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욱 국방부 장관이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서욱 국방부 장관이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공군에서 상관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한 부사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한지 3달이 채 되지 않은 가운데, 해군에서도 부사관이 상관에 의한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피해자인 해군 2함대 소속 여군 A 중사는 지난 12일 오후 부대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그는 지난 5월 27일 민간 식당에서 식사하는 과정에서 가해자인 같은 부대 상관 B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당시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주임 상사에게만 보고하고 일체 외부로 알려지지 않도록 요청했습니다. 이후 지난 7일 피해자는 부대 지휘관과 면담을 요청해 피해 사실을 알렸고, 이틀 뒤인 지난 9일 이 사건은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정식으로 상부에 보고됐습니다. 가해자와의 분리 조치는 상부에 정식 보고된 이후 이뤄졌습니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에 따르면 피해자의 유족은 성추행 발생 이후 부대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따돌림과 괴롭힘이 이어졌다고 밝혔습니다. 따돌림과 괴롭힘은 가해자가 주도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가해자는 사과하겠다며 피해자를 불러낸 식사자리에서 사과는커녕 오히려 술을 따르라는 등 강압적인 요구를 하고, 피해자가 이를 거부하자 악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 의원은 “피해자의 아버지는 ‘해군으로 11년간 국가에 충성한 대가가 고작 성추행과 은폐인가’ 하고 분통을 터뜨렸다”고 전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지난 9일 부대장에게 보고되면서 해군에 접수됐습니다. 현행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폭력방지법) 제5조의4 제1항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장은 성폭력 사건 발생 사실을 인지할 경우, 피해자의 명시적인 반대가 없는 한 여성가족부에 사건을 통보해야 합니다. 이는 기관 내에서 사건이 은폐·축소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입니다.

하지만 해군은 여가부에 사건을 바로 알리지 않았고,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후에야 사건 발생 사실을 여가부에 통보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공군 제20비행전투단에서 부사관이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3개월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발생한 만큼 군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엄벌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서욱 국방부장관은 지난 13일 “유족과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사과하면서 “사안의 엄중함을 고려해 국방부 조사본부와 해군 중앙수사단, 특별수사팀을 만들어 한 치 의혹이 없도록 수사해 유족과 국민께 소상히 밝히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5월 27일 사건 발생 후 피해자 본인이 원해서 신고가 되지는 않았으나 과거 유사한 추가 성폭력은 없었는지, 8월 7일 이전까지 피해 호소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조치는 어떻게 했는지, 지휘부 보고는 어떻게 했는지, 추가적인 은폐·축소가 있었는지 등을 종합 고려해 수사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엄정 수사를 지시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같은 날 엄정하게 수사할 것을 국방부에 지시했습니다.

청와대 박경미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해군 성폭력 피해 A 중사 사망사건을 보고받고 공군에 이어 유사 사고가 발생한데 대해 격노했다”면서 “한 치의 의혹이 없도록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국방부에 지시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공군 부사관 성폭력 사망사건 이후 같은 사고가 발생한데 대해 여성계에서는 군 수사의 신뢰를 담보할 수 없다며 서욱 국방부 장관의 경질과 여가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13일 논평을 통해 “서 장관을 경질하라”고 문 대통령에게 요구하며 “정영애 여가부 장관은 즉시 군 성폭력 문제에 직접 개입하라”고 주장했습니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군 내 성폭력을 해결하지 못해 대한민국은 군사력을 잃고 있다”면서 “국가의 안보를 뒤흔드는 폭력이자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폭력에 군통수권자와 지휘부는 사과만 반복할 것인가”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엄정한 지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군을 만들어 군과 행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잃은데 책임을 물어 서 장관을 즉각 경질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그러면서 “더 이상 군을 믿을 수 없다. 정 장관은 즉시 군 내 성폭력 문화와 사건에 대해 직접 개입해 여성이 성폭력으로 죽지 않고 군인으로 복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현행 성폭력방지법 제5조의4 제2항은 여가부 장관이 공공기관으로부터 통보받은 성폭력 사건이 중대하다고 판단되거나 재발방지대책의 점검 등을 위해 필요한 경우 해당 기관에 대한 현장점검을 실시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현장점검 결과 시정이나 보완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국가기관 등의 장에게 시정이나 보완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여가부는 지난 13일 “A 중사 사건의 처리 과정에 대해 성폭력방지법에 따라 현장점검 등 필요한 조치를 철저히 해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17일 군 내 성폭력 피해자 보호체계와 피해자 신고에 따른 조치의 적정성 및 개선방안 마련을 위해 직권조사 개시를 결정했습니다.

인권위는 “직권조사를 통해 군 내 성폭력에 대한 인식 실태를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면서 “군 내 성폭력 사고가 끊이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 피해자 신고에 대한 해당 부대의 조치 및 보호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와 보호체계의 사각지대는 없는지 등을 면밀히 살펴볼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군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가운데 민·관·군 합동위원회는 지난 17일 군 내 성폭력 예방 및 피해자 보호를 위한 긴급 임시회의를 열었습니다.

이 회의에서 위원들은 수사의 공정성 확보, 민·군 합동조사를 통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습니다. 국방부는 전 장병 대상 전수조사를 통한 실상 파악, 병역 약자 및 성폭력 등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방안 마련의 필요성 등에 대한 민·관·군의 공감이 이뤄졌다고 밝혔습니다.

박은정 공동위원장은 “공군에서 발생한 사건을 계기로 민·관·군이 다방면에서 부심해 왔으나 해군에서 또 다른 희생이 발생해 참담한 마음”이라며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박 위원장은 군 내 성폭력 사건 처리 및 피해자 보호시스템 점검과 피해자를 중첩적으로 두텁게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 집중 논의, 성폭력 가해자와 주변 동료에 의한 2차 피해 근절 및 군 내 성폭력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 등을 강조했습니다.

합동위원회는 더 이상 군 내 성폭력으로 안타까운 희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계 법령 간의 충동 등 문제점을 검토하고, 현장에서 실효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세부지침을 마련해 국방부에 강력 권고하기로 했습니다.

반복되는 군 내 성범죄와 피해자의 사망은 군이 피해자 보호는 물론 가해자 처벌에 미온적이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특히 이번 사건은 공군 부사관의 사망으로 군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동안 벌어진 일이기에 더욱 참담합니다.

인권위의 조사, 여가부의 현장점검과 별개로 군이 철저한 조사를 통해 가해자를 엄벌할 수 있을지도 주목됩니다.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지시에도 성폭력 범죄가 반복되는 것은 군의 기강이 해이해져 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가해자 엄벌은 군의 기강을 바로잡는 근간이 될 것입니다.

반복되는 성폭력 사건으로 군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입니다. 인권위 조사가 시작되고 여가부에서도 현장점검을 고려하고 있는 만큼 여성이 안전하게 복무할 수 있는 부대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지 온 국민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개선대책 및 재발방지대책 마련으로 군이 환골탈태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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