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추억에 새로운 색을 입힌 ‘뉴트로’가 대세입니다. 소비자에게 오랜 기간 사랑받아 온 기업들은 촌스러움을 훈장처럼 장식한 한정판 레트로 제품들을 앞다퉈 내놓고 있습니다. 비단 물건 뿐 아니라 옛 세탁소나 공장 간판을 그대로 살린 카페 등 힙한 과거를 그려낸 공간 또한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오래된 기록이 담긴 물건과 공간들은 추억을 다시 마주한 중년에게는 반가움을, 새로운 세대에게는 신선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기자는 켜켜이 쌓인 시간을 들춰, 거창하지 않은 일상 속 ‘추억템’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맥콜 변천사 ⓒ일화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어린 시절 저의 즐거움 중 하나는 보리 탄산음료인 ‘맥콜(McCOL)’을 유리잔에 부어 맥주인 양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시원하게 들이키시던 진짜 맥주는 어린이에겐 허락되지 않았기에, 어른 흉내가 담긴 달콤한 갈색의 보리향은 유쾌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1980년대 미국에 건너간 한국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미나리’에서도 추억의 탄산음료가 등장하죠. 바로 ‘산에서 나오는 이슬물’로 불린 ‘마운틴듀’입니다. 영화 속에서 이 음료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입맛을 사로잡는 마성의 맛을 자랑합니다. 실제로도 많은 이들의 유년기를 장악했던 이 음료는 1940년 출시된 이후 현재까지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운틴듀처럼, 제게는 맥콜이 유년 시절 추억의 음료입니다. 맥콜 또한 1982년부터 생산·판매된 장수브랜드 인데다, 두 음료는 독특한 ‘비주류’의 맛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레몬을 베이스로 한 달콤한 탄산음료라는 점이죠. 이는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스프라이트와 환타처럼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주류 음료’에서는 느낄 수 없는, 호불호가 갈리는 맛입니다.

그러나 바꿔말하면 대체 불가능한 맛이라는 뜻도 됩니다. 구수한 맛과 청량함이 공존하기란 쉽지 않죠. 맥콜의 보리 추출액 함량은 10%나 되는 데다, 비타민C 함유량 또한 같은 양의 비타민워터보다 2배, 오렌지주스보다 6배 많다니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맥콜 모델 조용필 사진 ⓒ일화

본디 맥콜은 1980년대 보리 수요가 줄어 어려움을 겪던 국내 보리 농가를 돕기 위해 개발된 음료라고 합니다. 제조사인 일화는 당시 생소했던 보리맛 청량음료를 목욕탕에서 마시는 건강드링크로 홍보하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습니다. 

이후 맥콜은 1985년 8월 한 달에만 700만병 판매고를 올리는 등 40대 이후 장년 남성층 만큼은 확실히 사로잡았습니다. 이후 여성과 1020 젊은 세대에게도 맥콜을 어필하기 위해 일화는 당대 최고 스타인 조용필을 모델로 기용했죠. 이에 이듬해까지 맥콜은 전체 음료 시장 점유율의 15.7%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잘 나가던 맥콜은 돌연 암흑기를 겪습니다. 롯데칠성의 ‘비비콜’, 해태음료의 ‘보리텐’, 코카콜라의 ‘보리보리’…이렇게 갑자기 늘어난 보리 탄산음료들이 맥콜을 위협하며 슈퍼마켓 한켠을 보리로 가득 채운 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우유 탄산의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결국 타사 보리 탄산음료 하나둘씩 단종되고 맥콜은 혼자 남게 됐습니다.

한때 코카콜라의 아성을 위협하던 일화의 매출은 1990년대 후반 20억원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매출이 급감하면서 회사 존폐기로에까지 섰던 일화는 맥콜을 단종시키지 않았습니다. 대신 문구점에서 초등학생을 공략해 판매하는 것으로 노선을 바꿨습니다. 제게 맥콜이 유독 유년 시절의 기억으로 강렬하게 남은 것도 이 때문이겠죠. 그렇게 묵묵히 버텨온 결과, 2011년 일화의 매출은 200억원 대로 회복했고 히트상품인 맥콜 역시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맥콜 고유의 디자인을 살린 굿즈와 보리과자 ⓒ일화

게다가 최근 레트로, 촌스러운 독특함에 열광하는 트렌드와 시기가 맞아떨어지면서 맥콜은 그야말로 날개를 달았습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일화는 1995년 당시 맥콜의 로고와 디자인을 적용한 레트로 한정판 패키지와 각종 굿즈 등을 출시하며 3040 세대들의 노스탤지어 감성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새로운 20대 소비층을 공략하기 위해 광희와 NS윤지, 김동현 등 인기 모델을 기용하고, 보리과자 등을 선보이며 새로운 시도에도 나서는 중이죠.

어느덧 40살을 목전에 둔 상큼하고 달짝지근한 보리음료, 맥콜은 이렇게 건강 드링크의 전설로 거듭나기 위해 오늘도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고향의 맛을 표방하며 외로운 길을 걸어온 맥콜이 앞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음료로 남아줄지 기대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