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 관리 못해 망가진 폐로 인한 호흡기장애
직장생활·산책 등 평범한 일상마저 그림의 떡
장애인으로 보지 않는 시선이 차별이라면 차별
보이지 않는 어려움, 장애 생기고서야 깨달아

우리나라는 전형적인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사회라고 평가된다. ‘나’만큼이나 ‘우리’가 중요한 사회 분위기 속에 집단에 들지 못하는 소수의 삶은 바늘 가는 데 실 따라가듯, 차별과 배제가 당연하게 뒤따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수집단 안에도 또 다른 소수는 존재한다. ‘소수장애인’도 그중 한 집단이다. 대표적인 소수장애인인 신장장애, 심장장애, 간장애, 호흡기장애, 장루·요루장애, 뇌전증 등 내부기관장애인과 더불어 언어장애, 안면장애 등 소수장애인은 전체 장애 인구의 10%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 장애대중에 속하지 못하는 이들은 각종 복지정책으로부터 역차별을 당할 뿐만 아니라 장애를 장애로 봐주지 않는 또 다른 편견과 무관심 속에 살아간다.

본보는 장애 대중과는 또 다른 소수장애인의 일상적 어려움을 시작으로 사회적 편견, 정책 차별 등을 조명해 보는 [소외된 이들, 소수장애인]을 기획했다. 소수장애인들의 삶을 통해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우리 사회의 ‘차별 속 차별’의 실상을 들여다보자.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로 인해 우리의 마스크 착용은 일상이 돼버렸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날엔 마스크를 쓰고 퇴근길 버스를 기다리는 일조차 힘들고 버겁다. 이러한 고통을 수십년 동안 겪으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호흡기 장애가 있는 서효성(59)씨가 그렇다. 그는 남들보다 곱절은 숨가뿐 삶을 산다. 

젊은 시절 앓았던 결핵으로 호흡기장애가 생긴 그는 더는 이전의 일상으로 회복될 수 없었다.  집 근처 마트 가는 길이 다른 사람들 등산하는 것만큼 버거운 효성씨에게 평범한 직장생활은 꿈같은 일이다. 인근 공원에 산책 가는 일 조차 그에게는 천리길이다.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호흡곤란은 자칫 정신까지 잃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처럼 극한의 상황이 아니라면 그저 남들 눈에는 숨이 가뿐 정도로 비춰지기 때문에 어려움을 터놓고 이야기 하기 쉽지 않다. 설령 이야기하더라도 ‘그게 무슨 장애야’라며 가볍게 여겨지기 일쑤다.

효성씨는 장애가 생기고 나서야 장애인들의 보이지 않는 어려움고 설움을 비로소 깨닫게 됐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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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핵이 불러온 호흡기장애

1994년, 그는 30대 초반의 나이에 결핵을 앓았다. 당시에도 약만 꾸준하게 잘 복용하면 충분히 완치가 가능했다.

하지만 젊은 나이를 믿었던 그는 증상이 호전되면 약 복용을 중단하기를 수차례, 음주와 불규칙한 생활은 결국 그의 우측 폐를 망가뜨리고 말았다. 2001년 서효성씨는 약으로는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우측 폐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에게 내려진 정확한 진단명은 COPD(Chronic Obstructive Pulmonary Disease), 만성 폐쇄성 폐질환이다. 회복될 수 없는 기도 폐색으로 인해 폐 기능이 서서히 저하되는 병으로 알려졌다.

호흡곤란, 기침, 가래 등 증상이 만성적으로 나타나며, 질병이 악화돼 호흡곤란이 심해지면 운동능력이 저하되고 근력 약화, 체중 감소까지 나타날 수 있다. 이는 상대적인 사회적 고립, 우울증과 같은 정서적 변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심각한 경우 호흡부전이나 심혈관계 합병증으로 인해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진단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3년 이상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서효성씨의 경제력은 물론 소소한 일상까지 완전히 무너졌다.

자포자기 심정이던 그에게 일말의 희망은 있었다.

그가 수술을 받았을 무렵에는 호흡기장애라는 개념은 없었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2003년 장애범주가 확대되면서 호흡기장애가 공식적으로 정의됐다.

당시 서효성씨의 주치의는 그가 더 이상 남들과 같은 일상활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소정의 생활비 지원이라도 받을 수 있도록 그에게 장애진단 받기를 권고했다. 그렇게 그는 호흡기장애인이 됐다. 

ⓒ게티이미지뱅크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호흡기장애는 사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

호흡이 빨라지면 숨 쉬기조차 어렵기 때문에 운동은커녕 빨리 걷는 일 조차 쉽지 않다. 산책을 하거나 집 근처 마트를 가면서도 50m나 100m 단위로 중간중간 휴식을 가져야만 한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10초 이상 시간이 남지 않으면 다음 신호를 기다린다.

언쟁이나 토론이라도 하려면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어 잠깐잠깐 쉬어가며 호흡을 다듬어야 한다. 때문에 어디 나나서 대표로 말하는 일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밖에서는 하루 종일 마스크를 써야하다 보니 어려움은 배로 크다.

눈에 보이는 장애가 아니기 때문에 미디어에 나오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이나 혐오를 경험한 적은 없다. 하지만 때때로 장애인이지만 장애인으로 보지 않는 시선으로 인한 어려움이 있곤 하다.

“굳이 주변에 호흡기장애가 있다고 알리진 않아요. 저 조차도 스스로 장애가 있다는 걸 잊고 살때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어쩌다 얘기를 하게 되면 호흡기장애가 뭐냐고 물어요. 그럼 저는 ‘숨 쉬기가 힘든 사람’이라고 쉽게 설명하죠. 돌아오는 반응은 비슷해요. ‘너 괜찮잖아’이런 식이죠. 대중교통을 탈 때도 아직 나이가 젊기 때문에 노약자를 위한 엘리베이터나 좌석 이용하기 눈치 보여요.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젊은 사람이 편하려고 이용하는 것으로 보일테니까요.”

스스로도 많이 위축돼 있다. 갑작스럽게 숨이 가빠지고 급기야는 쓰러지기도 하니 직장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이 크다. 그러다보니 경제적 어려움은 당연한 일이 돼버렸다. 그의 생활비는 기초생활수급비 등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80여만원이 전부다.

“호흡기장애가 멀쩡하다가도 갑자기 호흡곤란이 오면 푹 쓰러지기도 해요. 그런 상황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걱정을 늘상 가지고 살다보니까 취직을 하려고 해도 스스로 자신이 없어요. 호흡기장애라고 미리 말하더라도 회사에서 뽑아주는 경우도 있어요. 겉으로 보기엔 문제가 없으니까요. 근데 또 장애인이라고 강도를 줄여주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하지만 내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라는 마음 때문에 쉽게 뭐를 못하겠더라고요. 몇년 전에 사회적 기업에서 일 해봤는데 2~3달 근무하다 버티지 못하고 결국 그만뒀습니다.”

호흡기장애 서효성씨 ⓒ투데이신문

인생의 절반 이상을 비장애인으로 살다가 장애를 갖게 된 그는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바뀌었다.

“저도 장애인이 되다 보니 어떤 상황을 바라 볼 때 장애인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겉으로 보기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 노약자를 위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왜 엘리베이터를 탔을까. 신장이나 심장 등 보이지 않는 문제가 있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거죠. 열린 마음이 생긴 거죠. 더불어 저는 손이나 발 사용은 문제없으니 그런 장애가 있는 분들을 조금이라도 도아주고 싶은 마음도 들고요.”

우리나라의 호흡기장애인은 대략 호흡기장애 1만2000여명이다. 장애인 중에서도 소수장애인이다. 때문에 필요한 지원이나 인식개선 등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일이 많지 않을뿐더러 쉽지 않다.

“호흡기장애는 저처럼 비장애인으로 살아오다 중간에 판정받은 경우가 많다 보니 다들 그냥 이렇게 살고 말지 하시는 거 같아요. 내가 목소리 낸다고 얼마나 바뀌겠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거죠. 정부, 더 나아가 모든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내부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이 필요한데도 말이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어디에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는 거예요. 언론에서도 내부장애인에 관한 보도를 다루는 경우는 보지 못했어요.

기존에 있던 거대 장애단체와 함께 내부장애인 단체에 대한 관심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내부장애인 중에서도 호흡기장애나 장루요루처럼 더 소수인 장애에 더욱요. 국회나 정부에서 인식의 변화가 시작돼야 사회적으로도 점점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우리가, 당사자가 좀 더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단체를 중심으로 조직돼야 해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상처라고 해서 고통이 없는 건 아니다. 그리고 고통의 크기는 당사가 아니면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 장애도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장애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섣부르며, 그 어려움은 오직 당사자만이 알 수 있다. 

내가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출발하는 관심과 이해가 존재를 숨기며 살아온 소수장애인들이 세상 밖으로 한걸음 나오는데 밑거름이 돼 줄 것이다. 효성씨는 하루 빨리 자신과 같은 호흡기장애인들이 세상에 목소리를 내 인식변화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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