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펜대2: 너라는 세상’ 참여작가 이윤화

장애와 비장애가 사람을 차별하는 기준이 돼선 안돼
글쓰며 아프고 미숙했던 나를 용서하고 다독이기도
보편타당한 것들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폭력’
장애인과 어우러져 사는 것, 비장애인에게도 유익한 일

구립동대문장애인종합복지관은 지난 2017년 장애인 권익옹호 사업의 일환으로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을 주제로 한 <펜대: 나를 찾다>라는 에세이 출판 사업을 기획해 장애인 당사자의 시선에서 풀어낸 <행복추구권>을 출간했다.

그리고 2021년에는 장애 가족 입장에서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에세이 출판 프로젝트 <펜대2: 너라는 세상>를 기획해 출간을 앞두고 있다.

장애 가족은 여러 종류의 가족 형태 중 하나이지만, 그들은 세상의 편견 속에서 고립돼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장애 가족의 다양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 내 장애 인식 변화를 촉진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투데이신문은 도서 <펜대2: 너라는 세상>을 만든 사람들을 만나 장애와 가족,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윤화 작가ⓒ투데이신문
‘펜대2: 너라는 세상’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윤화 작가 ⓒ투데이신문

<팬대2: 너라는 세상>의 공저 이윤화 작가는 아이와의 이야기를 글로 담아내면서 장애아 엄마로서의 과거의 나, 현재의 나, 앞으로의 나까지 볼 수 있었다. 글쓰기 작업을 통해 아이를 키우며 힘들고 미숙했던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고, 스스로에 대한 용서와 삶에 대한 애착을 더욱 갖게 됐다고 이 작가는 고백한다.  

그동안 그에게 있어 장애를 바라보는 ‘특이(特異)’의 시선은 넘어서지 못한 장벽과도 같은 문제였다. 처한 상태만을 두고 각자의 관점에서 동정의 시선을 보내는 태도는 상처이자 폭력이었다. 이 작가는 장애인을 특정한 틀과 색안경으로 바라보지 않고, 남들과 조금 다른 삶을 사는 이들로 바라바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글로써 세상과의 소통을 열어가는 이윤화 작가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28년 차 직장인으로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산다. 둘째가 발달장애가 있다.

Q. 작가로 참여를 결심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막연히 언젠가 글을 써야지 하다가 1년 전쯤부터 조금씩 써보자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글쓰기 강좌를 들어보고 싶어졌는데 마땅한 루트를 못 찾던 중에 글쓰기 수업을 열어준다 해서 신청하게 됐다.

Q. 수업 시작 전에 걱정이나 기대가 있었을 것 같다. 

사실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아이의 장애를 지인들에게 많이 알리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노출이 될 수 있는 이 과정이 조금 걱정됐다. 동시에 아이의 장애를 알리지 않는 것에 대한 죄책감도 있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용기를 내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기대도 했다.

Q. 평소 글쓰기에 익숙했나. 아니면 이번에 도전하게 된 건가.

일기도 거의 안 쓰고 SNS도 안 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지난 6월까지 약 1년 간 지인들끼리 에세이 레터를 보내는 일을 했다. 아마추어 작가들끼리 월 1편 정도의 글을 써서 메일로 보내는 건데, 그게 독자가 있는 글을 써본 첫 경험이었다. 몇 편 쓰진 않았지만, 발달장애가 있는 둘째에 대한 글은 잘 못 쓰고 다른 이야기들만 쓰게 되더라. 궁극적으로는 아이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 목표였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처음으로 아이 이야기를 쓰기로 도전한 셈이다.

Q. 교육 과정은 전반적으로 어떠했나.

아무래도 학인(學人)들이 모두 같은 입장이다 보니 서로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위로받고 공감하는 시간이었다. 합평 시간도 처음에는 서먹해서 글 평도 잘 안 했다. 하지만 점차 작가의 의도를 알고, 우리끼리는 이해하지만 독자에게는 오해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한 수정제안도 하게 됐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많이 배려해줘서 좀 강하게 평가하실 수 있는 부분들도 완곡하게 얘기하고 꼼꼼하게 제안을 달아 주기도 했다. 연필이나 노트 같은 소소한 선물로 응원도 해줬다. 수업 후에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고 타로도 봐 줬던 게 기억난다.

Q. 교육 과정에서 기억에 남았던 일이 있다면.

보통 자기 글을 완성하기 전에는 다른 분들 글을 읽지 않는 데 쓰고 나서 보니 문장이 똑같이 겹치는 일이 있었다. 제 글은 아니었는데, 우리들이 겪는 것, 혹은 마음이 다 같구나 하는 걸 느꼈다.

 

내 곁에 한 생명이 왔고 내가 지금 그 생명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혼잣말하고 길바닥에 드러누워 울고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이나, 1주일에 몇 번씩 치료실을 오가야 하는 고단한 일상에 의해 그 중요한 사실이 흔들려선 안 된다고 주문처럼 되뇐다. 그날 이후, 아무리 기도하고 소원하고 노력해도 아이의 장애가 없어지지 않는 시간을 살며, ‘기적 같은 건 없다’라고 믿던 나는 ‘삶의 모든 순간이 기적’이라 믿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 이윤화 작가 글 중에서

Q. 글이 완성돼 가면서 자신에게는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내 경우는 아이가 많이 자라서 조금 편안해졌을 법도 한데 아이의 장애를 전면으로 내보이는 일을 두려워해서 피할 수 있으면 피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장애아 엄마로서의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앞으로의 나를 연결 짓게 된 거 같다. 아팠던 나를 위로하고 미숙했던 나를 용서하고 그럼에도 애써온 나를 안아주는 느낌이랄까.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 지에 대한 생각도 더 하게 된 것 같다.

Q. 같이 참여하는 작가님들과 소통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장애아를 둔 부모들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첫마디를 꺼내기만 해도 다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일 만큼 다 이해가 된다. 글을 통해 서로의 삶을 나누는 건 말로 나누는 것과는 또 다른 깊이가 있는 것 같다. 내가 경험하고 생각한 것을 잘 표현하려고 고민하고 낱말을 고른 것처럼 다른 작가들도 그랬을 거라는 마음으로 읽으니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느낌이다.

Q. 작가라는 타이틀이 주는 무게도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이번 책 작업에 참여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

글쓰기 초보자인데 바로 책이 출간된다고 하니 잘 써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꾸 글에 힘이 들어가고, 그게 오히려 좀 더 나은 글의 탄생을 막는 것도 같았다. 그리고 공저이니 제 글 때문에 책 전체의 질이 떨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부담도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체념했다. 이미 발을 디뎠는데 어쩌겠나.

Q. 경험적 고백을 글로 풀어낸다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셨을 것 같다.

글은 내가 쓰는 것이지만, 사실 아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않나. 아이가 발달장애인이라 인지할 수는 없겠지만, 너무 일방적인 내 시점, 전지적 엄마 시점으로 아이를 내보이는 게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그걸 다섯 편에 다 담아낼 수는 없다. 그 과정에서 발달장애인이나 그 가족이 오해되거나 내 이야기가 대표적인 것처럼 읽히면 어쩌나 하는 부담이 있었다.

Q. 작품에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

장애를 특별하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 장애와 비장애가 사람을 차별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장애가 있는 게 행복일 리 없지만,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그냥 사람이라는 이유로 누구나 마땅히 받아야 할 존중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 인지가 안 된다는 게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허락이 아니라는 것, 보이는 것만으로 한 존재를, 누군가의 삶을 쉽게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등인데 다 전하진 못했다.

Q. 작품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가지게 된 관점이나 생각이 있나.

처음에는 세상이 오해하고 있는 것들을 알리고, 뭔가 정보를 담은 내용을 쓰고 장애인 부모로 사는 삶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그러면 글이 재미가 없어지더라. 책은 아무리 좋은 정보를 담고 있어도 재미가 없고, 관심이 없으면 안 읽게 된다. 비장애인들이 장애 가족의 얘기에 그다지 관심은 없을 것 같고, 그러면 일단 재미가 있고, 술술 잘 읽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첫 글은 신파적으로 제 감정에 빠져서 썼는데, 뒤로 가면서는 사실 쓰고 싶어서 메모해놨던 문장들을 다 덜어냈다. 다 표현하지 못해서 아쉽지만 그건 나의 욕심인 거고. 또 많은 부분은 다른 작가들의 글에서 표현이 돼 대리만족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아이를 대할 때 내가 글을 쓸 때와 같은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지도 점검하게 됐다.이 책이 비장애인 독자가 많이 읽는 책이 되면 좋겠다. 그냥 우리끼리 하는 잔치로 끝나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Q. 장애 가족이라고 하면 힘들기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보통 많이들 한다.

우리는 타인의 삶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하며 사는 것 같다. 부지불식간에 눈에 보이는 부분이나 자신이 알고 있는 일부를 전체라고 판단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비장애인으로만 구성된 가족도 어렵거나 힘든 일을 겪기도 하고, 기뻐 웃는 날을 보내기도 하며,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날도 보내지 않나. 장애 가족도 똑같이 그런 날들을 산다. 조금 더 수고로운 일들이 있고 어려운 날들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어떤 인생도 한 가지 측면으로만 설명할 순 없고, 그렇게만 사는 삶도 없다고 본다. 장애 가족이 힘들기만 할 거라는 편견을 갖고 있으면 그들이 웃고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불행할 조건을 갖추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생각에 묘한 배신감마저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한 것들을 특별하게 바라보고 적용하는 순간 어떤 형태로든 당사자에겐 폭력이 될 것이다. 정작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Q. 아직도 왜 한국 사회는 장애, 장애인에 대해 많은 편견을 갖고 있다고 보는가.

우리나라는 단기간에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이지 않나. 그런 가파른 경제성장을 하며 우리 사회에 만연한 능력주의, 성과주의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과정은 의미가 없고, 미래의 성과를 낼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풍토가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 특히 발달장애인을 사회적 비용만을 야기하는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시각으로 본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성장의 속도와 우리 사회의 성숙도가 매우 불균형하다는 방증이 될 것이다.

‘펜대2: 너라는 세상’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윤화 작가 ⓒ투데이신문

Q. 가족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가족과 함께 행복했던 추억이나 자녀를 키우면서 잊지 못할 이야기 등이 있다면.

아이들이 어릴 때는 휴양림에 자주 갔다. 한창 많이 다닐 때는 한 달에 세 번을 가기도 했다. 집이란 공간을 벗어나면 우리 부부도 아이들도 조금은 더 자유로워지고 너그러워지는 걸 느끼게 되는데, 그곳이 숲 속일 때는 더 그랬다. 나무향기, 풀향기, 새소리, 흙냄새, 별이 총총히 박힌 밤하늘과 새벽이슬을 만날 수 있는 곳. 아빠를 따라 고기를 굽는 큰아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개울물에 돌을 던지며 수면 위에 그려지는 나이테를 넋 놓고 응시하는 작은 아이를 바라보던 시간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런 날은 남편과 나란히 평상에 앉아 우리의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간간히 가는데 큰아이는 더 이상 우리와의 동행을 거부한다. 셋이 다니는 지금보다 넷이었던 그때가 손이 더 많이 가고 챙길 게 많았어도 행복한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Q. 앞으로 아이들이 어떤 환경, 세상에서 살아가길 바라는가.

일단은 우리 사회가 안전했으면 좋겠다. 요즘 뉴스를 보면 비장애인이 살아가기에도 무서운 세상이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데, 위험에 대한 인지가 없고, 자기보호와 방어 능력이 없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구조적으로 안전망이 잘 구축되면 좋겠다. 그리고 보다 더 공평한 세상, 균형 있는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공평하다는 건 똑같이 나누어 주는 게 아니라, 적게 가지거나 약한 사람에게 더 많이 줘 균형을 맞추는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안전한 환경과 공평한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이 살기를 바란다.

Q. 이번 인터뷰를 통해 꼭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사람은 자기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일에는 관심을 두기가 어렵다. 그런데 장애아의 엄마가 돼 상대적으로 약하고 소외되기 쉬운 위치에 있다 보니까 장애가 아닌 약하고 소외된 이들에게도 눈길이 가고 마음이 쓰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무심코 하던 말과 표현이 누군가에게 상처와 폭력이 될까 조심하는 조금 더 사려 깊은 사람이 됐고, 게으르고 실천력이 부족한 사람이었는데 미약하나마 멀리 기아와 빈곤으로 생존의 위협을 받는 아이들을 위해 정기적 후원을 실천하는 사람이 됐다. 세칭 비주류의 약한 아이와 붙어살다 보니 내가 자라고 있음을 느낀다. 사람에게는 성장 욕구가 있다.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는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 그리고 더 나은 사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자기에게 가장 유익한 일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져 사는 것은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닌 비장애인에게도 유익한 일이다. 한 사람의 한 번의 관심과 한 번의 실천이 모든 변화의 시초가 된다. 나부터 지금 시작하면 된다. 조금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는 것도 그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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