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동운동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전태일 열사’는 부당한 노동현실 가운데서 노동자가 존중받는 세상이 도래하길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습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육신을 화염 속에 내던지는 희생도 서슴지 않았죠.

그의 숭고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 열악한 노동현실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안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저임금과 장시간 중노동에 시달리며,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받지 못한 채 일하다 목숨을 잃곤 합니다.

점점 희미해져가는 노동존중사회에 대한 희망에 숨을 불어 넣어 줄 새로운 노동정책이 필요한 때, <투데이신문>은 ‘우리가 바라는 근로기준법’을 기획했습니다.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한 시민들께서 ‘내가 바라는 근로기준법’ 게시판에 손수 남긴 의견들을 토대로 실제 노동현장 최전선에 있는 노동자들이 원하고 바라는 노동정책을 고찰해보고자 합니다.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한 시민들이 ‘내가 바라는 근로기준법’ 게시판에 남긴 글 ⓒ전태일기념관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한 시민들이 ‘내가 바라는 근로기준법’ 게시판에 남긴 글 ⓒ전태일기념관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머슴살이를 하려거든 대감집에서 해야 한다’, ‘노비가 되더라도 대감집 노비가 돼야 한다’는 말 종종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는 이왕 일을 할 거라면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에서 하라는 속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연봉격차’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올해 3월 중소기업연구원이 발간한 ‘대-중소기업 간 노동시장 격차 변화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은 대기업 노동자의 절반을 조금 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2019년 상시근로자 5~499인 중소기업의 1인당 월평균 임금은 337만7000원으로 노동자 500인 이상 대기업의 월평균 임금인 569만원의 59.4% 수준에 그쳤습니다.

1999년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월평균 임금은 71.7%로, 지난 20년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노동시장 격차가 벌어졌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제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연봉을 이유로 이직을 고민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올해 3월 잡코리아가 알바몬과 함께 남녀 직장인 1324명을 대상으로 이직 준비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62%가 올해 구체적으로 이직할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이직 계획을 가지고 있는 이유(복수응답)로는 △ 낮은 연봉이라는 응답이 44.3%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기업에 따른 이직 사유입니다.

중소·중견기업 직장인이 꼽은 이직 사유는 △낮은 연봉이 47.5%로 가장 많았습니다.

반면 대기업에 근무하는 직장인은 △업무 과다가 36.8%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공기업 근무 직장인들의 경우는 △장기적인 커리어 관리를 위해 이직할 시점이라고 판단이라는 응답이 37.9%로 가장 높은 비중을 보였습니다.

2년 차 직장인 A씨는 “처음 입사했던 중소기업만 하더라도 대졸 초봉이 2700만원 수준이다. 반면 업무상 만나던 몇몇 대기업은 초봉이 최소 4000만원이었다”며 “최저임금이 오르든 안 오르든 연봉 변화는 크게 없었다. 임급 협상도 사실상 통보라고 할 수 있다. 이럴 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를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어딜 가든 일이 많은 거야 매한가지기 때문에 이왕이면 많이 받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에 대기업으로의 이직을 결심하는 게 80% 이상”이라며 “더불어 복지도 한몫한다. 직원 교육비나 활동비 명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비용도 확실히 대기업이 많다”고 덧붙였습니다.

상여금, 그리고 무엇보다 복지에서 많은 차이를 느낀다는 직장인도 있었습니다.

7년 차 직장인 B씨는 “대기업까진 아니지만 업계에서는 나름 내실 있다고 알려진 지금 회사는 호봉제이기 때문에 신입 때는 중소기업이나 바로 윗 연차들과 기본급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상여에서는 차이가 좀 나는 편”며 “무엇보다 눈치 안 보고 연차 사용이 가능한 점이나 사내 동아리 같은 취미활동 지원 등에서 이전에 다녔던 중소기업과의 다름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노동계는 ‘코로나19 위기 극복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임금 인상분의 일부를 취약계층을 위해 내놓는 ‘사회 연대’ 방안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는 사업장에서 ‘연대 임금’ 교섭을 진행하고 ‘상생연대기금’을 조성하고, 이 기금을 비정규직이나 협력업체 노동자를 지원하는 데 사용하자는 취지입니다.

경영계에서도 임금 차이로 인한 노동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고려해 대기업의 임금 인상 최소화를 권고하는 분위기입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5월 올해 임금 조정을 앞두고 대기업들에게 임금인상을 최소화 하라는 취지의 ‘2021년 임금조정과 기업 임금정책에 대한 경영계 권고’를 송부했습니다.

경총이 제시한 권고안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따른 경기 회복의 불확실성과 청년실업 심화, 부문별 격차 확대 등 최근 국내 경제의 제반 여건을 고려해 △고용 확대 △사회적 격차 해소 △공정한 보상체계 구축 등에 중심을 뒀습니다.

이를 토대로 경총은 고임금 대기업에 대해 올해 임금 인상은 필요 최소한의 수준으로 시행하되, 실적에 대해서는 일시적 성과급 형태로 보상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미 임금 수준이 높은 대기업 고임금 노동자의 지나친 임금 인상은 중소기업과 취약계층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기고,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또 여력이 되는 기업의 경우 확보 가능한 재원을 임금 인상보다는 고용 확대와 중소기업 협력사 경영여건 개선에 적극 활용해 달라고 권고했습니다.

이는 앞선 노동계의 상생연대기금 조성과 같은 취지로 해석됩니다.

노동자들이 노비가 되더라도 대감집 노비가 되려는 이유는 왜일까요. 소위 이름 있는 회사에 다니고 싶어서? 그저 규모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결단코 아닙니다. 일한 만큼의 보상과 복지가 마땅히 이뤄지는 곳, 내 경력과 능력을 임금을 통해 제대로 보장받는 곳, 이를 통해 일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대감집, 즉 대기업인 것뿐입니다.

노동은 재능기부하는 봉사활동이 아닙니다. 중소기업은 ‘입사 후 경력만 쌓고 떠난다’고 한탄하기 전 노동자들이 정든 직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깊은 고민을 선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고민은 중소기업 홀로 짊어지는 것이 아닌 상생관계의 대기업, 노동계와 경영계 등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가야 하죠.

오는 2022년에는 모든 노동자가 만족스러운 임금 협상으로 통장도, 애사심도 풍족한 한 해를 보낼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