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K를 생각한다’ 임명묵 작가
1994년생의 눈으로 본 한국사회 비평
90년대생 관통하는 핵심 정서는 ‘불안’
성취 경험, 자신감 결여된 90년대생
기득권 된 386, 아직도 혁명전사 자처
한국 사회의 특징적 욕망은 ‘레벨업’

K를 생각하다 임명묵 작가가 지난 5일 경기 광명시의 한 카페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K를 생각하다 임명묵 작가가 지난 5일 경기 광명시의 한 카페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지난 보궐선거 이후 90년대생에 대한 분석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보권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참패를 하면서 일각에서는 90년대생이 보수화됐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기성세대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고와 행동양식을 보이는 90년대생을 분석하는 책들도 줄줄이 발간됐다. 이제 20대가 돼 회사에서 ‘신입사원’이 된 90년대생을 이해하려는 노력인지 90년대생에 대한 분석은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 가운데 90년대생의 눈으로 또래의 90년대생을 분석하고 한국사회를 비평한 책 <K를 생각하다>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1994년생 대학생인 임명묵 작가다.

임 작가는 책을 통해 사회의 기득권이 된 386의 모순과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던 K-콘텐츠와 K-방역, 한국의 민족주의와 다문화, 입시와 교육제도를 통해 한국사회를 해부한다.

본보는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책이 관심을 받으면서 ‘지식 아이돌’, ‘비범한 지성’이라는 평가를 받는 임 작가를 만나 그가 바라본 90년대생의 특징과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이슈들에 대해 들어봤다.

ⓒ사이드웨이
ⓒ사이드웨이

표심 종잡을 수 없는 90년대생

Q. 책이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예상했는지.

전혀 못했다. 전에도 한 번 책을 내봤었고, ‘20대 대학생 저자가 이런 주제(90년대생에 대한 분석)로 책을 쓰면 이 정도 반응을 얻겠구나’ 하고 예상한 바는 있었다. 이전에 썼던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은 중국을 다룬 책인데, 이번에는 한국의 90년대생에 대한 책이니까 조금 더 팔리겠지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인터뷰 요청과 강연 의뢰가 들어와서 많이 놀랐다.

Q. 90년대생에 대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K를 생각한다>를 집필하게 된 이유는.

일단 제가 현대사회의 지난 30~40년간 일어난 변화들에 관심이 많다. 그런 변화들과 함께 태어나고 자란 또래들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가장 큰 영역 중에 하나가 한류 콘텐츠의 세계적인 팽창과 확산이었는데, 그런 것들을 새롭게 설명할 만한 게 없을까 하는 동기가 있었다. 한국사회에서 청년층에 대한 논의가 실제 제가 생각한, 제가 겪은 청년층 20대의 현실과 좀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 괴리를 해석해보고자 글을 쓰게 됐다.

Q. 90년대생을 분석한 기존의 책들도 많았다. 일각에서는 90년대생이라고 특별할 게 없다는 식의 비판을 하기도 하는데.

사실 90년대생에 대한 얘기들은 제 책이 나오기 전부터 많았다. 그때 나왔던 말들 중 ‘(90년대생에 대한 분석은) 20년 전의 X세대론과 비슷한데 대체 뭐가 새롭다는 거냐’라는 비판적인 입장도 있었다. 이런 말들은 사실상 20대의 보편적인 시각, 20대들의 그 나이대에 보이는 보편적인 행태와 다를 바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저는 X세대론과 다를 바 없는 내용이 되지 않고자 경계를 했다. 하지만 같은 20대라고 해도 X세대와 90년대생이 똑같은 것은 아니다. 20대의 특성과 90년대생들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겪은 그런 세대의 특성들을 잡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Q. 책에 대한 관심은 90년대생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대목인 듯하다. 90년대생이 주목을 받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두 가지 이유라고 본다. 첫째는 90년대생이 점점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서 기성세대가 그들과 대면할 일이 많아지고 있다. 조직이나 회사 등 다양한 곳에서 90년대생, 20대들을 보고 이해가 안 되는 면이 있으니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하는 수요가 있었다고 본다. 가정에서의 문제, 조직에서의 문제 등에서 새롭게 사회에 진출하는 세대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둘째는 정치적 표심이 이전 세대와 굉장히 독특한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좌나 우에서 정치적 충성을 바치는 게 이전 세대들의 의사표출 방법이라고 한다면, 지금은 지난 선거에서는 민주당을 찍고 다음 선거에서는 국민의힘을 찍거나, 또 성별로 갈려서 갈등이 발생하는 등 표심에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청년층에 관심이 많아진 것 같다.

K를 생각하다 임명묵 작가가 지난 5일 경기 광명시의 한 카페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K를 생각하다 임명묵 작가가 지난 5일 경기 광명시의 한 카페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90년대생, 불안감에 ‘한탕주의’ 인기

Q. 임 작가가 생각하는 90년대생의 특징은 무엇인가.

짧게 요약하면, 90년대에 세계화와 정보화라는 두 가지 큰 흐름이 있었고, 유년기부터 이 흐름과 함께하면서 청년기에 변화상들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 같다. 세계화로 인한 양극화, 정보화로 인한 온라인 공간 속 삶이 야기하는 심리적인 문제들이 90년대생의 불안감, 불만족, 심리적 결핍 등을 형성했고 그런 에너지가 커뮤니티라던가 콘텐츠로 발현되면서 이전에 한국사회에서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영향으로 당장의 지위상승 혹은 감각적인 면을 추구하는 것이 강하고, 대신에 가치라던가 의미라던가 추상적이고 현실을 넘어서는 것에 전망이 덜해지고 가치추구경향이 낮아지는 특성이 있는 것 같다.

Q. 책에서는 한탕주의가 90년대생 사이에서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그런 것들이 연관이 있는 것인가.

그렇다. 세계화를 통해 양극화가 심해졌고, 정보화를 통해서 양극화된 소비문화적인 삶이 실시간으로 관찰되는데 당연히 자신의 현실을 평가절하하고 급진적인 방법으로 뛰어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다. 그런 것들이 코인 열풍이나 주식, 불법 도박으로도 이어지는 추가적인 행동경향을 만들어내는 거 같다.

Q. 90년대생을 이해하기 위해 어떤 사건을 알아야 할까.

어떤 사건을 특정하기는 조금 어렵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일어난 변화무쌍한 사건들, 일련의 흐름을 살피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콘텐츠를 둘러싼 어떤 변화상도 들여다봐야 한다. 이 책을 쓸 때 출발점도 온라인 공간에서의 여론 변화와 콘텐츠 영역의 환경변화 및 특성변화였다. 너무 급변한 게 많아서 한 가지를 특정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10년간의 흐름을 보면 빠르게 변화한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Q. 책에서 90년대생이 소비하는 콘텐츠의 내용과 소비 양태가 투쟁적이라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소비 자체를 굉장히 투쟁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팬질(아이돌 팬 활동)을 하는 아이돌 그룹이 있다고 한다면, 그 아이돌 그룹을 1등으로 올리기 위해서 조직적으로 스밍총공(‘스트리밍 총공격’의 준말. 음원사이트 순위 상승을 위해 음원 스트리밍, 다운로드, 음원 선물 등을 하는 것)하고 다른 팬덤들과 투쟁해서 싸우기도 한다. 심지어는 음해를 하거나 댓글로 공격을 하는 등 다양한 방식의 투쟁들이 있다. 이런 것들은 웹툰이나 웹소설 소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특정 작품의 팬이라든가 특정 작품의 내용을 둘러싼 독자들 간 싸움도 있고. 콘텐츠 소비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콘텐츠를 둘러싼 맥락을 두고도 개입을 하면서 투쟁적 소비가 2차적으로, 더 중요한 소비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런 활동을 통해서 성취감, 효능감,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웹툰이나 웹소설의 내용에 관련된 얘기인데, (작품의) 내용에서 투쟁적인 요소가 많아졌다. 1세대 판타지 소설을 보면 꿈과 희망이 있고, 동료들 간의 우정 등을 강조하는데, 2010년 중반 이후 등장하는 작품들을 보면 하나같이 내용이 세상은 적대적이고, 적대적인 세계 속에서 투쟁을 해야 하고, 평범하거나 소위 말하는 ’찌질한‘ 주인공이 어떤 특정한 계기를 통해 급속히 성장하는 ’먼치킨(강력한 캐릭터를 뜻하는 단어)‘ 캐릭터가 돼 사회적 위계를 뛰어넘어 복수를 하거나 자신한테 갑질을 한 사람들에게 역으로 갑질을 하는 내용들이 급증했다. 물론 재미 요소도 많아졌지만 내용 자체가 어두워졌고, 갈등지향의 적대적 세계, 투쟁, 생존 같은 것들이 테마가 되면서 모험과 이상, 꿈 같은 것들은 사실상 굉장히 옅어졌다. 이런 콘텐츠가 결핍된 욕망을 채워주기 때문에 대리만족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Q. 그 투쟁적인 에너지를 응축한 K-콘텐츠가 어떻게 세계적 보편성과 경쟁력을 얻게 된 것인가.

첫 번째로는 K-콘텐츠가 청년문화 중심으로 퍼지지 않았나. 다른 나라의 청년층들도 한국 청년층들이 겪는 비슷한 심리적인 압박과 위기를 겪고 있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세계화, 정보화, SNS의 도래, 양극화 이런 건 다른 나라들의 청년들도 저희와 비슷한 또래들은 겪고 있다. 그런 것들을 굉장히 한국 콘텐츠가 잘 자극한 면이 컸고, 한국사회가 그런 변화들을 밀도 있게, 집약적으로 겪었기 때문에 거기서 나온 에너지도 있었다고 본다.

두 번째로는 온라인 시대가 되다 보니깐 콘텐츠에 대한 게이트키핑(공개할 정보의 취사선택)이 사라졌다. 그러니까 공급자 우위의 통제가 무너졌고 소비자들이 알아서 즐길 수 있게 됐는데, 거장이 만든 마스터피스가 아니라 쉽게 보고 빠르게 즐길 수 있는, B급 지향 콘텐츠가 좀 더 인기를 얻게 되고 그 영역에서는 한류 콘텐츠들이 경쟁력이 굉장히 높았다. 왜냐하면 제 생각에 한국 콘텐츠의 특징은 엄청나게 예술적인, 철학적인 것들을 담아내기 보다는 대중적인 콘텐츠를 대자본과 시스템을 투여해서 퀄리티 높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경쟁력을 형성하는 여러 요소들 중 하나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커뮤니티 發 젠더갈등…피해의식 강화

Q. 젠더 이슈에 대한 이해도 이전 세대와는 다른 것 같다. 윗세대에서는 여성이 약자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90년대생은 자신의 성별이 더 피해를 받는다고 여기는 경향이 강한 것 같은데.

첫째로는 실제 90년대생이 성장한 환경은 한국사회의 가부장제가 (이전에 비해) 많이 약화됐다. 이전 세대에서 ‘여성이 약자니까 더 배려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한 것은 페미니즘에 근거했다기보다는 오히려 가부장적인 인식에 근거했다고 본다. ‘남자라면 그 정도는 해줘야지’ 하는 식의 마초이즘, 가부장적인 발현이다. 그런데 90년대생에게는 그런 게 없다. 앞 세대들에게는 ‘남자가 돼서 찌질하게’라고 비춰질 수 있는 거지만, 90년대생 입장에서는 ‘남녀는 평등하다면서’라고 반박할 수 있는 세대적인 변화가 첫 번째다.

둘째로는 90년대생 남성이 가부장적 특권이나 의식이 덜 할 수 있어도 실제 사회에서는 여전히 남성이 우위에 있다는 식으로 반박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반박은 먹히지가 않는 게, 그 반박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옆으로 두고 지금은 세대 전체를 걸쳐서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갈 수 있을만한 공통의 논의기반이 없어졌다. 자기가 속한 커뮤니티 중심으로 토론을 하고 논쟁을 하고 여론을 만들어내는데, 거기에서 생각이 같은 사람들만 얘기를 하면 서로가 서로의 피해의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커뮤니티로 여론이 나뉜 상태에서 그 안에서만 같은 얘기를 반복하며 피해의식이 강화되고, 피해서사가 축적되다가 어느 순간 현실세계의 주도권을 두고 커뮤니티들끼리 싸움이 일어나는 거다. 그런 싸움이 또 다른 피해의식, 피해서사를 만들어내고 악순환이 되면서 90년대생의 젠더갈등이 격화된 것 같다. 결국에는 그런 미디어와 여론 정보를 얻고 서사를 만들어 내가는 게 문제라고 본다.

Q. 실제로 자신이 경험한 것과 사회의 제도나 인식이 괴리가 있다는 것인가. 윗세대에서 만들어낸 사회와 90년대생이 경험한 차별에 차이가 있는 것인지.

사람은 자기가 인식하는 걸로 해석하게 되는데 인식의 틀 자체가 객관화를 지향하기보다는, 남녀 구별 없이 스스로가 더 피해를 받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하기 좋은 미디어 환경이 만들어져 있다. 이를테면 실제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범죄나 치안 문제 등에 대한 불안의식과 실제 (범죄발생) 지수의 비교가 있었는데, 실제 지수는 한국이 좋은 편이었음에도 여성의 불안의식이 더 높게 나타났다 한다. 그런 괴리가 미디어 환경에서 만들어진 의식의 강화라고 볼 수 있다.

Q. 90년대생을 특정 키워드로 규정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는데.

어떤 현상을 개념화하고 일반화할 때는 항상 그런 위험성이 붙는다. 90년대생이나 386이나 거대한 산업사회 개념에서도 볼 수 있는 거고, 아니면 K-팝에서도 ‘어디까지가 K-팝이고 어디까지가 K팝이 아닌 것이냐’, ‘네가 말하는 K-팝의 특성이 K-팝의 실제 현실과 맞는 것이냐’ 이런 식으로 늘 논쟁이 된다. 그런 건 규정 자체에서 따라오는 정확성과 위험성의 배분의 문제다. 그래서 저는 90년대생을 특정 키워드로 규정하는 것 자체는 필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우리가 세상 자체를 인식하고 현상에 대응을 할 때는 적절하게 해석할 만한 틀이 항상 있어야 되는데, 틀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90년대생이라는 집단이 실재한다고 가정을 하고 거기서 ‘이 사람들의 대체적인 경향성이 이 정도니까 이렇게 대응을 하면 적절’ 하고 세팅할 수 있는 거다. 규정은 필요하지만 문제는 자기가 갖고 있는 규정과 실제 현실의 괴리가 발생할 때 잡음이 일어나고, 제대로 기능을 하지 않게 되면 규정의 틀을 바꾸고 개념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K를 생각하다 임명묵 작가가 지난 5일 경기 광명시의 한 카페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K를 생각하다 임명묵 작가가 지난 5일 경기 광명시의 한 카페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접두사 K’에 담긴 찬양과 조롱

Q. 이른바 접두사 K가 상징하는 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K에 대해서 제가 느꼈던 것 중 하나는 흔히 얘기하는 국뽕적인 것이다. K-팝, K-방역 등이 예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에서는 이게 다른 의미로 쓰인다. 예비군 훈련을 두고 ‘K-강제징용’이라고 하는 것처럼 부정적인 의미로 조롱할 때 K를 많이 쓴다. 자부심도 있고 스트레스에 대한 염증도 담고 있다. 돌이켜보면 한국인들이 한국에 대해서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매운맛이란 걸 자부심 있게 받아들이는 이상한 특징이 있지 않나. 한국 사회에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 요인이 있는 건데, 강력한 국가와 사회의 동원체제, 집단주의, 서열의식과 그 서열의식을 뛰어넘으려고 하는 에너지, 그리고 그 가운데서 벌어지는 사회적인 갈등 같은 것들이 구성원들한테 있어서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오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이 동시에 극빈국에서 선진국, 최고의 문화 수출국으로 만든 원동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복잡한 심경이 담겨 있는 말이 접두사 K인 것 같다. 극단적인 효율주의에 사람들이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그 효율의 부품이 됐을 때 스트레스를 느끼는 그런 요소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Q. 결국 국가에 대한 찬양과 조롱, 야유, 비난이 다 섞어 있는 것인가.

국가뿐만 아니라 사회 자체가 그 대상이 된다. 한국인의 특성 자체도 한국 사회에 질려하면서도 이상한 자부심이 있지 않나. 그런 것이 동전의 양면처럼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Q. K를 분석하는 키워드로 방역, 민족주의와 다문화, 386, 입시와 교육을 꼽았다. 이들 키워드를 선정한 이유를 설명한다면.

첫째로는 기존의 시각들이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 같지 않아서 새롭고 넓은 시야를 갖고, 내가 풀어낼 수 있는 자신감 있는 주제를 골랐다. 둘째로는 한국이란 현실과 지난 30~40년간 세계에서 일어난 거대한 흐름들이 조합됐을 때 나타나는 특징적인 현상들을 골랐다. 그런 현상이 방역 같은 경우 한국에서는 국가 시스템의 확장과 일상에 대한 침투력이 정보기술을 통해 증대되는 거였다. 이것이 세계화, 정보화란 변화 속에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90년대생이 세계적으로 독특한 세대로 성장하는 배경이다. 다문화 같은 경우는 한국사회가 점점 세계화 되고 이주민들이 들어오면서 한국의 특징적인 문화와 공간 속에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에 집중했다. 386의 경우 반체제 엘리트 집단이 형성되고 그들이 세계적인 선진국의 주류계층에 진입하는 것도 굉장히 이례적인 일인데, 그런 변화 속에서 일어나는 괴리와 모순을 다루고 싶었다. 입시와 교육 같은 경우에는 일반론적인 교육 역사 전반을 다루는 것도 있지만, 한국 사회가 느끼는 상향 의식과 경쟁의식에 대한 염증이 확산되고 이걸 한국적 도덕주의로 풀려고 하니 이도저도 아니게 돼버리는 상황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다양한 제 일상의 불만들이 담겨져 있는 책이기도 하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지난 7월 1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입시비리 및 감찰무마 의혹 관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지난 7월 1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입시비리 및 감찰무마 의혹 관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386 위선 드러낸 ‘조국 사태’

Q. 386과 90년대생이 겪은 20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일단 386은 80번대 학번을 다뤘다는 점에서 대학을 다니지 못했던 그 세대의 나머지 70%와 구분이 되는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전제로 얘기하자면 첫째로 90년대생과는 환경자체가 달라졌다. 386이 20대였을 때는 한국이 훨씬 가난하고, 폭력적이었고, 소위 말하면 사회 자체가 후진적이었다. 그와 동시에 한국 사회가 굉장히 빠르게 발전했다. 386은 그 발전을 너무 당연하게 여겼고, 발전에 주도적으로 역할을 했다는 자신감도 있고, 집단적으로 뭉쳐서 뭔가를 이뤄냈다는 집단의식도 확실한 편이다. 그런 면에서 힘이 있고, 의욕이 가득 차 있고 열정적인 면이 있다. 그런 자신감이 강력한 지도력을 형성하는 배경이 된다. 반면 90년대생은 풍요로운 가운데 성장했지만 자신감이 없는 세대다. ‘왜 나는 흙수저지’, ‘나는 금수저 같지도 않은데 왜 금수저라는 거야’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거다. 이처럼 저성장 사회에서 일어나는 필연적 불만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사회 구성원들이 파편화 되고, 자신들이 노력을 통해서 사회에 기여하거나 바꿔 내거나 쟁취한 경험도 굉장히 결핍돼 있는, 자신감이 결여된 면이 강한 세대다. 사실 이런 것들은 80년대생도 유사한 면이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새로운 여론의 형성 창구이자 매개체로 등장한 온라인 공간에서 불만사항이나 그런 감정들을 더 조직적으로 표출하거나 폭발하는 역량에서 구분된다. 저성장시대에서 선진국의 불만 가득한 청년들이 느끼는 위축이나 불안을 다른 방식으로 표출하고 새로운 쟁취를 이뤄내려는 움직이는 있는 거 같은데 그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지, 아니면 세상을 더 혼란하게 만들지는 지켜봐야 알 거 같다.

Q. 90년대생이 겪은 입시와 교육을 말한다면.

한국경제가 세계화 된 영역과 그렇지 못한 영역으로 급속하게 갈리면서 어떤 영역에 들어서냐에 따라 인생 경로에 굉장히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인식이 이전에서 있었지만 그게 더 커졌다. 때문에 입시에 대한 압박은 계속 가중되는데, 게다가 90년대생은 청년층 가운데 인구수도 제일 많지 않나. 제가 태어난 해인 1994년생이 71만명 정도 될 것이다. 80년대생들이 68만명 정도라고 한다면 좀 더 많다. 이후 90년대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다시 60만명으로 감소했다. 그 이후로는 심각한 저출생의 시대로 접어들게 됐고. 아무튼 입시경쟁이란 배경이 있는데, 그 와중에 이해찬 교육부총리 시대 때 진보적인 교육개혁이 시도되고 점점 역사가 누적이 되면서 학교 시스템, 잠깐 있었던 입학사정관 시스템 등이 90년대생이 입시경쟁을 하는 시기에 완성됐다. 하지만 교육개혁은 90년대생의 입시 압박을 크게 줄이지 못했다. 의도는 알겠으나 실제 사회가 양극화되고 위에 올라가지 않으면 패배자가 된다는 인식이 강력한 사회에서 제도 몇 개 바꾼다고 경쟁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한 건 너무 안일했다. 경쟁이 학교단위로 축소되면서 같은 학교 아이들, 같은 반 친구들까지도 경쟁대상으로 인식하게 되고 부정적인 요소가 있었다. 이쯤 되니 한국의 주입식 암기교육이 나쁜 게 아니었다는 생각마저도 들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90년대생이 겪은 입시와 교육이 대단히 특별하거나 이상했다기보다는, 아무리 바꿔도 한국인 내면에 있는 경쟁심리와 상향심리, 그리고 한국 사회의 신분의식, 대학 입학, 회사 입사에서부터 역전이 불가능한 인생사의 경로 결정되는 게 본질적인 문제라는 거다.

Q. 그 진보적 교육개혁 과정에서 공고해진 ‘교육을 통한 세습’이 큰 비판을 받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조국 전 장관의 딸이다. 90년대생들은 이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조 전 장관이라는 캐릭터가 소위 말하는 386의 위선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충격이 컸다. 다른 하나는 일반론적인 차원에서 얘기 하자면 능력주의가 그동안 비판을 받지 않았나. 시험성적, 정량화된 평가를 통해 측정된 능력을 바탕으로 줄을 세우고 자원을 분배하는 게 합당하냐는 비판이 있었던 건데, 조국 사태는 결국 능력주의보다 나은 시스템을 상정하지 못한다면 ‘족벌주의’로 후퇴할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준 것 같다. 내부자 집단에서 인적 네트워크와 사회적 자본이나 지식으로, ‘누구 아들 괜찮더라’ 하는 식으로 움직이는 인재선발, 자원분배 방식을 족벌주의라고 할 수 있겠다. 조국 사태는 한국 사람들이 족벌주의를 정말로 안 좋아한다는 걸 보여줬다. 미국 사회나 서구 사회는 추천서를 써주면 더 좋은 데로 갈 수 있는 시스템이지 않나.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문화적으로 형성된 능력주의에 대한 신뢰와 족벌주의에 대한 반감이 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능력주의를 비판한다고 하지만 족벌주의로 후퇴하지 않을 만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낼 만한 상상력, 기획력, 현실적인 집행력 혹은 실행력이 비판세력에게 있는가. 이점에 있어서 질문을 던진 사례다.

Q. 386의 문제를 ‘자녀들에게 부를 물려주려 노력하면서도 혁명에 대한 꿈을 여전히 갖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는데.

386은 이미 주류 기득권이 됐는데 마치 주류가 아닌 것처럼 행세하고, 자신을 기득권에 대항하는 전사들로 생각한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정책이나 현실의 괴리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자신들도 주류이고 기득권이 됐다고 인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고 현실적으로 작동 가능한 대안을 논의해야 되는데 여전히 ‘우리들은 혁명적인 집단이고 사회의 기득권을 때려 부순다’고 한다면 자신의 기득권은 건드리지 않은 채 상상 속의 기득권만 공격하는 그런 정책들이 나온다. 그런 정책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사회에 대한 386의 책임의식을 제고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에 그렇게 지적했다.

K를 생각하다 임명묵 작가가 지난 5일 경기 광명시의 한 카페에서 본보와 인터뷰한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K를 생각하다 임명묵 작가가 지난 5일 경기 광명시의 한 카페에서 본보와 인터뷰한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90년대생 표심 얻으려면 ‘소속감’ 줘야

Q. 능력주의와 관련해 사람들이 내세우는 ‘겉의 가치’와 실제로 가진 ‘속의 욕망’의 다름, 능력주의의 변질 등을 지적했다. 능력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에 반문하고 싶은 게, 능력주의 말고 다른 대안 시스템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비판하는 쪽에서는 인성 교육, 창의성 교육을 말하는데 이게 실제로 공급될 수 있는 건가. 그래서 ‘겉의 가치’와 ‘속의 욕망’을 얘기하면서 오히려 ‘속의 욕망’을 긍정하고 사회적 장치로 조정하는 게 제 의견이다. 한국에서 나타나는 능력주의의 한계는 입시 혹은 입사 합격에 맞춰서 인생 경로가 정해져버린다. 그런데 연차와 능력이 비례하는 게 아니라 사람에 따라서 2년차인데도 능력이 뛰어날 수 있고, 10년 차인데도 별 것 아닐 수도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딱 한 번 입사 혹은 입시에서 측정된 능력을 바탕으로 이후에 보상체계가 결정되는 것은 큰 부작용이다. 능력주의가 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정기적으로 능력을 검증받고 유동적으로 맞는 위치에 갈 수 있는 유연한 사회가 능력주의에 더 맞지 않겠느냐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Q. 경쟁이 일상화 된 90년대생은 공정에 민감하고 특혜에 특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한경쟁을 선호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90년대생이 생각하는 ‘공정’은 어떤 것일까.

일단 경쟁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 점에 있어서 90년대생이 ‘공정한 경쟁’을 노력과 성공신화로 본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90년대생의 핵심적인 정서는 불안이라고 본다. 심리적인 지지대라든가 친구, 가족, 일터, 학교, 지역사회가 주는 소속감이 양극화 된 사회에서 어느 위치에 들어갈지 항상 의식하게 된다. 그렇게 불안한 가운데서도 누구나 믿고 싶은 기반이 있다. 그 기반이 한국사회에 강하게 깔려 있던 시험 기반 자원분배다. 능력주의가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이라고 한다면 예측가능성이 생긴다. 얼마만큼 노력을 하면 얼마만큼의 보상을 받는다는 예측가능성이다. 사람들이 이걸 기반으로 삼고자 하는 것 같다. 자신보다 성과를 내지 못한 사람이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것을 보면서 시스템이 교란 당했다고 생각하고, 예측가능성의 훼손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이게 90년대생이 느끼는 공정에 대한 심리적인 요체라고 본다.

Q. 보궐선거 이후 90년대생 남성이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것으로 분석하는 의견이 많이 있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이 같은 분석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또 이 같은 분석이 타당하다고 보는지.

민주화 사회가 만드는 진영의식과 담론이 더 이상 90년대생에게는 먹히지 않는 시점이 됐다. 저성장, 불평등, 자산 양극화, SNS의 갈등, 온라인 커뮤니티 간의 전쟁 등이 이 시대가 형성하는 핵심적인 문제의식인데 그런 걸 건드려 주는 세력이 없었던 거다. 90년대생이 정치란 걸 인식한 시기는 박근혜 정부, 좀 더 이르다면 이명박 정부 시절이다. ‘세상이 좀 이상한데? 어? 정권을 보수가 잡고 있네? 그러면 반대를 해야겠다’ 해서 보수를 반대했고, ‘민주당은 좀 다르겠지’ 해서 민주당을 지지해봤는데 2021년 시점으로 보여준 게 ‘별로 다를 바 없다’ 내지는 ‘더 나쁜 거 아니야?’ 하는 인식이 크게 자리잡았다. 특히 남성들 같은 경우에는 젠더 문제라는 정체성에 민감한 문제, 군복무와 밀접하게 연관된 북한 문제 때문에 더 심하게 반발하는 거 같다. 문제는 이걸 보수화라고 할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20대가 보수화됐다고 하지만 많은 90년대생들은 2017년, 2018년, 심지어 조국사태 이후인 2020년에도 민주당을 지지했다. 이 사람들이 무슨 마법에 걸려서 1년 만에 돌아선 게 아니라 애초에 보수와 진보, 좌나 우 같은 전통적 진영에 소속감이 얕거나 없는 세대다. 그런 세대가 이제 전면적으로 나서는 시기다. 20대가 정치권에 안겨준 숙제는, 20대의 문제의식을 정치권이 제대로 대변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들을 대변하고 소속감을 안겨줄 수 있다면 충성된 유권자 집단으로 끌고 갈 수 있을 것이다.

Q. 대선 국면에서 90년대생의 표를 얻기 위해 각 정당이 어떤 시도를 해야 한다고 보는지.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해보면, 먼저는 90년대생이 성별로 치열하게 갈라져 있기 때문에 남녀의 표를 다 얻는 게 가능한가 하는 질문을 한 번 해야 할 것 같다. 거기서 ‘남녀 표를 다 얻는 건 불가능하니까 하나만 끌고 간다’ 혹은 ‘최대한 남녀 표 격차를 줄여서 가급적 둘 다 끌고 가려고 노력을 해야겠다’ 하는 두 가지 답이 있을 것이다. 각 정당들이 생각하는 바에 따라 결정해야 되는 문제다. 두 번째로는 남녀문제와 상관없이 20대라면, 90년대생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바라고 있을 만한 주제를 찾아야 한다. 남녀문제에 있어서는 남성 혹은 여성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이되 상대 성별을 자극하지 않을만한 것을 택해야 한다. 이를테면 군 장병의 월급을 인상하는 등의 징병 보상 같은 건 여성이 크게 반발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90년대생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가 제 생각에는 상향 경험, 그러니까 희망을 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 진보 담론에서는 고도성장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고 부작용이 많으니까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 밑을 받쳐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한국 사람들의 특징적인 사고, 욕망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레벨업이다. 한국 사람들은 즐기려고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이기려고 게임을 하는 거라는 말이 있다. 이긴다는 건 수치로 제시된 캐릭터의 레벨이다. 한국 사람들은 레벨업을 원해서 ‘대학 어디 가야지’, ‘직장 어디 가야지’, ‘집은 어디서 구해야지’, ‘자녀를 어떻게 레벨업 시킬 것인가’가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강박이자 욕망이다. 오히려 사람들이 열광할 수 있는 주제는, 과거처럼 ‘다시 너희들에게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겠어’ 하는 주장이고 이게 가능할만한 사회 개혁의 비전과 정책적 기획력 문제가 아닐까 싶다.

Q. 90년대생으로서 자신이 ‘기성세대’라는 말을 듣게 됐을 때, 한국 사회가 어떤 모습일 거라고 예상하는가. 혹은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지.

지금 돌아가는 걸 보면 제 세대가 기성세대가 되면 좋은 소리는 못 들을 것 같다. 온라인에서 어떤 글을 봤는데, “20년 뒤에 386 까듯이 뒷 세대가 90년대생 까는 거 분명히 나온다”라는 내용이었다. 사회활동도 굉장히 심각하고, 코인 열풍 아니면 젠더 갈등, 인터넷에서 몰려다녀서 싸우고, 하여간 별로 좋게 볼 만한 여지가 많이 안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에너지를 좀 더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산할 수 있도록 사회가 유도를 해주는 게 필요하다. 그게 안 된다면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세대로 불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Q. 너무 암울한 전망 아닌가.

그래도 희망이 없지 않다고 보지 않는 게, 한류의 성장은 응축된 에너지를 폭발시켜 세계적인 흐름으로 만든 것이다. 90년대생이 한류의 주역 세대란 게 이후에도 크게 달라질 평가는 아닌 거 같다. 엔터테인먼트 말고 다른 영역으로 확산하는 게 시급하지 않을까 싶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