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 넘어 이제는 분 단위…속도경쟁 ‘치열’
속도에 잠식된 노동자와 게으름에 익숙한 소비자
배민·쿠팡 등 플랫폼 공룡 싸움에 골목상권도 울상
자영업자·노동자 피해 우려에 사회적 논의 요구돼

좌측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배달의민족의 B마트, 요기요 요마트, 쿠팡의 쿠팡이츠 마트 ⓒ사이트 캡처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걸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다. 끊임없이 편안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게으름’이 소비 트렌드가 된 시대다. 상품을 주문하면 분 단위로 즉시 배송해주는 서비스인 퀵커머스 또한 소비자의 게으름을 보장하는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음식에 한정됐던 ‘빠른 배달’ 서비스가 생필품까지 영역을 넓히면서, 종교에서는 죄악으로 간주되던 게으름이 이제는 소비자의 권리가 되고 있다. 이에 새벽 배송, 당일 배송을 넘어 분 단위를 다투는 플랫폼 기업의 속도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당연하게 누리는 퀵커머스의 편리함에는 그늘이 존재한다. 소비자 편의도 좋지만 자영업자 피해로 이어지는 골목상권 침범과 빠른 속도를 감당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위험한 근무 환경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新 격전지 퀵커머스 시장…배달앱에 유통 공룡 가세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여파로 비대면 소비가 일상화되고 있다. 새벽배송과 당일배송이 당연하게 자리 잡으면서 분 단위로 물품을 배송해주는 퀵커머스 시장이 주목받고 있다.

기존엔 음식을 주로 배달하던 퀵커머스 서비스는 생필품까지 영역을 넓혔다. 생필품의 경우 빠른 배달을 위해 도심 속 물류센터가 요구된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수요를 미리 예측해 여러 개의 도심 물류센터에 상품을 보관해두고, 고객의 주문이 들어오면 상품을 인근 배달 노동자에게 배차하는 방식이다. 

퀵커머스에 가장 먼저 나선 기업은 배달 플랫폼사들이다. 

지난 2019년 11월 B마트를 론칭하며 퀵커머스 시장의 문을 연 배달의 민족(이하 배민)에 이어 이듬해 9월 요기요가 요마트 서비스를 전개했다. 여기에 쿠팡이 지난달부터 쿠팡이츠마트로 퀵커머스 시장에 도전했다.

서울 송파구 일부 지역을 대상으로 퀵커머스 서비스인 쿠팡이츠마트를 시범 도입한 쿠팡은  B마트와 요마트가 각각 1만원, 5000원을 최소 주문 금액으로 한정한 데 비해 최소 주문 금액을 아예 없애면서 퀵커머스 사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특히 외부 배달기사와 위탁계약을 하는 배민, 요기요와 달리 쿠팡이츠는 직고용 배달기사 수 십명을 소형 물류거점에 상주시키는 방식으로 배송 소요 시간을 줄였다.  최소 주문 금액 없이 15분내로 생필품을 배송해 준다. 

배민 또한 일부 매장에 단건 배달을 도입하고 강남논현점은 100% 단건 배달로 운영하는 등 쿠팡이츠마트와의 속도전에 대비하는 모양새다. 

기존 유통 공룡들까지 퀵커머스 시장에 뛰어들면서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편의점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은 자체 배달 전용 앱을 내놓고 배달 서비스 ‘부릉’을 운영하는 메쉬코리아의 지분을 인수했다. 아울러 사모펀드와 손잡고 국내 배달 플랫폼 2위 사업자인 ‘요기요’ 인수전에도 참여했다. 

현대백화점은 전기 트럭을 활용한 빠른 배송 서비스에 나섰다. 자사 식품관의 신선식품을 30분 안에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최근 홈플러스는 1시간 내 즉시배송 익스프레스 서비스 매출이 론칭 당시보다 3배 이상 늘었다며 이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이마트 또한 퀵커머스 시장 진출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게티이미지뱅크

빨라지는 노동자 시계…배경엔 ‘게으름 경제’ 지목 

배민·요기요 운영사인 딜리버리히어로(DH)는 오는 2030년 전 세계 퀵커머스 시장 규모가 600조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우아한형제들은 B마트의 구체적인 실적을 공개하지는 않고 있지만 감사보고서를 살펴보면 지난해에만 퀵커머스로 2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도 퀵커머스 시장의 성장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퀵커머스 시장의 성장 배경으로는 게으름 경제의 일상화가 꼽힌다.

게으름 경제는 ‘란런(懶人)’ 경제로도 불린다. 중국어로 게으른 사람과 경제를 합친 말로, 게으른 소비자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상품과 서비스 산업이 활성화되는 현상을 뜻한다.

여기서 게으른 사람이란 다른 의미가 아닌, 시간의 가치를 돈으로 사는 사람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바쁜 일상으로 가사노동시간을 단축하고자 배달 음식이나 간편한 서비스를 즐겨 찾는 이들에게 명명된 단어다.

시간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트렌드로 인해 배송서비스는 새벽배송에서 당일배송을 거쳐 분 단위 배송에까지 이르렀다. 편리한 기술과 서비스를 경험한 소비자는 다시는 불편한 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빠르고 혁신적인 편리함을 찾게 된다.

한국교통연구원 스마트물류연구센터 장소영 부연구위원은 “빠른 배달이 이미 소비자들에게 당연한 서비스로 체화됐고, 이미 확보된 편리함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며 “상품의 질이 이미 대동소이하고, 배달 속도가 관건이 된 만큼 퀵커머스 시장의 속도 경쟁은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소비자 편의를 맞추기 위한 서비스 이면에는 빠른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더욱 빨라진 노동자의 시계가 있다. 

배달 플랫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배달 노동자 수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임시 계약인 긱(gig) 노동자, 즉 플랫폼 기업에 소속된 근로자가 아닌 계약직 노동자로 분류된다. 플랫폼 기업들이 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정의하면서 사회보험 등 기업 책임은 노동자 개인에게로 넘겨졌다. 

불안정한 노동 형태에, 주어진 시간 내에 여러 일을 처리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배달 노동자들이 빠르게 이동하다 보니 사고 위험도 높은 상황이다. 

배달 노조 라이더유니온 관계자는 “초 단위로 배달료가 바뀌는 배달대행 플랫폼의 운임 체계로 인해 라이더들은 피크타임에 한 건이라도 더 배송하기 위해 도로를 달린다”며 “회사는 10분이라는 수치를 제시한다지만 압박을 받는 대상은 현장에서 일하는 라이더들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라이더 안전사고 문제가 심각한데도 정작 기업들이 대책안을 내놓지 않는 상황에서 시간 경쟁이 심화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라고 말했다.

숙명여대 경영학과 서용구 교수는 “소비자들이 시간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가 됐고, 그 흐름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긱 노동자들이 양산되는 상황은 우려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자들의 근로환경과 안전사고 위험 등은 이미 사회적 문제로 지목되고 있다”며 “퀵커머스의 산업 발전과 발맞춰 부작용에 대해서도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를 인식한 정부는 최근 배달대행업체 규제를 예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말 수수료 지급 기준과 합리적 배상 책임 등 불공정 행위 금지 조항이 담긴 배달대행 위·수탁 표준계약서를 마련했다. 이에 따라 배달대행업체들은 연내 배달기사와 표준계약서를 체결해야 한다. 

특히 정부는 지난달부터 보험설계사, 택배기사, 신용카드회원 모집인 등 12개 직종의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를 대상으로 근로자 고용보험 가입 의무화에 나서기도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퀵커머스 규제 없어 골목시장 잠식…사회적 논의 필요

게으른 경제를 업은 퀵커머스는 편의성을 무기로 우리 일상 속에 스며들고 있다. 퀵커머스에서 취급하는 상품과 동네 마트와 편의점, 문구점 등에서 판매하는 상품군은 대동소이하다.

가공식품이나 식재료에서부터 우산, 세제, 건전지, 반려동물 사료·용품 등 생필품까지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에 빠른 배달 서비스와 함께 거대 자본을 가진 기업들이 물량 공세에 나선다면 자본력이 약한 골목상권이 침해받을 우려가 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13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홍성국 의원이 우아한형제들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배민이 운영하고 있는 B마트는 지난해 8월 매출이 1년 전 서비스 출시 시점보다 963.3%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편의점 업체 매출은 감소했다.

한국편의점협회 자료에 따르면 A편의점 업체는 배달서비스를 운영하는 점포가 작년 11월 582곳에서 올해 8월 942곳까지 62% 증가했음에도 같은 기간 평균 주문액은 48% 줄었다. 

자영업자들은 거대 자본이 동네 상권을 소리 없이 잠식하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 퀵커머스 업체들은 거리 제한이나 유통산업발전법과 같은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형평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대형 유통업체들의 경우 오프라인 출점에 나설 때 유통산업발전법 등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규제가 적용되지만 플랫폼 업체들은 적용 대상이 아니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이성원 사무총장은 “비대면 배달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자 독점적 시장 지위를 가진 거대 퀵커머스 기업들이 국내 유통시장을 흔들고 있다”며 “사업 확장으로 유통 시장 독점에 나서면서 전국 중소상인 자영업자들의 피해를 보고 있는 만큼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편의점의 경우에는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감소에 배달 플랫폼 업체 진출, 최저임금 인상까지 겹쳐 더욱 고민에 빠진 상황이다.

한국편의점주협의회 홍성길 정책국장은 “대형 기업들이 플랫폼을 통해 시장 장악을 한 후 본인들이 유통에 나서고 있다”며 “퀵커머스가 일상적으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하루 빨리 규제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골목상권이 초토화되고 전 국민의 플랫폼 노동자화가 진행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대기업이 특정 지역 구매층과 구매 동향 등 기존에 쌓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오프라인 사업에 진출한다면 경쟁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무조건 플랫폼 기업의 규제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유통 현대화 및 공공물류센터 운영 등으로 자영업자들도 경쟁력을 기르고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연합회와 한국편의점주협의회 등 슈퍼마켓과 편의점, 마트, 문구점 등의 업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들은 이달 말 퀵커머스에 대한 대책위를 꾸려서 대응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는 퀵커머스 업계의 성장 이면에 노동자 근로환경 개선과 자영업자 상생 문제는 여전히 풀어가야 할 숙제라고 말한다.

숙명여대 경영학과 서용구 교수는 “마음껏 게을러도 되는 환경에 놓인 소비자와 퀵커머스 시장의 시너지로 유례 없던 빠른 배송이 일상으로 들어왔다”며 “지금은 배달료와 수수료를 낮추는 출혈경쟁으로 가고 있지만 이는 결국 배달원들에 대한 처우와 소비자 부담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퀵커머스 시장 안정화를 위해서는 결국 적정 배달료를 소비자에게 정당하게 요구하고, 이 비용이 배달 노동자들에게 전달돼야 한다”며 “골목시장 침해와 관련해서도 업계와 정부의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