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11월 23일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에 걸린 중증장애인 노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손팻말 ⓒ뉴시스
지난 2017년 11월 23일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에 걸린 중증장애인 노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손팻말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우리나라는 사업장이라면, 사업장에 소속된 노동자라면 법정으로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몇 가지 의무교육이 있다. 매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교육이니만큼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참여해봤을 터다.

직장인 법정의무교육 지정과목은 일반 사업장 기준 4과목으로, 그중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이 포함돼 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앰으로써 장애인 노동자가 동료들과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본보가 취재차 만난 한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강사는 말 그대로 ‘의무’이다 보니 듣는 거지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거 같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이 의무화 된지 4년차, 현장에서는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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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은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개정에 따라 2018년 5월 29일부터 법정의무교육으로 지정됐다. 이 교육은 사업주가 장애인에 대한 직장 내 편견을 없애 안정적인 장애인 노동자 근무 여건을 조성하고 장애인 노동자 채용이 확대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연 1회, 1시간 이상 사업주 및 근로자 모두가 이수해야만 한다. 만일 사업주가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의 의무를 다하지 않거나 사업주 및 교육 기관의 장이 교육 실시 관련 자료 3년 보관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최대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할 수 있다.

교육 내용은 △장애의 정의 및 장애유형에 대한 이해 △직장 내 장애인의 인권과 장애인에 대한 차별금지 및 정당한 편의제공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과 관련된 법과 제도 △그 밖에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에 필요한 사항 등으로 구성된다.

교육 방법도 집합 교육, 원격 교육, 체험 교육의 형태 등 다양하다.

사업주 및 내부 직원이 공단 교육 자료실에 제공된 콘텐츠를 활용해 직접 교육이 가능하다.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주가 자체적으로 교육할 때는 공단의 사내 강사 양성과정 수료한 사람이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강사양성 과정을 이수한 전문 강사를 통한 교육도 가능하고, 고용노동부장관이 지정한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기관에 위탁하는 방법도 있다.

상시근로자 5인 이상 300인 미만인 경우에는 강사지원 사업을 통해 무료강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다만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고용노동부장관이 보급한 교육자료 등을 배포·게시하거나 전자우편을 보내는 방법 등을 통해 간이 교육도 가능하다.

직장인들은 과연 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을 들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이거 말고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게 몇 가지 있는 걸로 아는데 회사를 다니는 동안 들어본 법정교육이라곤 성교육이 전부다. 하나만 들어도 전부 다 들은 것처럼 이수 확인서를 내주기도하고, 온라인 강의 수강으로 대체한다는 얘기도 들었던 거 같은데 사실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만큼 의미 있는 교육이 아니었다는 거 아닐까. 도움이 되는 강의라면 열심히 들을 의사가 있다. 하지만 법정의무교육은 강의를 마친 뒤 항상 각종 금융상품 홍보 밖에 남는 기억이 없다. 과연 그런 교육이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 2년차 직장인 A씨

#. 매년 법정의무교육을 이수하고 있지만 대부분 성폭력예방교육과 관련된 내용이 중심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강의를 마치면 참여자를 확인하는 서명을 받는데 내가 들은 수업은 한가지인데 다른 강의도 이수한 것처럼 처리하는 거 같더라. 떠오르는 장애인 인식개선 강의가 있긴 한데 사전에 제작돼 있는 교육자료 영상을 상영해주는 수준이었다. 매번 무엇을 위한 강의인가 의심스럽다. 이왕 이수해야 한다면 제대로 된 강의를 듣고 싶지만 한번도 만족스러웠던 적이 없다. 그저 시간낭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 6년차 직장인 B씨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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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장애인인권교육센터에서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강사로 활동하는 여동수씨도 이들의 증언에 공감했다. 강의 자체가 실질적인 교육이 되지 못했다거나, 온라인 강의 이수나 근로자 수에 따라 자료 게재만으로 교육을 대체할 수 있다 보니 교육자체가 비효과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씨는 “하루는 모 언론사에 강의를 나간 적이 있는데 다 자리에 앉아 노트북으로 기사만 쓰고 있었다. 법정의무교육이 됐기 때문에 들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아 있는 거지 정말 귀 기울여 듣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온라인 강의 등 대면 강의를 대체할 만한 요소들도 영향을 미친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종식되면 대면교육을 활성화시켜야 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씨의 말대로 코로나19 영향으로 대면 강의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보건복지부와 한국장애인개발원이 발간한 ‘2021 장애인인식개선교육 안내’에서도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원격 교육(비대면)을 권장하고 있다.

다만 강사와 교육 대상자(수강생) 간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교육을 권장하지만, 비대면 교육으로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코로나19가 종식돼 안정화된 이후에는 장애인 인식개선 대면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여씨는 말한다.

또 다른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 심보준씨도 꽤 많은 사업장에서 영상 시청으로 강의를 대체하는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는 과태료를 내고 말아버리는 사업장도 있다고 했다.

심씨는 “강사를 영입하려면 비용도 지불해야 하고 직원들을 한데 모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보니 영상 시청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며 “공단에서는 영상시청은 인정하지 않는 방향의 법을 제안하겠다고는 하는데 실현 가능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을 이수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하지만 지난해까지는 100명 이하 사업장에게는 적용하지 않아도 됐었다”며 “그 이상의 기업들은 냈어야 했겠지만 1년에 300만원 정도인데, 규모가 있는 사업장에겐 큰돈이 아니니 과태료를 내고 마는 경우도 있다. 교육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씨는 효과적인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을 위해서는 지금의 방향성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 못지않게 강사들의 역량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그는 “장애인 관련법, 장애유형에 따른 설명 등이 인식개선에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겠느냐. 감수성이 없는 상태에서 장애유형, 사건사고 소개 등이 주가 되는 교육은 지루할 수밖에 없다”며 “다름을 바라보는 관점 등에 대해 소통적인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심씨는 “요즘 트렌드는 ‘장애는 배려가 아닌 존중’, ‘똑같은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인데 소위 ‘장애인을 배려해야 한다’, ‘매너를 지켜야 한다’는 취지의 강의를 내보내는 경우가 많다”며 “그간 실질적인 강의 경험이 많은 이들을 멘토로 연계해 강사들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이제는 장애 개념을 단순히 신체적 결함에 그치지 않고 더욱 확대해 바라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심씨는 “다수의 비장애인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을 장애인, 혹은 장애인 가족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이라고 생각해 관심이 부족하다”며 “장애를 단순히 신체적 결함이 아닌 코로나19처럼 환경적 장애 등으로 확대해 바라봐야 한다. 코로나19라는 환경적 장애로 우리 모두는 자유롭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어떻게 보면 전 인류가 장애를 겪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과 생각을 바꿔, 결국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은 소수 국민이 아닌 모든 인류가 알아야 하는 ‘알 권리’를 보장해 주기 위한 제도로 인식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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