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여성가족부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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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대선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후보들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은 지난 6일 자신의 SNS에 “여가부를 폐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유 전 의원은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고, 정부의 모든 부처가 여성 이슈와 관계가 있다”면서 “과연 여가부가 따로 필요한가”라고 말했습니다.

여성의 건강과 복지는 보건복지부가, 여성의 취업·직장 내 차별과 경력단절여성의 직업훈련·재취업 문제는 고용노동부가, 창업이나 기업인에 대한 지원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성범죄와 가정폭력·데이트폭력 등의 문제는 법무부와 검찰, 경찰이, 아동의 양육과 돌봄 문제는 보건복지부와 교육부가 담당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유 전 의원은 “상식적으로 누가 봐도 이 모든 사업들은 여가부가 아닌 다른 부처가 해도 잘 할 사업들”이라며 “별도의 부처를 만들어 장·차관, 국장을 둘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올해 여가부의 예산 1조2325억원 가운데 한부모가족 아동 양육 및 돌봄 사업 예산이 60%를 차지하고, 청소년 사회안전망, 디지털 성범죄 대응 예산이 30%를 차지하는 가운데 경력단절여성 취업지원이 8%에 불과하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또 유 전 의원은 “여가부 장관은 정치인이나 대선캠프 인사에게 전리품으로 주는 자리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어느 여가부 장관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권력형 성범죄에 대해 ‘국민들이 성인지를 집단 학습하는 기회’라고 말해 인권에 대한 기본도 안 돼 있고, 여가부 장관이 여성의 권일보호도 못하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 2017년 대선 당시에도 여가부 폐지를 주장한 바 있는 유 전 의원은 여가부 폐지를 공약하면서 “대통령 직속으로 양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하고 기재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교육부, 법무부, 행안부, 중소기업벤처부, 국방부 등 각 부처들이 양성평등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도록 종합 조율하겠다”며 “대통령이 직접 양성평등위원장을 맡아 남성과 여성 어느 쪽도 부당하게 차별 받지 않는 진정한 양성평등의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습니다.

여가부 폐지를 주장하는 정치인은 유 전 의원 뿐이 아닙니다. 국민의힘에서 가장 먼저 대선 출마를 선언한 하태경 의원 역시 여가부 폐지를 공약했습니다.

하 의원은 같은 날 국민의힘 의원과 청년 정치인 모임인 ‘요즘것들연구소 시즌2’ 출범식에서 “연재 여가부는 사실상 젠더갈등조장부가 됐다”면서 “여가부가 처음 만들어졌던 김대중 정부 시기와 다르게 문재인 정부 들어 남녀평등이나 화합 쪽으로 가기보다 오히려 젠더 갈등을 부추겨왔다”고 말했습니다.

하 의원은 대통령 직속 젠더갈등해소위원회를 설치해 젠더 갈등을 해소하겠다는 대안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같은 당 이준석 대표 역시 “여성을 절대 소수자로 몰아놓고 그에 따라 캠페인 하는 방식은 15~20년의 시행착오면 됐다”면서 “대선 후보 되실 분은 (여가부) 폐지 공약을 되도록 제대로 냈으면 좋겠다”고 밝혔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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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주장에 여·야를 막론하고, 심지어 같은 당 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은 지난 6일 자신의 SNS를 통해 당내 후보들의 여가부 폐지 공약에 대해 ‘또 다른 결의 분열의 정치’라고 비판했습니다.

조 의원은 “여성가족부를 양성평등부 등으로 부처 이름을 변경하거나 보건복지부와 업무를 조정할 필요성은 분명히 있다”면서도 “그러나 양성평등을 촉진하기 위한 부처나 제도는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식으로 젠더 갈등을 부추긴다거나, 그것을 통해 한쪽의 표를 취하겠다고 해서는 또 다른 결의 ‘분열의 정치’를 하자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대선출마를 선언한 같은 당 윤희숙 의원은 “여가부 폐지는 칼로 자르듯 얘기할 수 없는 문제”아며 “청소년, 다문화가정, 성폭력 피해자 보조 등 여가부 기능의 공백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구상도 필요하다”고 신중론을 폈습니다.

민주당 전혜숙 의원은 지난 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여가부의 성인지 교육을 통해 양성평등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며 “임금, 승진, 취업, 정치 참여 등 모든 사회 지표상 성차별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을 모르지 않는 분들이 이런(여가부 폐지) 주장을 했다는 것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을 왜곡하고 이대남(20대 남성)의 분노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일 뿐”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여성부는 지난 2001년 양성평등의 가치를 외교, 안보, 경제, 복지와 같은 국제적 의제들과 동일하게 다루겠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반영된 것”이라며 “국민의힘에 이런 철학은 없고 여심과 남심을 분열시켜 정치적 이득을 보겠다는 꼼수만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의당 박인숙 부대표는 8일 상무위원회에서 “젠더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여성가족부가 아니라 이준석 대표를 포함한 국민의힘”이라며 “여전히 여성들은 차별받고, 성폭력에 노출돼 있고, 독박육아를 책임져야 하고,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가장 많이 일자리에서 쫓겨나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박 부대표는 “세상의 절반인 여성은 물론 남녀 모두의 젠더 관계를 다루는 여성가족부가 가장 취약한 권한을 가진 부처라는 점에 대해 대책이 필요한 때”라며 “사실이 이럴진대 여가부 폐지를 운운하는 것은 눈곱만큼도 성평등 인권의식은 물론 여성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것”이라고 질타했습니다.

여성계에서도 질타는 이어졌습니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은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고, 정부의 모든 부처가 여성 이슈와 관계가 있다’는 유 전 의원의 말은 맞다”면서도 “그러나 그 다음에 이어진 유 전 의원의 발언들은 성차별 구조에 대한 무지 또는 외면, 그리고 성인지 관점의 부재를 드러낸다”고 지적했습니다.

여세연은 군, 학교, 정부 부처, 지자체 등에서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는 데 대해 각 부처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꼬집으며 “다른 부처들이 여가부보다 젠더 관점에 기초한 정책을 잘 수행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근거는 무엇인가”라고 말했습니다.

또 ‘여가부 장관은 정치인이나 대선캠프 인사에게 전리품으로 주는 자리’라는 유 전 의원의 말에 대해 “여가부 장관만이 아니라 모든 부처,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수많은 자리들이 대선캠프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주는 전리품으로 전락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뿐만 아니라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똑같이 이뤄졌던 일”이라며 “여성가족부 장관만이 능력 없고 자격 없는 ‘전리품’ 인사로 취급되는 것은 여성의 성취를 ‘특혜’로 인식하는 기존 남성 중심적 시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여세연은 유 전 의원의 ‘양성평등위원회’ 설치 공약에 대해서도 “대통령 직속 위원회라도 인적·물적 자원이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면서 “위원회의 권고를 전적으로 담당해 처리할 수 있는 부처가 있어야만 성평등 정책이 실현될 수 있다. 성평등 시대를 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여가부 폐지가 아니라 강화”라고 주장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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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전 의원의 여가부 폐지 주장에 여가부 역시 반박했습니다.

여가부 김경선 차관은 지난 7일 ‘성폭력방지법 개정 및 양성평등 조직혁신 추진단’ 관련 브리핑에서 “지난 20년간 여가부는 성평등 가치 확산과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다양한 제도와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면서 “성폭력과 관련해 ‘2차 피해’라는 개념조차도 없었는데 여가부가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을 개정·제정해 이를 법률로써 정의하고 관련 지침도 마련했다”고 밝혔습니다.

김 차관은 “성폭력상담소, 가정폭력상담소와 같이 피해자를 위한 상담소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고, 법률지원이나 상담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며 “여가부가 없다면 이런 분들이 어디서 이런 도움을 받을 수 있겠나”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정책효과가 부족하다는 것과 그 정책을 담당하는 기관이나 기구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은 별개”라면서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정책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여가부의 이 같은 입장에 유 전 의원은 반박하며 재차 여가부 폐지를 공약했습니다.

유 전 의원은 8일 SNS를 통해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고 싶어도 여가부에는 그럴 수단이 없다”면서 “군 성폭력 문제는 군을 뿌리째 개혁해야 해결되는 일이고, 성폭력과 가정폭력 범죄 역시 경찰과 검찰을 개혁해야 해결되는 일이다. 여가부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고 반박했습니다.

정치권에서 여가부 폐지가 논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2001년 김대중 정부 당시 여성부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여성부 신설은 1997년 15대 대선 당시 주요 3당 대선 후보의 공통 공약이기도 했습니다.

여성부는 신설 당시 고용노동부의 여성 주거, 보건복지부의 가정폭력·성폭력 피해자 보호, 성매매 방지 등 업무를 넘겨받아 담당했습니다. 또 2004년에는 보건복지부로부터 영·유아 보육업무도 이관 받았습니다.

여성부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여성가족부로 개편됐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여가부를 폐지하고 담당 업무를 보건복지부로 이관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과 여성계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가족·보육 업무만을 보건복지부로 이관해 보건복지가족부로 개편하고, 여가부는 다시 여성부로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이후 2010년 보건복지가족부의 업무 과중 등을 이유로 청소년·가족·보육, 다문화가족과 건강가정사업을 위한 아동 업무 등도 여성부로 이관되면서 명칭을 다시 여가부로 변경했습니다.

여가부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있지만, 다양성에 대한 수용도가 높지 않은 한국에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것과 정부 정책에 성인지적 관점을 관철하는 등 여가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가부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폐지한다’라고 할 것이 아니라, 여가부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권한을 확대하는 것이 한국사회의 다양성 확보·존중을 위한 방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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