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 이목사가 우리 앞에 다다르자 “아유, 뭐하다 이제와!” 노파는 이목사에게 괜히 심술을 부려 보인다. 그럼에도 이목사는 “많이 기다리셨어요? 더워서 어째” 웃으며 노파를 반긴다. 이목사는 오래 기다렸을 노파가 맘에 걸려 검은 봉지를 2개나 전했다. 노파는 한사코 거절했다. 두 개를 다 먹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더 나눠주라는 말을 끝으로 유유히 대합실 안으로 사라졌다. 이목사는 수레를 지키던 나를 바라봤다. “하나 더 가져가실래요?” 다른 누군가를 나눠주라는 노파의 말에 감명 받아서일까, 나도 웃으며 사양했다. “아직 받지 못한 이들을 나눠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말과 함께 나는 용산역에서 벗어났다.

내가 용산역을 벗어난 까닭은 코로나19 음성 판정 확인서를 위함이다. 밥을 먹기 위해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아 확인서를 직접 받아볼 생각이다. 서울역 앞 임시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검사를 위한 줄을 봐왔던 터라 나는 그렇게 다시 서울역으로 향했다. 다행스럽게도 출근 시간이 한참 지나 지하철 안은 한산했다. 그 탓일까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창밖으로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그 기분을 만끽했다.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던 타인의 시선이 잠시나마 떨어진 지금, 나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감을 느꼈다.

나에게 서울역은 이제 제집 같다. 서울역에 도착한 나는 자연스럽게 2층 푸드코트로 향했다. 아까 챙겨뒀던 다 마신 플라스틱병이 요긴하게 쓰일 때다. 페트병 뚜껑을 열고 정수기로 앞에 섰다. 그러곤 물을 넘칠 만큼 가득 담는다.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다시 서울역 광장으로 향했다. 저 멀리 길게 늘어선 줄이 보인다. 평소에는 그리 길지 않던 줄인데 가는 날이 장날이다. 더 늦어지기 전에 나는 서두르기로 했다. 서울역 광장에 있는 시계를 바라본다. 현재시각 13시 20분. 서울역 앞 임시선별진료소는 12시 30분부터 13시 30분까지 내부 소독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뙤약볕 아래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다들 참 부지런하구나 싶었다.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용산역을 벗어나다

자연스럽게 대열에 녹아드니 나의 눈앞에 허리가 굽은 한 할아버지가 보인다. 가방 가득 짐이다. 가방 옆주머니에는 일회용 마스크 몇십 장이 자릴 잡았다. 나의 어깨를 짓누르는 가방의 무게를 잘 알기에 할아버지가 걱정스러웠다. 그렇게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오만가지 생각에 잠겨있던 중 바로 앞에 계시던 할머님께서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나에게 묻는다. “검사는 언제부터 한데유? 지금 점심이라 그런가? 줄이 왜 안 줄어드나 몰라” 나는 할머님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보며 “30분까지 내부 소독시간이라 그럴 거예요. 이제 곧 검사 시작할 거에요”라고 말했다. 할머님은 더위에 지칠 대로 지친 모양이다. “어유, 평소에는 줄도 없더니만 왜 꼭 오늘인가 몰라” 퉁명스럽게 내뱉어 보였다.

할머님의 투정이 얼마 지나지 않아 줄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선별 진료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선별진료소를 향해 한 발짝씩 다가갔다. 할아버지도 조심, 또 조심하며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셨다. 입구에 도착함과 동시에 손 세정제로 손을 여기저기 비벼댔다. 할아버지는 이미 손 소독을 마치고 검사 전 신상기록부를 작성하고 있었다. 신상을 기록하는 할아버지 앞으로 비닐로 된 옷을 입고 고글을 쓴 의료진들이 2명 앉아 있었다. 한눈에 봐도 지독스럽게 더워 보였다. 퉁명스럽던 할머니는 쉽게 신상기록부를 작성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갔으나, 할아버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할아버지 옆에서 신상 기록부를 작성하던 중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어르신, 휴대전화 번호를 작성하셔야 해요. 휴대전화 번호요.“, 의료진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 할아버지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보인다. 폴더폰이다. 연식이 꽤 오래 돼 보이는 그 휴대전화는 작동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어르신, 휴대전화 말고 번호를 작성하셔야 해요. 휴대전화 번호 모르세요?” 의료진이 또다시 물었다. 어르신은 묵묵부답이다. 그러던 중 선배로 보이는 한 의료진이 언성이 오가는 곳에 시선을 뒀다. 이어 휴대전화 뒷면을 확인해보라며 조언해줬다. 놀랍게도 휴대전화 뒷면에는 네임스티커가 붙어져 있었다. 자그마한 네임스티커에는 할아버지의 번호가 고스란히 쓰여 있었다. 나는 제 일인 양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신의 신상 기록 카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검사와 눈물 한 방울…이 짓을 7일에 1번씩

코로나19 검사 설문지를 한 땀씩 작성한 나는 기다란 면봉과 면봉을 담을 통 하나를 받았다. 그렇게 설문지를 제출하고 나의 순서를 기다렸다. 저 멀리 코로나19 검사를 받는 할머니가 보인다. 저 기다란 면봉이 나의 콧속 깊은 곳을 헤집을 생각을 하니 털이 쭈뼛 섰다. 나는 근처에 서 있던 한 의료진에게 “노숙인들은 7일에 1번씩 꼭 검사를 받아야 하나요?” 물었다. 나에겐 7일에 1번씩 콧속에 면봉을 넣는 행위가 여간 달갑지 않다. 의료진은 “노숙인 분들은 7일에 1번씩 검사를 받고 계세요”라고 친절히 답했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많이 아픈가요?”라고 되물었다. 의료진은 마지막까지 친절하게 “이물감이 조금 들 거에요, 그렇게 안 아파요”라고 나를 다독였다. 아쉽게도, 겁이 많은 나에겐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다.

“다음 분 검사대로 가시겠어요” 저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검사대를 향해 걸어갔다. 나에겐 검사대가 마치 서슬 퍼런 도살장처럼 느껴졌다. 검사대 앞 투명한 벽을 마주하자 의료진 한 명이 서 있다. 나의 콧속을 사정없이 헤집을 사람이다. 의료진은 손짓으로 코로나19 검사 방법이 적힌 종이를 가리킨다. 나는 그 종이를 보며 마스크를 살짝 내려 보였다. 이윽고 가까이 오라는 손짓과 동시에 나의 콧속 깊숙이 면봉을 넣었다. 자비는 없었다. 나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촉에 절로 고개를 뒤로 빼버렸다. 그러곤 연신 헛기침을 해 보였다. 의료진은 고개 뒤로 빼면 안 된다는 말과 함께 연신 나의 콧속을 면봉으로 훑어댔다. 약 10초간 진행된 검사가 마치 1시간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코로나19 검사가 끝이 났다. 의료진은 능숙하게 빈 통에 면봉을 담는다. 그러곤 검사가 끝이 났다는 손짓과 함께 나를 출구로 안내했다. 검사결과는 48시간 이내 휴대전화 문자로 받아볼 수 있다고 한다. 만약 나에게 휴대전화가 없었다면 검사결과를 어떻게 받을지 의문이다. 또, 검사결과가 나오기 전 까지 서울역에서 제공되는 무료급식을 받을 수 없다. 분명, 코로나 음성 판정 확인서를 가져와야 밥을 나눠줄 수 있다고 했다. 서울역에 가만히 있다간 꼼짝없이 굶어야 했다. 코로나19 검사 여파로 왼쪽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나는 노숙인이 전해준 보물지도를 펼쳐 보인다.

꽃동네, 작은 도시락, 6:40 pm. 지도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화요일 저녁은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다. 더더구나 코로나19 음성 결과까지 기다려야 했기에 선택지는 더욱 작아졌다. 나는 별수 없이 다소 거리가 있는 꽃동네로 향했다. 꽃동네는 역삼역 8번 출구 인근에 있는 자원봉사 단체다. 졸지에 나는 노래와 말로만 듣던 `강남 스타일`의 강남에 발을 내딛게 됐다. 강남 멋쟁이들 사이로 유유자적 꽃동네로 향하던 중 나의 눈 앞에 펼쳐진 마천루들이 나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나는 멍하니 건물들을 바라보다 이따금 모자를 고쳐 쓰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천루 가운데 움츠러들고 있기엔 가야 할 길이 멀었다. 나는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앞을 향해 나아가는 내 사이로 여기저기 수많은 사람이 스쳐 지나간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는 모양이다. 나는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게 전에 조금 더 서두르기로 했다. 자격지심일 수도 있으나, 나는 더는 사람들의 시선에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얼른 한 끼 식사를 마무리하고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잠시 휴식을 가질 생각이다.

앞만 보며 걷기를 반복하던 중 얼마나 걸었을까, 서서히 목적지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저 멀리 커다란 아파트가 보인다. 꽃동네는 저기 보이는 아파트 사이에 있다 하니 어느덧 목적지에 다다른 것이다. 나는 목적지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아픈 두 다리를 더욱 재촉했다. 혹여나 다른 노숙인들보다 늦게 도착한다면 학수고대하던 무료급식을 받지 못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나의 마음속엔 불안함과 희망이 사이좋게 반 반씩 자리를 잡았다. 기수(騎手)가 말의 배를 차며 빨리 달리는 것 마냥, 나는 아픈 두 다리를 더욱 매섭게 몰아붙였다.

노숙인 신세의 나를 본 그의 첫 마디, “아이구 어떡해 무슨일이래 정말!“

‘꽃동네‘, 저 멀리 꽃동네가 보인다. 하얀 간판위 정갈하게 쓰여진 꽃동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 꽃동네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 곳을 향해 달려갔다. 이상하다. 분명 18시 40분에 무료급식이 시작된다 적혀있는데 적막하다. 옆 음식점에서 흘러나오는 왁자지껄한 소리와 달리 꽃동네는 지나치게 고요하다.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18시 20분, 늦지 않게 도착했다. 아직 무료급식을 시작하지 않아서라기엔 개미 한마리 없는 듯 조용했다. 적어도 음식을 만드는 소리, 무료급식을 나눠 줄 준비를 하는 소리라도 들려야 하는게 정상이다. 나는 꽃동네 문 앞까지 다가가 귀를 갖다댔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나의 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대뜸 문을 열어보려 문고리를 잡자 저 멀리서 “누구세요“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당황했다. 졸지에 좀도둑으로 몰릴 수 도 있으니 말이다. “저기, 무료급식을 받으러 왔습니다.“ 내가 조심스래 대답했다. 꽃동네 관계자로 보이는 그는 나에게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인다. “무료급식이요? 그거 여기서 하는거 아니에요“ 청천벽력이다. 지도에는 분명히 꽃동네라 쓰여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나눠주는게 아니라니. 앞 뒤가 안맞지 않은가. 나는 다급하게 지도를 펼쳐보이며 여기 분명 꽃동네라 쓰여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도를 물끄럼히 보더니 꽃동네에서 하는 무료급식은 을지로에서 진행된다고 일러줬다.

한마디로 꽃동네에서 만든 음식을 을지로에서 나눠주는 것이다. 지도를 건네준 노숙인은 본인이 알아보기 쉽게끔 꽃동네, 18시 40분이라 쓴 것이다. 이를 알고나니 꽃동네로 오기까지의 여정이 모두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관계자는 옆에 가만히 서서 지도를 보며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찬찬히 바라본다. 이윽고 내가 젊은 노숙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따금 어머니 같은 잔소리를 벼락같이 쏘아붙여댔다. “젊은 놈이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집은 어디야“, “밥은, 챙겨먹고 다니는거야?“, “아이구 어떡해 무슨일이래 정말!“ 잔소리를 가장한 진심어린 걱정이다. 관계자의 눈엔 아들같은 내 모습이 맘에 못내 걸렸나보다.

“조금만 기다려봐, 아이고 정말 어떡해“ 관계자는 후다닥 건물 안으로 들어가보인다.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를 향한 진심어린 걱정. 나는 노신사에게 느꼈던 감정을 또 다시 느꼈다. 행복했다. 빵 좋아하느냐, 밥은 데워먹을 수 있느냐, 고기도 넣어줄테니 꼭 챙겨 먹으라며 이것 저것 쇼핑백에 담는 모습을 보고있자니 괜스래 가슴 한켠이 아려오기 시작한다. 바깥 생활을 하면서 느껴보는 누군가의 진심어린 걱정이다. 나에겐 그 걱정이 너무나도 소중했다. 관계자는 쇼핑백 가득 음식을 담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지인이 일하는 가게에서 일자리를 구해줄테니 면접이라도 보고 가라는 제안이다. 

나는 마음만 받겠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관계자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꼭 잘지내야 한다며 나를 격려했다. 가득찬 쇼핑백을 건네받은 나는 그렇게 차가운 거리를 향해 나섰다. 거리에 서서 물끄럼히 쇼핑백을 바라봤다. 텅 비었던 쇼핑백이 누군가의 온정으로 가득차있는 모습을 보니 나는 자그마한 꿈을 꿀 수 있게 됐다. 텅 비어버린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온정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꿈이다. 나는 삭막한 거리에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한 꿈을 가졌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