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추억에 새로운 색을 입힌 ‘뉴트로’가 대세입니다. 소비자에게 오랜 기간 사랑받아 온 기업들은 촌스러움을 훈장처럼 장식한 한정판 레트로 제품들을 앞다퉈 내놓고 있습니다. 비단 물건 뿐 아니라 옛 세탁소나 공장 간판을 그대로 살린 카페 등 힙한 과거를 그려낸 공간 또한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오래된 기록이 담긴 물건과 공간들은 추억을 다시 마주한 중년에게는 반가움을, 새로운 세대에게는 신선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기자는 켜켜이 쌓인 시간을 들춰, 거창하지 않은 일상 속 ‘추억템’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샘표 진간장, 샘표 간장 지면 광고 ⓒ샘표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에 달걀프라이를 쓱쓱 비벼 먹는 간장계란밥의 역사는 생각보다 깁니다. 60세인 저의 어머니께서도 귀한 달걀이 들어가 자주 먹지는 못했던 달콤한 별식으로 추억하고 계시니까요.

버터나 참기름, 어떤 것을 넣어도 훌륭한 맛을 선사하는 간장계란밥이지만, 역시 주인공은 바로 간장입니다. 줄곧 엄마 밥을 먹다 집에서 독립한 이후, 저는 마트 진열대에 놓인 수많은 간장 중에서 항상 진간장만을 고집해 왔습니다.

여기엔 제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진간장은 다양한 요리에 두루 쓰이는 간장이거든요. 요리보다는 조리를 더 자주 하는 요린이(요리와 어린이의 합성어)인 제게, 뭔가 전문적인(?) 양조간장과 국간장을 사용할 기회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나마 자주 해 먹는 음식인 간장계란밥과 진간장의 궁합이 가장 잘 맞았던 것이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진간장은 콩과 밀을 원료로 한 양조간장에 맛의 주성분인 아미노산 함량이 높은 간장을 배합한 것이었습니다. ‘정직하고 진한 맛’이라는 뜻이 담긴 만큼, 우리가 아는 바로 그 맛이 맞습니다.

왼쪽부터 샘표 진간장 금F3, 1950년대 샘표간장 사진, 샘표간장 모델로 활동했던 배우 주증녀 ⓒ샘표

이제는 간장을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돼버린 진간장은 1966년 샘표에서 가장 먼저 출시한 제품입니다. 

광복 후인 1946년, 피난민에게 장을 공급하기 위해 간장 생산을 시작한 샘표는 현존하는 국내 브랜드 중 가장 오래된 상표(등록번호 362호)입니다. 

샘표 창립 이전만 하더라도 간장은 집에서 담가 먹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6·25전쟁과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시행, 새마을 운동 시작 등으로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더 이상 집에서 장을 담그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이때부터 샘표 간장은 주부들의 수고를 덜어주는 제품으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에 멈추지 않고 샘표는 맛있고 건강한 간장 개발을 목표로 1958년 업계 최초로 장류 전문 연구소를 개설해 발효기술을 연구해 왔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1966년 출시된 제품이 바로 진간장인 것이죠. 전통 간장의 하나인 ‘진장’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진간장 브랜드는 현재 많은 경쟁 업체들도 사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가정에서 담가 먹던 간장을 유통 시장으로 진입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입니다.

샘표 진간장은 ‘금F3’, ‘S’, ‘금S’ 등으로 나뉘는데, 이 중에서도 국내에서 단일 간장 브랜드로서는 가장 많이 판매된 ‘진간장 금F3’은 금메달 간장이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습니다. 

샘표의 다양한 용도 맞춤형 간장 ⓒ샘표
샘표의 다양한 용도 맞춤형 간장 ⓒ샘표

1980년대 후반 경제 고도화로 간장 시장은 또다시 변화를 맞았습니다. 중산층을 중심으로 건강과 미식을 추구하는 고급 간장 수요가 생겨난 것입니다. 이에 샘표는 1989년 고급 제품인 ‘양조간장 501’ 제품을 출시했고, 이 제품 또한 현재까지 국내 양조간장 시장 판매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샘표는 최근에는 회와 만두, 아이 전용 간장 등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용도 맞춤형 제품을 내놨습니다. 참고로 간장계란밥 전용 간장인 ‘계란이 맛있어지는 간장’은 진간장을 위협하는 맛입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이밖에도 간장의 맛과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안심밀폐용기를 도입하고 꾸준히 신제품 개발에 나서는 등 샘표는 여전히 간장에 진심을 다하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상표인 샘표는 무려 75년 세월을 함께 해 온, 그야말로 장수 브랜드입니다. 1954년부터 지금까지 샘표 간장은 22억리터가 넘게 생산됐습니다. 제품용기를 일렬로 늘어놓을 경우 지구 16바퀴를 돌 수 있고, 달까지 왕복하고도 남는 양이라지요. 몇백년 역사를 훌쩍 넘기는 해외 브랜드들을 보면서, 샘표 간장 또한 우리 음식을 대표하는 헤리티지 브랜드로 오랫동안 사랑받기를 기대해봅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