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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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의 확산 이후 명절 연휴에 가족들이 모일 수 없게 됐지만, 이번 추석에는 사적모임 인원제한의 완화로 8명까지 모일 수 있게 됐습니다.

명절에 가족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정겨운 풍경입니다.

하지만 가족이 모이는 것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며느리의 역할을 강요하는 시가를 둔 사람이라면 해마다 돌아오는 명절이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물론 며느리든 사위든 배우자의 부모님과 잘 맞지 않는다면 부담으로 다가올 테지만, 며느리와 사위가 받는 압박은 차이가 매우 큽니다.

우리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며느리에게 요구하는 역할은 배우자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시고, 시가의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돌보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이 맞벌이 부부인 상황에 맞춰 육아를 할머니가 맡는 경우도 있지만, 그 외의 역할은 여전히 며느리에게 강요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명절 차례상 준비입니다. 이는 며느리뿐 아니라 딸에게도 강요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만 딸은 본인 조상의 차례상을 준비하는 것인 반면, 며느리는 배우자의 조상을 위해 차례상을 차려야 하는 것이죠.

성별을 가리지 않고 온 가족이 함께 명절음식을 준비하는 경우도 많이 늘어났지만, 아직은 그 변화가 더딘 것도 사실입니다.

카카오웹툰에서 연재 중인 웹툰 <유부녀 킬러>의 한 장면을 소개할까 합니다.(※<유부녀 킬러> 중 한 에피소드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회사에서 퇴근을 한 유보나는 시어머니 옥선자와 함께 제사상 준비를 위해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한다. 조금 늦게 퇴근한 보나의 남편 권태성은 설거지를 하고 있는 보나가 손을 다쳐 밴드를 붙인 것을 발견하고는 ‘상처에 물이 닿으면 안 된다’며 자신이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선다.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본 선자는 보나에게 ‘평소에도 태성에게 집안일을 시키느냐’고 화를 낸다.

태성은 보나가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대가를 홀로 치러왔음을 깨닫고 선자에게 ‘우리집 제사인데 며느리에게 노동을 전담시키는 건 부당하다’며 보나 대신 자신이 거들겠다고 말한다.

선자는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남자가 하는 일과 여자가 하는 일은 엄연히 다르다’며 윽박지르지만, 태성의 큰누나는 선자에게 ‘제사를 없애자’고 말하며 태성의 편을 든다.

하지만 선자는 ‘평생 제사를 준비하고 지내 온 나는 제사를 없애면 죽어서 조상들 볼 낯이 없다. 제사는 내게 의미가 있다’라며 거부한다. 이에 태성은 ‘제사를 간소화하고 음식은 모두가 같이 차리자. 보나는 상 차려지면 와서 참여만 하는 걸로 하자’고 제안한다.

이에 태성의 여동생은 ‘제사 폐지’를 안건으로 가족투표를 하자고 한다. 보나는 투표권 없이 개표를 담당해 결과만 발표하고, 몇 명이 어디에 투표했는지는 비밀로 하기로 한다. 그렇게 보나를 제외한 선자, 태성, 태성의 큰누나와 작은누나, 동생이 투표를 하게 된다.

투표결과 제사를 폐지하는 것으로 결정이 된다. 선자는 ‘투표고 뭐고 혼자라도 계속 제사를 지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보나가 확인한 투표용지에는 선자를 포함한 5명 전원이 제사 폐지를 찬성했다.

선자가 제사 폐지에 찬성한 것은 자신이 며느리로 살면서 강요당한 역할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선자는 자신이 평생 충실히 수행해 온 전통적 며느리상을 포기하지 못하고 보나에게 강요했습니다.

결국 가부장적 구조 안에서 남성은 물론 여성마저 여성에게 전통적 며느리상을 강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 사위에게는 요구되는 전통적 역할이 많지 않습니다. 사위는 ‘손님’ 역할에 머무르면 되고, 배우자의 부모도 특별히 음식준비나 가사노동을 함께 하도록 강요하지 않습니다. 며느리에게 가해지는 압박에 비하면 사위에게는 큰 압박이 없는 것이죠.

앞서 언급한 웹툰 <유부녀 킬러>의 댓글을 보면 ‘우리 집은 남자들이 나서서 제사 없애자고 했다’는 댓글이 많습니다.

또 많은 가정에서 차례나 제사 음식을 성별 구분 없이 함께 준비하는 경우도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차례나 제사의 의미는 ‘돌아가신 조상을 모셔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으로 대접한다’는 게 아니라, 가족이 함께 모여 돌아가신 고인을 기억하며 서로 안부를 묻고 음식을 나누는데 있지 않을까요. 조상들도 누군가의 노동을 착취해 준비된 음식을 먹는다는 게 편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자신을 생각하는 후손들 모두가 행복한 마음으로 함께 준비한 음식을 먹고 싶어하지 않을까요.

성평등한 명절을 만들기 위해서는 <유부녀 킬러>의 에피소드처럼 가족 구성원 간의 큰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명절을 보내기 위해서는 그간 명절 노동을 하지 않은 이들의 변화된 목소리가 중요합니다. 작중 권태성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이번 추석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일부만 편안한 명절이 아니라, 모두의 노력으로 모두가 즐거운 명절을 보내기 위해 노력해보는 게 어떨까요. 올 추석을 계기로 많은 가정에서 성평등한 가정으로 거듭나는 첫 발을 내딛을 수 있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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