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글쓰는 소상공인 ‘오늘도 지킵니다, 편의점’ 봉달호 작가 
코로나19 확산 이후 매출 40% 급감, 주변 상인들 빚으로 버텨나가
“소상공인 지원 정책, 업종별 구분 아닌 피해규모에 따라 이뤄져야”
매일 6시간 글 쓰며 작가의 삶 병행 “단편소설 모아 기고하고 싶어” 

봉달호 작가 ⓒ투데이신문
봉달호 작가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봉달호 작가를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인터뷰 약속을 잡고 방문하기로 한 날이 되면 번번이 그가 운영하는 편의점 건물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폐쇄조치가 이뤄졌다. 결국 세 번의 약속을 잡은 끝에야 그와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일정이야 얼마든지 미룰 수 있는 것이지만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주로서 하루치 영업을 공친다는 것이 어느정도 괴로운 일일지,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를 비롯한 소상공인들이 코로나19 확산 이후 이런 상황을 얼마나 자주 겪어야만 했을지도 새삼 새롭게 와 닿았다. 

실제로 그의 편의점 운영 상황은 상당히 좋지 않았다. 그는 몇 주 전 신청한 대출이 승인되지 않는다면 굉장히 어려운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신간 <오늘도 지킵니다, 편의점>을 통해 하루를 지켜내는 삶을 강조했던 그의 목소리는 보여주기 위한 문구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어려운 상황을 말하면서도 그늘을 보이지 않았고 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그 어느 때보다 활기를 띄었다. 그는 펜을 잡기 시작한 이래로 글을 쓰는 것이 즐겁지 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투데이신문>은 소상공인으로서 누구보다 코로나19의 위기를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있는, 그리고 동시에 작가로서의 두 번째 소명을 놓지 않고 이어가는 봉달호 작가를 만나 편의점주로서의 어려움과 작가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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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중인 봉달호 작가와 편의점 직원 ⓒ투데이신문

본캐, 편의점주 봉달호

Q. 신간의 도입부에서부터 코로나19에 따른 어려움을 언급했다.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

가장 힘든 건 당연히 매출이다. 저 같은 경우 전반적인 매출이 40% 감소했다. 책에도 썼지만 편의점이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쉽다. 사람을 내보내고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가면 된다. 하지만 몇 개월만 같이 일해도 가정상황을 다 알게 되는데 무작정 나가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 이 업종의 특징이 매출이 줄어들면 폐기가 늘어나 이중고가 발생한다. 수입도 줄고 버리는 제품도 많아지는 것이다. 일반화해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코로나19 이후 김밥 같은 식품류의 폐기율은 5%에서 10~15%까지 늘어난 것 같다. 어제처럼 방역지침에 따른 건물폐쇄가 이뤄지면 100% 폐기해야 한다.  

Q. 개인적인 경제 상황도 녹록치 않을 듯하다. 

수입을 구체적으로 공개할 수는 없지만 집으로 가져가는 돈이 1/4로 줄었다. 그전에 400~500만원을 가져다 줬는데 지금은 100~150만원 수준이다. 제가 아파트 월세를 사는데 임대료 내고 하면 끝이다. 10개월째 대출로 직원들 월급 주면서 버티고 있다. 그것마저도 지난달로 전부 소진돼 몆 주 전에 은행에 또 대출을 신청했다. 대출금이 안 나오면 굉장히 복잡해지는 상황이다. 편의점뿐만 아니라 오피스 상권의 식당들도 다 마찬가지일 거다. 거의 다 빚내서 운영하고 있다. 작년말까지만해도 봄이면 풀리겠지, 올봄에는 백신이 접종되면 나아지겠지 했는데 변이가 생겨나고 갑자기 4단계로 격상되니까 이제는 거의 멘붕이다. 제 입장에서 나라 경제를 걱정할 처지는 아니지만 상권의 식당이 어려워지면 단순히 자영업자들만 무너지는 게 아니다. 공실이 늘어나면 건물주도 힘들어지고 전반적인 경제문제로 확산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하여간 지금은 빚을 내면서 버텨가고 있다. 

Q. 오히려 점주가 최저임금을 못 가져가는 상황이다. 

코로나19 이전에도 편의점주들이 최저임금을 못 가져가는 상황은 많았다. 저 같은 경우는 오피스 상권에 있어 그런 일은 없었는데 이제는 제가 그런 처지가 됐다. 예전에는 직원들 월급도 못주는 점주가 있다는 것이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이제야 이해가 된다. 이 건물의 경우 재택 비율이 30% 정도 된다. 옆 건물의 재택 비율은 50%라고 들었고 회사마다 다른데 텔레마케팅 업체의 경우는 재택 비율이 70%까지 올라간다. 고객의 대부분이 내부 직원들이다보니 매출이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재택비율에 따라 건물 안에 있는 편의점들이나 식당들은 많은 영향을 받는다. 

Q.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부담이 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번에 결정된 최저임금보다 많은 돈을 직원들에게 지급해 왔다. 처음 오픈할 때부터 그렇게 했다. 제가 뭘 잘 모르고 그랬던 측면이 있는데 주변에 편의점을 운영하는 사람이 없다보니 대체로 그렇게 줄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최저임금보다 더 많은 돈을 주면서 그만큼 좋은 사람을 고용했다. 나름대로 면접도 봤고 오래 일하면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현재 정규직원은 모두 2명이다. 원래 법적으로 계약직은 고용할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가. 다들 편법으로 몇 개월 일하다가 그만두게 하고 다시 계약하는데 그렇게는 못하겠더라. 같이 일하는 직원들은 웬만하면 다들 오래 일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을 지키겠다고 한 일이라도 쉽지는 않다. 직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후회도 한다. 

Q. 정부의 소상공인 지원 정책에 아쉬움은 없나.

주로 오피스 상권, 유흥 상권, 관광지 상권이 타격을 크게 입었다. 오피스 상권은 재택근무나 집합금지가 이어지면서 고객들이 빨리 퇴근하고 또 출근하지 않으면서 타격을 입었다. 유흥 상권은 집합금지로 인해 어려워졌고 관광지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편의점 업계 전반적으로는 매출이 좋아졌다고 한다. 그건 편의점의 60~70%가 주택가에 있기 때문이다. 같은 업종이라도 편차가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업종별로 지원을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식당을 예로 들면 배달 음식점들은 오히려 매출이 올랐다. 업종별이 아닌 피해규모에 따른 지원이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Q. 코로나19 외에도 무인편의점이나 퀵커머스 배달 서비스 등에 따른 위기감도 있을 것 같다. 

예전에는 무인편의점 같은 것들을 위기로 느꼈는데 최근에는 다양한 변화들을 위협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유통전반이 편의점으로 수렴되는 구조로 가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배달 시장이 틈새를 치고 들어올 수는 있겠지만 편의점이 고유하게 갖고 있는 기능을 넘어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 역시 무인편의점을 해보려고 시도하고 있다. 본사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고 이미 신청이 굉장히 밀려있다. 예전에는 위기로 보기도 했는데 지금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스갯소리로 오피스 상권의 최고 경쟁자는 탕비실이라고 한다. 회사에 음식이나 음료가 많이 쌓여 있으면 편의점에 올일이 없으니까.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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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캐, 작가 봉달호

Q. 작가로서의 하루 일과가 궁금하다. 어떻게 지내시나. 

절반은 글을 쓰고 절반은 일을 한다. 시국이 이렇다 보니 집에서 조용히 글 쓰는 시간이 늘어났다. 편의점에서 글을 쓰기도 하지만 집필은 대부분 집에서 한다. 보통 아침 5시에 일어나면 10시까지 글을 쓰고 식사를 한다. 그리고 2시간 정도 퇴고를 거친다. 하루에 6시간 정도는 기본적으로 쓰고 있다. 현재 6곳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연재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책을 쓴다. 습작으로 소설을 쓰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글쓰는 일도 직업이니까 말 그대로 신입사원의 기분으로 몇 년 안에 성과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Q. 글쓰기에 대한 애착이나 욕구가 오래 전부터 있었을 것 같다. 

진짜 어렸을 때부터인데, 초등학교 때도 친구들에게 글을 써서 보여주고는 했다. 예전에는 모눈종이에다가 오목을 뒀는데 저는 그걸 원고지 삼아 괴기소설을 썼다. 당시에는 셜록홈즈 시리즈가 특히 유행했고 그때 탐정소설을 써보겠다고 말도 안 되는 알리바이들을 만들어 보고 그랬다. 사회에 나와서는 NGO활동을 하면서 기관지 편집을 맡았다. NGO 기관지라는 게 원고료가 없으니까 필자들이 펑크를 굉장히 많이 낸다. 그럼 그걸 제가 다 대신 채워야 했다. 그때는 구시렁구시렁 거리며 썼는데 그게 나중에 돌이켜보니 훈련이 된 것 같기도 하다. 

Q. 기자로서 활동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월간지에서 4~5년 정도 글을 썼다. 돈이 없으니까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했던 것이었다. 당시 NGO 급여가 100만원이 안 되니까. 다들 투잡을 가졌다. 우유 배달하는 선배, 주말에 솜사탕을 파는 선배, 학습지를 하는 동료도 있었다. 어느날 대표가 생계가 어렵지 않냐 물었고 당연히 힘들다 하니 모 월간지의 부장을 소개시켜줬다. 보통 기자라 하면 훈련을 받고 현장에 뛰어드는 이런 상상을 했는데 그냥 곧 바로 인터뷰를 따오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당시 유명했던 강사였는데 말총머리 한의사라고 김홍경씨였다. 이름도 안 잊는다. 취재요청서 같은 것도 없었고 EBS 앞에 가서 기다렸다가 그분을 만나서 꼭 좀 인터뷰 해달라고 통곡을 해서 원고를 넘겼던 기억이 있다. 

Q. 작가님에게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글을 쓰는 일은 굉장히 즐거운 일이다. 같이 일하는 친구에게도 말한 적이 있는데 글을 쓰면서 한번도 괴롭단 생각을 안 해봤다. 물론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근데 아직까지는 어느 매체든지 원고 밀린 적 없고 소재가 없어서 머리를 쥐어뜯은 적도 없다. 소재는 일상에서 겪는 일들에서 계속 나온다. 세상이라는 게 참 다이나믹 해서 갑자기 특이한 손님이 나타나기도 하고 코로나19를 겪는 것도 글감이 된다. 최저임금 문제도 있고 소재는 계속 등장한다. 요즘에는 소설을 몇 편씩 쓰고 있는데 에세이를 쓰다 보니 단점이 있더라. 겪은 일을 이렇게 저렇게 바꾸면 참 재밌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도 사실을 써야 하니까 욕심을 못부린다. 지금 단편으로 10편 정도를 써놨고 아직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문예지에 기고해 보고 싶다. 

Q. 3년만의 신간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자 했나.

첫 번째 책은 책을 출판하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던 게 아니다. 일하다가 취미처럼 썼고 그걸 출판사에 보냈던 것이 우연찮게 출간이 됐던 것이다. 이번에는 책을 목표로 두고 마음을 먹고 집필했다. 출판사에서는 첫 번째 책에서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풀어내자고 했는데 글을 쓰다 보니 방향이 바뀌었고 주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담게 됐다. 독자들도 편의점에서 벌어지는 사람과 사람간의 이야기를 풀어냈다고 평가한다. 의도한 건 아닌데 그렇게 전개가 됐다. 코로나 시국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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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캐와 부캐 사이, 사람 봉달호

Q. NGO에서 활동 하다가 기자를 거쳐 개인사업을 했고, 이후 편의점 일에 뛰어들었다. 

원래는 제가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식당을 운영하셨던 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편의점을 하신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줄로 알았는데 오픈을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고 처음엔 어렵다고 말씀드렸다. 근데 당시 상황을 보니 세상을 등지는 편의점주들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었다. 잘못하다가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리를 잡을 때까지만 도와주려던 것이 벌써 9년이 됐다. 편의점이라는 게 어느정도 정착되면 주인이 없어도 알아서 굴러간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가 않더라. 

Q. 편의점을 시작하기 직전, 중국에서는 어떤 사업을 했었나.

회사에서 몇 년씩 일하다보면 권태감이 생기지 않는가. 회사에 1년만 쉬겠다고 말했다. 대표는 1년만 가정을 잘 챙기고 안정되면 다시 오라고 했는데 그게 또 몇 년이 지나갔다. 중국에 가서는 식당을 했는데 갈빗집을 했다가 3개월 만에 말아먹었다. 나중에 보니 한국 사람과 중국 사람의 식당을 이용하는 패턴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는 족발집이나 삼겹살집처럼 단일품목을 파는 식당을 찾는데 중국은 안 그런다. 많은 메뉴를 원하고 고기 부위도 다양한 걸 원한다. 그러니까 딱 돼지갈비만 하는 집은 없는 거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메뉴가 왜 이것밖에 없냐, 소고기는 없냐고 물었다. 아무리 저가형으로 접근해도 먹히지 않았다.

Q. NGO에서는 어떤 활동을 했었는지. 

북한인권단체에 있었다. 원래 학생운동을 했는데 중국에서 탈북자 인권 취재를 하면서 직접 북한사람들을 보고 느끼는 게 많았다. 사람 사는 모습이 말이 아니었다. 300달러도 안 되는 돈에 사람들이 팔려가고 정말 참혹한 상황을 목격했다. 같은 동포로서, 동포가 아니더라도 인간으로서 외면할 수 없었다. 그런 의무감 때문에 하게 된 부분도 있다. 제 나름대로는 약자의 편에 서려고 노력했다. 그 전에는 남한의 노동자와 농민들을 염두에 뒀고 이후 시선을 북한으로 돌려 운동을 이어왔다. 

Q. 편의점 이외의 삶도 고민해본 적 있나.

계속 이렇게 갈 것 같다. 편의점을 그만둘 생각은 없고 어떤 글을 쓰든지 계속 운영할 계획이다. 우스갯소리로 돈이 나오는데 굳이 문을 닫을 이유가 있나 싶다. 일단은 이 시국을 넘어서는 게 중요할 것 같다. 매번 예상을 빗나가니까 어렵지만 올해 안에는 끝나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다. 다들 그렇게 버티는 상황이다. 

Q. 글을 읽어보면 손님들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손님들이란 어떤 존재인지.

손님들은 무엇보다 편의점을 운영할 수 있게 해주고 다양한 글감을 던저주는 고마운 존재다. 다만 이곳은 약간 남다른 게 있다. 한 3년 일하면 웬만한 사람 이름까지 다 알게 된다. 이름을 아는 손님만 300~400명정도 된다. 부서도 알고 어디서 일하는지도 안다. 유흥 상권만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는 없지만 관계가 깊어지는 즐거움이 있다. 글을 쓸 때 손님들에게 전부 양해를 못 구하는 경우도 있는데 다 제 책을 보셨고 나쁘게 말씀하시는 분은 없었다. 더러는 저를 찾아와서 “제 이야기 맞죠?”라고 넌지시 물어보기도 한다. 

Q. 이번 책을 통해 ‘하루를 지켜 나가는 일’의 중요함을 강조한 이유를 듣고 싶다. 

장사라는 것이 결국에는 하루가 기본단위다. 업종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하여간 기본은 하루다. 기본단위를 어떻게 바라보냐에 따라서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과거에 지나간 매출을 가지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해봤자 오늘이 달라지지 않는다. 오늘 하루를 일상적으로 지켜 내는 게 더 큰 하루하루를 지켜나가는 작은 기반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를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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