 가슴 깊이 숨겨놓은 채 거리에 나오게 됐다. 그들은 각박한 거리의 삶에 지칠대로 지쳐갔다. 당장 어디서 잠을 청할지, 어떻게 식사를 해결할 지가 그들의 중요한 고민거리였다. 희망찬 내일을 꿈꾸는 것은 그들에겐 사치였다. 그러자 한 줄기 희망(Hope)마저 사라졌다. 오고가는 사람들은 “젊은 놈이 쯧”이라는 말을 뱉어댄다. 이름도 모르는 이들이 무심코 뱉은 말은 그들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우리는 가난을 잘 알지 못한다. 매스컴에서 이따금 방영되는 노숙인, 반지하, 쪽방, 고시원, 곰팡이, 무료급식 등의 장면들을 훔쳐보며 가난을 잘 안다고 착각할 뿐이다. 사실, 우리가 보는 것은 가난의 한 조각일 뿐이다. 자그마한 가난의 조각을 들고 어느 누가 노숙인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훈수를 둘 수 있겠는가. 노숙인의 삶을 가만히, 또 온전히 듣기 전 까진 그들이 왜 노숙인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그들의 삶을 먼 발치 떨어져 훔쳐보는 것이 아닌, 조금 더 가까이서 직접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이 거리에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H세대를 본격적으로 취재하게 된 계기다. 

<투데이신문>은 여전히 거리에서 지내고 있는 30대 여성 노숙인, 삶에 마침표를 찍기 전 우연한 계기로 자활을 시작하게 된 30대 남성 노숙인, 인천공항에서 거주하다 자활사업을 통해 카페에서 근무중인 20대 남성 노숙인, 코로나19 직격탄을 맞고 거리에 살다가 다른 노숙인을 돕기 시작한 20대 남성 노숙인 총 4명을 만나봤다. 20대에서 30대, 젊은 층에 속하는 그들이 가슴 깊이 숨겨놓은 아픔을 듣기란 쉽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마치 지옥(Hell)같이 느껴졌다. 집과 희망이 없는 그들은 지옥에서 산다. 오랜 설득 끝에 그들이 서서히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상에 그들의 아픔을 공유했다. 이제 그들의 사연을 세상에 전하고자 한다. 용기내 외쳐댔던 그들의 이야기가 헛되지 않길 바라며.

박현수(가명)씨가 인터뷰 질문에 대한 답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중학교 2학년, 저의 잠자리는 지하주차장이었습니다”

박현수(가명)씨는 노숙인 시설에서 거주하는 30대 초반의 청년이다. 그가 회상한 가정은 버거운 곳이다. 친아버지의 모진 학대, 새아버지의 지독한 의처증은 중학교 2학년인 그가 견디기엔 너무 버거웠다. 결국, 그는 가출을 선택했고 자연스럽게 거리로 나서게 됐다. 15살의 어린 나이에 거리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그의 첫 잠자리는 지하주차장이었다. 어둡고 사람도 잘 나다니지 않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한 곳이다. 이마저도 견디기 힘들 때면 공원 화장실로 향했다. 가출에서 노숙으로. 그는 그렇게 거리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같은 나이 또래 아이들이 공부할 때, 그는 먹을 것을 찾아다녔다. 또래 아이들이 부모님에게 응석을 부릴 때, 그는 입을 더욱 굳게 다물었다.

초졸에 찍은 학업 마침표, 살아남기 바빴다

현재 그의 학업은 초등학교 졸업에서 멈춰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기엔 먹고살기 바빴다. 아니, 살아남기 바빴다. 식사 횟수가 일정하지 않은 탓에 하루 하루가 고민이었다. ‘오늘 하루 뭘 먹어야 할까’, 아직 어린 중학생이 눈을 뜨며 가장 먼저 했던 생각이다. 현수씨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배고픔’이 가장 힘들었다고 전했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7일 이상 굶었다. 도저히 견디기 힘들 땐 남이 먹다 버린 음식을 먹었다. 스스로 음식을 구할 능력이 안 되면 자연스럽게 쓰레기통을 뒤져 먹게 된다. 무료급식은 그에게 높은 장벽이었다. 무료급식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도 없었을 뿐더러, 관련 정보들은 주로 노숙인 무리에서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는 그 어떤 무리에도 속해있지 않았다.

“무료급식자체를 몰랐어요. 저는 다른 노숙인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다녔으니 정보를 구할 기회가 없었어요. 노숙자들끼리 오늘은 어디서 밥이 나온다. 어디가 밥 맛이 좋다. 이런 정보들이 노숙인들 끼리 공유가 돼요. 그리고 도서관 인터넷으로 관련 정보를 찾는 것도 은근히 어렵고 까다로워요. 노숙인들 사이에서 주로 정보를 얻죠.”

이따금 젊다는 이유로 던져주는 돈 몇 푼, 그리고 도시락 몇 개, 이마저도 없으면 쓰레기통. 이것들로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꽤 오랜시간 노숙을 하니 함께 다니는 노숙인도 2명 생겼다. 음식을 찾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적거리거나, 혹은 잠들기 좋은 곳을 함께 찾아다니는 무리가 생긴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거리의 삶을 살아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던 어느 여름날, 함께 쓰레기통을 뒤지던 노숙인 한 명이 사망했다. 그 노숙인은 배가 고팠기에 누군가 버린 음식을 먹었다. 이 마저도 힘들면 이따금 쓰레기통을 찾아 해맸다.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지병이 있던 노숙인의 몸은 서서히 망가져 갔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은 손쓸 틈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세상을 떠났다.

오래가지 않아 또 다른 노숙인이 사망했다. 함께 몸 뉘일 곳을 찾던 노숙인이다. 추웠던 지난 겨울 겹겹이 휘감은 옷을 비집고 찬바람이 들어왔다. 서울역에서 멀리 떨어진 장애인 화장실, 차디찬 바닥에서 새우잠에 들었다. 지독하리만큼 차가운 바닥은 그의 숨을 단번에 앗아갔다. 함께 지내던 두명의 노숙인이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자, 그는 다시 홀로 남겨졌다.

본인의 곁을 함께하던 노숙인이 사망한 기억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히는 박씨. ⓒ투데이신문

“제 주위에 있던 노숙자들은 그렇게 다 죽었습니다”

무덤덤하게 말했지만 그의 눈은 요동치고 있었다. 의지하던 노숙인 2명이 사라지자 그는 깊은 우울감에 빠지기 시작했다. 극심한 외로움은 그를 더욱 거세게 몰아세웠다. 어느새 그는 허공에다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밥 먹었어?”, “응 밥 먹었어”, “뭐 먹었어?” 따위의 일상적인 대화. 현수씨 주위엔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었기에 본인과 대화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을 놓아버린 현수씨는 술로 현실을 달래기 시작했다. 마시고, 취하고, 잠들고. 또 마시고, 취하고, 잠들고.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이 시간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현수씨는 더욱 더 깊은 우울에 빠져들었다. 결국 오랜시간 우울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그가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게 된 계기는 ‘폭행’이다.

어느날 밤, 공원 벤치에서 잠에든 현수씨 멀리 키득키득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웃음소리는 서서히 현수씨를 향했다. 현수씨는 못들은 척 잠을 청하려 노력했다. 현수씨 바로 앞에서 그 웃음소리가 멈추자, 묵직한 무언가가 그의 등을 힘껏 후려쳤다. 현수씨 등에 남겨진 발자국 하나. 잔인했던 두명의 웃음소리는 손 쓸 틈도 없이 저만치 멀어졌다. 같은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같은 인간 대접을 받지 못했다. 분하고 억울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는 마포대교로 향했다.

자살예방문구가 제거된 마포대교 전경 ⓒ뉴시스

“살 생각만 해, 살려고 하라고“

마포대교에서 자살시도를 하려던 중, 출동한 경찰이 현수씨에게 건낸 말이 있다. “살 생각만 해, 살려고 하라고” 처음 느껴보는 누군가의 걱정어린 목소리였다. 그는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이어 해당 경찰은 현수씨를 영등포보현종합지원센터에 인도했다. 현수씨의 새로운 삶은 그렇게 열리게 됐다.

그간 주민등록이 말소됐다는 이유, 휴대전화가 없다는 이유, 또 노숙인이라는 이유 이 세가지 만으로 숱한 상처를 받아왔던 현수씨다. 이런 그에게 사회는 잔혹할 만큼 매서웠다. 노숙인 시설에 들어와서야 노숙인 지원관련 정보를 알게 된 현수씨다.

사실, 현수씨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현수씨가 살기 위해 방문한 동사무소에선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라는 말과 함께, 주소지를 살려야만 관련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주소를 살리고 나서 면담을 받으라는 말에 현수씨는 어이가 없었다. 당장 수중에 천원 짜리 한 장 없는 상황인데 어떻게 주소를 살리라는 말인가.

현수씨는 지금, 노숙인 시설에서의 생활이 마치 ‘날개’를 단 듯 하다고 말했다. 그간 받지 못했던 도움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거리에선 노숙인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도움을 직접적으로 제시해주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현수씨는 누군가의 따스한 도움을 받으며 다시 사회로 나갈 준비를 차근차근 하고 있었다. 그간 거리의 삶에 마침표를 찍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현수씨는 해당 센터에서 공유하는 일자리 공고를 보며 차근차근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더 이상 좌절하지 않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당히 살아가겠다는 말과 함께 위험에 놓인 2030세대들에게 위로 어린 말을 전했다.

여전히 거리에 남겨져있을 2030세대 노숙인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는 박씨. ⓒ투데이신문

“희망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경험해봤잖아요. 희망을 버려버리니까 제 스스로가 폐인이 되더라고요, 젊다는 이유로 지원을 받긴 힘들겠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분명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2030세대가 애매한 위치에 있는거 같아요. 젊다는 이유로 지원 받기도 힘들고, 일자리 구하기도 힘들고, 어떻게 보면 이제 우리나라 경제를 살리는 것은 2030세대의 몫이 됐죠. 정작, 2030세대가 무너지기 시작했는데 아무도 그걸 바라보지도 않고 생각도 하지 않아요. 일자리만 늘리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2030 노숙인들이 은근 꽤 있어요. 지금 2030대 자살율이 높은 것. 어떻게 보면 죽지 않을 수도 있었겠죠. 근데 지원을 받기가 정말 쉽지 않거든요. 문을 암만 두드려도 그냥 모른척하거든요. 지금 심각해요 생각보다.“

“20대, 30대인데 왜 이렇게 나라 지원을 받으려고 하냐 물으신다면 말을 바꿔서 되묻고 싶어요. 그럼 만약 당신이 내 입장이면 어떻게 할 수 있겠냐고.“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갈매기도 집이 있다'는 총 4편의 사례로 구성됐으며, 이후 다양한 전문가들과 심층적으로 해결방안을 강구하는 연재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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