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료 점자 표기 제대로 안 돼 소외된 시각장애인들
일부 캔맥주 점자 없어 오용 위험…‘제품명’ 표기 1곳 뿐
15일 식품정보 점자 표기 법안 발의…소비자 권리 보장

제품 상단에 맥주와 브랜드 점자 표기를 병기한 테라 맥주(왼쪽)와 맥주라는 점자만 표기된 기타 캔맥주들(오른쪽)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맥주 브랜드들의 명확하지 않은 점자 표기로 시각장애인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가지 제품 외에는 점자로 브랜드명을 표기한 제품을 찾아볼 수 없는 데다, 아예 ‘맥주’ 표기조차 없는 경우도 발견됐다.

23일 본보 취재 결과 시중에 판매되는 캔맥주 제품 중 ‘맥주’ 분류와 함께 제품명까지 정확히 표기하고 있는 곳은 하이트진로의 ‘테라’ 제품 뿐이었다.   

캔음료 표면에 주로 표기되는 점자는 ‘음료’, ‘탄산’, ‘맥주’ 정도로 확인됐다. 그 중 캔맥주 제품들을 확인해 보니 대부분 ‘맥주’라는 표기만 한 쪽 귀퉁이에 표기된 상태였다.

심지어 하이네캔 맥주 등은 제품명은 고사하고 ‘맥주’라는 점자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 특히 발포주인 ‘필라이트’, 과일탄산주인 ‘이슬톡톡’ 등 맥주로 분류되지 않는 기타 주류의 경우에도 아무런 점자 표기가 돼 있지 않았다. 

해당 제품들 또한 엄연히 알콜을 포함하고 있지만, 아무런 점자 표기가 없어 시각장애인들 스스로 일반 음료와 구분할 방법은 없었다.

냉장고 속 맥주는 각양각색의 디자인으로 소비자를 유혹하지만, 눈으로 훑어 원하는 제품을 집어낼 수 없는 시각장애인에게는 점자가 아니면 제품을 구분할 길이 없다.

현재 국내 시각장애인의 수는 25만여명에 달한다. 하지만 식음료 제품에 대한 점자 표기 등은 현행법상 의무 사항이 아니기에, 기업의 자발적 조치에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시 자양동에 거주하는 71세 시각장애인 박모씨는 “음료를 만져봐서는 도저히 알 수 없으니 주인에게 맥주를 건네받아서 사는데 테라 맥주는 점자로 이름이 써 있어서 참 좋다”며 “이렇게 시각장애인들을 배려하는 기업들이 늘어나서, 나 혼자서도 제품명을 알고 살 수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국회에서도 장애인 소비자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은 지난 15일 식품 및 식품첨가물의 제품명, 유통기한 점자 표시를 의무화하는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식품과 식품첨가물 등의 제품명, 유통기한 등 필수 정보를 구분할 수 있도록 점자 등의 코드 표시를 의무화하고, 식품제조·가공업체 등에 이와 관련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점자 표시가 전혀 제공되지 않는 제품이 많아 장애인 소비자가 식품 정보를 파악하기 어렵고 식품·음료 등의 오용 사고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주류업계에서는 점자 표기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나, 당장 시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입장이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아직 오비맥주는 맥주라는 점자만 사용 중이다”라며 “브랜드 별 이름을 넣는 것도 고려 중이나 아직은 구체적인 계획은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유일하게 점자로 제품명이 표기된 하이트진로 테라의 경우 2019년 출시 당시부터 해당 패키지를 적용했다. 하이트도, 맥스도 안 되지만 유독 테라의 제품명만 점자로 새길 수 있던 배경으로는 4개 뿐인 글자 수가 큰 영향을 미쳤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캔맥주는 주세법상 공간이 규격화돼 있어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는 않다”며 “테라는 짧은 이름이기에 브랜드명 점자 반영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표기를 하지 못하고 있는 제품들도 있지만 앞으로 점차 점자 표기를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어려운 공정과 비용 문제 등으로 당장 시행하기에는 고충이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식음료업계 관계자는 “점자 표기의 취지에는 십분 공감하지만 음료 캔에 점자를 넣는 것이 단순하게 뚝딱 되는 것이 아니고 캔 뚜껑을 찍는 금형을 추가로 제작해야 한다”며 “브랜드명까지 넣는다면 그 종류도 더욱 많아지게 되니 비용이 더욱 많이 들어 바로 결정할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식품에 대한 정보 제공은 소비자가 누릴 마땅한 권리다. 소비자단체는 소외된 취약계층 소비자들의 권리 또한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소비자모임 이수현 실장은 “장애인 또한 엄연히 소비자로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고 선택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며 “물론 기업 입장에서 비용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식품의 선택은 안전문제와도 직결돼 있다. 이에 점자 표기 등 취약한 소수의 소비자 권리 또한 반드시 존중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